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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돌, 머릿돌 되다!

시편 김종수 목사............... 조회 수 2189 추천 수 0 2008.08.18 20: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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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18:22-23 
설교자 : 김종수 목사 
참고 : 아힘나 학교 교목 / 새길교회 2005. 2. 6 주일설교 
“집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은 주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이다.” (시 118 : 22~23)

주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예수 따르미 새길공동체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 대안을 꿈꾸는 사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하여 대안을 꿈꾸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납니다. 에전에는 하잘 것 없이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발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이를테면, 새마을 운동으로 허물어버린 흙집효능을 알고 아파트 벽에다 침대에다가 심지어 속옷에까지 황토 흙을 집어넣기도 합니다.

저녁에 군불을 때어 아침까지 뜨끈뜨끈했던 구들장의 효과가 그리워 찜질방에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그야말로 몸을 지지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대장금 이후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고 웰빙식단으로 바꾸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점점 각박한 도시 생활에서 쌓이고 쌓이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촌으로 촌으로 찾아 문명의 이기로부터 하나 둘씩 멀어져가는 삶을 택하는 이들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드러나고 있는 교육현장에서의 현실을 보며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의 고민이 점점 늘어납니다. 얼마 전 경제개발협력기구인 OECD에서 회원국의 만 15세 학생들(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고등학교 1학년)을 상대로 문제 해결력, 읽기, 수학, 과학 등 총 4영역의 소양수준을 파악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3년 주기의 학업성취도 측정 프로그램으로 비교 연구해 본 결과 고등학교 1학년인 우리나라의 만 15세 학생들이 문제 해결력에서 1위, 읽기에서 2위, 수학에서 3위, 과학에서 4위라는 성적을 나타내어 상당히 좋은 결과를 얻었다하면서 한껏 고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PISA(국제학업성취도측정프로그램)의 결과를 기뻐하는 사이에 한쪽에서는 휴대폰을 이용한 대규모 입시부정사건이 벌어지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교사가 뇌물을 받고 학생의 답안지를 대신 작성해 주는 일들이 일어나고, 고교에서는 성적 부풀려 좋은 학교를 보내려고 하였으며 한편 대학에서는 고교간 등급제를 적용하여 등 기본적 윤리와 양심을 저버린 일들이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한마디로 학부모와 학생 등 교육가족 전체를 양심불감증 환자들이 되어 버렸다

무엇 때문에 한국의 교육현장이 이처럼 왜곡되고 병들었는지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린 학교괴담을 아이들이 모를 리 없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면 이 사회는 분명 희망을 잃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며칠 전 교육계의 원로들이 이러한 양심불감증에 걸린 교육계를 통탄하며 모두가 내탓이라는 자성의 마음으로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의 교육현실에 자녀들을 내어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한 이들은 무언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며 이런저런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실험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실험의 단계를 지나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성숙시켜가는 일은 더 더욱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대안을 꿈꿀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대안을 찾지 못하고 그저 잘못된 사회구조 속에서 주변부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허다합니다. 중심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담당한 주변부의 인생은 늘 꿈을 좇는 사람들로 머물게 됩니다. 언젠가는 자신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 아닌 절망을 포기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2. 억압구조를 통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심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말씀은 이러한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스런 삶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오히려 그 구조 속에서 자신의 배를 불리고 권력을 유지하는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준엄한 꾸지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말씀은 본문 바로 위의 마가복음 11장 27-33과 12장 1-9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재차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을 거닐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예수께 다가와 질문을 합니다.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이런 일이라 함은 예루살렘을 입성할 시에 많은 군중들이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왕을 맞이하듯 열렬한 환호를 일을 사전에 계획하고 실행한 일이 그 하나요, 성전을 부정과 부패의 온상으로 만들어버린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문란한 질서를 둘러엎은 일이 그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열매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고 곧 말라죽게 한  사건은 무언가 자신들을 압박해 오는 범상치 않은 사건들의 연속임을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직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한 것이지요.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고 다니는 것이냐?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질문한 의도를 간파하시고 역으로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라는 질문으로 다시 던지심으로써 그들은 곤경스럽게 만들고 그들이 파 놓은 함정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하신 비유의 말씀이 12장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소작인에게 맡긴 후에 멀리 떠나갔습니다. 소작료를 받으려고 종을 보냈더니 소작료는 커녕 그 종을 때려 빈 손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머리를 때려 상처를 입히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 후 다른 종을 보냈더니 이번에는 죽여버렸습니다. 그래서 남은 종들을 모아 한꺼번에 보냈더니 이번에는 종들을 때리고 더러는 죽였습니다.

주인은 생각했습니다. 혹시 내가 보낸 사람인 줄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거니 생각하고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을 보냅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 상속자만 죽이면 포도원은 우리차지다’ 모의하고 결국 아들마저 죽여버리고 포도원 밖으로 내어던졌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하고 다니는 것이냐’하는 질문에 대한 공격이 이어집니다. 응답적 성격으로 그리고 예수님은 묻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포도원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이 때 이 비유를 들은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이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예수님은 그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와서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라는 선언을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성경말씀으로 당신의 모든 행위에 근원이 하늘로부터 왔음을 암시하는 시편말씀을 들어 최종마무리 펀치를 날립니다. ‘건축자들에게 버려진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선언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 일은 ‘주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그저 놀랍게 보인다’.는 말씀으로  그들이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한 응답을 하십니다.

아마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을 이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당장에라도 잡아 감옥에 가두고 싶었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고 자신들을 대체할 무리들의 세력이 이미 커져 있었으므로 잘못했다가는 자신들이 어찌될까 두려워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우리 사회에 버려진 돌
예수님은 ‘건축자에 의해 버려진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라는 말씀으로 새로운 사회의 새로운 대안세력이 부상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는 소위 버려진 돌이라고 취급받던 이들에 의한 새로운 교회공동체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버려진 돌이 머릿돌이 되는 역사는 뒤집어지는 역사임에는 분명합니다.

주변부가 중심이 되고, 중심이 주변부가 되는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위치이동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를 통한 평화를 지향하는 것임을 마리아의 찬가나 세례요한의 자기선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제왕들은 그 자리에서 끌어내어지며,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고 주린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며 부한 사람들이 다시 빈손이 되는 상징적 사건을 통해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모든 산과 언덕이 평평해지며, 굽은 것이 곧아지며, 험한 길은 평탄해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질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사회의 버려진 돌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의미합니다.  잘못된 구조 속에서 막연한 아니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을 되뇌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주인됨을 회복하여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이루어가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4. 제가 교육목회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제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제 소개를 아힘나 평화학교의 교목으로 소개하였습니다. 아힘나란 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나라의 머릿글자입니다.
아힘나 평화학교는 1993년부터 새로운 교육적 실험을 꾸준히 해 보면서 아이들이야말로 그 자체가 희망이고, 평화의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라고 믿으며, 이 아이들의 힘으로 새로운 사회의 대안을 모색해 나가려는 시도로 학교를 개교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학교는 모집대상 중의 상당수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속에서 버려진 돌들과 같은 이들에 의해 구성됩니다. 아힘나 평화학교는 다양한 아이들로 구성될 것입니다. 기독교이념을 바탕으로 정치와 경제체제가 다른 지역에서 살아 온 아이들, 이주민들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평화의 가치를 실현해가는 교육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아힘나 평화학교는 교육이념 뿐 아니라 실제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평화를 실현해가는 능력을 함양해 나갈 것입니다. 아힘나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롭지만 타인의 권리도 보장해 주어야하는 만큼 권리와 의무에 대한 균형 잡힌 생활을 배우게 될 것이다. 누구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아힘나 시스템 속에서 아이들은 어렵지만 하나하나 자유와 권리 그리고 배려와 책임을 몸에 익혀갈 될 것입니다.  
아힘나 평화학교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해 나가려합니다.
사실 대안사회로서의 ‘아이들 공동체’에 대한 시도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세기 초에 있었던 영미지역의 호머 래인(Homer Lane)과 윌리엄R. 조지(William R. George)의 이념에 따른 작은 공화국, 독일의 경우 비커스도르프(Wickersdorf)와 오덴발트학교(Odenwaldschule)를 들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로쉬 드몰랭 학교(Ecole des Roches Demolins)가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1차 세계대전 직전, 사키(Sackij)에 의해 시도된 아이들의 자기관리에 따라 운영되었던 여름 거주지가 있었습니다. 한편, 폴란드에서는 코르착의 아이들의 집, 즉 자발적이고 공동체적인 기숙학교에서 아이들 뿐 아니라 교사들도 ‘시민'의 한 일원이 되어 아이들처럼 권리를 행사하고 또 지워진 의무를 수행하는 아이들의 공동체가 설립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알렉산더 니일(Alexander Niell)이 발전시킨 서머힐 스쿨의 기숙학교 공동생활과 아이들의 공화국 스페인의 벤포스타(Bempoata)를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공동체사회는 교육을 하는 이들에게는 오래된 미래였을지 모릅니다.

5. 버린돌, 머릿돌 되다.
저는 이런 희망을 가져봅니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버려진 돌들로 취급받아 왔던 민중들이 단순히 권력만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가 대안적 삶의 가치를 내재화하여 모든 왜곡된 것이 곧아지고 비틀어졌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고, 갈라졌던 것들이 하나로 회복되는 일들이 깨달음을 얻는 민중들에 의해 평화로운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새길 예수따르미들은 이러한 예수님께서 주신 희망을 몸소 실천하기 위하여 교회갱신과 신앙인의 실천적 삶을 살아가려고 모인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이들이라고 믿습니다.

슬퍼하는 이들의 눈물을 씻어주는 새길 예수따르미들
억울해 하는 이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예수따르미들,
안개 속을 헤매는 이들에게
여기가 길이라고 제시하며 대안적 삶을 살아가시는
새길 예수 따르미들이 되시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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