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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게로 오너라

마태복음 오강남............... 조회 수 1992 추천 수 0 2008.08.25 14: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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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1:28-30 
설교자 : 오강남 교수 
참고 : 새길교회 2005. 7. 3 주일설교 /(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비교종교학 교수) 
다시 이렇게 새길교회 교우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게 것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 혼자 느끼는 짝사랑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새길교회에서 말씀을 나눌 때는 고향집에 와서 식구들과 아무 부담 없이 이야기하는 느낌을 갖게 되어 정말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최근 몇 년 여름마다 새길 교회를 방문해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6-18)는 바울의 말씀을 매년 한 가지씩 같이 생각해보았는데, 이제 그 세 가지는 동이 났기에 금년에는 무슨 말씀을 같이 나눌까 생각하다가 오늘 본문에서 읽은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을 중심으로 같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예수따르미라는 것,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같이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을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결국 예수님이 하신 초청에 응해, 그에게로 나아가 그에게서 배우고 그에게서 쉼을 얻는 것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본론  

1.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본문에서 제일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졌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만일 짐을 졌거든”하는 말이 아닙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의 삶은 본질적으로 수고와 무거운 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전통적인 말로 표현하면 인생이 ‘고’(苦)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삶이 ‘고’임을 선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사로서 우리가 모두 앓고 있는 병을 정확히 진단하신 것입니다. 좀 거창한 말로 하면 인간이 처한 실존적 정황을 꿰뚫어 보시고 이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지닌 한계성, 불완전성, 뭔가 모자란 듯함, 의미 없음을 보신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모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기중심주의’, ‘욕심’, ‘집착’, ‘이기심’, ‘남보란 듯 살려는 마음’ 등의 짐에 눌려 수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예수님이 이 사실을 보여주신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삶이 고임을 아는 것은 어느 면에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병이 들었는데, 이를 모르거나 부정할 경우 그 병은 그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될 수 있습니다. 병이 있으면 그 병이 있음을 알아야 그 병을 고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마음이 가난하여 자기가 지금 겪고 있는 수고와 무거운 짐을 아는 이가, 그러기에,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2. “내게로 오너라.”
우리의 삶이 수고롭고 무거운 짐 진 상태임을, 아픔이요 괴로움임을 자각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게로 오너라”는 초청을 통해 우리가 이런 수고와 짐, 혹은 ‘고’의 상태에서 헤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도 함께 선포하셨습니다. 인간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선언입니다. 우리가 이제 할 일은 그의 선언에 귀 기울이고 그의 초청에 응해 그 용한 의원에게로 나아가 그가 주시는 처방을 받고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3.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그 의원에게서 받은 처방을 따르면 ‘쉼’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쉼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산에 올라가 산꼭대기에서 그 짐을 내려놓았을 때의 홀가분함과 시원함입니다. 영어로 하면 refreshedness, coolness, peacefulness, tranquility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목을 옭매고 있던 욕망의 목줄을 툭 끊었을 때의 해방감, 놓임, 트임입니다. Relief, release입니다.

4.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우리가 이런 쉼이라는 최종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처방은 어느 면에서 간단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를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예수를 믿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여기 이 본문의 말씀에서는 분명히 그것이 ‘예수를 배우는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예수님에 관한 믿음’을 갖는 것이라기보다 ‘예수님의 믿음’ 곧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믿음을 우리도 갖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믿는 것, 예수님과 더불어 믿는 것, 예수님처럼 믿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기독론(Christology)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음’(imitatio Christi)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직접 처방하신 약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본문에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는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다는 뜻이겠습니까? 저는 두 가지를 들고 싶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몸으로 보여주신 것을 보고 배우는 것이요, 둘째는 그가 가르치신 것을 듣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에 의하면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신 것이 바로 ‘자기를 비움’(빌 2:5-8)이라 했습니다. 바울의 말을 직접 인용하면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처럼 ‘자기 비움’이라고 보는 입장을 ‘비움의 기독론’(Kenotic Christology)라고 합니다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도 예수님이 몸소 실천하신 것처럼 ‘자기를 비워 십자가에 죽음’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울의 이 생각은 사실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누구든지 그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마 16:24)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를 ‘비우는’ 대신 어떻게 하든 나의 작은 자아를 더욱 ‘채우려고’ 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려는 마음 대신 십자가를 ‘타고’ 가려는 마음으로 가득한 것이 아닙니까. 정말로 예수님을 배우는 것은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신 것처럼 자기를 비우고 십자가를 지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함’을 배우는 첫째 항목이라 생각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배우는 것의 두 번째 요소는 그가 친히 가르치신 것을 실천하는 것이라 봅니다. 그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가르치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다 잘 아는 것처럼,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4:17)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배우려는 이들이라면 이 가르침에 따라 우리도 ‘회개’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이 ‘회개’라는 말의 참뜻을 더욱 깊이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신 ‘회개’는 ‘옛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잘 할 마음을 갖도록 하라’는 정도의 윤리적 차원이 결코 아닙니다. 회개의 본래 말 ‘메타노이아’(metanoia)가 어원적으로 의미하듯 그것은 ‘의식의 변화’를 뜻합니다. 우리 자신의 심층에서 일어나는 근본적인 ‘의식 구조의 개변’을 가리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는 것, ‘사물을 있는 그대로 봄’(seeing things as they really are)입니다. 성경에 있는 말로 해서, ‘마음이 깨끗해짐’(마 5:8)이요 ‘그를 참모습대로 뵙게 됨’(요일 3:2)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곧 ‘자기를 비움’과 ‘메타노이아 체험’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결국 자기를 비워야 비로소 이런 의식의 변화가 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이런 의식의 변화가 와야 천국이 바로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늘 나라’란 또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마 6:33)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보이듯이 하늘 나라는 일차적으로 ‘구할 것’이지 ‘들어갈 곳’이 아닙니다. 하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원리, 사랑과 공의와 평화와 용서와 협력 같은 하나님의 원칙이 편만한 세상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란 또 어원적으로 ‘왕권’을 의미하므로, 하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절대 자유’를 얻는다는 뜻도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메타노이아 체험이 있을 때 이런 천국의 이상이, 그리고 궁극적 자유가, 우리에게서 멀지 않음을, 심지어 내 속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5.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쉽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에게서 배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요약하면 이처럼 자기를 비우고, 이로 인해서 갖게 되는 메타노이아의 체험을 갖는 것입니다. 이런 배움이 가능할 때 참된 쉼, 진정한 자유가 이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이 예배에 불자님들도 몇 분 오신 걸로 압니다만, 천국, 쉼, 자유 등을 우리가 흔히 들어오던 말로 표현하면 ‘니르바나’(열반) 상태에 이르는 것이라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6.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신학자 폴 틸리히에 의하면 “내게로 오너라”는 예수님의 이런 초청은 우리에게 새로운 ‘종교’를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종교 자체로부터 해방시키시겠다고 하는 약속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기를 강요하는 종교, 예수님에 대한 교리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영원불멸한 진리 자체인 것처럼 무조건 받들게 하는 종교, 온갖 종류의 복을 받으라고 하면서 우리의 이기심과 욕망을 더욱 북돋아 주어 우리가 지고 가는 짐을 더욱 무겁게 하는 종교, 이런 종교가 주는 질식할 것 같은 삶에서 쉼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을 배움으로 얻게 되는 이런 신나는 체험에 비하면 그 어떤 멍에, 그 어떤 짐도 새털보다 더 가볍다는 것, 결국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쉼과 자유의 체험은 오로지 거저 주시는 은총임에 감격할 뿐입니다.

결론
우리의 수고롭고 짐진 상태에서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신 ‘자기 비움’을 본받고 그가 가르치신 의식의 변혁을 이룸으로, 이렇게 신나는 삶, 보람과 쉼이 보장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예수따르미됨, 그리스도인 됨의 중심이 아닌가 하는 것이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의 증거의 골자입니다.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므로 순간순간 보람된 그리스도인의 삶, 쉼과 자유를 맛보는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되기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저희들을 초청해주신 주님, 지금 저희들 그 초청에 응해 당신께 나아가려 합니다. 저희들에게 약속하신 그 쉼을 주시고, 저희들 그 쉼을 통해 힘을 얻고, 당신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게 하는데 저희의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도록 하여주시옵소서. 아멘.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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