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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하는 믿음의 힘

로마서 최현섭............... 조회 수 2358 추천 수 0 2008.10.15 23: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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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12:2 
설교자 : 최현섭 형제 
참고 : 새길교회 2007.2.18주일설교 

분별하는 믿음의 힘

 

여러분은 이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 로마서 12:2

신앙심도 깊고 설교도 잘하는 목사님과 총알택시 기사가 같은 날,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목사님보다 총알택시 기사를 더욱 환대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저는 하나님도 아시다시피 정말 열심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설교도 잘한다고 소문이 나 있고 교인수도 세계 제일은 아니지만 선두 그룹에는 속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어째서 저는 총알택시기사보다 홀대하십니까?’ 하며 항의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네 신앙과 설교 솜씨는 내가 잘 알지. 기도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강조하고 새벽기도도 열심히 했지. 그런데 자네는 자주 설교 시간에 그 귀한 신도들에게 잠을 자도록 한 것이 문제지. 그렇지만 저 총알 택시운전사는, 차를 타는 손님마다 열심히 기도하게 했다네’ 하고 대답했답니다.

저도 혹 나중에 하늘나라에 간다면, 그 목사님처럼 홀대받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 혹 제 말씀 중에 졸음이 오시면, 저를 위해서 주기도문이라도 외우시면서 졸으시면 제게는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본론에 앞서, 우선 힘들고 어려웠지만 당당하게 졸업을 맞이한 새길의 미래 역군들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이들이 방금 부른 찬송가의 가사내용처럼 파도같이 푸르른 젊음, 화산같이 타오르는 젊음을 바탕으로 새길공동체와 하나님 나라의 희망찬 내일을 앞장서 열어갈 수 있기를 기원 드립니다. 동시에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기도와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부모님과 선생님들께도 다함께 찬사와 존경을 드렸으면 합니다. 물론 온갖 위기와 어려움도 능히 이겨내도록 지혜와 힘을 주신 하나님께도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민족의 고유 명절인 설날에 졸업축하예배를 드리기 위해 참여한 졸업생과 교우 여러분과 함께,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소개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박민혜 자매님께서 읽으신 로마서 12장 2절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됩니다. 이 말씀에 의지하여, 저는 오늘, 분별은 기독교적 믿음의 중요한 방식중의 하나이며, 그것은 믿음생활의 귀중한 능력과 에너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분별의 사전적인 의미는 ‘무엇을 헤아려 알거나 무엇이 무엇과 다르거나 같은 점을 헤아리다.’라는 것입니다. 좀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그것은 사람의 말과 행동 그리고 이 시대의 모든 것들에 대해,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진실과 위선, 사실과 왜곡을 꼼꼼히 따져서 구별해내라는 말입니다. 결국, 분별을 하라는 말씀은, 무엇이든지 무조건 믿거나 따르지 말고, 먼저 의문부터 던지고 직접 확인하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분별은 자칫 사람을 불신하고 인간관계를 흩뜨리며, 심지어는 공동체를 파괴할 가능성까지 있어 보입니다. 조직의 대표나 화합과 평화를 바라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분별은 참으로 불경스럽고 불쾌하며 발칙하고 파괴적인 행태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로 보아도 그것은 그렇게 권할만한 규범은 아닌 듯싶습니다. 목사님이나 신앙의 선배의 말씀에, 아멘, 아멘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정말 그러냐?’ ‘꼭 그래야 하느냐?’ 하고 따지기만 한다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우리 교회에서도 운영위원장님이나 각 부서장님께서 무슨 일을 하려는데, 누군가 사사건건 ‘무엇이 옳은지 한번 따져 보자.’고 나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무리 열린 공동체라고 하지만, 얼마나 답답하고 힘이 들겠습니까? 하루에도 수십 번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분별이란 발목잡기, 훼방 놓기, 혼란부추기기, 불신 키우기 등과 같은 참으로 고약한 반인간적이고 반 공동체적이며 반기독교적인 행태와 상통하는 점이 많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경에서는 그 분별이 크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분별력은 레위기 10:10 절을 비롯해 구약의 곳곳에서 강조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도 깨닫지 못하는 세대,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고도 보지 못하는 세대에 대한 탄식과 책망을 수 없이 하셨습니다. 롬 2:18, 고전 2:13, 빌 1:10 등에 보면 바울 선생께서도 분별의 필요성을 계속 강조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째서 성경은 믿음이나 순종과 같은 전형적인 신앙 규범과 상치될 수 있는 분별을 그토록 강조했을까요?

그 첫째 이유는 이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라는 오늘의 본문 말씀에 잘 나타나 있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굳이 성경의 기록을 들지 않고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늘날의 시대 속에서도, 전부는 아닐지 모르지만, 본받아서는 안 될 풍조를 무수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나 아는지 제 멋대로 국민을 핑계 삼거나 함부로 팔고 다니는 정치판이 그 대표적인 풍조일 것입니다. 식민지 시대와 독재 정치 앞에서는 말 한마디 못하거나 야합하고 특권을 누리고다가, 해방이 되고 민주화가 이룩되니, 우국지사인양 행세하고 큰소리치는 파렴치한 종교인들도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돈이건 권력이건 이득이 되면 서슴없이 곡학아세하거나 진실 조작까지 하는 거짓 지식인들,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세상이 어떻게 되든, 자기 자신과 제 가족의호의 호식에만 몰두하는 폐쇄된 개인주의 등 찾아보면 본받지 말아야 할 풍조는 정말 다양합니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주위를 살펴보면 본받지 말아야 할 모습은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 뒤에 ‘이차는 교통법규를 잘 지킵니다.’라고 크게 써 붙여 놓고는 교통법규 위반은 혼자서 다하는 모습, 구구절절 감동적인 언사로 이루어진 ‘공무원의 신조’라는 것이 종무식이나 시무식에서만의 장식품에 그치는 것 같은 형식적인 현실 등이 그 예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분별이 강조되는 이유가 앞서와 같이 내가 빠진 다른 사람들만의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즉 나 자신도 본받지 못할 풍조를 만드는 장본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두 번째의 이유로 들고자 합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수없이 들 수 있지만, 오늘은 우리가 늘 빠지기 쉬운 편견과 인간의 본성, 두 가지만을 예로 들고자 합니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소설과 영화를 접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인간사에 있어 편견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은 편견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잠깐 우리들이 편견에 어떻게 빠지기 쉬운지, 실험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세 가지 내용을 읽어 드릴테니, 하나하나 들으면서 어떠한 느낌이 드는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잘못된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일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를 후손에게 가르치려면 과거에 그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일어난 사실 모두를 가르쳐야 한다.”
“이 법은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기구의 설치 목적은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투옥되고, 탄압당하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며, 희생자들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한 다음 종국에는 피해자들을 도덕적·사법적으로 복권시키는 법안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어떻습니까? 참 잘하는 일이다, 마음이 후련하다, 이렇게 느끼십니까, 아니면, 왠지 찜찜해 보이고, 불순해 보이며, 화까지 나십니까?

다음 말을 들으면 그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맨 앞의 내용은 미국 의회에 위안부 결의안을 제출하여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려는 일본계 미국인 혼다 의원의 기자 회견 내용의 일부이고, 두 번째 것은 우리나라의「진실, 화해, 정리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의 일부입니다. 끝의 것은 2004년에 제정된「스페인 과거사 위원회 법」의 일부라고 들으면 느낌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편견 이외에, 인간의 본성 때문에도 성경은 분별을 그토록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계실 것이기 때문에 다음 두 예만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는 ‘나 자신의 마음속에는 히틀러도 살고 있고, 간디도 살고 있다.’고 한 테레사 수녀의 고백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울 사도의 다음과 가은 고백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참 비참한 사람입니다. ― 로마서 21:24

이 두 가지 예에서,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잠깐만 방심하면 본받지 말아야 할 풍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눈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본다.’(마 7:3)라 하신 예수님의 뼈아픈 지적도 결국은 우리 자신이 바로 본받지 말아야 할 풍조를 만드는 주인공임을 강조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분별을 중시한 세 번째 이유는, 영과 교회 가운데에도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이 많다는 점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영과 교회 자체도 올바르지 않고 믿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은 성경의 곳곳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구절은 요일서 4장 1절입니다. 여기에는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가를 시험하여보십시오.’ 라 기록도어 있습니다. 딤전 4:1, 요한계시록 18장 2절에도 속이는 영, 더러운 영이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체적인 구절을 다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성경에는 반석위에 있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파벌이 있는 교회가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다양한 교회의 모습과 그 교회들에 대한 심판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이라고 해서 같은 영이 아니고 교회라 하여 모두 본받을 교회가 아니라면, 분별은 깊은 신앙과 예수따르미로 살고자 하는 우리들에게는 더욱 굳게 간직하여야 할 규범이 아닐까 합니다. 어쩌면 분별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준 아주 귀중한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아무리 분별을 강조하였다 하더라도, 분별은 속성상 자칫 인간관계를 흩트리고 반기독교적인 모습을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더구나 새길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어떻게든 그것을 극복해 내야만 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 방법에 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방법의 하나로 저는 회개라는 이름의 또 다른 분별을 들고자 합니다. 회개는 개념상 자신의 죄를 깨닫는 것과 고백하는 것과 용서를 비는 것과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담고 있습니다. 회개는 자기 자신의 생각과 믿음과 행실에 대해서조차도 냉철하고 솔직하게 분별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도 확실합니다. 다만 그 죄를 얼마나 즉각적이고 정확하게 깨달으며 마음속 깊이 뉘우치고 지극정성을 다 바쳐 용서를 구하며 거듭난 삶을 살아가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이며, 본문 말씀에 있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를 실행하는 최적의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산 사람 가운데 조금 후에 부를 찬송가 405장을 지은 존 뉴턴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에는 군에서 탈영을 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노예상인을 위해 앞장서 일하는 선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한 후 나머지 인생을 완전히 다르게 살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어려운 이웃과 노예를 위해 헌신하는데 여생을 바쳤다고 합니다. 그에게 만약 회개를 동반한 분별이 없었다면 오늘날 수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405장과 같은 감동적인 찬송가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최고의 분별은 회개이며 회개를 수반한 분별은 믿음의 동력이고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다른 하나는 뜨거운 이웃 사랑이 전제된 분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별은 성질상 나누고 차이를 발견하며 고칠 것을 요구합니다. 이 때문에 분별은 차갑기도 하고, 사람간의 거리를 멀게 하며, 기를 죽이기 쉽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성질을 극복할 수 없는 분별은 진정한 분별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분석과 지적은 기가 막히게 잘 하면서도, 정작 지적받은 이들의 아픔과 딛고 일어설 에너지에 대해서는 모르세 하는 것은 진정한 분별이 될 수 없습니다. 의심은 잘하고 차이는 잘 헤아리면서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해법에는 무지하거나 무관심하고, 그 차이 때문에 나타날 이웃의 소외감은 무시한다면, 그 또한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 분명합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이 빠진 분별은 반쪽 분별에 불과합니다.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잠재우고 치유하는 분별이 진정한 분별이며, 이웃의 고통과 소외와 아픔을 들추어내기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싸매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분별입니다. 기를 죽이고 눈물만 흘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딛고 일어나게 하고 희망을 찾아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분별일 것입니다. 예수따르미로서 살만한 가치가 여기에서 나오고, 예수를 믿는 힘과 에너지 또한 여기로부터 분출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새길교회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새길 교우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왜냐 하면 새길 교회와 새길 교우는 모두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일까를 묻고 또 물으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졸업을 맞이한 새길의 젊은 일꾼 여러분, 그리고 예수따르미를 자처한 새길교우 여러분, 앞으로는 더욱더 회개와 뜨거운 이웃 사랑을 가득 담은 분별을 실행해 가십시다. 그리하여 힘과 에너지를 더욱 더 키우고 확산시켜,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화평케 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풍조를 만들어 가십시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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