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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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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04-06-13 열린교회 |
1. 본문해설
시편 101편은 다윗의 시이다. 이 시는 하나님과 더욱 온전히 가까워지기 위해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간구로 채워져 있다. 시편에는 시인의 고백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중간에 삽입되어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기도하는 가운데 그가 깨달은 말씀이고, 부분적으로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신 것이다. 시편 101편에도 6절 이후 한 두절에 걸쳐 하나님의 음성이 삽입되어 있는데, 본문 말씀이 그러하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 앞에 온전해지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2. 완전과 충성
① 충성스러운 삶
수종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는 것이고, 이것은 곧 충성이라는 덕목으로 집약된다. 성경은 성도의 삶이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삶으로 나타나도록 요구하고 있다. 모세와 바울과 예수님의 모습 뿐 아니라 달란트를 맡은 종의 예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주님을 수종 들고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충성임을 알 수 있다(민12:7, 고전4:2, 계3:14, 마25:21,23).
충성은 밖으로 드러난 삶이다. 충성은 결코 단순히 생각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삶을 재편하는 것을 의미한다.
② 인격과 나뉘지 않는 삶
충성의 삶은 내적인 인격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기에 주님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과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충성된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주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힘써야 한다. 자신의 정욕이나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충성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위해 한결같이 충성스럽게 사는 것은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올곧게 준비되고 순전하며, 그의 생각은 올바르고, 그의 영혼은 말씀의 빛에 의해 총명한 사람이 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충성은 결코 어느 한순간 충동적으로 살 수 있는 삶이 아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과 주를 위해 충성스럽게 사는 것은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다.
3. 연단과 완전
① 시험과 단련을 구함
다윗은 다른 시편에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시 26:2)라고 고백한다. 시험과 연단이 무엇인지 경험한 사람들은 감히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없다. 불같은 시험을 통해 자신의 위선과 거짓의 껍질이 벗겨질 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그런 시험과 연단의 고통이 무엇인지 경험하여왔던 다윗이 하나님 앞에 시험을 구하였다.
② 연단을 온전해지는 도구로 삼음
그가 그렇게 시험과 단련을 구한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 되어감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당하는 시험과 연단이 결코 자기의 범죄에 대해 하나님이 보복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았고, 그 연단을 통해 자기를 온전하게 만드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불같은 시험과 단련을 하나님께 구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치열한 연단 가운데 두시는 목적은 그를 온전해지게 하시기 위함이다.
4. 적용과 결론 : 온전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섬김을 받음
하나님께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연단하시는 것은 또한 그를 통해 섬김을 받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시험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 사람들은 그저 고생은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연단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하나님의 연단을 통해 빚어지면서 하나님 앞에 약해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간다.
우리는 연단 없이도 온전해질 수 있을 만큼 깨끗한 존재들이 아니다. 우리 안에는 부패함이 여전히 남아있고, 수많은 정욕과 세상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은 수시로 더렵혀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통해 더러운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악한 우리를 착하게 하시고 게으른 우리를 부지런하게 하시고 무지한 우리를 지혜롭게 하셔서 삶의 목표가 오직 하나님을 향해 모아지게 만드신다.
연단은 우리가 세상에 우리 마음을 다 쏟지 못하게 하고 더렵혀진 우리 마음을 씻어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깊이 깨닫게 만들어주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를 연단하고 싶어 하신다.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 때문에…….
2004-06-13
시편 101편은 다윗의 시이다. 이 시는 하나님과 더욱 온전히 가까워지기 위해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간구로 채워져 있다. 시편에는 시인의 고백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중간에 삽입되어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기도하는 가운데 그가 깨달은 말씀이고, 부분적으로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신 것이다. 시편 101편에도 6절 이후 한 두절에 걸쳐 하나님의 음성이 삽입되어 있는데, 본문 말씀이 그러하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 앞에 온전해지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2. 완전과 충성
① 충성스러운 삶
수종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는 것이고, 이것은 곧 충성이라는 덕목으로 집약된다. 성경은 성도의 삶이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삶으로 나타나도록 요구하고 있다. 모세와 바울과 예수님의 모습 뿐 아니라 달란트를 맡은 종의 예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주님을 수종 들고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충성임을 알 수 있다(민12:7, 고전4:2, 계3:14, 마25:21,23).
충성은 밖으로 드러난 삶이다. 충성은 결코 단순히 생각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삶을 재편하는 것을 의미한다.
② 인격과 나뉘지 않는 삶
충성의 삶은 내적인 인격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기에 주님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과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충성된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주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힘써야 한다. 자신의 정욕이나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충성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위해 한결같이 충성스럽게 사는 것은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올곧게 준비되고 순전하며, 그의 생각은 올바르고, 그의 영혼은 말씀의 빛에 의해 총명한 사람이 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충성은 결코 어느 한순간 충동적으로 살 수 있는 삶이 아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과 주를 위해 충성스럽게 사는 것은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다.
3. 연단과 완전
① 시험과 단련을 구함
다윗은 다른 시편에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시 26:2)라고 고백한다. 시험과 연단이 무엇인지 경험한 사람들은 감히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없다. 불같은 시험을 통해 자신의 위선과 거짓의 껍질이 벗겨질 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그런 시험과 연단의 고통이 무엇인지 경험하여왔던 다윗이 하나님 앞에 시험을 구하였다.
② 연단을 온전해지는 도구로 삼음
그가 그렇게 시험과 단련을 구한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 되어감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당하는 시험과 연단이 결코 자기의 범죄에 대해 하나님이 보복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았고, 그 연단을 통해 자기를 온전하게 만드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불같은 시험과 단련을 하나님께 구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치열한 연단 가운데 두시는 목적은 그를 온전해지게 하시기 위함이다.
4. 적용과 결론 : 온전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섬김을 받음
하나님께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연단하시는 것은 또한 그를 통해 섬김을 받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시험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 사람들은 그저 고생은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연단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하나님의 연단을 통해 빚어지면서 하나님 앞에 약해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간다.
우리는 연단 없이도 온전해질 수 있을 만큼 깨끗한 존재들이 아니다. 우리 안에는 부패함이 여전히 남아있고, 수많은 정욕과 세상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은 수시로 더렵혀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통해 더러운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악한 우리를 착하게 하시고 게으른 우리를 부지런하게 하시고 무지한 우리를 지혜롭게 하셔서 삶의 목표가 오직 하나님을 향해 모아지게 만드신다.
연단은 우리가 세상에 우리 마음을 다 쏟지 못하게 하고 더렵혀진 우리 마음을 씻어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깊이 깨닫게 만들어주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를 연단하고 싶어 하신다.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 때문에…….
200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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