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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7:1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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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3년 6월 22일 주일2부설교(여의도순복음교회) |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알콜중독자의 고백에 “아무리 술을 먹지 않으려고 마음으로 노력하고 결심해도 술의 엄창난 유혹과 무자비한 욕망을 이길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번엔 어느 마약 중독자의 절규를 들어 보십시오. “나는 마약의 악마적인 요구를 정신력도 의지도 없습니다. 내 인생은 마약의 노예이며 노리개입니다.” 이 고백들은 악마의 유혹에 사로잡힌 극단적인 예입니다. 우리나라 성인 5명의 1명은 알콜 중독자이고 마약중독자 수가 30만 이상이 추산되고 살인범 340명중 남자의 85%, 여자의 38%가 범행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술과 마약은 처음엔 쾌감을 주나 그 후에는 양심을 마비 시키고 인격을 중독시키고 파멸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바울선생의 양심고백에 동의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7장 18절로 24절에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처음으로 정신분석을 주장한 오스트리아의 의학자 프로이드(Freud) 박사는 근대 정신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데는 실패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의 심장박동이 불규칙한 것을 발견한 담당의사는 지나친 흡연을 중단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잠시 중단했으나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턱뼈암으로 35번이나 수술을 받아야하는 고통을 당하다가 마침내 아래턱을 완전히 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도 담배의 유혹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의학의 아버지로 후대에 날리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겠습니까? 그는 대단한 의지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담배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는데는 그의 의지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의지력이 강하다 할지라도 자기 힘으로는 죄악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바울의 통곡속에서 알 수 있습니다.
1. ‘나’란 말의 복음
첫째로, 로마서 7장에 보면 ‘나’란 말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로마서 7장에 내가 율법과 죄의 멍에 아래 비참하게 무력함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뉴욕 전화회사의 조사에 의하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나’라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5천번 통화중에서 ‘나’란 말을 3,790번이나 사용했다고 합니다. 자연적인 인간은 자아 중심적으로 삽니다만 실상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 무력하고 무능력합니다. 나의 힘으로 죄와 마귀와 악한 세속적인 습관을 떨쳐 버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은 철저한 전인적인 타락이요, 회복 불가능한 부패를 가지고 왔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수행과 고행과 노력으로 원상복구가 불가능합니다. 죄책과 저주에서 벗어나려고 수련하거나 자신을 신격화 하거나 거짓 종교를 찾아 안식을 얻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됩니다.
로마서 3장 10절로 23절에 보면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이후 인간은 죄의 부패속에 태어나고 자연이 처음부터 범죄한 마귀의 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것입니다.
시편51편 3절과 5절에 보면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이라고 고백했으며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다 감추고 평상시에 없는 것같이 하지만 늘 양심속에 죄악의 중압감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추리작가 코난 도일은 의사이면서 소설을 쓰는데 그의 작품중 명탐정 샬록 홈즈는 아주 유명합니다. 그는 전쟁때 군의관으로 참여하여 공을 세워 작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코난 도일이 어느날 사회적으로 제법 높은 지위에 있는 런던에 약 100여명의 사람들에게 똑같은 전보를 보냈습니다. 그 다음날 전보를 띄운 친구들 집으로 알아 보니까 아무도 없이 다 도망을 쳤습니다. 그가 보낸 전보내용은 “당신의 정체가 탄로가 났으니 빨리 피하시오.”그 전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는 조금도 죄짓고 사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뻔뻔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정말 그런지 시험해 볼겸 장난 삼아 전보를 쳤는데 하나같이 다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위선의 너울을 쓰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아가 중심이 되어 있으면 죄와 마귀와 싸워 백전백패 합니다. 자기의 힘으로는 죄와 마귀와 싸워서 이길힘이 없습니다. 이미 배속에서부터 죄중에 태어나고 이 세상에 항상 죄와 마귀의 포로가 되어서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1서 3장 8절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는 소원하지만 우리 육에 속한 사람은 행할 힘이 없습니다. 마음에 결심과 각오를 해도 작심삼일입니다.
로마서 7장 18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나는 원하기는 원하지만 행할 힘은 내게 없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애를 쓰면 애를 쓸수록 더욱 자기는 비참한 죄인 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금식도 해보고 고행도 하고 수련해도 겉은 깨끗한 모양을 갖추나 썩은 것을 가득담은 그릇이나 회칠한 무덤밖에 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회칠을 할 수는 있습니다만 속에 있는 썪은 것은 제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0절로 11절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인간의 행위로써 의롭게 될 사람이 없는 것은 인간의 결심과 각오와 노력으로는 의롭게 행할 의지는 있어도 행할 힘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2. 예수님의 승리
둘째로,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담의 타락과 부패없이 태어난 분은 유일하게 예수님 밖에 안 계십니다. 아담의 씨를 받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된 인간은 역사 이후 예수님 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장 20절로 23절에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여기에 온전한 하나님이 온전한 사람으로 오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죄와 마귀의 포로가 되지 아니하고 자유인으로써 태어나셨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와 마귀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1서 3장 5절에도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0주 40야를 금식하신 후에 시험을 받을때 탐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하신 분이 증거된 것입니다. 광야의 시험에서 마귀는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아무리 식욕을 통해서 유혹해도 유혹받지 않았습니다. 명예욕을 가지고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서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해도 예수님은 그 유혹에 떨어지지 아니했습니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라 해도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해방된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탐욕의 노예가 아니고 죄와 마귀의 종이 아니었으므로 탐욕과 죄악과 마귀의 종이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여 우리의 죄악을 청산할 수가 있었습니다. 빚을 진 사람은 다른 빚진 사람의 빚을 갚을수가 없습니다만 빚이 전혀 없는 사람은 다른 빚진 사람의 보증도 될 수도 있고 다른 빚진 사람의 빚을 갚을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악의 빚을 전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죄의 빚을 태어날 때부터 죽을때까지 일절 갚을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7장 1절로 6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여기에 바울선생은 우리의 삶을 결혼에 비유했습니다. 우리가 죄와 마귀와 율법에 얽매여 사는 부인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영적으로 묶인 죄와 마귀와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 청산되어 버렸으면 우리는 그 결혼의 관계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율법도 못박아 버리고 마귀의 정사와 권세도 해체해 버렸고 죄를 다 청산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노예된 자리에서 해방되었으므로 이제는 예수님에게 새롭게 시집을 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시집가서 이제는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쫓아 살므로 신령한 열매를 맺을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4절에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행위는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없는 분으로 마귀의 종이 되지 않고 율법에 사슬에 묶이지 아니한 자로서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율법도 못박아 버리고 마귀도 정사와 권세를 해체해 버리고 죄는 모두다 청산해 버리고 묶인 우리를 해방과 자유를 얻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들어오면 율법도 사슬도 끊어지고 죄악의 사슬도 끊어지고 마귀의 사슬도 끊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참 신랑 되시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운 열매를 맺으며 신령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나시므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우리들은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6장 3절로 11절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를 끌어 앉고 함께 죽고 함께 장사 지낸바 되고 함께 부활하여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생명으로 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놀랍게 이제는 옛사람을 청산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새사람을 입고 부활의 능력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옛 아담의 육체의 삶은 지나갔습니다. 마귀의 종살이는 지나갔습니다. 죄의 노예 생활은 지나갔습니다. 율법에 포로된 생활은 지나갔습니다. 보라 새것이 되었다. 예수 안에서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안에서 왕노릇하고 사는 사람들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제는 우리가 마귀의 종의 멍에 벗어 버려야 됩니다. 죄악의 종의 멍에 벗어 버려야 됩니다. 율법의 종의 멍에를 벗어 버려야 됩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는 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셋째로,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종교인이요, 선생이요, 지위와 명예가 있는 존경받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오자 주님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자아가 마음의 보좌에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중심에 자기가 딱 앉아 있어요. 자기가 왕노릇합니다. 태어날 때 부터 그 자기는 마귀와 죄의 종이 된 사람입니다. 마음과 육신의 뜻과 욕심으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로 3절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기 전에는 내가 내 마음에 보좌에 앉아 있는 임금이요, 태어날 때 부터 그 나는 마귀와 죄의 종이 되어서 마음과 육신의 뜻을 따라서 욕심으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그가 종교인이요, 선생이요, 지위와 명예가 있고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버림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 거듭난다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옛사람을 회개하고 청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요한1서 1장 7절로 9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와 죄에서 마음의 육신의 탐욕에서 해방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면 우리는 죄와 마귀와 율법에서 해방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살게 되는 위대한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초대교회에서 아주 유명한 김익두 목사님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목사가 되기전에 깡패 출신이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다음 사람들에게 자기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김익두는 죽었다.” 왜냐하면 너무나 시장이 열리면 시장터에 와서 행패를 부렸기 때문에 장날 사람들이 시장에 가기전에 시골에서는 나무에 울긋불긋 걸어놓는 성황당이라고 합니까? 거기에 가면 침을 뱉으면서 “김익두 만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그렇게 하고 갔습니다. 그런 깡패가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변화 받아서는 또 알만한 모든 사람에게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김익두는 죽었다.” 사람들은 진짜 죽은줄 알았어요. 사람들은 깡패 김익두가 죽었다는 부고장을 받고는 모두들 박수를 치고 기뻐했습니다. 평소에 얼마나 잔인하고 못된일을 저질렀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사람들이 많은 시장 한복판에 죽었다는 김익두가 나타났습니다. 목사가 된 그의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은 변화된 그를 시험해 보려고 지나가는 김익두 목사님에게 물을 한통을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물을 툭툭 털고는 물을 끼얹은 사람을 쳐다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분명히 좋은 사람이야. 옛날 김익두가 죽었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할 것은 당신이야. 내가 살았다면 당신 오늘 내손에 작살났어.”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김익두 목사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후 마귀의 종되었던 옛사람을 청산하고 자아의 마음에 보좌에 예수님을 모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된 김익두가 되고 그는 온 한국 천지에 그리스도의 복음과 신유의 능력으로 하늘나라를 크게 왕성케한 주의 귀한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아의 마음의 보좌에 예수님을 앉쳐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임금이 되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죄를 이기지 못해요. 마귀를 이기지 못해요. 율법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어요. 나는 무력합니다. 나는 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라는 사람을 보좌에서 옮겨 놓고 이 보좌에 예수님을 안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한 무리의 무신론자들이 성경을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사람이 창조에 관하여 말했습니다. “그래 상식이 있고 조금이라도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몇천년전에 하나님이 땅위에 허리를 굽혀 진흙 한 움큼을 집어 가져다가 거기에다 숨을 불어 넣어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수가 있단 말이오?”그때 그리스도인 한 사람이 그의 말을 듣고 일어나서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창조에 관한 모든 질문에 다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 한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어느날 밤에 하나님께서 그 허리를 굽히시고 이 도시에 서있던 가장 더러운 진흙 한 덩어리를 집어서 그 흙에 그의 성령의 생기를 불어 넣으셨고 그리하여 노름하고 술마시고 도적질하고 음란하고 방탕하던 개망나니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로부터 23년 동안 나는 도박과 음주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과 음란과 방탕을 한번도 한적이 없습니다. 성경을 대적해서 싸구려 비판의 이론을 전개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 생애에서 일어났던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하나님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변화된 삶이야 말로 거듭남에 대한 최고의 증거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힘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변화는 오직 예수님을 마음 보좌에 모셔 들이므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러분을 왕으로 다스릴때에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이외에 우리의 현실적인 삶과 영원한 미래를 변화시켜 줄자는 없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랴’고 탄식했습니다. 그는 그의 삶에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소원과 육체안에 있는 죄의 법과에 끊임없는 싸움에서 항상 패배하는 자아를 부둥켜 앉고 상처투성이인 양심으로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르짖음의 해답은 곧장 왔습니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그때에 하나님의 대답은 곧장 오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우리의 삶의 승리는 자아의 투쟁으로는 오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안돼요. 타락한 아담의 후손인 우리가 자아를 임금의 자리에 앉혀 놓고 자기 힘으로 율법을 지키지도 못해요. 죄를 이기지도 못해요. 마귀와 싸움해서 승리하지 못해요. 백전백패 합니다. 곤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의지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귀를 멸하고 죄를 멸하시고 율법을 철폐하신 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끌어 앉고 죽어서 옛사람을 장사지내 버리고 우리를 끌어 앉고 부활로 살아나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의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건강하게 하시고 축복받고 영생복락을 얻게 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일하게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 나를 마음의 보좌에서 옮겨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보좌에 예수 그리스도를 임금으로 앉혀야 되는 것입니다. 자나 깨나 예수님 중심으로 살고, 자나 깨나 예수님을 섬기면서 살고, 자나 깨나 예수님을 의자하고 살고 예수님께 구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집니까? 자아가 살아서 내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상처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주님이 우리의 짐을 다 짊어 지셨습니다. 주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내 중심에 계시면 나는 그리스도께 의지해서 오직 안식이 있고 승리가 있고 영광이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주님!
우리는 항상 내가 살아 있어서 내가 내 마음에 보좌에 앉아
나의 힘으로 인생을 살고, 나의 힘으로 율법도 지키고,
의롭게 살고, 마귀도 이기려고 했습니다만 백전백패하고 상처 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선생의 고백은 참말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천지만물을 보아서 건져 낼자가 없습니다만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건져 내어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나이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의 중심을 점령하셔서 오늘날 승리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며 부활의 생명으로 마귀를 짓밟아 버리고 죄악을 털어 버리고 그 누더기 옷을 벗어 던져 버리고 율법을 이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과 희락과 의를 가지고 살게됨을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여 예수님을 예배하고 찬송합니다.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받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알콜중독자의 고백에 “아무리 술을 먹지 않으려고 마음으로 노력하고 결심해도 술의 엄창난 유혹과 무자비한 욕망을 이길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번엔 어느 마약 중독자의 절규를 들어 보십시오. “나는 마약의 악마적인 요구를 정신력도 의지도 없습니다. 내 인생은 마약의 노예이며 노리개입니다.” 이 고백들은 악마의 유혹에 사로잡힌 극단적인 예입니다. 우리나라 성인 5명의 1명은 알콜 중독자이고 마약중독자 수가 30만 이상이 추산되고 살인범 340명중 남자의 85%, 여자의 38%가 범행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술과 마약은 처음엔 쾌감을 주나 그 후에는 양심을 마비 시키고 인격을 중독시키고 파멸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바울선생의 양심고백에 동의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7장 18절로 24절에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처음으로 정신분석을 주장한 오스트리아의 의학자 프로이드(Freud) 박사는 근대 정신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데는 실패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의 심장박동이 불규칙한 것을 발견한 담당의사는 지나친 흡연을 중단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잠시 중단했으나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턱뼈암으로 35번이나 수술을 받아야하는 고통을 당하다가 마침내 아래턱을 완전히 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도 담배의 유혹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의학의 아버지로 후대에 날리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겠습니까? 그는 대단한 의지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담배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는데는 그의 의지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의지력이 강하다 할지라도 자기 힘으로는 죄악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바울의 통곡속에서 알 수 있습니다.
1. ‘나’란 말의 복음
첫째로, 로마서 7장에 보면 ‘나’란 말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로마서 7장에 내가 율법과 죄의 멍에 아래 비참하게 무력함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뉴욕 전화회사의 조사에 의하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나’라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5천번 통화중에서 ‘나’란 말을 3,790번이나 사용했다고 합니다. 자연적인 인간은 자아 중심적으로 삽니다만 실상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 무력하고 무능력합니다. 나의 힘으로 죄와 마귀와 악한 세속적인 습관을 떨쳐 버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은 철저한 전인적인 타락이요, 회복 불가능한 부패를 가지고 왔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수행과 고행과 노력으로 원상복구가 불가능합니다. 죄책과 저주에서 벗어나려고 수련하거나 자신을 신격화 하거나 거짓 종교를 찾아 안식을 얻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됩니다.
로마서 3장 10절로 23절에 보면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이후 인간은 죄의 부패속에 태어나고 자연이 처음부터 범죄한 마귀의 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것입니다.
시편51편 3절과 5절에 보면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이라고 고백했으며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다 감추고 평상시에 없는 것같이 하지만 늘 양심속에 죄악의 중압감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추리작가 코난 도일은 의사이면서 소설을 쓰는데 그의 작품중 명탐정 샬록 홈즈는 아주 유명합니다. 그는 전쟁때 군의관으로 참여하여 공을 세워 작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코난 도일이 어느날 사회적으로 제법 높은 지위에 있는 런던에 약 100여명의 사람들에게 똑같은 전보를 보냈습니다. 그 다음날 전보를 띄운 친구들 집으로 알아 보니까 아무도 없이 다 도망을 쳤습니다. 그가 보낸 전보내용은 “당신의 정체가 탄로가 났으니 빨리 피하시오.”그 전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는 조금도 죄짓고 사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뻔뻔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정말 그런지 시험해 볼겸 장난 삼아 전보를 쳤는데 하나같이 다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위선의 너울을 쓰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아가 중심이 되어 있으면 죄와 마귀와 싸워 백전백패 합니다. 자기의 힘으로는 죄와 마귀와 싸워서 이길힘이 없습니다. 이미 배속에서부터 죄중에 태어나고 이 세상에 항상 죄와 마귀의 포로가 되어서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1서 3장 8절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는 소원하지만 우리 육에 속한 사람은 행할 힘이 없습니다. 마음에 결심과 각오를 해도 작심삼일입니다.
로마서 7장 18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나는 원하기는 원하지만 행할 힘은 내게 없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애를 쓰면 애를 쓸수록 더욱 자기는 비참한 죄인 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금식도 해보고 고행도 하고 수련해도 겉은 깨끗한 모양을 갖추나 썩은 것을 가득담은 그릇이나 회칠한 무덤밖에 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회칠을 할 수는 있습니다만 속에 있는 썪은 것은 제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0절로 11절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인간의 행위로써 의롭게 될 사람이 없는 것은 인간의 결심과 각오와 노력으로는 의롭게 행할 의지는 있어도 행할 힘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2. 예수님의 승리
둘째로,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담의 타락과 부패없이 태어난 분은 유일하게 예수님 밖에 안 계십니다. 아담의 씨를 받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된 인간은 역사 이후 예수님 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장 20절로 23절에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여기에 온전한 하나님이 온전한 사람으로 오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죄와 마귀의 포로가 되지 아니하고 자유인으로써 태어나셨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와 마귀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1서 3장 5절에도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0주 40야를 금식하신 후에 시험을 받을때 탐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하신 분이 증거된 것입니다. 광야의 시험에서 마귀는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아무리 식욕을 통해서 유혹해도 유혹받지 않았습니다. 명예욕을 가지고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서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해도 예수님은 그 유혹에 떨어지지 아니했습니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라 해도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해방된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탐욕의 노예가 아니고 죄와 마귀의 종이 아니었으므로 탐욕과 죄악과 마귀의 종이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여 우리의 죄악을 청산할 수가 있었습니다. 빚을 진 사람은 다른 빚진 사람의 빚을 갚을수가 없습니다만 빚이 전혀 없는 사람은 다른 빚진 사람의 보증도 될 수도 있고 다른 빚진 사람의 빚을 갚을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악의 빚을 전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죄의 빚을 태어날 때부터 죽을때까지 일절 갚을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7장 1절로 6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여기에 바울선생은 우리의 삶을 결혼에 비유했습니다. 우리가 죄와 마귀와 율법에 얽매여 사는 부인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영적으로 묶인 죄와 마귀와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 청산되어 버렸으면 우리는 그 결혼의 관계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율법도 못박아 버리고 마귀의 정사와 권세도 해체해 버렸고 죄를 다 청산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노예된 자리에서 해방되었으므로 이제는 예수님에게 새롭게 시집을 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시집가서 이제는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쫓아 살므로 신령한 열매를 맺을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4절에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행위는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없는 분으로 마귀의 종이 되지 않고 율법에 사슬에 묶이지 아니한 자로서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율법도 못박아 버리고 마귀도 정사와 권세를 해체해 버리고 죄는 모두다 청산해 버리고 묶인 우리를 해방과 자유를 얻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들어오면 율법도 사슬도 끊어지고 죄악의 사슬도 끊어지고 마귀의 사슬도 끊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참 신랑 되시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운 열매를 맺으며 신령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나시므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우리들은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6장 3절로 11절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를 끌어 앉고 함께 죽고 함께 장사 지낸바 되고 함께 부활하여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생명으로 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놀랍게 이제는 옛사람을 청산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새사람을 입고 부활의 능력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옛 아담의 육체의 삶은 지나갔습니다. 마귀의 종살이는 지나갔습니다. 죄의 노예 생활은 지나갔습니다. 율법에 포로된 생활은 지나갔습니다. 보라 새것이 되었다. 예수 안에서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안에서 왕노릇하고 사는 사람들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제는 우리가 마귀의 종의 멍에 벗어 버려야 됩니다. 죄악의 종의 멍에 벗어 버려야 됩니다. 율법의 종의 멍에를 벗어 버려야 됩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는 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셋째로,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종교인이요, 선생이요, 지위와 명예가 있는 존경받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오자 주님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자아가 마음의 보좌에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중심에 자기가 딱 앉아 있어요. 자기가 왕노릇합니다. 태어날 때 부터 그 자기는 마귀와 죄의 종이 된 사람입니다. 마음과 육신의 뜻과 욕심으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로 3절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기 전에는 내가 내 마음에 보좌에 앉아 있는 임금이요, 태어날 때 부터 그 나는 마귀와 죄의 종이 되어서 마음과 육신의 뜻을 따라서 욕심으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그가 종교인이요, 선생이요, 지위와 명예가 있고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버림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 거듭난다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옛사람을 회개하고 청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요한1서 1장 7절로 9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와 죄에서 마음의 육신의 탐욕에서 해방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면 우리는 죄와 마귀와 율법에서 해방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고 장사지내고 부활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살게 되는 위대한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초대교회에서 아주 유명한 김익두 목사님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목사가 되기전에 깡패 출신이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다음 사람들에게 자기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김익두는 죽었다.” 왜냐하면 너무나 시장이 열리면 시장터에 와서 행패를 부렸기 때문에 장날 사람들이 시장에 가기전에 시골에서는 나무에 울긋불긋 걸어놓는 성황당이라고 합니까? 거기에 가면 침을 뱉으면서 “김익두 만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그렇게 하고 갔습니다. 그런 깡패가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변화 받아서는 또 알만한 모든 사람에게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김익두는 죽었다.” 사람들은 진짜 죽은줄 알았어요. 사람들은 깡패 김익두가 죽었다는 부고장을 받고는 모두들 박수를 치고 기뻐했습니다. 평소에 얼마나 잔인하고 못된일을 저질렀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사람들이 많은 시장 한복판에 죽었다는 김익두가 나타났습니다. 목사가 된 그의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은 변화된 그를 시험해 보려고 지나가는 김익두 목사님에게 물을 한통을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물을 툭툭 털고는 물을 끼얹은 사람을 쳐다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분명히 좋은 사람이야. 옛날 김익두가 죽었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할 것은 당신이야. 내가 살았다면 당신 오늘 내손에 작살났어.”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김익두 목사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후 마귀의 종되었던 옛사람을 청산하고 자아의 마음에 보좌에 예수님을 모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된 김익두가 되고 그는 온 한국 천지에 그리스도의 복음과 신유의 능력으로 하늘나라를 크게 왕성케한 주의 귀한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아의 마음의 보좌에 예수님을 앉쳐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임금이 되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죄를 이기지 못해요. 마귀를 이기지 못해요. 율법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어요. 나는 무력합니다. 나는 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라는 사람을 보좌에서 옮겨 놓고 이 보좌에 예수님을 안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한 무리의 무신론자들이 성경을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사람이 창조에 관하여 말했습니다. “그래 상식이 있고 조금이라도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몇천년전에 하나님이 땅위에 허리를 굽혀 진흙 한 움큼을 집어 가져다가 거기에다 숨을 불어 넣어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수가 있단 말이오?”그때 그리스도인 한 사람이 그의 말을 듣고 일어나서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창조에 관한 모든 질문에 다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 한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어느날 밤에 하나님께서 그 허리를 굽히시고 이 도시에 서있던 가장 더러운 진흙 한 덩어리를 집어서 그 흙에 그의 성령의 생기를 불어 넣으셨고 그리하여 노름하고 술마시고 도적질하고 음란하고 방탕하던 개망나니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로부터 23년 동안 나는 도박과 음주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과 음란과 방탕을 한번도 한적이 없습니다. 성경을 대적해서 싸구려 비판의 이론을 전개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 생애에서 일어났던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하나님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변화된 삶이야 말로 거듭남에 대한 최고의 증거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힘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변화는 오직 예수님을 마음 보좌에 모셔 들이므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러분을 왕으로 다스릴때에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이외에 우리의 현실적인 삶과 영원한 미래를 변화시켜 줄자는 없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랴’고 탄식했습니다. 그는 그의 삶에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소원과 육체안에 있는 죄의 법과에 끊임없는 싸움에서 항상 패배하는 자아를 부둥켜 앉고 상처투성이인 양심으로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르짖음의 해답은 곧장 왔습니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그때에 하나님의 대답은 곧장 오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우리의 삶의 승리는 자아의 투쟁으로는 오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안돼요. 타락한 아담의 후손인 우리가 자아를 임금의 자리에 앉혀 놓고 자기 힘으로 율법을 지키지도 못해요. 죄를 이기지도 못해요. 마귀와 싸움해서 승리하지 못해요. 백전백패 합니다. 곤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의지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귀를 멸하고 죄를 멸하시고 율법을 철폐하신 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끌어 앉고 죽어서 옛사람을 장사지내 버리고 우리를 끌어 앉고 부활로 살아나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의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건강하게 하시고 축복받고 영생복락을 얻게 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일하게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 나를 마음의 보좌에서 옮겨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보좌에 예수 그리스도를 임금으로 앉혀야 되는 것입니다. 자나 깨나 예수님 중심으로 살고, 자나 깨나 예수님을 섬기면서 살고, 자나 깨나 예수님을 의자하고 살고 예수님께 구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집니까? 자아가 살아서 내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상처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주님이 우리의 짐을 다 짊어 지셨습니다. 주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내 중심에 계시면 나는 그리스도께 의지해서 오직 안식이 있고 승리가 있고 영광이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주님!
우리는 항상 내가 살아 있어서 내가 내 마음에 보좌에 앉아
나의 힘으로 인생을 살고, 나의 힘으로 율법도 지키고,
의롭게 살고, 마귀도 이기려고 했습니다만 백전백패하고 상처 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선생의 고백은 참말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천지만물을 보아서 건져 낼자가 없습니다만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건져 내어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나이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의 중심을 점령하셔서 오늘날 승리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며 부활의 생명으로 마귀를 짓밟아 버리고 죄악을 털어 버리고 그 누더기 옷을 벗어 던져 버리고 율법을 이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과 희락과 의를 가지고 살게됨을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여 예수님을 예배하고 찬송합니다.
예수님을 경배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받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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