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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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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최만자 원장 |
참고 : | 새길교회 2005.3.6 주일설교 |
아직은 광야공동체-나를 돌아보는 자리
오늘은 새길교회 창립 열여덟 해를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새길이라는 하나의 이름아래 모여있지만 열여덟 해를 지나오면서 여기엔 서로 매우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상이함과 다양함은 개개인들의 신앙경험, 사회경험, 생활경험 등이 각각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 다양함이 퍼져있기만 한다면 한 공동체로 지속되거나 그 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묶는 끈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공동체가 생명력을 가지며 공동체의 이상을 향하여 함께 나아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오늘 새길 공동체의 상황이 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공동체 특히 광야 공동체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서의 광야공동체 이야기를 먼저 나누면서 다양한 우리들을 묶는 끈이 무엇 인가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탈출공동체, 광야(유랑)공동체, 그리고 정착공동체 이렇게 셋으로 나누어 말합니다. 탈출공동체는 이집트 파라오의 지배체제를 거부하고 그 왕권에 도전하면서 탈출하여 새로운 집단을 이룬 바로 히브리민족 역사를 시작한 공동체입니다. 마커스 보그는 그가 쓴 책『새로 만난 하느님』에서 출애굽 사건을 “전형적인 농경제국 이집트의 파라오의 지배체제로부터 자유하려고 한 노예들의 해방의 이야기”라고 규정합니다. 이 탈출공동체가 탈출할 수 있었던 힘, 곧 그들의 역사의식은 지배체제가 아닌 평등한 사회에 대한 비전이었습니다. 왕권 지배계층에게 노예로 학대, 착취, 지배당하던 히브리민족은 그들의 노예생활 경험 때문에 철저히 사회, 정치적, 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비전을 가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히브리 노예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여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자유를 도모하신 분으로 이해합니다. 곧 이스라엘 탈출공동체는 이집트 사회질서와는 다른 전혀 지배가 없는 정치적, 경제적 평등의 사회질서의 비전을 가진 공동체이며 그들의 하나님이 바로 그 질서를 이끄시는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이상은 가나안 정착공동체 시대에 이르러서도 이스라엘이 왕정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판관시대로 200여 년 동안을 지낸 역사에서 증명됩니다. 이집트 탈출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의 기원 이야기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와 삶 속에 개입하신 사건으로 하나님의 성격과 뜻을 드러내 줍니다.
이 탈출공동체는 탈출사건이 확실해지는 홍해를 건넌 이후 곧 광야공동체로 움직이게 됩니다. 이 광야의 과정은 출애굽으로부터 약속된 가나안땅에 들어갈 때까지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애굽을 탈출해서 시내산까지의 여정(출 14장-18장)과 시내산 체류 이야기(출애굽기 19장~민수기 9장), 그리고 그 이후 이동해서 요단 동편까지의 여정(민수기 10, 36장)으로 나뉘어 묘사되고 있습니다.
광야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광야에서의 시련입니다. 시련의 하나는 ‘불평주제’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생존의 위기 문제입니다. 광야의 여정은 탈출 당시와는 많이 다른 상황이 됩니다. 출애굽기 15장에서 탈출의 성공과 해방의 기쁨에 흥분에 싸여 춤추고 소고치고 노래하던 백성들은 갑자기 15장 22절 이하에 가면 신 광야에 이르러 목마름의 고통을 당합니다. 또 16장에서는 배고픔, 고기를 먹지 못하는 고통의 시련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독한 목마름, 배고픔, 전쟁(17~18장)과 질병의 위협 등 생존유지가 우선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이제는 탈출의 흥분도 없어지고 평등의 사회비전도 없어지고 역사의식도 희미해져 버렸습니다. 오직 먹을 것, 마실 것, 건강, 안전의 확보 등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습니다. 광야 전승에 흐르는 주제는 불평주제입니다.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을 고통 속에 주려 죽게하는 도다”(출애굽기 16:3)라는 주제입니다. 광야 이야기는 대부분 불평-부르짖음-구원-해설을 순서로 전개됩니다. 모세에 대한 불평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모세가 화가 나서 바위를 두 번 치기도 하고, 십계명을 받은 돌판도 깨트리고 하나님께 “내가 이스라엘을 나았습니까?”라고 항변할 정도로 불평이 거세었습니다. 그러나 불평주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끝까지 그들을 돌보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보존행위를 더욱 부각시킵니다. 곧 그들의 하나님은 생존 유지를 위해 지키고 보호하시는 양육하시는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입니다.
다른 하나의 시련은 지도력 간의 다툼과 불화였습니다. 아마도 탈출상황은 몇몇 지도력이 이끄는 여러 개의 집단들이 있어 보이고, 그들 간에 상당한 알력과 헤게모니 전쟁이 있어 보입니다. 가데스라는 곳에서 심한 갈등이 벌어진 것으로 봅니다. 모세, 아론, 미리암 등이 각각 이끄는 무리가 있었고 아마도 모세집단이 가장 세력이 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론, 미리암, 모세는 아마도 각각의 집단을 이끈 지도자들이었을 것이며 이들은 후대 편집자에 의해 남매로 혈연적 관계로 재구성되어 편집되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에게 도전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하나님은 모세를 편드시고 미리암은 그 도전 때문에 문둥병의 형벌을 받고 있는 이야기는 그러한 지도력들 간의 갈등을 암시합니다.
지도력의 문제는 세대교체의 요청 때문에도 생깁니다. 이제는 탈출 당시의 지도력이 아닌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이 지도력으로 부상되어야 할 상황이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 갈렙 등이 나타납니다. 광야시련의 주제들이 확장되는 민수기 10~36장에서 다시 목마름, 배고픔이 반복되고 더하여 내부 문제(10~20장, 조직과 지도권의 문제), 장로들의 회집(11:24~30), 미리암과 아론의 모세 비난(12장), 가데스에서 일어난 지도권의 다툼, 정탐꾼(13~14장), 고가, 다단, 아비람의 반역(16~17장), 외부문제(침략과 위협)등이 추가되면서 다음이야기 곧 여호수아, 사사기의 정착공동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광야 이야기의 다른 하나는 바로 하나님과의 계약체결 이야기입니다. 이는 출애굽기 19장 이후에 계속되어 레위기 전체와 민수기 9장으로까지 이어지는 많은 분량의 내용입니다. 광야공동체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하고 중심적인 사건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계약을 체결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계약체결 사건입니다. 출애굽기 19장의 시내산 이야기가 중심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바로 하나님과 계약맺은 백성에서 찾아집니다. 계약(berith)은 당사자들 간에 공식적으로 엄숙하게 구속력을 갖는 협약으로 이루어지며 쌍방간의 약속을 통해 특정한 행위를 해야하는 것이거나 혹은 하지 말아야하는 것의 의무규정을 하고 그 의무수행 여부에 따라 혜택이 약속되거나, 이행하지 못할 경우에 대한 경고가 포함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읽은 성서 본문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은 계약체결의 한 형태이며 이외에 다양한 계약들을 십계명 다음의 내용들, 레위기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계약법전들은 광야공동체가 탈출공동체의 정신과 의미를 사회화하고 제도화 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계약 법전들은 약자보호법, 정결법, 제사법 등으로 탈출 공동체의 평등사회 이상을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탈출하면서 가졌던 모든 이상과 자유 함과 열림을 광야 공동체 기간 동안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다듬고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계약관계에서 지향한 것은 이스라엘의 평등가족들/씨족들로 이루어지는 새 공동체에서는 인간이 군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계약백성들의 사회조직에서는 최고의 신만이 있을 뿐임을 강조하여 신정정치의 이상을 제시합니다. 즉 광야 공동체의 중요한 의미는 탈출공동체의 역사의식을 제도화하고 생활화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작업이 후대에 까지 영향을 미쳐서 정착공동체의 사회제도적 기반 또한 광야 공동체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갓 왈드라는 신학자는 이 광야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 종교적 계약조치들은 이후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사회가 그들의 사회문제를 극복하고자 할 때 사용한 종교적 전략들에 영향을 미쳤고 그 원형으로 인식되었다고 보면서 광야공동체의 정신과 정착공동체 의식의 여섯 가지 연결선을 지적합니다.
1. 왕에게 억압당한 백성이 압제자에 대한 신체적 및 정신적 굴종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합한다.
2. 외부로부터 부과된 사회적 질서로부터 해방된 백성이 연합하여 상호 지원하는 대등한 부족 내지 부족들의 공동체를 창출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3. 강요된 지도자를 가졌던 백성이 이제는 강압적인 국가 권력이 없는 상태에서 필요한 지도력을 창출하려고 투쟁한다.
4. 매우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에 처한 백성들은 이주할 때나 토지를 경작할 때에 자급자족하려고 노동한다.
5. 질병과 재앙 그리고 아마도 인구부족의 위협을 받은 백성이 적당한 수단으로 종족을 유지하거나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투쟁한다.
6. 여성의 공식 활동에 대한 전례를 가지고 있지 않은 백성은 여성들이 외부의 압제에 대한 투쟁에서 능동적이고 필요한 참여자였음을 발견하고 그들의 자치사회에서 여성이 어떠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투쟁한다.
이런 여섯 가지 광야 공동체의 정신적 근거가 정착 공동체에도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광야 공동체의 경험은 시련의 곳이면서도 동시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이루는 하나님과의 밀월의 장소로 해석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배고픔, 목마름 등의 시련을 겪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여 보살피고 먹이고 생존케 하며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계약체결을 통하여 또한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으로 지정합니다. 이스라엘은 계약체결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아-정의(self-definition)를 확립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들의 계약기원은 바로 이 광야시대로 향합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새롭게 개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회상의 자리가 광야공동체였습니다. 계약관계를 다시 회상하고 회복하고자 힘을 얻는 자리가 바로 그 광야공동체에서 이루어진 계약사상 이었습니다. 이는 모세집단의 경험과 그 집단의 유산인 야훼신앙은 가나안의 확대 이스라엘이 직면했던 도전들의 원형으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이 광야 공동체의 경험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과정이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가지고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애쓴 곳 광야생활, 거기서 이스라엘은 ‘자기 정의’(self-definition)를 정리하는 일과 지도력의 정의를 정리하는 일, 그리고 함께 살아 나가기 위한 제도를 정의 하는 일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동하는 생활 방식에서 오는 자유와 열림을 누렸습니다. 보통 광야는 시련, 혹은 수련하는 곳으로 해석됩니다. 예수께서도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당하셨고, 세례자 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금욕적 삶으로 종교적 수련을 광야에서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광야 공동체의 삶은 배고픔과 목마름, 온갖가지 생존의 위협이 도사리는 것이었으며,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반목과 배반이 수시로 일어나서 함께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이 돌발하던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탈출공동체의 이상을 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매우 불안정하고 위협적인 곳이 광야였고 그러한 위협 속에서 지속된 공동체의 삶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밀월시절이었다고 표현될 정도로 하나님과 그 백성 간에 깊은 관계를 형성한 은혜의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광야 공동체는 탈출의 이상을 구체화하고 그 이상에 기반한 자기 정체성을 세워 나갔던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기억의 역사입니다. 이 광야 공동체의 이상들은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전승되어졌습니다. 후대에 발생하는 모든 계약의 충성이나, 계약의 재긍정에 대한 언급들이 많은데 모두 모세와 이를 연결지으면서 광야공동체 시절의 이상으로 모으고 있습니다. 계약개념, 정신을 지속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사실은 출애굽기부터 민수기에 이르는 계약문체들은 후대에 실행되는 계약들을 모두 광야의 거룩한 산(시내산)에서 이야기된 일화로 2차 변경시킨 문학적 결과로 J, E자료 집필 시 완료된 것으로 학자들은 봅니다. 모세 이후 1~2세대의 이스라엘인들은 탈출 조상의 광야공동체에서 야훼와의 약속이 처음 유래한 것으로 계약과 야훼 하나님을 기념하였습니다. 그것은 예배의식의 한 모양으로 전승되었고 한 백성으로서의 자기정의와 기본적인 사회제도를 체계화하는 데 근거로 삼았습니다.
이제는 새길 공동체의 이야기를 이어봅시다. 새길의 시작은 탈출공동체적 성격이 있어 보입니다. 어디로부터의 탈출인가? 설립취지문에서 보면 개인주의적 기복신앙으로부터, 저세상적 도피주의로부터, 경직된 율법주의로부터, 허황된 물량주의로부터, 이기적 자기 확장과 치장에만 몰두하는 교회로부터, 직업화된 교역자 중심교회로부터, 제도와 율법주의에 매인 교회로부터, 닫고 있는 교회로부터, 쌓아올리는 교회로부터 탈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게으르고 방관자적인 자세의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새길 탈출공동체의 이상은 무엇이었나? 새길 공동체의 탈출정신은 사회불의에 대한 비판, 교회개혁의 실현, 민중의 삶 보호라고 창립 취지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개인 삶만이 아닌 사회역사 변혁의 복음 선포, 고통당하는 이웃사랑과 정의 평화의 실현, 예언자적 사명의 감당, 믿음, 소망, 사랑의 공동체 세움, 섬기는 교회, 공동체적 평신도 중심 교회, 열린교회, 주는 교회를 이루는 것이 목표요 이상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교회개혁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왜곡된 현실을 비판하고, 그 극복을 위한 존재로 출현함을 명백히 합니다. 현재의 교회들과는 다른 질서의 비전을 제시합니다. 섬김, 나눔, 헌신의 교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새길공동체 역시 곧 바로 광야로 나아갑니다. 그 시점을 언제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점차로 탈출 당시의 역사의식이 희미해져 가고 당면한 생존과제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많아지면서 사회불의 항거, 민중지향, 교회개혁 세력화, 개인주의적이 아닌, 공동체적 교회 지향 등의 정신이 약화되어졌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구성원들의 변화도 커졌습니다. 처음 세대가 사라져 가고, 처음 참여자들도 많이 떠났습니다. 새로이 온 식구들이 많아졌고 새로운 지도력들이 등장하여야 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지도력의 세대교체도 요구되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새길공동체 초기에는 정치 사회적 긴박감 속에 위기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사회정의 수립이라는 명분이 명백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도 다원화되고 정의의 실현이 다양한 형태로 요청되고 있습니다. 새길 안에서의 지도력도 새로운 지도력으로 교체되어야 할 시점에 다다랐습니다. 새길 구성원들의 요구도 사회정의 보다는 일상적 삶에서의 평안과 개인적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개입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위해 초창기 자료를 보다가 김창락 교수의 설교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빌립보 1장 27~30절 본문으로 ‘공동체를 묶는 띠’라는 제목의 설교였습니다. “한 공동체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비를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감싸는 아량과 관용이 가장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공동체를 현상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하는 데 있어서는 이러한 덕목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자연적으로 상관없는 사람들을 하나로 결속시켜주는 힘은 취미, 오락, 이권 따위의 부분적인 일에 대한 공통분모가 아니라 생사의 운명 또는 삶 전체의 의미가 좌우되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같은 자리에 서 있다는 공동의 역사의식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의 삶의 공동체로 결속시킨 것은 공동의 역사의식입니다. …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탕으로 하여 결속된 삶의 공동체였습니다. …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극적 체험을 통해 그때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향과 의지했던 가치관에서 180도 방향을 전환하여 억눌린 자, 권리를 박탈당한 자, 따돌림 받는 자의 권리 위해 투쟁하는 투사 입장으로 자리를 바꾸었습니다. 약자를 위하는 이러한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예증되었으며 그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궁극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당하는 고난은 영적, 신비적 체험을 가리키는 것이나, 그리스도를 믿는 데서 오는 생활상의 불편이나 신앙의 수련에서 생기는 괴로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이 당하는 고난을 나누어 짊어지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함으로 말미암아 기득권자들로부터 필연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고난을 가리킵니다. 공동의 일과 공동의 고난과 동일한 희망 보다 공동체를 더 강력하게 결속시켜주는 띠는 없습니다. 새길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투신하며 그의 고난에 동참하여 종국에는 그의 부활에 참여한다는 희망으로 굳게 결속되는 참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 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는 상이함과 다양함의 현실에서 어떻게 공동체로 지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의 과제를 가지고 있기에 그 말씀이 더 깊이 느껴졌습니다. 다름의 수용을 강조하고 관용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공동의 역사의식 회복으로 하나로 묶어져야 한다는 말씀이 참으로 옳다고 생각됩니다. 탈출공동체의 지배-피지배의 세상 극복 정신, 예수의 소외된 자를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세우시는 포괄성의 추구, 초대교회의 바울의 전폭적 가치관의 전환, 그리고 새길의 사회불의에 대한 저항과 교회개혁의 창립정신, 이들 모두는 성서의 하나님의 꿈의 전통에 서있습니다. 개인의 영적 삶을 포괄하면서도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고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사회구조악에 대항하는 것, 특히 한국교회의 불의한 현실을 비판하고 성서의 탈출정신으로 교회개혁을 위해 노력하며 그런 세력과의 연대활동을 하는 것 등이 다양한 신앙이해와 생활경험에도 불구하고 탈출 공동체의 역사의식을 제도화하고 일상화하는 공동체를 세울 수 있게 할 것입니다.
2001년 새길 기독사회문화원이 창립되면서부터 새길공동체는 교회개혁의 주제와 사회 정치 개혁의 문제,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여론 조성 등을 위해 포럼을 개최해 왔습니다. 문화원 활동은 새길의 창립정신을 이어가고 성서의 전통의 맥락을 이어가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길 창립의 정신이 새길 공동체의 공동역사의식이 되어 다양하고 상이한 우리들을 묶는 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새길 탈출 공동체의 이상을 제도화하고 일상화하는 새길 광야 공동체로서 우리가 존재하여야 할 것입니다. 훗날 지금의 새길 공동체 자리가 새길의 후대들이 자신들을 돌아 볼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야 할 역할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에게 지워진 사명일 것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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