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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도

에스겔 홍근수............... 조회 수 1752 추천 수 0 2008.08.25 14:49:02
.........
성경본문 : 겔37:15-23 
설교자 : 홍근수 형제 
참고 : 새길교회 2005. 6.12 주일설교 
마5:23~24고후5:17~21

우리가 분단 반세기가 넘게 분단 60주년을 맞고 있고 또 민주화와 거리가 먼 독재 체제와 반통일·반평화 정권들을 반세기 가량 겪으면서 살다 보니까 특히 민주화와 민족통일이란 점에서 역사적인 달이 아닌 달이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달이 역사적입니다.

금년 6월달을 보더라도 멀리는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이제 꼭 55년이 되어 6.25 55주년 기념과 ‘민족화해 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대리전쟁이라고 하는 이 전쟁에서 동족 수백만이 죽고 강제로 이산된 채 아직도 만나지 못하고 분단된 채로 살고 있습니다.

또 6월 항쟁 기념일은 그저께 지났습니다만, 금년 들어 18주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만큼의 민주주의를 향수하는 것도 다 이 6월 항쟁 덕분입니다.

그리고 내일 6월 13일은 이 땅의 두 여중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치어 죽은 지 3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국의 두 여중생을 장갑차에 깔아 죽인 미군은 무죄 선고를 받고 지금 고국에 돌아갔습니다만, 이들 살인자들을 한국 법정에 세워 법 정의와 민족자존심을 살리라고 요구한 여중생 범대위 상임공동대표인 저는 지금 재판을 받고 1년 6개월의 검사의 구형을 받고 있고 8월 19일에 선고공판이 있을 예정입니다.

최근 여중생들의 죽음에 관한 정보공개청구를 한 바 이에 검찰이 정보공개거부취소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검찰에서 낸 소에 지방법원이 패소판결을 했으나 검찰 쪽에서 다시 상고를 하였고 고등법원에서 기각 처분을 하였으나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에서 원고 패소하여 결국 정보가 공개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개된 정보를 분석해 보았더니 사실은 미국인 장갑차 운정병 워커 병장과 관제병 니노 병장이 무죄판결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으나 한국 검찰이 무죄의 근거를 제공한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들이 정작 현장 조사 등 사실 조사에서는 미국인의 잘못을 발견했지만, 결국 미국 군사 법정에서 정식 문의했을 때는 미국 군 당국의 비위를 생각하여 그들의 구미에 맞게 서면 보고하여 결국 무죄판결을 근거를 주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정말 한·미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한국 검찰당국이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를 생각할 때 정말 입맛이 씁쓸했습니다.

또 내일 모래 글피 6월 15일은 역사적인 ‘6.15 남·북 공동선언’이 있은 지 만 5년이 되어 ‘6.15 5돌 기념일’로 맞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들에 대하여 다들 나름대로 할 말이 많이 있지만, 마지막 사건인 역사적인 6.15 5돌을 맞아서 감회를 잠시 함께 생각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가히 역사적이라 할 수 있는 달을 맞았습니다만, 우리 남한이 6.15 정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통일과 평화를 이루어 나갈 수 없는 상황이고 요즘 같은 ‘6월 위기설’이 상당히 피부에 와 닿을 만큼 실제적인 지금 과연 북한의 평양에서 6.15 기념대회를 한다고 하여 무슨 의미가 있는지가 의문시 됩니다. 제가 이번에 평양 가지 않는 것은 민간인이 정부의 들러리 서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평양과 금강산에 두어 번 갔던 사람이라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6.15를 코앞에 두고 북이 남에게 갑자기 숫자를 반으로 줄이라고 하여 남이 당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300명으로 낙착을 본 모양입니다. 그리고 정부 대표도 30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북의 평양 방문, 금강산 방문이 예사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냉전, 반북한 풍조에서 보면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요즘 신문에 대대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대로 지난 몇 년 간 금강산을 다녀온 남한 사람들이 100만 명을 돌파하였다 하여 100만 번째 되는 사람에게 꽃다발을 주고 대서특필을 하였습니다. 이는 그럴 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주체사상주의자들의 서울 방문도 자연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또 지지난 주간에 성공회대학교에서 주체사상과의 대화도 가졌습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10년 전인 1995년 봄 학기에 이미 한신대 신대원에서 “기독교윤리와 주체사상과의 대화”라는 학과를 운영했습니다만, 그것이 대중화된 것은 아무래도 6.15 남북공동선언후의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모두 2000년 6월 15일에 남·북 공동 선언 덕분입니다. 남·북 정상이 민족 분단 이후 반세기 이상 만에 처음으로 평양에서 만나 소위 말하는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하였고 그것이 있고 난 이후 이렇게 빈번하게 남·북 교류가 있게 되었으며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토론하게 된 것입니다.

금년 6.15가 특히 역사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동안 북한 핵 문제로 북을 ‘악의 축’이나 ‘폭정의 전초기지’라 칭하는 미국의 발언이 있었고 남한 당국이 앵무새처럼 미국의 입장을 반복하고 비료공급을 북한의 6자 회담 복귀와 관련시킨 이후 사실상 남·북 관계가 거의 1년간 단절되다시피 되었다가 지난 달 차관급 회담이 기적적으로 성사되고 6.15 행사가 남·북 공동으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권리가 외국의 간섭으로 불가능하게 되었고 미국이 하면 사리에 어긋나든 현 한·미 상호안보조약이나 소파에 어긋난다고 해도 무조건 ‘미국 만세!’를 부르는 많은 국민들과 특히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이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하기 때문이라거나 공산군의 남침 가능성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란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서 한국민들은 많이 깨닫고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지난 주 6월 5일에는 미 국방성 동아 태평양 담당 리챠드 롤리스 부찬관보라는 자가 한국에 비밀리에 들어와서 “주한 미군이 철수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발언을 하고 “미국에게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끝났다” 말한 것으로 전해 져서 많은 한국민들이 분개하고 있습니다. 한국민은 미국에 대하여 새로운 사실에 눈 뜨고 놀라고 있는 단계인 것 같습니다. 미국은 더 이상 기독교 국가도 아니고 미국의 공장의 3분의 1은 군수공장이며 미국은 결코 세계가 평화롭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전쟁을 원합니다. 스웨덴의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의하면 세계 국방비 총액은 1조 350억불이고 이 중에 미국의 국방비가 차지하는 것은 47%라고 하였습니다.1) 미국의 국방비는 2등에서 20등 까지 모두 합한 금액에 맞먹는다고 하고 이 사실을 두고 시내 한 목사는 이렇게 설교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평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어떻게든 긴장을 촉발시켜 전쟁을 하고자 하는 나라입니다.”2)

미국은 소위 대량살상무기를 수 없이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미국이 북한이 대량살상 무기를 가졌다고 야단입니다. 미 하원 국제부장이란 하이드는 금년에 한국 국방부에서 나온『국방백서』에서 주적이란 표현을 삭제한 데 대하여 미국 국민은 상당한 혼란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적이란 개념은 여론의 압력으로 삭제하였지만, 결국 우리 국방부는 북의 인민군을 주적으로 상정하고 모든 군비를 증강하고 있습니다.

하이드 위원장의 질문에 대하여 정동영 퉁일부 장관은 “미국은 우리의 동맹국이지만, 북한은 우리의 동족이다.”라고 잘 대답했습니다. 지금 여러 가지 면에서 남의 군사력이 북을 능가하는 마당에 주한 미군을 강화한다든지 군비를 증강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한·미 상호안보조약에 의거 한·미 공조를 한다면 민족통일이나 평화는 없습니다. 그러나 민족공조를 하면 반드시 민족통일과 평화의 길이 열립니다.

오늘의 주한 미군은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하고 미국의 잠재적인 적인 ‘중국을 포위’한다는 새로운 직무를 담당하게 하는 신 세계 정책을 미국은 채택하였습니다. 그것을 어려운 전문적인 용어로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어제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만 주된 내용은 신문을 통해서 알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 노무현 정권에 대하여 ‘빨갱이 정권’이라고 규정하고 한반도 전쟁으로 크게 위협하고 있는 미국이고 보면 한·미 정상회담에서 무슨 논의가 있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권진관 교수가 몇 주 전에 예배 인도 시 ‘미국의 적대적인 정책으로’ 라고 표현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요즘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을 호칭할 때 ‘폭정의 전초기지’니 사담 후세인과 같이 ‘나쁜 놈’이니까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등의 표현을 하지 않고 ‘Mr.’ 라는 정중한 표현을 하였고 미국의 강경파로 알려진 라이스 국무장관도 대북 전쟁계획이 없다는 등의 반복된 발표 등 북에 대하여 유화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 문제입니다. 소위 뉴욕 채널을 통하여 북한이 미국과 접촉한 사실을 말하여 미국의 주문대로 북이 다시 6자 회담에 참석할 가능성은 있으나 합세할 시기를 말하지 않았다고 하여 미국 조정에서 야단법석입니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에야 말로 미국에 얼굴을 붉힐 때다”3)라고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노 대통령에게 주문했습니다.

그리고〈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과〈참여연대〉를 비롯한 64개의 단체들과 박형규 목사와 리영희 교수 등을 비롯한 12명의 개인들의 명의로 지난 수요일에 프레스 센타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이번 금요일의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노 대통령에게 주문했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부당한 압력을 단호히 뿌리치고 우리 주권과 국익, 한반도 평화를 필사의 각오로 지켜내 주실 것을 요청 드렸습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촉구했습니다. 그 세 가지란 첫째는 한반도 핵 문제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되어야 하지 대북 제재와 무력사용을 단호히 반대한다는 것; 둘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반대하고 한·미 동맹의 지역동맹화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한·미 정상회담은 자주적 평화외교정책의 시혐대인 만큼 노무현 정부는 미국과 정책적 차이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 등 이었습니다. 그 정상 회담에서 첫번째 것은 성취된 것 같으나 다른 두 가지는 말이 없습니다. 첫 번째 것도 잠정적일 뿐입니다.

한·미 정상회담이 회담이라고는 하지만 미국이 명령하고 한국이 복종하는 따위의 회담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태까지 그래 왔습니다. 만일 한·미 정상회담이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더 유리할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프레스 센타에서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가졌던 기자 회견의 한 참석자는 한·미 정상회담이 정상적으로 개최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주제는 북한 핵 문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그리고 한·미 동맹이라고 합니다. 우리 민족과 국가의 운명이 걸린 실로 중차대한 의제들입니다. 한·미정상회담을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 핵 포기와 대북 화해협력정책의 균형’ 운운하면서 대북한 교류협력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북이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등의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대북한 제재의 국제적 명분을 마련하려는 미국의 주문일 뿐입니다. 만약 미국의 대북한 제재 요구를 동의해 준다면 같은 동족의 목을 죄는 반민족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우리 스스로 전쟁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목을 죄는 자살행위입니다. 만약 북한에 대한 미국의 위협을 완화한다는 명분 하에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한다면 한반도를 대중국 봉쇄기지로 전락시킴으로써 우리나라의 장래는 완전히 미국에 종속되는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만약 노 대통령께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대북 제재를 동의해 준다면 우리는 우리 주권과 민족적 안위가 정말 위태롭습니다.

부디 미국의 부당한 압력에 단호히 맞섬으로써 우리 주권과 국익, 국민자존심을 지키고 호혜평등한 한·미관계와 한반도 평화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이 될 것을 다시 한번 온 국민의 이름으로 당부 드립니다.

무엇이 기독교인이라 할 수 있습니까? 한국 기독교의 이름으로 ‘부시 만세!’를 부르고 김정일을 저주하는 행동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옳습니다. 그는 “나가는 미군의 바지가랭이를 잡아당기고 늘어지는 것은 반드시 능사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한국 교인들은 미군 철수를 이루어 내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국민들이 그것을 원하고 국회의원들이 만장일치로 미군철수를 결의하면 미군은 철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일을 하고 평화를 실현하여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지 부시의 전쟁 책동에 부화뇌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은 한·미 공조를 동족 공조, 민족 공조로 변경해야 합니다. 이것이 6.15 남·북 공동선언의 핵심입니다.

우리들은 남·북 공조, 민족공조를 하여야지 한·미 공조를 해서는 절대로 민족통일이나 평화를 이룩할 수 없습니다. 민족통일과 한반도 평화 없이 세계화, 지구화를 이룩할 수 없습니다.

오늘 구약 본문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남·북 왕조로 분립되어 서로 싸우고 경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각각 차례로 망했습니다만 하나님의 뜻은 하나로 통일하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민족통일은 평화가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평화의 전제는 화해입니다.

오늘 읽은 신약 본문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표지라고 할 수 있는 화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사를 드리다가 형제 자매가 네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제사를 중단하고 가서 형제 자매와 화해하고 다시 제사를 지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즘은 제사 종교가 아니고 예배 종교로 되었기 때문에 이 말씀은 ‘예배를 드리는 자의 자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이 성서의 말씀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이웃과 화해한 사람이라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사상입니다. 이렇게 볼 때는 대부분의 남한의 그리스도인은 자격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보통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보면 기독교는 ‘화해의 종교’, 또는 ‘화해의 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무리들은 무엇보다도 화해의 ‘직무’ 또는 ‘도리’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의 계명을 주시기는 했지만, ‘사랑의 도’, 또는 ‘사랑의 종교’란 표현은 성서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기독교를 ‘화해의 도’라고 특징지운 것은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967년에 미국 장로교회가 신앙고백을 현대 말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신앙고백은 현대어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독특한 신학적 작업의 소치입니다. 그 신앙고백의 신학적 기초는 화해입니다. 그래서 그 신앙고백은 하나님과 인간 간의 화해에 기초하여 인간과 인간의 화해, 인간 집단 간, 민족 간의 화해를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성서의 여러 주장들을 화해란 한 마디로 요약했습니다. 화해는 그 만큼 중요합니다.

F.O.R.란 단체가 있습니다. 이는 Fellowship of Reconciliation 입니다. 옛날에 함석헌 선생님이 이 운동을 좀 했습니다. 인도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기독교인들이 지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활발하지는 않지만, 해외에서는 활발한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화해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도 중요합니다만,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의 주변 강대국들의 비핵화를 위해서 동시에 피나는 눈물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변강대국의 비핵화 없는 북한만의 비핵화나 한반도만의 비핵화 노력은 무용합니다. 그것은 패배와 치욕, 죽음과 전쟁을 부르는 첩경입니다. 이것이 현실적 이해이고 대처입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은 이 문제에 관하여 전혀 ‘나이브’하거나 착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주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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