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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1: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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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경숙 교수 |
참고 :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새길교회2005. 3.20 주일설교 |
오늘은 교회력에 따르면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가 예루살렘이 입성하신 날을 생각하면 예루살렘 입성 후에 가장 먼저 행하신 일이 성전 청소작업이었다는 것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성전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 대해 왜 그렇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까요? 그런데 예수께서는 왜 성전을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셨을까요? 새길교회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새길교회는 교회 건물 소위 성전이 없는 교회이기 때문에 성전에 관한 말씀은 진부한 내용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약신학자의 시각에서 정리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분과 함께 성전에 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고대 종교에 의하면 본래 성전은 하늘과 땅을 하나로 묶는 기능을 합니다. 성전은 하늘과 땅을 하나로 묶는 우주의 중심지입니다. 그래서 성전은 대개 언덕이나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성전은 거룩한 공간이자, 온 세상의 중심지이자, 초월적인 세계와 이어지는 거룩한 산이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본래 성전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야웨 하나님을 만나서 계약을 체결하고 하나님의 현현을 체험한 곳은 시내 산이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 현현을 체험하고 그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계약을 체결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전해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은 시내산을 출발 하면서 법궤를 들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법궤의 기원에 관한 논전이 많이 있지만 대체로 광야 방랑 시절에 다른 주변국가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추측합니다. 고대 근동 다른 나라에도 있던 물건으로 그 속에 하나님을 상징하는 물건을 담아 두는 상자 같은 것으로 추측하는데, 그래서 처음에는 법궤의 내용물이 시내산의 흙이나 돌맹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합니다. 유래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법궤를 들고 다니면서 법궤 위에 야웨가 임재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광야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목민 혹은 반 유목민들이었으므로 고정된 성소라는 개념은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머무는 진지 바깥에 회막을 치고 그 곳에 법궤를 두고 하나님이 회막에 임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와 대화를 나누시고 신탁을 내리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법궤가 시내산을 상징하는 상자로서 늘 이스라엘 진지에 함께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다고 생각했을까요? 어디에 보면 하늘에 거주하시다가 시내 산 위에 오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시내 산에 거하신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지역 바깥에 계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움직이시고 필요할 때는 언제나 구원하시러 오신다고 생각한 것은 야웨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본래의 관계를 잘 보여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야웨 하나님은 본래 국제적이었습니다. 사사시대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은 세일, 에돔 산지, 바란, 데만 등의 이름과 결부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북서 아라비아 반도에 살고 계시다가 이스라엘을 도우러 (또 다른 민족을 도우러) 땅과 하늘을 진동하며 내려오시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시대를 끝내고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게 되면서 실로에 성소가 생겼습니다. 이 성소의 특징은 그룹(케루빔)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룹이라는 스핑크스 같은 반수반인의 존재가 날개를 펴서 그 날개 위에 야웨가 좌정하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지요. 여기서 그룹의 역할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논란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룹이 고대 근동의 신이나 왕이 앉는 자리를 상징한다고 보고 본래 법궤와 같은 역할을 하는 가나안 장식이었다고 말합니다. 어쨌든 실로에서 처음으로 법궤 위에 그리고 그룹 날개 위에 만군의 하나님 야웨가 좌정하시는 성소가 등장합니다. 그룹은 신화적인 동물로 대개 신들이 사는 동산을 지키는 영생으로 가는 문을 지키는 그런 반수반인의 모습을 지녔습니다. 실로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법궤 위에 그리고 그룹 날개 위에 임재하시며 솔로몬 성전과 비슷한 모습으로 않아 계시지만 그러나 역시 성소에 고정되신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법궤나 그룹은 이동 가능하게 제조 되었으며 길갈이나 세겜 같은 곳으로 옮겨질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 중앙 성소로서 기능을 하며 다른 이방의 풍습처럼 성소에 좌정하시고 왕좌를 위한 장식이 꾸며졌다는 점에서 성소 개념의 큰 변화를 예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즉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의 위기가 생겨납니다. 그것은 불레셋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법궤를 전쟁 중에 가지고 다니면서 전쟁을 하였지만 이스라엘은 기대와는 달리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법궤만 있으면 당연히 하나님이 임재하시리라 믿고 그래서 승리할 것을 믿었던 것이지만 법궤를 가지고 전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이스라엘은 불레셋에게 지고 법궤는 불레셋 지경에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냉정한 현실은 법궤 자체가 신통력이 있거나 하나님을 임재하게 하는 신통력을 가지지는 못한다는 것을 선언해 주었을 것입니다. 법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중요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법궤는 블레셋 진지에서 위력을 발휘하였고 불레셋의 신 다간이 법궤에 아침마다 절하고 있었다는 설화가 전해집니다(삼상 5:1~6). 어쨌든 법궤는 불레셋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다가 나중에 다윗에 의해서 예루살렘으로 오게 됩니다(삼하 6:1-15). 법궤를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하나님 임재의 장소로 본다면 이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라는 가나안의 여부스 족속의 도시, 즉 다윗이 세운 다윗 성에 정착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역사상 아주 커다란 종교적 혼합이 생겨나게 됩니다. 다른 이방 국가의 문화처럼 다윗은 왕궁을 짓고 그 옆에 성전을 지어 국가 성소로 삼으려고 하였으니까요. 그래서 나단에게 성소를 지을 의사를 비치었고 나단은 처음에는 마음대로 하라고 하다가 그 날 밤에 꿈을 꾸니까 야웨 하나님이 꾸중을 하십니다. “그날 밤에 야웨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가서 내 종 다윗에게 일러 말하기를 야웨의 말씀이 내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삼하 7:4-7) 내가 언제 집에 갇혀 사는 하나님이냐, 왜 갑자기 성소를 지어 나를 가두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삼하 7장은 이스라엘 고유의 문화와 가나안 문화의 충돌을 잘 보여줍니다. 즉 유목민 문화에서 정착민 문화로의 전환, 국가 없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으면서 사사를 중심으로 살던 시대에서 국가를 가지고 왕을 가지고 왕궁을 가진 시대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요즘 말로 문화적 충돌이 크게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하 7:8~17에 보면 다윗이 자기 시대에 성전을 짓지 못하고 솔로몬 시대에야 비로소 성전을 지은 것이 모두 하나님의 신탁이나 계획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지만 삼하 7장을 자세히 분석을 해 보면 두 자료 층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고, 본래 자료 층에 의하면 성전 건축에 대해서 다윗 당시에 만만치 않은 거부감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솔로몬에 의해서 성전은 지어졌고 열왕기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주 자랑스러워하고 솔로몬 시대의 영광으로 해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3년에 걸쳐 성소를 지었고 백향목으로 지었으며 여러가지 장식을 하고 주변국가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한편에서는 야웨께서 영원히 거하실 거처를 마련하였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하나님이 땅에 거하시리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까”(왕상 8:27) 하면서 성전이 하나님의 거처가 되지 못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계속해서 이 성전에 와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라고 기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전에 하나님이 거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말이지요. 특히 예언자들은 성전을 회막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곳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지나친 혼합주의는 이후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갈라지게 만든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소가 건축되었지만 그래도 지방에 있던 전통적 성소들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예루살렘 성소는 국가성소라는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시내 산에서 시온으로 옮겼음을 찬양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기렸습니다. 그러다가 국가가 위태로워지고 외부의 영향이 강해지고 특히 앗시리아의 영향이 성소에 강하게 영향을 미쳤을 때 이를 정화하기 위해 종교개혁을 하게 되는데 그때 지방 성소는 모두 없애 버리고 예루살렘 성소만 남겨 두게 됩니다. 이때 모두 제사는 예루살렘 성소에서만 드릴 수 있게 되면서 예루살렘 성소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되고 예루살렘 성전이야말로 이스라엘 종교의 핵심이 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라가 망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게 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소를 그리워하고 중요시 생각하고 강조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포로로 잡혀 갔을 때에도 예루살렘 성소를 향해서 기도하고 절을 하고 그곳에 돌아가서 제사를 바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이겨 나갔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예루살렘 성소에 대한 동경과 열정은 이스라엘의 위기 상황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실상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나라를 잃은 시기를 견디어 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소에 관한 개념이 변천해 가는 것을 보면 우리는 몇가지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종교적 혼합주의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고 다윗 솔로몬 시대에 정점을 이룬다는 점, 즉 환경이 바뀌면서 종교는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점의 확인이고, 둘째는 이스라엘에서 성전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상당히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고 이스라엘이 성전중심으로 뭉치고 배타적인 된 것은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해졌을 때 다시 말하자면 가장 불안하고 민족 소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배타적이 되고 성전 중심으로 뭉친 것은 소수 국가로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본다면 이해가 잘 됩니다. 우리나라의 대형 교회들은 살아남기 위한 것은 아니고 과시하고 제국주의적으로 전제군주로 군림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본다면 우리 대형교회들의 문제는 아주 심각해집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생각해 보면 이러한 제국주의적 사고 속에도 아마 자신이 없고 불안한 내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포로이후 제2성전 시대에 성전이 강조되고 사제들의 성전중심적 풍조가 판을 치게 되면서 이것이 얼마나 비신앙적인지를 지적하는 소리들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안에는 탈성전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이사야 66:1~2에 의하면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야웨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겸손하고 회개하고 나를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내가 좋아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회막 신앙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회막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시는 곳입니다. 회막에서는 회당과는 달리 제사도 바쳐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곳에서 제사를 바치는 것이지 제사가 먼저일 수는 없었습니다. 회막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듣고 신탁이나 율법을 수여 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곳입니다. 회막에서 하나님의 오심과 시내산 사건이 연상된다면,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거주하심과 예루살렘,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 왕국 즉 국가가 연상됩니다. 많은 학자들이 예수의 성전에 대한 태도를 회막신앙으로 이해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청소하시고 하신 말씀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솔로몬의 기도문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성전도 회막도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시대나 오늘날 우리의 대형 교회에서 하나님을 파는 목회자나 돈 냄새나는 장사꾼들만 보인다면 이는 성소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예수 시대의 성전체제는 성전에 드려지는 수많은 희생제물과 성전 주변에 형성된 은행, 숙박 건물 건축자, 제물 판매업자, 환전상인 모두 돈냄새 나는 장사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강도의 소굴이라고 청소를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많은 교회들도 모두 비슷하지 않은가요? 예수의 청소작업이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도 일어나야 되는 것이 아닌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을 기도하는 집으로 표현하신 것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좋은 길은 기도하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서에는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는 표상이 자주 나옵니다. 그리고 이 전통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깨달을 수 있는 곳이 곧 성전이자 회막입니다. 우리는 성전 없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회막을 우리 주변에 가져야 합니다. 가령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우리의 회막은 어디일까요? 기도하면서? 산이나 바다 같은 자연 속에서? 친구와의 만남에서? 봄날 불어오는 바람이나 따뜻한 햇볕 속에서? 새길교회 예배시간에? 통일과 사회 개혁을 꿈꾸며 용감하게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들의 현장 속에서? 여러 분들 모두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시는 곳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울 선생에 의하면(고전 3:16~17, 엡 2:20~21) 우리 자신이 곧 성전이자 회막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와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도록 우리가 행동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교회가 되고 성전이 되어 우리를 통해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오심이 실현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예수의 수난을 생각하는 이 절기에 우리 가운데 오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기를 기원합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고대 종교에 의하면 본래 성전은 하늘과 땅을 하나로 묶는 기능을 합니다. 성전은 하늘과 땅을 하나로 묶는 우주의 중심지입니다. 그래서 성전은 대개 언덕이나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성전은 거룩한 공간이자, 온 세상의 중심지이자, 초월적인 세계와 이어지는 거룩한 산이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본래 성전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야웨 하나님을 만나서 계약을 체결하고 하나님의 현현을 체험한 곳은 시내 산이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 현현을 체험하고 그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계약을 체결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전해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은 시내산을 출발 하면서 법궤를 들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법궤의 기원에 관한 논전이 많이 있지만 대체로 광야 방랑 시절에 다른 주변국가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추측합니다. 고대 근동 다른 나라에도 있던 물건으로 그 속에 하나님을 상징하는 물건을 담아 두는 상자 같은 것으로 추측하는데, 그래서 처음에는 법궤의 내용물이 시내산의 흙이나 돌맹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합니다. 유래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법궤를 들고 다니면서 법궤 위에 야웨가 임재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광야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목민 혹은 반 유목민들이었으므로 고정된 성소라는 개념은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머무는 진지 바깥에 회막을 치고 그 곳에 법궤를 두고 하나님이 회막에 임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와 대화를 나누시고 신탁을 내리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법궤가 시내산을 상징하는 상자로서 늘 이스라엘 진지에 함께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다고 생각했을까요? 어디에 보면 하늘에 거주하시다가 시내 산 위에 오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시내 산에 거하신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지역 바깥에 계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움직이시고 필요할 때는 언제나 구원하시러 오신다고 생각한 것은 야웨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본래의 관계를 잘 보여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야웨 하나님은 본래 국제적이었습니다. 사사시대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은 세일, 에돔 산지, 바란, 데만 등의 이름과 결부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북서 아라비아 반도에 살고 계시다가 이스라엘을 도우러 (또 다른 민족을 도우러) 땅과 하늘을 진동하며 내려오시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시대를 끝내고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게 되면서 실로에 성소가 생겼습니다. 이 성소의 특징은 그룹(케루빔)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룹이라는 스핑크스 같은 반수반인의 존재가 날개를 펴서 그 날개 위에 야웨가 좌정하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지요. 여기서 그룹의 역할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논란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룹이 고대 근동의 신이나 왕이 앉는 자리를 상징한다고 보고 본래 법궤와 같은 역할을 하는 가나안 장식이었다고 말합니다. 어쨌든 실로에서 처음으로 법궤 위에 그리고 그룹 날개 위에 만군의 하나님 야웨가 좌정하시는 성소가 등장합니다. 그룹은 신화적인 동물로 대개 신들이 사는 동산을 지키는 영생으로 가는 문을 지키는 그런 반수반인의 모습을 지녔습니다. 실로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법궤 위에 그리고 그룹 날개 위에 임재하시며 솔로몬 성전과 비슷한 모습으로 않아 계시지만 그러나 역시 성소에 고정되신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법궤나 그룹은 이동 가능하게 제조 되었으며 길갈이나 세겜 같은 곳으로 옮겨질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 중앙 성소로서 기능을 하며 다른 이방의 풍습처럼 성소에 좌정하시고 왕좌를 위한 장식이 꾸며졌다는 점에서 성소 개념의 큰 변화를 예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즉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의 위기가 생겨납니다. 그것은 불레셋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법궤를 전쟁 중에 가지고 다니면서 전쟁을 하였지만 이스라엘은 기대와는 달리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법궤만 있으면 당연히 하나님이 임재하시리라 믿고 그래서 승리할 것을 믿었던 것이지만 법궤를 가지고 전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이스라엘은 불레셋에게 지고 법궤는 불레셋 지경에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냉정한 현실은 법궤 자체가 신통력이 있거나 하나님을 임재하게 하는 신통력을 가지지는 못한다는 것을 선언해 주었을 것입니다. 법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중요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법궤는 블레셋 진지에서 위력을 발휘하였고 불레셋의 신 다간이 법궤에 아침마다 절하고 있었다는 설화가 전해집니다(삼상 5:1~6). 어쨌든 법궤는 불레셋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다가 나중에 다윗에 의해서 예루살렘으로 오게 됩니다(삼하 6:1-15). 법궤를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하나님 임재의 장소로 본다면 이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라는 가나안의 여부스 족속의 도시, 즉 다윗이 세운 다윗 성에 정착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역사상 아주 커다란 종교적 혼합이 생겨나게 됩니다. 다른 이방 국가의 문화처럼 다윗은 왕궁을 짓고 그 옆에 성전을 지어 국가 성소로 삼으려고 하였으니까요. 그래서 나단에게 성소를 지을 의사를 비치었고 나단은 처음에는 마음대로 하라고 하다가 그 날 밤에 꿈을 꾸니까 야웨 하나님이 꾸중을 하십니다. “그날 밤에 야웨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가서 내 종 다윗에게 일러 말하기를 야웨의 말씀이 내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삼하 7:4-7) 내가 언제 집에 갇혀 사는 하나님이냐, 왜 갑자기 성소를 지어 나를 가두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삼하 7장은 이스라엘 고유의 문화와 가나안 문화의 충돌을 잘 보여줍니다. 즉 유목민 문화에서 정착민 문화로의 전환, 국가 없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으면서 사사를 중심으로 살던 시대에서 국가를 가지고 왕을 가지고 왕궁을 가진 시대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요즘 말로 문화적 충돌이 크게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하 7:8~17에 보면 다윗이 자기 시대에 성전을 짓지 못하고 솔로몬 시대에야 비로소 성전을 지은 것이 모두 하나님의 신탁이나 계획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지만 삼하 7장을 자세히 분석을 해 보면 두 자료 층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고, 본래 자료 층에 의하면 성전 건축에 대해서 다윗 당시에 만만치 않은 거부감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솔로몬에 의해서 성전은 지어졌고 열왕기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주 자랑스러워하고 솔로몬 시대의 영광으로 해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3년에 걸쳐 성소를 지었고 백향목으로 지었으며 여러가지 장식을 하고 주변국가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한편에서는 야웨께서 영원히 거하실 거처를 마련하였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하나님이 땅에 거하시리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까”(왕상 8:27) 하면서 성전이 하나님의 거처가 되지 못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계속해서 이 성전에 와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라고 기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전에 하나님이 거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말이지요. 특히 예언자들은 성전을 회막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곳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지나친 혼합주의는 이후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갈라지게 만든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소가 건축되었지만 그래도 지방에 있던 전통적 성소들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예루살렘 성소는 국가성소라는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시내 산에서 시온으로 옮겼음을 찬양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기렸습니다. 그러다가 국가가 위태로워지고 외부의 영향이 강해지고 특히 앗시리아의 영향이 성소에 강하게 영향을 미쳤을 때 이를 정화하기 위해 종교개혁을 하게 되는데 그때 지방 성소는 모두 없애 버리고 예루살렘 성소만 남겨 두게 됩니다. 이때 모두 제사는 예루살렘 성소에서만 드릴 수 있게 되면서 예루살렘 성소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되고 예루살렘 성전이야말로 이스라엘 종교의 핵심이 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라가 망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게 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소를 그리워하고 중요시 생각하고 강조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포로로 잡혀 갔을 때에도 예루살렘 성소를 향해서 기도하고 절을 하고 그곳에 돌아가서 제사를 바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이겨 나갔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예루살렘 성소에 대한 동경과 열정은 이스라엘의 위기 상황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실상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나라를 잃은 시기를 견디어 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소에 관한 개념이 변천해 가는 것을 보면 우리는 몇가지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종교적 혼합주의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고 다윗 솔로몬 시대에 정점을 이룬다는 점, 즉 환경이 바뀌면서 종교는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점의 확인이고, 둘째는 이스라엘에서 성전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상당히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고 이스라엘이 성전중심으로 뭉치고 배타적인 된 것은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해졌을 때 다시 말하자면 가장 불안하고 민족 소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배타적이 되고 성전 중심으로 뭉친 것은 소수 국가로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본다면 이해가 잘 됩니다. 우리나라의 대형 교회들은 살아남기 위한 것은 아니고 과시하고 제국주의적으로 전제군주로 군림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본다면 우리 대형교회들의 문제는 아주 심각해집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생각해 보면 이러한 제국주의적 사고 속에도 아마 자신이 없고 불안한 내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포로이후 제2성전 시대에 성전이 강조되고 사제들의 성전중심적 풍조가 판을 치게 되면서 이것이 얼마나 비신앙적인지를 지적하는 소리들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안에는 탈성전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이사야 66:1~2에 의하면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야웨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겸손하고 회개하고 나를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내가 좋아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회막 신앙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회막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시는 곳입니다. 회막에서는 회당과는 달리 제사도 바쳐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곳에서 제사를 바치는 것이지 제사가 먼저일 수는 없었습니다. 회막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듣고 신탁이나 율법을 수여 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곳입니다. 회막에서 하나님의 오심과 시내산 사건이 연상된다면,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거주하심과 예루살렘,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 왕국 즉 국가가 연상됩니다. 많은 학자들이 예수의 성전에 대한 태도를 회막신앙으로 이해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청소하시고 하신 말씀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솔로몬의 기도문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성전도 회막도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시대나 오늘날 우리의 대형 교회에서 하나님을 파는 목회자나 돈 냄새나는 장사꾼들만 보인다면 이는 성소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예수 시대의 성전체제는 성전에 드려지는 수많은 희생제물과 성전 주변에 형성된 은행, 숙박 건물 건축자, 제물 판매업자, 환전상인 모두 돈냄새 나는 장사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강도의 소굴이라고 청소를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많은 교회들도 모두 비슷하지 않은가요? 예수의 청소작업이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도 일어나야 되는 것이 아닌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을 기도하는 집으로 표현하신 것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좋은 길은 기도하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서에는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는 표상이 자주 나옵니다. 그리고 이 전통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깨달을 수 있는 곳이 곧 성전이자 회막입니다. 우리는 성전 없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회막을 우리 주변에 가져야 합니다. 가령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우리의 회막은 어디일까요? 기도하면서? 산이나 바다 같은 자연 속에서? 친구와의 만남에서? 봄날 불어오는 바람이나 따뜻한 햇볕 속에서? 새길교회 예배시간에? 통일과 사회 개혁을 꿈꾸며 용감하게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들의 현장 속에서? 여러 분들 모두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시는 곳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울 선생에 의하면(고전 3:16~17, 엡 2:20~21) 우리 자신이 곧 성전이자 회막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와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도록 우리가 행동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교회가 되고 성전이 되어 우리를 통해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오심이 실현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예수의 수난을 생각하는 이 절기에 우리 가운데 오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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