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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0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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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04-07-18 열린교회 |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중심이 상함이니이다”(시 109:22)
1. 본문해설
시편 109편은 다윗의 시로, 이 시에는 도처에서 일어난 대적들로 인해 압박을 받고 있는 시인의 곤고한 상태가 잘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이 시는 사울에게 박해를 받으며 도망 다닐 때, 혹은 반란이 일어나 원수들에게 추격을 받을 때 쓴 시일 것이다. 이 시 속에는 원수들로부터 받는 핍박과 고통, 거기에서 하나님을 구하는 몸부림과 갈망, 자신의 죄에 대한 뉘우침과 사죄의 탄원,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진실한 애정이 기록되어 있다. 본문 역시 자신의 곤고한 상황을 토로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목말라하는 시인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2.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없는 사람들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목마름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주일간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고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목마름도 없이 습관적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아온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면서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전에 하나님만을 갈망하며 살던 가난한 마음을 잃어버렸고, 죽은 자와 방불한 인생을 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의지하는 목마름을 잃어버린 것이다.
예전에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찾았는지 생각해보라. 하나님의 선명한 빛이 어둠을 가르고 우리의 영혼에 내리쳤을 때. 인생의 벼랑 끝에서 주님이 우리를 건져주셨을 때 우리의 마음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 불타올랐고, 우리의 눈은 주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 빛났고, 우리의 손에는 섬김이 있었고, 우리의 무릎은 꿇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너무나 마음이 부요한 자가 되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 주님이 얼마나 아파하시겠는가?
3. 은혜에 대한 목마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목마름은 곧 하나님 자신에 대한 목마름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던 때는 항상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던 때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목말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첫째로,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는 것이고, 둘째로, 은혜의 필요를 인식하는 것이다.
1) 자신의 처지를 인식함 : “가난하고 궁핍함”
시인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집을 나간 탕자가 아버지 집이 얼마나 풍족한지를 생각할 때 비로소 자신의 궁핍함을 깨닫게 된 것 같이, 인간은 하나님의 부요하심에 눈뜨게 될 때 자신이 얼마나 가난하고 궁핍한지 깨닫게 된다. 다윗 역시 원수들로 둘러 싼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궁핍함을 고백하고 있고, 그가 범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떠나있던 때를 제외하고 그는 인생을 사는 동안 늘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가난하고 궁핍한지 탄식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의 부요 속에서 너무나 쉽게 자신의 영혼의 가난한 상태에 대해 잊어버린다. 하나님께서 궁핍하던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연약하던 자를 강하게 하고, 무력하던 자를 능력있게 만드시는 것은 그 축복의 과정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자원으로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받은 축복으로 평안하고 부족한 것이 없는 환경 속에 살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예배의 현장에서, 기도의 자리에서, 섬김의 현장에서, 우리는 형식화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삶 구석구석에 배어있는 피곤함과 지루함,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향한 권태를 생각해보라. 우리는 모두 주님의 부요함의 빛 아래서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를 깨닫고, 무엇이 그 빛을 받지 못하게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2) 은혜의 필요를 인식함 : “중심이 상함”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상한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얼마나 가난하고 궁핍한지를 깨닫게 되자 마음이 짓이겨져서 고통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상하는 것은 죄의 효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거룩의 효과이다. 주님은 오늘도 십자가의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상한 마음이 있는 곳에 함께 하신다. 모든 것을 풍족하게 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응시하는 눈을 거두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하나님 외에 우리가 의지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부요하다 말했으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가난하고 벌거벗었으며 눈 멀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목마름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 부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로 은혜에서 부패하게 하는 것들을 멀리하고, 다시 처음 사랑과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첫 사랑과 첫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2004-07-18
1. 본문해설
시편 109편은 다윗의 시로, 이 시에는 도처에서 일어난 대적들로 인해 압박을 받고 있는 시인의 곤고한 상태가 잘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이 시는 사울에게 박해를 받으며 도망 다닐 때, 혹은 반란이 일어나 원수들에게 추격을 받을 때 쓴 시일 것이다. 이 시 속에는 원수들로부터 받는 핍박과 고통, 거기에서 하나님을 구하는 몸부림과 갈망, 자신의 죄에 대한 뉘우침과 사죄의 탄원,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진실한 애정이 기록되어 있다. 본문 역시 자신의 곤고한 상황을 토로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목말라하는 시인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2.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없는 사람들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목마름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주일간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고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목마름도 없이 습관적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아온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면서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전에 하나님만을 갈망하며 살던 가난한 마음을 잃어버렸고, 죽은 자와 방불한 인생을 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의지하는 목마름을 잃어버린 것이다.
예전에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찾았는지 생각해보라. 하나님의 선명한 빛이 어둠을 가르고 우리의 영혼에 내리쳤을 때. 인생의 벼랑 끝에서 주님이 우리를 건져주셨을 때 우리의 마음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 불타올랐고, 우리의 눈은 주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 빛났고, 우리의 손에는 섬김이 있었고, 우리의 무릎은 꿇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너무나 마음이 부요한 자가 되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 주님이 얼마나 아파하시겠는가?
3. 은혜에 대한 목마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목마름은 곧 하나님 자신에 대한 목마름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던 때는 항상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던 때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목말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첫째로,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는 것이고, 둘째로, 은혜의 필요를 인식하는 것이다.
1) 자신의 처지를 인식함 : “가난하고 궁핍함”
시인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집을 나간 탕자가 아버지 집이 얼마나 풍족한지를 생각할 때 비로소 자신의 궁핍함을 깨닫게 된 것 같이, 인간은 하나님의 부요하심에 눈뜨게 될 때 자신이 얼마나 가난하고 궁핍한지 깨닫게 된다. 다윗 역시 원수들로 둘러 싼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궁핍함을 고백하고 있고, 그가 범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떠나있던 때를 제외하고 그는 인생을 사는 동안 늘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가난하고 궁핍한지 탄식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의 부요 속에서 너무나 쉽게 자신의 영혼의 가난한 상태에 대해 잊어버린다. 하나님께서 궁핍하던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연약하던 자를 강하게 하고, 무력하던 자를 능력있게 만드시는 것은 그 축복의 과정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자원으로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받은 축복으로 평안하고 부족한 것이 없는 환경 속에 살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예배의 현장에서, 기도의 자리에서, 섬김의 현장에서, 우리는 형식화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삶 구석구석에 배어있는 피곤함과 지루함,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향한 권태를 생각해보라. 우리는 모두 주님의 부요함의 빛 아래서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를 깨닫고, 무엇이 그 빛을 받지 못하게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2) 은혜의 필요를 인식함 : “중심이 상함”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상한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얼마나 가난하고 궁핍한지를 깨닫게 되자 마음이 짓이겨져서 고통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상하는 것은 죄의 효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거룩의 효과이다. 주님은 오늘도 십자가의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상한 마음이 있는 곳에 함께 하신다. 모든 것을 풍족하게 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응시하는 눈을 거두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하나님 외에 우리가 의지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부요하다 말했으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가난하고 벌거벗었으며 눈 멀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목마름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 부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로 은혜에서 부패하게 하는 것들을 멀리하고, 다시 처음 사랑과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첫 사랑과 첫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200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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