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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3대 복된 믿음

로마서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183 추천 수 0 2008.12.23 16: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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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22:1-19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http://johan316.or.kr (분당샛별교회) 
<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 >

창세기 2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 설명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네가 아들만 생각하는구나! 안 되겠다! 이제 도로 아들을 데려가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았고, “더 큰 복을 원하면 아들을 제물로 드려라!”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무조건 바치라고 했고, 아브라함은 이유도 묻지 않고 그냥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참된 성도는 이유를 묻는 것을 지극히 자제합니다. 믿음을 떠나서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이유를 따지는 것보다 내가 할 일을 먼저 생각하고 실천합니다. 물론 살면서 너무 이상한 일을 당하면 이유를 묻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유를 따지지 말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 제가 이 순간에 할 일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을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환경과 생각과 감정을 넘어선 선택과 결단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어려운 요구를 하셨을 때,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많은 집도 많은데 어렵게 얻은 하나밖에 없는 나의 아들을 바치라고 하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신앙생활의 핵심은 순종입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과 느낌을 따르지 말고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은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습니다(3절). 물론 간밤에 잠을 설쳤을 것입니다. 그 순간만은 몇 년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날이 밝자마자 바로 길을 나설 준비를 했습니다. 그의 순종은 즉각적이고 단호했습니다. 참된 순종은 깊이 생각한 후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순종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말씀대로 살려는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삶이었습니다.

아침에 나귀에 실고 갈 물건들을 준비하면서 번제에 쓸 나무도 쪼갰습니다. 그때 도끼로 나무를 쪼개면서 그의 마음도 쪼개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떠나면서 아내 사라와 의논하지 않습니다. 사라와 의논했으면 사라는 “당신 미쳤냐?”고 극력 반대했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내의 극력 반대로 순종하지 못했다고 핑계할 수도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순종에 걸림돌이 될만한 일은 아예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리아 산까지 사흘 길을 갔습니다. 그 3일 동안 수많은 고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불순종을 합리화시킬 수많은 명분을 찾기도 했을 것입니다. “사람을 번제로 바치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일까? 어떻게 얻은 약속의 자식인데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인가?” 온갖 핑계와 명분을 대고 귀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순종은 순간적인 결단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넘어선 지속적인 순종이 필요합니다. 처음에 순종했다가 인내하지 못해 중도에 포기해서 정상을 바로 눈앞에 두고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바로 저 너머에 정상과 축복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인내하고 끈기 있게 비전을 붙들고 나가야 합니다. 순종에는 변덕이 없어야 합니다. 믿음에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나야 합니다.

그렇게 3일 동안 걸은 후에 종들을 떼어놓고 모리아산에 아들과 함께 올라갑니다(5절). 만약 종들 앞에서 아들을 죽이려고 하면 하인들이 깜짝 놀라며 속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영감님이 나이가 120세가 넘으시더니 드디어 치매에 걸렸구나!” 그리고 말릴 것입니다. “영감님! 왜 그러세요? 참으세요!”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돌아설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핑계거리입니까? “하나님! 저는 바치고 싶었지만 종들이 막아서 어쩔 수 없이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불순종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순종에 방해가 될만한 모든 일들을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짜 믿음입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놀라운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과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 아브라함의 3대 복된 믿음 >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믿음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이용되는 가장 유명한 본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1.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

본문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이 말씀은 믿는 자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의 대상임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왜곡된 하나님을 믿고 미신을 믿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세히 보면 자기를 믿습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것은 좋은 사고방식이긴 하지만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성도에게도 신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신념이 다른 것을 분명히 분별하는 바탕 위에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신념은 자기를 믿고 자기의 생각을 믿는 것이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인격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신념은 때로는 자기 자신과 공동체에 큰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을 때 믿는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었습니까? 물론 하나님을 믿었는데,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었습니까? 본문 17절 말씀을 보면 그는 하나님을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그 말은 아브라함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는 믿음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은 없어도 계속 있는 것처럼 부르고 바라보면 언젠가 정말 있게 될 것입니다.

원래 신앙이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에게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뿐입니다!” 그처럼 겸손한 자를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가장 주의할 것은 자기가 무엇이 된 줄 아는 것과 자기 신앙과 자기 영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고통과 재앙을 부르는 제일 나쁜 생각입니다.

일전에 한 기독교 잡지사에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교회에서 제일 불편하고 무서운 사람이 누구인가?” 그 질문에 제일 무서운 사람 1위가 금식기도 잘하는 사람이고, 2위는 철야기도를 잘하는 사람이고, 3위는 신학 공부를 한 장로님이라는 대답이 나왔다고 합니다. 금식, 철야, 신학 등은 개인의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만 그것들이 자랑감이 되거나 남의 연약한 신앙을 비판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무엇이 된 줄 오해하지 말고 겸손하고 단순하게 믿어야 합니다. “누구는 영성이 없다! 누구는 무엇이 부족하다!”라고 비판하는 것은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럼 너는 무엇이 있냐?”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런 태도는 큰일 날 태도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오직 주의 은혜와 주의 십자가뿐입니다. 벌써 남을 비판하는 것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자랑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보다 자기를 더 바라보지 말고, 주님보다 물질과 축복을 더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안마를 해주면 가끔 용돈을 줍니다. 얼마 전에는 한나가 8천 원 가는 어떤 CD를 산다고 안마를 열심히 해주었습니다. 다른 때는 잘 해주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안마를 받으라고 하면서 엄마아빠를 강제로 눕히고 안마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손으로 얼마나 열심히 해주는지 안쓰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6500원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마트에 갔습니다. 마트에 간 김에 아내가 한나에게 1500원을 빌려줘서 8000원짜리 CD를 사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한나가 CD를 산 다음에는 더 이상 안마해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부부가 말했습니다. “한나야! 1500원어치 안마해야지!” 그래서 마지못해 해주는데 영 시원찮게 해줍니다. 그런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우리 부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속았다! 다음부터는 미리 사주지 말아야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 받고 모른 척 하고, 선물을 받고 난 후에 선물을 주시는 분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그 선물은 나에게 해를 주는 우상이 되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요구하는 모리아 산의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제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으면 ‘절대 평안’이 오고, ‘절대 축복’이 옵니다.

2.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

본문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이 구절에서 “바랄 수 없는 중에”란 말은 “세상적인 희망은 다 끝난 상태이다”라는 말입니다. 그처럼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희망을 가진 믿음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실질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을 하늘의 별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그의 아내의 태는 닫힌 상태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닫혔고, 이미 사라의 나이가 90세가 되었는데 어떻게 구름 떼 같은 후손이 생기겠습니까? 그처럼 세상적으로는 아무 희망이 없는 상태였지만 그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조차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면 정말 희망이 생기고, 기회가 생기고, 최종적으로 승리의 역사가 주어질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은 우리의 상식과 생각을 초월한 크고 비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절망적인 사건을 만나도 하나님이 감춰두신 신비한 은혜를 생각하고 결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프랑스 군인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배낭에 책 두 권은 꼭 넣고 나간다고 합니다.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천재 철학자 파스칼이 쓴 팡세입니다. 그런데 파스칼이 팡세를 쓰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파스칼은 여동생이 안질에 걸려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환상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타나 동생의 눈을 건드렸습니다. 너무 이상해서 파스칼은 기도를 마치고 동생을 찾아가서 눈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동생이 말했습니다. “오빠!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조금 전에 신기하게 눈이 나았어요.” 이때 파스칼은 철학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은 믿음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우리는 현실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넘실대는 홍해의 현실만 바라보았다면 그들은 홍해를 건너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황량한 사막만 봤다면 믿음의 조상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언제나 삭막하고, 비관적이지만 우리는 현실에 집착하지 말고 먹구름 뒤에 있는 태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미래를 창조하는 능력입니다. 또한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믿음은 단순히 희망사항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 믿음이라면 반드시 여리고 성과 같은 큰 문제와 장벽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비전을 이루는 꿈과 같은 날에 오게 될 것입니다.

3. 믿음이 약해지지 않는 믿음

본문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크고 놀라운 믿음을 가져도 환경이 지속적으로 안 좋은 환경으로 진행되면 어느 누구든지 믿음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노년을 맞은 자신과 아내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늦어지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믿음이 약해질 수 있었지만 그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이 구절에서는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크게 다릅니다. 물론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는 것을 넘어서서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아는 것이 믿음을 가장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지식과 경험 때문에 믿음이 위축되어 뒤로 물러나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지식과 믿음의 끊임없는 전쟁과 같습니다. 성경을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환경을 보고 내 생각과 경험과 지식을 따르면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때 내가 “지식을 따를 것이냐? 믿음을 따를 것이냐?”를 놓고 영적인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런 영적전쟁에서 우리는 지식과 감각과 이성을 따르지 말고 믿음을 선택해서 승리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끊임없이 환경을 바라보고 의심하게 만드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과연 이루어 주실까? 내 기도가 정말 응답될까? 내가 가진 비전일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때 믿음이 약화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한 때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본문 20-21절 말씀을 보십시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도 가끔 의심과 회의가 있었겠지만 그는 의심과 회의를 극복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받고, 기적의 주인공이 되고,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무조건 다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기도해도 고난과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오히려 기도할수록 더 상황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믿음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믿음이 약해지지 말고 그때 더욱 견고해져야 합니다. 그런 믿음이 결국 기적을 일으킵니다.

믿음은 만사형통을 보장하고 복이 넝쿨째 굴러오는 통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수입이 줄고, 고난이 끊이지 않아도 믿음을 잃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근심하고 두려워하면 사단만 좋아합니다.

사단은 개와 비슷합니다. 동네 개를 보십시오. 개들도 아이들을 보면 우습게 알고 더 짖습니다. 개는 사람이 두려워하면 두려워하는 심장 박동소리를 듣고 더 짖습니다. 그러나 심장 박동소리가 평안하면 개는 벌써 알아차립니다. “저 사람 대단한 사람이네. 계속 짖었다가는 개 뼈도 못 추리겠네.” 그처럼 기가 죽고 슬쩍 눈치를 볼 때, 갑자기 발을 한번 굴러 보십시오. 그러면 “깨갱!”하면서 부리나케 개집으로 도망칩니다.

사단도 똑같습니다. 고난이 있다고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면 더 달려들어서 가정을 건드리고, 자녀를 건드리고, 사업을 건드리고, 몸과 마음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고난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기뻐하고 감사까지 하면 사단은 건드리면 큰일 날 줄 알고 더 이상 건드리지 않습니다. 바로 그때 하는 일마다 계속 안 되는 머피의 법칙은 끊기게 될 것이고, 문제도 해결되고, 삶의 풍랑도 잠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노리개가 되지 말고 사단을 갖고 놀아야 합니다. 사단에게 도망가는 뒷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이 공격하면 무섭게 쬐려보고 발을 굴러 “너 죽고 싶어!”라고 담대히 맞서고, 고난이 오면 더욱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고난과 불행이 틈을 엿보고 오려다가 놀라 도망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힘들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지만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힘들면 오히려 더 하나님을 찾고 감사하고 기도합니다. 똑같은 바람이 불지만 오물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꽃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깁니다. 중요한 것은 “바람이 부느냐? 고통이 있느냐?” 하는 것보다 “그 바람과 고통에 어떻게 믿음으로 대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 끝까지 겸손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

우리가 진정 복된 존재가 되기를 원하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9절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때로 힘든 일이 있어도 반드시 기적적인 일이 우리에게도 펼쳐질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믿음생활을 방해하는 것은 고난을 쓴물뿐만 아니라 쾌락의 단물도 우리의 믿음생활을 방해하기 때문에 특히 성공했을 때에도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속적인 은혜를 받으려면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세기 18장 27절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티끌과 같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처럼 자신을 부족한 존재로 여겼기에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뇌의 실핏줄 하나만 터져도 우리는 누워 똥오줌을 받아내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특별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영적인 투자를 많이 해야 합니다.

요새 자녀교육에 대단한 투자를 합니다. 100일도 안된 아기를 위해 벽에 영어 알파벳을 붙여놓습니다. 그러면 조금 똑똑할 수는 있지만 사실 행복의 기회는 비슷하게 찾아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 기회를 잘 살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따라 부자나 빈자나 사는 것은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자세히 보면 별 차이가 아닙니다.

사람이 40대가 되면 미모의 평균화가 옵니다. 아무리 발라 봐도 그 얼굴이 그 얼굴입니다. 50대가 되면 지성의 평균화가 옵니다. 과거의 학력 차이는 있어도 그동안 살아온 인생 경험으로 가진 지혜는 비슷합니다. 60대가 되면 체력의 평균화가 옵니다. 그때는 체력 자랑하지 말고 조심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70대가 되면 소유의 평균화가 옵니다. 부자나 빈자가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식사 잘하고 건강하게 살면 최고입니다. 80대가 되면 죽음의 평균화가 옵니다.

사람은 결국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잘난 태도를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항상 깨닫고 주님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어떤 유혹이 오고 어떤 시련이 와도 우리가 꿈과 비전과 믿음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으면 현세와 내세에 가장 복된 삶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 선교의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은 연약합니다. 그래도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아주 찬란한 꿈입니다. 미국 CMA 출신 선교사들을 돕는 중간기지에서 벗어나 직접 전 세계에 수많은 좋은 선교사님들을 우리 교회를 통해서 직접 파송하고, 많은 선교 중심적인 교회를 개척하는 꿈입니다. 지금 가진 꿈에 비해 일꾼이 적습니다. 그래도 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나갈 것입니다.

가끔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해서 그 꿈이 너무 황당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나타난 영향력 정도만 오프라인에서도 나타나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꿈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미국 기독교선교연맹(CMA) 출신 목사로서 한국에 왔을 때는 저의 몸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물질도 없었고, 살 집도 없었습니다. 동역자도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직 사명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꽤 많은 동역자를 주셨습니다.

우리 교인들 외에 선교후원자도 있게 되었습니다. 막막한 심정으로 유럽으로 건너갔던 사도 바울을 위해 루디아를 예비한 것처럼 루디아와 같은 성도도 만나게 하셨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받는 사례의 절반 이상을 선교 및 헌금으로 드리니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가정은 어떻게 삽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후원자를 보내서 저희 가정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극적인 경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요새 우리 교인들이 만날 때마다 저에게 성화를 합니다. “목사님! 이번에 판교 아파트 꼭 신청하세요. 꼭 하셔야 해요. 안 하면 정말 안돼요.” 마치 신청을 안 하면 큰일 날 것처럼 사랑의 위협을 합니다. 저는 그 성화에 담긴 사랑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사택을 해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도 읽고 있습니다. 솔직히 고맙습니다.

그러나 집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지금은 아쉬운 것이 없습니다. 오직 아쉬운 것은 더 많이 선교사들을 후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의 관심은 “어떻게 한국에 선교사 훈련학교를 세울 수 있을까?”에 있습니다. 우리 동역자들이 몽고에서도 세우고, 대만에서도 세우는데 한국에서 세우지 못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꿈과 비전을 이루는 그날까지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지금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가끔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비전을 이룰 수 있을까?”하고 회의가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시련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십시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윈스턴 처칠은 공부를 못해서 6학년 때 낙제해 1년을 더 공부했습니다. 에디슨도 4학년 때 학교에서 쫓겨날 정도로 공부를 못했습니다. 링컨도 살면서 무려 14번이나 크게 실패해서 신경쇠약까지 걸렸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잘 믿어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믿는 자의 내일과 미래를 멋지게 마무리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때로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하십시오. 실패도 믿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입니다. 실패했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만드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잡고 살면 반드시 반전의 기회는 옵니다.

지금 우리가 성공하지 못했어도 믿음만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실패의 경험은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두려워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 다윗도 간통과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성질 급한 베드로도 실수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멋지게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도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고 항상 견고한 믿음으로 축복을 예비하시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anqy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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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1 설교자료 우리나라 대표적인 설교자 링크 계속추가중  현재128명 링크  2009-03-20 10281
1370 요한계시 천국과 지옥 계21:5-8  조용기 목사  2009-03-17 2542
1369 창세기 삼대재앙과 삼중축복 창3:15-19  조용기 목사  2009-03-17 1938
1368 예레미야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 렘33:2-3절  조용기 목사  2009-03-16 2607
1367 시편 허상과 실상 시127:1-2  조용기 목사  2009-03-16 1764
» 로마서 아브라함의 3대 복된 믿음 롬22:1-19  이한규 목사  2008-12-23 2183
1365 로마서 참 소망 [1] 롬5:2-4  강종수 목사  2008-12-21 2494
1364 로마서 대리냐 대표냐: 속죄론에 대하여 롬6:1-4  권진관 형제  2008-12-06 1637
1363 로마서 하나님의 의 롬3:24  조용기 목사  2008-11-21 1898
1362 로마서 영의 생각 롬8:1-11  강종수 목사  2008-10-26 2363
1361 로마서 하나님의 갈등, 나의 갈등 롬7:24-8:2  조용기 목사  2008-10-22 1811
1360 로마서 소망의 등대 롬5:1-5  조용기 목사  2008-10-22 1969
1359 로마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롬7:18-25  조용기 목사  2008-10-22 3742
1358 로마서 새 시대의 영성 롬10:1-4  서창원 목사  2008-10-15 1887
1357 로마서 분별하는 믿음의 힘 롬12:2  최현섭 형제  2008-10-15 2358
1356 로마서 아브라함의 신앙 롬4:16-25  조용기 목사  2008-09-23 1946
1355 로마서 참 참 좋으신 하나님 롬8:31-39  조용기 목사  2008-09-23 2274
1354 로마서 다석 유영모의 신앙 롬11:25-36  정양모 신부  2008-09-15 2649
1353 요한복음 평화와 두려움 요14:27-31  정용섭 목사  2008-08-25 1911
1352 창세기 우상과 귀걸이 창35:1-8  정용섭 목사  2008-08-25 2112
1351 사도행전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 행10:34-43  정용섭 목사  2008-08-25 2286
1350 누가복음 두려움을 넘어서 눅12:22-32  정용섭 목사  2008-08-25 2016
1349 고린도전 영적인 인식론 고전2:6-16  정용섭 목사  2008-08-25 1597
1348 누가복음 용서의 능력 눅17:1-4  정용섭 목사  2008-08-25 2044
1347 열왕기하 삶의 중심 왕하5:20-27  정용섭 목사  2008-08-2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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