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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2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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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3년 11월 23일 주일2부설교 |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천국과 지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참으로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뱃속 어린아기에게 "얘야 너는 얼마 있지 아니하여 새로운 세상에 태어난단다. 그것은 지구라고 하는데 해와 달과 별들이 하늘에 있고 산과 바다와 나무와 풀과 가지가지 새와 물고기와 짐승이 있으며 또 아버지가 있고 언니, 오빠, 동생 여러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가정이라는 것이 있단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단다." 이 말을 들은 뱃속의 아기의 반응은 어떠하겠습니까? 첫째는 ‘날 웃기지 마세요. 그런 세상이 어디 있을라구. 나는 여기가 좋아요. 어머니 자궁 속 물침대에 떠있는 삶이 얼마나 좋다구요.’ 둘째는 ‘아니 그게 정말이요? 정말 그런 세계가 있을까요? 설마 참말이 아니겠지요. 나는 할 수 있는 한 이곳에 오래 살겠어요. 당신이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나요?’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셋째 아기의 대답은 ‘아 정말 지구라는 세계가 있군요. 그렇다면 그 곳에 나갈 준비를 해야지요. 알려주어서 고마워요. 그날은 손꼽아 기다리겠어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지구라는 어머니 뱃속에 지금 살고 있습니다. 조만간 이 공간을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야할 곳을 분명히 말씀해 주시고 그 길도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알려주심에 대한 태도가 가지가지 다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무관심 혹은 적대적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회의주의자가 되어 반신반의하며 회개하고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 많은 사람은 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가 무사히 지구를 떠나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부자와 거지 나사로
오늘 첫째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예를 들어 말씀하신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로 31절에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한 곳에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그의 집도 화려하거니와 그 집주위에 기화요초(琪花瑤草:옥으로 만든 꽃과 옥으로 만든 풀) 만발하게 했습니다. 집안에 모든 필요한 것이 다 갖추어져 있고 들어가는 입구도 장엄한 대문을 짓고 화려하게 꾸며 놓았었습니다. 그의 삶은 자색 옷과 가는 베옷을 입고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았습니다. 자색 옷이라는 것은 그 당시에 권력자만이 입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상당히 정부의 권력이 높은 사람이고 가는 베옷은 부자들만이 입는 옷입니다. 그는 돈이 많고 부자여서 아주 가는 베옷을 입고 권력과 부귀와 영화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의 생활이 호화로이 연락했습니다. 그는 집에서도 거대한 파티를 개설하고 많은 친구와 친척들을 모셔서 즐기고 또 밖에 나가서도 영화롭게 그는 환락을 즐기며 쾌락주의로 살았습니다. 육신적인 쾌락을 가지고 사는 것이 그의 삶의 현실이요, 목표였습니다. 현세주의자적이고 그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 대문에 거지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는 가정도 다 잃어버리고 있을 집도 없고 의지할 곳이 없어서 이 부자집 대문에 쭈그리고 앉아 거적데기를 펴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병이 몹시 들어서 얼마 세상에 살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구걸하여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라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부자집 하인들도 이 거지를 발길로 차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자집에 있는 개들이 친구가 되어서 와서 같이 잠을 자주고 그 앓는 배를 핥아 주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비록 인간에게 멸시와 천대를 당할지라도 그의 마음 속에 모세의 가르침과 선지자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모세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고 찬양하는 그러한 거지였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자 이 거지는 죽었어요. 병들어서 대문간의 거적데기 위에 누워 있는 그가 오래 살수 있겠습니까? 그가 죽으매 하인들을 시켜서 거적데기에 둘둘 말아 공동묘지에 던져 버렸었습니다. 그의 몸은 공동묘지에 던져 버렸지만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공동묘지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 몸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서 그 나사로를 받들어서 낙원에 들어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서 모든 영화를 누리게 했다고 말했었습니다. 겉사람은 부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다고 겉사람이 무너져도 속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품, 낙원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시편 116편 15절에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라고 해서 영원히 사나요? 세월이 흘러가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와서 그 부자도 죽었습니다. 화려한 장례식에 만장(輓章: 죽은 사람을 위해 적은 글을 담은 긴 폭의 천)이 천 길을 덮고 그의 상여는 꽃으로 꾸몄습니다. 수많은 조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집 안팎에 꽉 들어찼고 묘지로 가는 행렬도 거창스럽고 장엄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장엄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자는 죽자마자 음부에 떨어졌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 음부에서 불꽃 가운데서 번뇌하게 되었습니다. 불꽃이 그를 태워서 그는 불꽃에 타나 없어지지 아니하는 그 끊임없는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번뇌하고 있다가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때는 음부는 2층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큰 구렁이 있어서 위층은 낙원이라고 아래층은 음부라고 말했습니다. 윗층 낙원의 아브라함의 품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평소에 나사로를 짐승보다 못하게 여기고 인간취급을 안했는데 너무나 놀라우니 이 나사로가 영화로운 의복을 입고 아브라함의 품에서 연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고함을 쳤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보소서. 나는 음부에 떨어져서 이렇게 불꽃 가운데 번뇌하니 견딜 수가 없으니 나사로를 보내어서 한 방울 냉수로 내 혀를 적셔서 서늘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럴 때 아브라함은 말했습니다. “야, 이 사람아! 너는 세상에서 부귀, 영화, 공명을 다 누리고 육신의 쾌락을 도모하며 살면서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무시하고 살았지 않았느냐? 그러나, 이는 비록 거지지만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면서도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경배했다. 너는 지금 지옥의 아래층에 떨어지고 이는 낙원에 들어와서 있느니라. 너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있어서 그곳에서 건너 올수도 없고 우리도 건너갈 수가 없으니 너의 기도는 응답할 수 없다.” “그러면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가 간청합니다. 저 세상에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지금이라도 그 형제들이 깨우쳐서 내가 고민하는 이곳에 들어오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면 그 말을 믿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세상에는 모세의 글과 선지자의 글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은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서 전파해도 믿지 않으리라.” 그의 마지막 호소가 거절당하고 말은 것입니다. 일단 사람이 음부에 들어가면 그의 모든 희망은 두절되는 것입니다. 그의 간구도 그의 소원도 다 거절되고 마는 것입니다.
최근 미얀마 즉, 옛날 버마에 한 독실한 불교 승려가 황열병과 말라리아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랬다가 3일만에 화장하기 직전 살아나서 그동안 그가 바라본 천국과 지옥을 강하게 간증하며 전도하다가 지금 잡혀서 감옥에 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빠울로인데 그는 1958년에 델타에서 태어났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13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고기잡이 배에 올라타서 고기잡이를 하고 생계를 이어갔었습니다. 17살 때 그 부모님의 간절한 청에 의해서 사원에 들어가서 19살 때 정식 승려가 되었는데 그때 받은 이름이 아신트라야입니다. 가장 존경받는 승려가 시안다우였습니다. 그런데, 빠울로 승려가 사원에 들어간지 6년째 되던 때에 황열병과 말라리아 병에 걸려 죽어서 3일이 되자 부패하여 냄새가 나고 관에는 송장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화장하려고 불에 집어넣기 직전에 이 사람이 관에서 살아 일어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두 놀라서 주변에 있는 성도들이 다 도망을 쳤습니다. 그는 죽었을 동안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 사실을 간증하여 전도하다가 붙잡혀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는데 그는 죽은 뒤 눈앞에 강한 폭풍이 불어오더니 모든 나무가 다 쓰러진 뒤에 강 건너편을 바라보니 무시무시한 지옥불이 활활 타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비규환의 부르짖음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옥을 가만히 가까이 들어가 보면서 지옥을 지키고 있는 지옥사자를 보고 당신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까 “나는 지옥의 왕, 파괴자, 사탄이다. 지옥을 한번 들여다보라”고 열어주기에 그 지옥을 들어다 보니 그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던 시안다우 승려가 얼마 전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그 승려가 지옥에 와있어요. 그 훌륭한 분이 왜 이 끔찍한 지옥불이 왔는지 물으니까 그는 좋은 선생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자기 죄 때문에 지옥에 왔다고 했습니다. 또 한곳에 보니까 그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이며 혁명가인 아웅산이 지옥에서 불속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 죄사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곳에 와있다”고 지옥의 사자가 말했습니다.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을 보다가 갈래길이 나왔는데 한쪽은 지옥으로 가는 길인데 크고 넓은 길이고 다른 한쪽은 좁고 험한 길인데 빛이 환하게 비취더랍니다. 그쪽으로 가는데 베드로가 나와서 “더 이상 갈 수 없다. 네가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지상명령을 다 행한 후에 이곳에 오게 되면 이 길을 걸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지금까지 본 것을 세상에 나가서 전하라.” 이 말씀을 듣고 화장터에 들어가다가 깨어나서 그는 순식간에 불교 승려에서 열렬한 크리스챤이 되고 예수 믿어야 천당하고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외치다가 감옥에 지금 들어가서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요사이 말세가 오니까 가끔가다가 이런 놀라운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지옥은 확실히 있다.
둘째로, 오늘 알고 싶은 것은 지옥은 확실히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지옥이 있을까? 지옥같은 소리하네.”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있지만 지옥은 확실히 있어요. 성경에는 지옥을 두 가지 분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음부’라고 말합니다. 음부는 헬라어로 ‘하데스’인데 하데스는 미결수의 감옥입니다. 지금은 죽는 사람이 전부 다 하데스 즉, 미결수 감옥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제 장차 천년왕국이 끝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백보좌(白寶座)심판에서 미결수를 다 불러내어서 완전히 심판을 하시고 난 다음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부자가 들어가 있는 곳도 미결수 옥인 하데스인 것입니다. 하데스에 들어가 있어도 그렇게 괴롭습니다. 여러분 하데스의 2층은 낙원이었습니다. 그 낙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서 그 낙원 속에 사흘 동안 들어가서 구약시대 성도들인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성도들을 다 데리시고 주님은 이 2층에 있는 낙원을 새 예루살렘 천당으로 옮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음부 속에는 모두 최후의 심판을 받을 미결수, 불신자들이 그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마지막 가는 것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입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은 게헨나 라고 말합니다. 쓰레기 더미를 태우는 곳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우주의 쓰레기들을 영원히 태우는 것입니다. 이 음부에 있는 사람들도 천년왕국 이후에 주님께서 마지막 최후의 심판을 하실 때 백보좌 앞에 나가서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심판받고 난 다음에 음부와 함께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둘째 사망이란 무섭습니다.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세세토록 밤과 낮없이 고통을 당한다.
14절, 15절에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 행음자들과 술객들 우상숭배자들,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지우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지옥의 고통을 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까?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지금 미결수 감방인 음부에 있는 자들도 어마어마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희망이 사라진 곳입니다.
마태복음 22장 13절에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여러분 사람이 어떤 때 이를 갑니까?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우면 이를 부득부득 갈잖아요. 음부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고통을 당하는 곳입니다. 여러분 희망이 있으면 고난을 참을 수 있지만 지옥은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마태복음 25장 46절에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영원한 벌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갈림길인 것입니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편에는 지옥문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이곳으로 들어가는 자여 모든 희망을 버릴찌어다’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리 곤고를 당해도 희망만 있으면 견뎌낼 수 있어요. 희망이 사라지면 여러분 하루가 천년같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바로 지옥은 그런 곳입니다.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영국의 토마스 스코트는 임종의 순간에 “나의 운명은 너무나 비참하다. 전능한 창조주의 심판 앞에 서야 하는 이 두려움을 어이할꼬” 하며 탄식했습니다. 무신론자였음에도 죽을 때 심판을 두려워했습니다.
프랑스의 계몽학자이며 무신론자였던 볼테르는 그가 말하기를 100년 이내에 지상에서 기독교를 자기의 문학 펜으로 없애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 그의 시중을 들던 주치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 나는 내 앞에 다가오고 있는 저 세상이 무섭다. 저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작은 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어두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는 몸서리쳤습니다.
불신자의 미래는 처참하며 불신자 네프치리오도 임종시에 “지옥의 영원한 두려움과 고통 속에 살기 보다는 오히려 백 만년 동안 뜨거운 난로 위에 누워 몸을 지지며 태우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부정과 부도덕을 택했는데, 이제는 그것들이 나를 끝도 없고 소망도 없는 지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그러고 탄식하면서 죽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대적하고 신이 없다고 하던 사람들도 죽음의 그 자리에 와서는 절망 속에 몸부림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옥에는 죄책이 끓어오르는 곳입니다.
마가복음 9장 48절로 49절에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 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구더기는 죄책을 말합니다. 한평생 지은 죄가 하나도 없이 다 살아나서 끊임없이 그를 국문하는 것입니다. 죄책이 얼마나 괴롭습니까? 그러므로, 그는 그 죄책으로 말미암아 죄책이 구더기처럼 꿈틀거리면서 그를 먹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고통 가운데 영원히 삽니다. 그리고, 불도 꺼지지 아니한다. 여러분 석면을 불에 넣으면 석면은 없어지지 않고 온 석면 속에 불이 들어가서 활활 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영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온 영혼 속에 불이 타들어가서 온 영혼이 불덩어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영도 마음도 몸도 모든 것이 불꽃 속에서 무지무지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감각이 살아 있습니다. 기억도 살아 있습니다. 밤낮으로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괴로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보시고 “유다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불꽃이 그렇게 뜨거우니까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 옛날에 시골에서는 가을에 미꾸라지를 잡아서 집에 와서 추어탕을 끓여 먹습니다. 미꾸라지가 살이 쪄서 누렇습니다. 그것을 바구니에다 물로써 싹 씻고 난 다음에는 호박 잎사귀를 가지고서 확 문지릅니다. 호박잎사귀가 꺼칠꺼칠하니까 비린내가 없어지라고 호박 잎사귀로 문지르고 난 다음에 소금을 탁 쳐버립니다. 그러면 미꾸라지가 호박 잎사귀에 피부가 문질러지는데 소금을 치니까 막 뛰는데 바구니가 막 들썩들썩 하는데도 미꾸라지가 뜁니다. 여러분 지옥은 그런 곳입니다. 사람들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얼마나 뜨겁든지 뜨겁고 고통스러워서 몸부림치며 활짝활짝 뛰고 뒹굴고 부르짖고 외치는 곳이 지옥입니다. 지옥을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8절로 9절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 제가 즐겁게 읽고 있는 베스트셀러가 하나 있습니다. ‘Heaven in so real’ 천국은 너무나 확실하다는 주 토마스 여사의 간증입니다. 한국계 미국 여자인데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서 천당을 무려 17번을 갔다 왔습니다. 한두 번 갔다 와도 기가 막히는데 17번을 천당을 갔다 왔으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 자매님이 천당에 올라간 기록을 ‘Heaven is so real’ 이라는 책에 적었는데, 제가 지금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자매님이 지옥에도 두 번 예수님을 따라 가보았는데 지옥문이 열리고 지옥불이 활활 타서 모든 사람들이 불로써 소금 치듯 하게 아우성을 치고 몸부림을 치는데 갑자기 쫙 포커스가 맞아져서 보이는 것이 어머님이 어머니가 40세에 세상을 뜨셨는데 이 세상에 사실 동안에 그렇게 착하고 사랑 많고 좋은 어머니였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도 아버지도 계모도 19살에 죽은 친구도 10년 전에 죽은 친구도 20세에 죽은 조카도 다 지옥에서 그를 향하여 손을 내밀고 “주남아, 사람 좀 살려줘.” 그 어머니도 “주남아, 나를 살려줘. 너무나 고통스럽고 너무나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으니 날 좀 살려줘.” 그는 그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는데 예수님을 쳐다보니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시고 계시더랍니다. “주님! 뭘 좀 할 수가 없습니까? 우리 어머니 뭐 좀 할 수 없습니까?” 주님께서 “이것만은 할 수가 없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성령으로 난 사람만 천국가고 육으로 난 사람은 쓰레기. 영원한 불에 탈 수 밖에 없다. 너희 친 어머니 친 형제라도 이는 하늘의 법칙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러면 주님 왜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을 내게 보여 주십니까?” “내가 이것을 보여주는 것은 네가 책에 기록해서 온 천하에 공포하라고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 수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의 부모나 형제나 친자식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있다. 천국에 올라와서 가장 가까운 부모나 자식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에서 영원한 몸부림을 치고 불꽃으로 소금 치듯 함을 당하는 것을 생각할 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 오늘날 세상에서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서 너무나 무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밤이나 낮이나 자식들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기도하고 할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너에게 보여주니 이것을 책에 기록하라” 그걸 보고 난 다음 견딜 수 없어 고통 속에 몸부림치니까 주님이 손을 얹어 눈을 이렇게 쓰다듬어 주니까 그 기억이 마음속에 사라졌다고 말했었습니다. 지옥은 확실하게 있습니다. 그 고통은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아유, 목사님, 지옥에 대한 설교는 하지 말아 주세요. 듣지 싫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감옥이 확실히 있습니다. 감옥에 대한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은 그러나 감옥이 있는 것은 사실인 것을 어떻게 합니까? 지옥에 대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지만 확실히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지옥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온 몸으로 지옥문을 막고 섰습니다. 몸을 찢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지옥문을 온 몸으로 막고 이리로 가지 말고 천국으로 가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호소를 보십시오. 지옥이 괴롭지 않으면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육신을 쓰고 오셔서 지옥문을 몸으로 막기 위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며 희생을 당했을까요?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3. 천국은 확실히 있다
셋째, 천국은 확실히 있습니다.
여러분 천국의 내용도 알아야죠. 천국은 낙원이라고 합니다. 낙원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 구약의 성도들이 들어간 음부 상층에 있던 천국 대기실입니다. 원래는 부자와 나사로 중에 부자가 들어가 큰 구렁이 있어 밑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는 대기실이고 위에는 낙원에 들어갈 천국에 들어갈 대기실을 낙원이라고 했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3절에 예수께서 십자가 강도에게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했었습니다. 예수님이 3일 동안 음부에 내려가신 곳도 이곳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로 19절에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옥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닌 구약시대 성도들이 주님 오시기를 이 하데스, 음부의 2층 낙원에서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보혈로 속죄함을 주셨다는 소식이 올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그들은 짐승을 죽여서 피를 흘려 속죄를 받고서 예수님 오시기까지 기다렸는데 예수님이 이 음부, 낙원에 내려가서 저들에게 이제 주님이 모든 일을 다 속죄했다는 것을 선포하고 주님을 앙망하고 기다리던 그들을 데리고 천국 새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그곳은 바로 천당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이 바로 천당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올라가서 살 곳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바로 천당인 것입니다. 이제 음부 상층에 있던 낙원은 예수님이 부활승천 하실 때 천당으로 옮기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8절에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사로잡힌 자는 즉, 낙원에 갇혀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다 데리고서 주님께서 낙원을 천당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유다서 1장 14절에 보면은 “아담의 칠 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주님 강림하시고 수많은 거룩한 자 하늘에 올라가서 있는 성도들과 함께 강림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지상 천년왕국 후에 백보좌 심판 후에 주님이 지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고 그 새 하늘과 새 땅위에 두둥실 새 예루살렘이 떠있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수도와 같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천년왕국을 통해서 살아남은 야곱의 후손들이 주축이 된 유대인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살 것입니다. 그들은 육신의 사람으로 삽니다. 그들은 시집가고 장가가며 계속 번성합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들은 예수를 믿은 구약이나 신약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활한 성도들은 시집도 가지 않고 장가도 가지 않고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천사처럼 주님과 함께 살며 천천세세 다스리며 살게 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2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부활한 성도들은 새 예루살렘에서 왕 노릇 하고 살고 육신의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의 삶은 어떨 것이냐고 사람들이 많이 생각하는데 천국엔 이 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부활의 몸을 얻어서 삽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로 44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여러분 육의 몸이 있지요. 그 속에 육의 몸을 입고 있는 진실한 여러분은 신령한 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신령한 몸이 육의 몸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 육의 몸이 벗어지면 신령한 몸이 노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할 때 이 신령한 몸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섬기는 대로 하나님이 영광을 주시는데, 어떠한 사람은 해와 같고 어떠한 사람은 달과 같고 어떠한 사람은 별과 같고 어떠한 사람은 조그만 별빛같이 그 영광이 다릅니다. 1
고린도전서 15장 40절로 41절에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우리가 여러분 지금은 육신의 장막 집을 쓰고 있으니까 우리 영광이 안보입니다. 영체의 영광이 안보이지만은 주님 나라에 갈 때 육신의 장막 집 벗어 버리고 영체가 드러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섬긴 대로 우리의 영광이 다릅니다. 해같이 빛나는 영광을 가지면서 달과 같은 사람, 별과 같은 사람, 별 중에 적은 별과 같은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2장 2절로 3절에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에는 어떤 곳이 있을까요? 여러분 있을 곳이라고 하니까 그냥 판자촌 같은 있을 곳을 말하는가 싶지만은 여러분 천국에 있을 곳이란 영어로는 맨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맨션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여러분 천국에 대개 세 가지 있을 곳을 말했는데 히브리서에서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모하는 자를 위해 한 성을 예비하겠다. 캐슬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이 있는가 하면 그 다음에는 또 맨션도 있습니다. 또, 맨션이 있는가 하면 보통 있을 곳도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우리가 있을 처소가 달라집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밴 다이크라는 미국의 목사요, 교수요, 시인이 ‘대저택’이라는 글에서 이런 이야기를 썼습니다. 어떤 부자가 천국에 가서 천사의 안내를 받아가며 천국 여기저기를 구경하다가 한곳에 가니 너무나 아름다운 맨션이. 그래서 너무나 근사하고 멋있는 집에 부자가 깜짝 놀라서 “도대체 이 집이 누구 집이요?” 천사는 “그 집은 당신이 거느리고 있던 당신 종의 집이요” 그러자 부자가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가 이런 집을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천사가 대답하되 “천국에는 어떤 실수도 없고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사람들이 올려 보낸 재료로 이 집을 지었습니다.” 한참 더 가다가 보니 무척이나 낡고 허술한 집이 한 채 보였다가 이 집 앞에서 깜짝 놀라며 부자가 “도대체 이 집은 누구 집이요?” “당신 집이오.” 천사가 말했습니다. 부자는 반문했습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내 집이 이렇게 허수룩할 수가 있습니까?” 천사가 다시 대답했습니다. “천국은 어떤 오류도 실수도 착각도 없습니다. 이집은 당신이 보낸 그 재료로 지어진 집입니다.” 이 부자가 너무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꿈이길래 망정이지 진짜였으면 큰일날뻔 당했습니다. 그 꿈을 꾸고 깨어나서 부자는 있는 다 들여서 주님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그 재료가 하늘에 올라갔으니 이 부자가 천당에 갔을 때는 굉장한 맨션이 예비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의 창으로 우리가 잠시 천국을 한번 들여다봅시다. 주님은 성경의 창문을 열고 잠시 천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절로 7절에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우리는 창문을 통해서 천국을 잠시 보았었습니다. 제가 아까 말한 주 토마스 한국계 미국 여인의 책에 보면 ‘Heaven is so real’ 천국은 너무나 확실하다. 이 자매님은 17번을 몸에서 벗어 나와서 그 속사람이 예수님의 손을 잡고 천당에 올라갔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7년동안 체험을 책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는 15분 내지 20분 동안 진동을 하고 방언기도를 하고 온 배속에서 오르는 무시무시한 탄식으로 통곡을 하고 기도하고 몸이 땀에 흠뻑 젖었을 때쯤 되면 예수님이 오셔서 손을 내밀어 “주남아 가자!” 그럼 그 순간에 그의 겉사람이 열리고 속에서 몸이 빠져 나오는데 아주 젊은 청년시절의 모습으로 빠져 나옵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함께 해변가를 걸어서 바위에 잠시 앉아 있다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하늘로 올라가면 어느 장소에 내리면 큰 터널이 있는데 환한 터널을 지나가면 그 다음에는 굉장히 큰 흰 집이 있는데 그 흰 집에 들어가면 천사들이 도와서 천국의 옷으로 갈아입히고 면류관을 씌워 주시고 그리고 난 다음 금 다리를 건너고 나면 그 다음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매님이 17번 천당에 올라가서 본 사실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것과 너무나 흡사하여 꼭 무슨 계시록 부록을 읽는 것과 같은 그러한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그에게 나타날 때 머리가 백발 같고 불꽃같은 눈을 가지고 흰옷을 입고 나타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3절로 15절에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이와 같은 그리스도가 나타나는데 그가 17번 천국에 들어와서 느낀 소감은 지구는 천국의 모형이다. 천국은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이 죄악을 내어 놓고는 다 있는데 너무나 지구보다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지구는 옛날에 주님이 에덴동산 낙원으로 지었다가 그것이 타락으로 오늘 이쯤 되었지만 천국의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2절로 13절에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여러분 역시 우리도 이 하늘이고 땅인데 하늘이 새로워지고 땅이 새로워진 그 천국이 온다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의 위대한 성자 선다 씽은 40일 금시기도를 한 뒤부터 종종 천국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낯선 사람의 인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잘 모르겠는데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는 “저는 머시게라는 환자입니다. 나는 나 환자촌에 있던 사람으로 선생님이 그곳에 오셔서 설교 했을 때 그 말씀을 듣고 구원을 얻었죠. 나는 몇월 몇일 죽어서 이 영화로운 곳에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선다 씽은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 나환자촌에 가서 그 사실을 알아보니 틀림없이 그 사람은 몇날, 몇일에 이 세상을 하직한 사람이었었습니다. 그 나환자가 무덤에 들어있지 않고 천국의 영광 속에 있는 것을 선다 씽이 만났습니다. 또 한번은 그가 영기에 들어가니 한 어머니가 해산을 했는데 그 아기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죽어 버렸습니다. 그는 아기의 어머니가 죽은 아기를 안고 “데오도라야, 왜 나를 버리고 갔느냐”하고 통곡을 하면서 우는 장면을 보았는데,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기의 어머니도 죽었습니다. 아기의 어머니가 천국에 들어오자 훤칠하게 잘생긴 30대의 청년이 다가와서 “어머니 어서 오십시오.”하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아니 당신은 누구요?” 묻자 그 청년은 “어머니 제가 바로 데오도라입니다. 어머니 품을 떠나 올 때 갓난아기였지만 이곳에 이렇게 자라났습니다. 어머니 저 세상은 이 천국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보십시오. 이 세상은 천국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성장한 아들 데오도라의 인도를 받아 천국 구경을 하던 어머니가 너무 기뻐하는 것을 선다 씽이 보았다고 그는 기록해 놓았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한 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 심판이 있지 않습니까?
장로교의 창시자였던 요한 칼빈은 ‘사람은 그 죽는 것을 보아야 그 삶이 어땠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답게 살다가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순교자 스데반 집사의 마지막 죽음을 보십시오. 그가 돌무더기에 들어가서 운명할 때 외쳐 말하기를 “보라 하늘문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는도다.” 죽음의 순간에 하늘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스데반의 영혼을 영접하기 위해서 서 있는 것을 그는 보았다고 간증했습니다.
우리 한국에 유명한 부흥사였던 사랑의 배달부라고 불리던 길 선주 목사님은 임종시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전보가 왔어 내게. 이제 떠나야 돼. 잘 있어.” 그러고 떠났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 선생님은 죽기 직전에 그를 임종하려고 모여 있는 자녀들과 많은 일가친척들 앞에서 벌떡 병상에서 일어나 앉아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영광이로다. 땅이 물러가고 하늘이 내게 다가오는도다. 그리고, 여러분 내일 아침 신문에 무디가 죽었다고 보도 되더라도 믿지 마세요. 무디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보시는대로 이렇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하고서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이 인생의 종착역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 뒤에 아름다운 천국, 형언할 수 없이 즐거운 곳이 우리 위해서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는 삶은 잠깐입니다. 태어나서 죽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이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을 추구하다가 물거품같이 사라지고 죽음 저 건너편에서 영원한 불붙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은 안 태어난 것보다 더 못한 것입니다. 인간은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보다 못합니다. 짐승은 죽어 없어지지만 사람은 영원히 불타기 때문인 것입니다.
<결론>
주님은 천국을 예비하신지 2천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6.25사변 난 이후로 잿더미가 된 이 땅을 50년 만에 이렇게 거대한 도시로 개발, 발전시킨 우리 한국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불과 50년 만에. 그런데, 예수님은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우리를 떠난지 천국을 예비하기 위해서 2천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2천년 동안 얼마나 아름답게 지었겠습니까? 우리가 천국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성을 만드시고 맨션을 지으시고 거할 곳을 만드시고 시내를 만드시고 과일나무를 나게 하시고 아름다운 동산을 꾸미시고 산을 만드시고 들을 만드시고 강을 만드시고 바라들 만드십니다. 온갖 우리가 즐길 아름다운 것을 주님이 다 예비해 놓았습니다. 하나도 없이 주님께서 예비해 놓으시고 없는 것이 없습니다. 천국은 이 지상보다 수 천 수 만 배로 아름다운 것이고 모든 아름다운 것이 다 예비된 곳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하나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다. 사람이 자기 목숨과 무엇과 바꾸겠습니까? 이제 우리를 데리러 오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로마서 13장 11절로 14절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6절로 17절에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과 지옥, 영생과 영멸, 영광과 수치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라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이 놀랍고 아름다운 천국을 예수 믿은 사람은 이미 획득했고 끝까지 순종과 정결한 마음으로 이 구원의 믿음을 지켜야 할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때가 가까웠고 주님 오실 날이 눈앞에 다가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국도 확실하고 지옥도 확실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것도 확실하고 죽는 것도 확실합니다.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천 년 만 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온 몸으로 지옥 가는 문을 막기 위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렸습니다.
천국 가는 길을 그 피로써 카페트를 깔아 놓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미 믿은 사람은 구원을 얻었으니 열심으로 충성하고 구원을 지키게 도와 주시옵시고 믿지 않는 자는 믿고 구언을 받아 영원한 멸망을 피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천국과 지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참으로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뱃속 어린아기에게 "얘야 너는 얼마 있지 아니하여 새로운 세상에 태어난단다. 그것은 지구라고 하는데 해와 달과 별들이 하늘에 있고 산과 바다와 나무와 풀과 가지가지 새와 물고기와 짐승이 있으며 또 아버지가 있고 언니, 오빠, 동생 여러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가정이라는 것이 있단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단다." 이 말을 들은 뱃속의 아기의 반응은 어떠하겠습니까? 첫째는 ‘날 웃기지 마세요. 그런 세상이 어디 있을라구. 나는 여기가 좋아요. 어머니 자궁 속 물침대에 떠있는 삶이 얼마나 좋다구요.’ 둘째는 ‘아니 그게 정말이요? 정말 그런 세계가 있을까요? 설마 참말이 아니겠지요. 나는 할 수 있는 한 이곳에 오래 살겠어요. 당신이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나요?’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셋째 아기의 대답은 ‘아 정말 지구라는 세계가 있군요. 그렇다면 그 곳에 나갈 준비를 해야지요. 알려주어서 고마워요. 그날은 손꼽아 기다리겠어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지구라는 어머니 뱃속에 지금 살고 있습니다. 조만간 이 공간을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야할 곳을 분명히 말씀해 주시고 그 길도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알려주심에 대한 태도가 가지가지 다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무관심 혹은 적대적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회의주의자가 되어 반신반의하며 회개하고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 많은 사람은 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가 무사히 지구를 떠나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부자와 거지 나사로
오늘 첫째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예를 들어 말씀하신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로 31절에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한 곳에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그의 집도 화려하거니와 그 집주위에 기화요초(琪花瑤草:옥으로 만든 꽃과 옥으로 만든 풀) 만발하게 했습니다. 집안에 모든 필요한 것이 다 갖추어져 있고 들어가는 입구도 장엄한 대문을 짓고 화려하게 꾸며 놓았었습니다. 그의 삶은 자색 옷과 가는 베옷을 입고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았습니다. 자색 옷이라는 것은 그 당시에 권력자만이 입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상당히 정부의 권력이 높은 사람이고 가는 베옷은 부자들만이 입는 옷입니다. 그는 돈이 많고 부자여서 아주 가는 베옷을 입고 권력과 부귀와 영화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의 생활이 호화로이 연락했습니다. 그는 집에서도 거대한 파티를 개설하고 많은 친구와 친척들을 모셔서 즐기고 또 밖에 나가서도 영화롭게 그는 환락을 즐기며 쾌락주의로 살았습니다. 육신적인 쾌락을 가지고 사는 것이 그의 삶의 현실이요, 목표였습니다. 현세주의자적이고 그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 대문에 거지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는 가정도 다 잃어버리고 있을 집도 없고 의지할 곳이 없어서 이 부자집 대문에 쭈그리고 앉아 거적데기를 펴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병이 몹시 들어서 얼마 세상에 살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구걸하여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라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부자집 하인들도 이 거지를 발길로 차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자집에 있는 개들이 친구가 되어서 와서 같이 잠을 자주고 그 앓는 배를 핥아 주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비록 인간에게 멸시와 천대를 당할지라도 그의 마음 속에 모세의 가르침과 선지자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모세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고 찬양하는 그러한 거지였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자 이 거지는 죽었어요. 병들어서 대문간의 거적데기 위에 누워 있는 그가 오래 살수 있겠습니까? 그가 죽으매 하인들을 시켜서 거적데기에 둘둘 말아 공동묘지에 던져 버렸었습니다. 그의 몸은 공동묘지에 던져 버렸지만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공동묘지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 몸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서 그 나사로를 받들어서 낙원에 들어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서 모든 영화를 누리게 했다고 말했었습니다. 겉사람은 부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다고 겉사람이 무너져도 속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품, 낙원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시편 116편 15절에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라고 해서 영원히 사나요? 세월이 흘러가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와서 그 부자도 죽었습니다. 화려한 장례식에 만장(輓章: 죽은 사람을 위해 적은 글을 담은 긴 폭의 천)이 천 길을 덮고 그의 상여는 꽃으로 꾸몄습니다. 수많은 조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집 안팎에 꽉 들어찼고 묘지로 가는 행렬도 거창스럽고 장엄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장엄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자는 죽자마자 음부에 떨어졌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 음부에서 불꽃 가운데서 번뇌하게 되었습니다. 불꽃이 그를 태워서 그는 불꽃에 타나 없어지지 아니하는 그 끊임없는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번뇌하고 있다가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때는 음부는 2층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큰 구렁이 있어서 위층은 낙원이라고 아래층은 음부라고 말했습니다. 윗층 낙원의 아브라함의 품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평소에 나사로를 짐승보다 못하게 여기고 인간취급을 안했는데 너무나 놀라우니 이 나사로가 영화로운 의복을 입고 아브라함의 품에서 연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고함을 쳤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보소서. 나는 음부에 떨어져서 이렇게 불꽃 가운데 번뇌하니 견딜 수가 없으니 나사로를 보내어서 한 방울 냉수로 내 혀를 적셔서 서늘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럴 때 아브라함은 말했습니다. “야, 이 사람아! 너는 세상에서 부귀, 영화, 공명을 다 누리고 육신의 쾌락을 도모하며 살면서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무시하고 살았지 않았느냐? 그러나, 이는 비록 거지지만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면서도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경배했다. 너는 지금 지옥의 아래층에 떨어지고 이는 낙원에 들어와서 있느니라. 너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있어서 그곳에서 건너 올수도 없고 우리도 건너갈 수가 없으니 너의 기도는 응답할 수 없다.” “그러면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가 간청합니다. 저 세상에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지금이라도 그 형제들이 깨우쳐서 내가 고민하는 이곳에 들어오지 않도록 해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면 그 말을 믿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세상에는 모세의 글과 선지자의 글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은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서 전파해도 믿지 않으리라.” 그의 마지막 호소가 거절당하고 말은 것입니다. 일단 사람이 음부에 들어가면 그의 모든 희망은 두절되는 것입니다. 그의 간구도 그의 소원도 다 거절되고 마는 것입니다.
최근 미얀마 즉, 옛날 버마에 한 독실한 불교 승려가 황열병과 말라리아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랬다가 3일만에 화장하기 직전 살아나서 그동안 그가 바라본 천국과 지옥을 강하게 간증하며 전도하다가 지금 잡혀서 감옥에 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빠울로인데 그는 1958년에 델타에서 태어났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13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고기잡이 배에 올라타서 고기잡이를 하고 생계를 이어갔었습니다. 17살 때 그 부모님의 간절한 청에 의해서 사원에 들어가서 19살 때 정식 승려가 되었는데 그때 받은 이름이 아신트라야입니다. 가장 존경받는 승려가 시안다우였습니다. 그런데, 빠울로 승려가 사원에 들어간지 6년째 되던 때에 황열병과 말라리아 병에 걸려 죽어서 3일이 되자 부패하여 냄새가 나고 관에는 송장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화장하려고 불에 집어넣기 직전에 이 사람이 관에서 살아 일어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두 놀라서 주변에 있는 성도들이 다 도망을 쳤습니다. 그는 죽었을 동안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 사실을 간증하여 전도하다가 붙잡혀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는데 그는 죽은 뒤 눈앞에 강한 폭풍이 불어오더니 모든 나무가 다 쓰러진 뒤에 강 건너편을 바라보니 무시무시한 지옥불이 활활 타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비규환의 부르짖음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옥을 가만히 가까이 들어가 보면서 지옥을 지키고 있는 지옥사자를 보고 당신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까 “나는 지옥의 왕, 파괴자, 사탄이다. 지옥을 한번 들여다보라”고 열어주기에 그 지옥을 들어다 보니 그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던 시안다우 승려가 얼마 전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그 승려가 지옥에 와있어요. 그 훌륭한 분이 왜 이 끔찍한 지옥불이 왔는지 물으니까 그는 좋은 선생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자기 죄 때문에 지옥에 왔다고 했습니다. 또 한곳에 보니까 그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이며 혁명가인 아웅산이 지옥에서 불속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 죄사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곳에 와있다”고 지옥의 사자가 말했습니다.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을 보다가 갈래길이 나왔는데 한쪽은 지옥으로 가는 길인데 크고 넓은 길이고 다른 한쪽은 좁고 험한 길인데 빛이 환하게 비취더랍니다. 그쪽으로 가는데 베드로가 나와서 “더 이상 갈 수 없다. 네가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지상명령을 다 행한 후에 이곳에 오게 되면 이 길을 걸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지금까지 본 것을 세상에 나가서 전하라.” 이 말씀을 듣고 화장터에 들어가다가 깨어나서 그는 순식간에 불교 승려에서 열렬한 크리스챤이 되고 예수 믿어야 천당하고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외치다가 감옥에 지금 들어가서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요사이 말세가 오니까 가끔가다가 이런 놀라운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지옥은 확실히 있다.
둘째로, 오늘 알고 싶은 것은 지옥은 확실히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지옥이 있을까? 지옥같은 소리하네.”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있지만 지옥은 확실히 있어요. 성경에는 지옥을 두 가지 분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음부’라고 말합니다. 음부는 헬라어로 ‘하데스’인데 하데스는 미결수의 감옥입니다. 지금은 죽는 사람이 전부 다 하데스 즉, 미결수 감옥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제 장차 천년왕국이 끝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백보좌(白寶座)심판에서 미결수를 다 불러내어서 완전히 심판을 하시고 난 다음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부자가 들어가 있는 곳도 미결수 옥인 하데스인 것입니다. 하데스에 들어가 있어도 그렇게 괴롭습니다. 여러분 하데스의 2층은 낙원이었습니다. 그 낙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서 그 낙원 속에 사흘 동안 들어가서 구약시대 성도들인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성도들을 다 데리시고 주님은 이 2층에 있는 낙원을 새 예루살렘 천당으로 옮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음부 속에는 모두 최후의 심판을 받을 미결수, 불신자들이 그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마지막 가는 것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입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은 게헨나 라고 말합니다. 쓰레기 더미를 태우는 곳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우주의 쓰레기들을 영원히 태우는 것입니다. 이 음부에 있는 사람들도 천년왕국 이후에 주님께서 마지막 최후의 심판을 하실 때 백보좌 앞에 나가서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심판받고 난 다음에 음부와 함께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둘째 사망이란 무섭습니다.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세세토록 밤과 낮없이 고통을 당한다.
14절, 15절에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 행음자들과 술객들 우상숭배자들,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지우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지옥의 고통을 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까?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지금 미결수 감방인 음부에 있는 자들도 어마어마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희망이 사라진 곳입니다.
마태복음 22장 13절에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여러분 사람이 어떤 때 이를 갑니까?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우면 이를 부득부득 갈잖아요. 음부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고통을 당하는 곳입니다. 여러분 희망이 있으면 고난을 참을 수 있지만 지옥은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마태복음 25장 46절에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영원한 벌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갈림길인 것입니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편에는 지옥문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이곳으로 들어가는 자여 모든 희망을 버릴찌어다’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리 곤고를 당해도 희망만 있으면 견뎌낼 수 있어요. 희망이 사라지면 여러분 하루가 천년같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바로 지옥은 그런 곳입니다.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영국의 토마스 스코트는 임종의 순간에 “나의 운명은 너무나 비참하다. 전능한 창조주의 심판 앞에 서야 하는 이 두려움을 어이할꼬” 하며 탄식했습니다. 무신론자였음에도 죽을 때 심판을 두려워했습니다.
프랑스의 계몽학자이며 무신론자였던 볼테르는 그가 말하기를 100년 이내에 지상에서 기독교를 자기의 문학 펜으로 없애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 그의 시중을 들던 주치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 나는 내 앞에 다가오고 있는 저 세상이 무섭다. 저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작은 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어두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는 몸서리쳤습니다.
불신자의 미래는 처참하며 불신자 네프치리오도 임종시에 “지옥의 영원한 두려움과 고통 속에 살기 보다는 오히려 백 만년 동안 뜨거운 난로 위에 누워 몸을 지지며 태우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부정과 부도덕을 택했는데, 이제는 그것들이 나를 끝도 없고 소망도 없는 지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그러고 탄식하면서 죽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대적하고 신이 없다고 하던 사람들도 죽음의 그 자리에 와서는 절망 속에 몸부림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옥에는 죄책이 끓어오르는 곳입니다.
마가복음 9장 48절로 49절에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 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구더기는 죄책을 말합니다. 한평생 지은 죄가 하나도 없이 다 살아나서 끊임없이 그를 국문하는 것입니다. 죄책이 얼마나 괴롭습니까? 그러므로, 그는 그 죄책으로 말미암아 죄책이 구더기처럼 꿈틀거리면서 그를 먹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고통 가운데 영원히 삽니다. 그리고, 불도 꺼지지 아니한다. 여러분 석면을 불에 넣으면 석면은 없어지지 않고 온 석면 속에 불이 들어가서 활활 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영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온 영혼 속에 불이 타들어가서 온 영혼이 불덩어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영도 마음도 몸도 모든 것이 불꽃 속에서 무지무지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감각이 살아 있습니다. 기억도 살아 있습니다. 밤낮으로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괴로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보시고 “유다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불꽃이 그렇게 뜨거우니까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 옛날에 시골에서는 가을에 미꾸라지를 잡아서 집에 와서 추어탕을 끓여 먹습니다. 미꾸라지가 살이 쪄서 누렇습니다. 그것을 바구니에다 물로써 싹 씻고 난 다음에는 호박 잎사귀를 가지고서 확 문지릅니다. 호박잎사귀가 꺼칠꺼칠하니까 비린내가 없어지라고 호박 잎사귀로 문지르고 난 다음에 소금을 탁 쳐버립니다. 그러면 미꾸라지가 호박 잎사귀에 피부가 문질러지는데 소금을 치니까 막 뛰는데 바구니가 막 들썩들썩 하는데도 미꾸라지가 뜁니다. 여러분 지옥은 그런 곳입니다. 사람들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얼마나 뜨겁든지 뜨겁고 고통스러워서 몸부림치며 활짝활짝 뛰고 뒹굴고 부르짖고 외치는 곳이 지옥입니다. 지옥을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8절로 9절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 제가 즐겁게 읽고 있는 베스트셀러가 하나 있습니다. ‘Heaven in so real’ 천국은 너무나 확실하다는 주 토마스 여사의 간증입니다. 한국계 미국 여자인데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서 천당을 무려 17번을 갔다 왔습니다. 한두 번 갔다 와도 기가 막히는데 17번을 천당을 갔다 왔으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 자매님이 천당에 올라간 기록을 ‘Heaven is so real’ 이라는 책에 적었는데, 제가 지금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자매님이 지옥에도 두 번 예수님을 따라 가보았는데 지옥문이 열리고 지옥불이 활활 타서 모든 사람들이 불로써 소금 치듯 하게 아우성을 치고 몸부림을 치는데 갑자기 쫙 포커스가 맞아져서 보이는 것이 어머님이 어머니가 40세에 세상을 뜨셨는데 이 세상에 사실 동안에 그렇게 착하고 사랑 많고 좋은 어머니였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도 아버지도 계모도 19살에 죽은 친구도 10년 전에 죽은 친구도 20세에 죽은 조카도 다 지옥에서 그를 향하여 손을 내밀고 “주남아, 사람 좀 살려줘.” 그 어머니도 “주남아, 나를 살려줘. 너무나 고통스럽고 너무나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으니 날 좀 살려줘.” 그는 그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는데 예수님을 쳐다보니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시고 계시더랍니다. “주님! 뭘 좀 할 수가 없습니까? 우리 어머니 뭐 좀 할 수 없습니까?” 주님께서 “이것만은 할 수가 없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성령으로 난 사람만 천국가고 육으로 난 사람은 쓰레기. 영원한 불에 탈 수 밖에 없다. 너희 친 어머니 친 형제라도 이는 하늘의 법칙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러면 주님 왜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을 내게 보여 주십니까?” “내가 이것을 보여주는 것은 네가 책에 기록해서 온 천하에 공포하라고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 수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의 부모나 형제나 친자식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있다. 천국에 올라와서 가장 가까운 부모나 자식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에서 영원한 몸부림을 치고 불꽃으로 소금 치듯 함을 당하는 것을 생각할 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 오늘날 세상에서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서 너무나 무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밤이나 낮이나 자식들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기도하고 할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너에게 보여주니 이것을 책에 기록하라” 그걸 보고 난 다음 견딜 수 없어 고통 속에 몸부림치니까 주님이 손을 얹어 눈을 이렇게 쓰다듬어 주니까 그 기억이 마음속에 사라졌다고 말했었습니다. 지옥은 확실하게 있습니다. 그 고통은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아유, 목사님, 지옥에 대한 설교는 하지 말아 주세요. 듣지 싫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감옥이 확실히 있습니다. 감옥에 대한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은 그러나 감옥이 있는 것은 사실인 것을 어떻게 합니까? 지옥에 대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지만 확실히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지옥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온 몸으로 지옥문을 막고 섰습니다. 몸을 찢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지옥문을 온 몸으로 막고 이리로 가지 말고 천국으로 가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호소를 보십시오. 지옥이 괴롭지 않으면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육신을 쓰고 오셔서 지옥문을 몸으로 막기 위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리며 희생을 당했을까요?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3. 천국은 확실히 있다
셋째, 천국은 확실히 있습니다.
여러분 천국의 내용도 알아야죠. 천국은 낙원이라고 합니다. 낙원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 구약의 성도들이 들어간 음부 상층에 있던 천국 대기실입니다. 원래는 부자와 나사로 중에 부자가 들어가 큰 구렁이 있어 밑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는 대기실이고 위에는 낙원에 들어갈 천국에 들어갈 대기실을 낙원이라고 했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3절에 예수께서 십자가 강도에게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했었습니다. 예수님이 3일 동안 음부에 내려가신 곳도 이곳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로 19절에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옥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닌 구약시대 성도들이 주님 오시기를 이 하데스, 음부의 2층 낙원에서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보혈로 속죄함을 주셨다는 소식이 올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그들은 짐승을 죽여서 피를 흘려 속죄를 받고서 예수님 오시기까지 기다렸는데 예수님이 이 음부, 낙원에 내려가서 저들에게 이제 주님이 모든 일을 다 속죄했다는 것을 선포하고 주님을 앙망하고 기다리던 그들을 데리고 천국 새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그곳은 바로 천당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이 바로 천당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올라가서 살 곳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바로 천당인 것입니다. 이제 음부 상층에 있던 낙원은 예수님이 부활승천 하실 때 천당으로 옮기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8절에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사로잡힌 자는 즉, 낙원에 갇혀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다 데리고서 주님께서 낙원을 천당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유다서 1장 14절에 보면은 “아담의 칠 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주님 강림하시고 수많은 거룩한 자 하늘에 올라가서 있는 성도들과 함께 강림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지상 천년왕국 후에 백보좌 심판 후에 주님이 지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고 그 새 하늘과 새 땅위에 두둥실 새 예루살렘이 떠있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수도와 같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천년왕국을 통해서 살아남은 야곱의 후손들이 주축이 된 유대인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살 것입니다. 그들은 육신의 사람으로 삽니다. 그들은 시집가고 장가가며 계속 번성합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들은 예수를 믿은 구약이나 신약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활한 성도들은 시집도 가지 않고 장가도 가지 않고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천사처럼 주님과 함께 살며 천천세세 다스리며 살게 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2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부활한 성도들은 새 예루살렘에서 왕 노릇 하고 살고 육신의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의 삶은 어떨 것이냐고 사람들이 많이 생각하는데 천국엔 이 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부활의 몸을 얻어서 삽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로 44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여러분 육의 몸이 있지요. 그 속에 육의 몸을 입고 있는 진실한 여러분은 신령한 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신령한 몸이 육의 몸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 육의 몸이 벗어지면 신령한 몸이 노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할 때 이 신령한 몸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섬기는 대로 하나님이 영광을 주시는데, 어떠한 사람은 해와 같고 어떠한 사람은 달과 같고 어떠한 사람은 별과 같고 어떠한 사람은 조그만 별빛같이 그 영광이 다릅니다. 1
고린도전서 15장 40절로 41절에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우리가 여러분 지금은 육신의 장막 집을 쓰고 있으니까 우리 영광이 안보입니다. 영체의 영광이 안보이지만은 주님 나라에 갈 때 육신의 장막 집 벗어 버리고 영체가 드러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섬긴 대로 우리의 영광이 다릅니다. 해같이 빛나는 영광을 가지면서 달과 같은 사람, 별과 같은 사람, 별 중에 적은 별과 같은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2장 2절로 3절에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에는 어떤 곳이 있을까요? 여러분 있을 곳이라고 하니까 그냥 판자촌 같은 있을 곳을 말하는가 싶지만은 여러분 천국에 있을 곳이란 영어로는 맨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맨션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여러분 천국에 대개 세 가지 있을 곳을 말했는데 히브리서에서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모하는 자를 위해 한 성을 예비하겠다. 캐슬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이 있는가 하면 그 다음에는 또 맨션도 있습니다. 또, 맨션이 있는가 하면 보통 있을 곳도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우리가 있을 처소가 달라집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밴 다이크라는 미국의 목사요, 교수요, 시인이 ‘대저택’이라는 글에서 이런 이야기를 썼습니다. 어떤 부자가 천국에 가서 천사의 안내를 받아가며 천국 여기저기를 구경하다가 한곳에 가니 너무나 아름다운 맨션이. 그래서 너무나 근사하고 멋있는 집에 부자가 깜짝 놀라서 “도대체 이 집이 누구 집이요?” 천사는 “그 집은 당신이 거느리고 있던 당신 종의 집이요” 그러자 부자가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가 이런 집을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천사가 대답하되 “천국에는 어떤 실수도 없고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사람들이 올려 보낸 재료로 이 집을 지었습니다.” 한참 더 가다가 보니 무척이나 낡고 허술한 집이 한 채 보였다가 이 집 앞에서 깜짝 놀라며 부자가 “도대체 이 집은 누구 집이요?” “당신 집이오.” 천사가 말했습니다. 부자는 반문했습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내 집이 이렇게 허수룩할 수가 있습니까?” 천사가 다시 대답했습니다. “천국은 어떤 오류도 실수도 착각도 없습니다. 이집은 당신이 보낸 그 재료로 지어진 집입니다.” 이 부자가 너무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꿈이길래 망정이지 진짜였으면 큰일날뻔 당했습니다. 그 꿈을 꾸고 깨어나서 부자는 있는 다 들여서 주님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그 재료가 하늘에 올라갔으니 이 부자가 천당에 갔을 때는 굉장한 맨션이 예비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의 창으로 우리가 잠시 천국을 한번 들여다봅시다. 주님은 성경의 창문을 열고 잠시 천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절로 7절에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우리는 창문을 통해서 천국을 잠시 보았었습니다. 제가 아까 말한 주 토마스 한국계 미국 여인의 책에 보면 ‘Heaven is so real’ 천국은 너무나 확실하다. 이 자매님은 17번을 몸에서 벗어 나와서 그 속사람이 예수님의 손을 잡고 천당에 올라갔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7년동안 체험을 책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는 15분 내지 20분 동안 진동을 하고 방언기도를 하고 온 배속에서 오르는 무시무시한 탄식으로 통곡을 하고 기도하고 몸이 땀에 흠뻑 젖었을 때쯤 되면 예수님이 오셔서 손을 내밀어 “주남아 가자!” 그럼 그 순간에 그의 겉사람이 열리고 속에서 몸이 빠져 나오는데 아주 젊은 청년시절의 모습으로 빠져 나옵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함께 해변가를 걸어서 바위에 잠시 앉아 있다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하늘로 올라가면 어느 장소에 내리면 큰 터널이 있는데 환한 터널을 지나가면 그 다음에는 굉장히 큰 흰 집이 있는데 그 흰 집에 들어가면 천사들이 도와서 천국의 옷으로 갈아입히고 면류관을 씌워 주시고 그리고 난 다음 금 다리를 건너고 나면 그 다음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매님이 17번 천당에 올라가서 본 사실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것과 너무나 흡사하여 꼭 무슨 계시록 부록을 읽는 것과 같은 그러한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그에게 나타날 때 머리가 백발 같고 불꽃같은 눈을 가지고 흰옷을 입고 나타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3절로 15절에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이와 같은 그리스도가 나타나는데 그가 17번 천국에 들어와서 느낀 소감은 지구는 천국의 모형이다. 천국은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이 죄악을 내어 놓고는 다 있는데 너무나 지구보다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지구는 옛날에 주님이 에덴동산 낙원으로 지었다가 그것이 타락으로 오늘 이쯤 되었지만 천국의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2절로 13절에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여러분 역시 우리도 이 하늘이고 땅인데 하늘이 새로워지고 땅이 새로워진 그 천국이 온다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의 위대한 성자 선다 씽은 40일 금시기도를 한 뒤부터 종종 천국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낯선 사람의 인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잘 모르겠는데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는 “저는 머시게라는 환자입니다. 나는 나 환자촌에 있던 사람으로 선생님이 그곳에 오셔서 설교 했을 때 그 말씀을 듣고 구원을 얻었죠. 나는 몇월 몇일 죽어서 이 영화로운 곳에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선다 씽은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 나환자촌에 가서 그 사실을 알아보니 틀림없이 그 사람은 몇날, 몇일에 이 세상을 하직한 사람이었었습니다. 그 나환자가 무덤에 들어있지 않고 천국의 영광 속에 있는 것을 선다 씽이 만났습니다. 또 한번은 그가 영기에 들어가니 한 어머니가 해산을 했는데 그 아기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죽어 버렸습니다. 그는 아기의 어머니가 죽은 아기를 안고 “데오도라야, 왜 나를 버리고 갔느냐”하고 통곡을 하면서 우는 장면을 보았는데,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기의 어머니도 죽었습니다. 아기의 어머니가 천국에 들어오자 훤칠하게 잘생긴 30대의 청년이 다가와서 “어머니 어서 오십시오.”하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아니 당신은 누구요?” 묻자 그 청년은 “어머니 제가 바로 데오도라입니다. 어머니 품을 떠나 올 때 갓난아기였지만 이곳에 이렇게 자라났습니다. 어머니 저 세상은 이 천국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보십시오. 이 세상은 천국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성장한 아들 데오도라의 인도를 받아 천국 구경을 하던 어머니가 너무 기뻐하는 것을 선다 씽이 보았다고 그는 기록해 놓았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한 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 심판이 있지 않습니까?
장로교의 창시자였던 요한 칼빈은 ‘사람은 그 죽는 것을 보아야 그 삶이 어땠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답게 살다가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순교자 스데반 집사의 마지막 죽음을 보십시오. 그가 돌무더기에 들어가서 운명할 때 외쳐 말하기를 “보라 하늘문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는도다.” 죽음의 순간에 하늘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스데반의 영혼을 영접하기 위해서 서 있는 것을 그는 보았다고 간증했습니다.
우리 한국에 유명한 부흥사였던 사랑의 배달부라고 불리던 길 선주 목사님은 임종시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전보가 왔어 내게. 이제 떠나야 돼. 잘 있어.” 그러고 떠났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 선생님은 죽기 직전에 그를 임종하려고 모여 있는 자녀들과 많은 일가친척들 앞에서 벌떡 병상에서 일어나 앉아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영광이로다. 땅이 물러가고 하늘이 내게 다가오는도다. 그리고, 여러분 내일 아침 신문에 무디가 죽었다고 보도 되더라도 믿지 마세요. 무디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보시는대로 이렇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하고서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이 인생의 종착역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 뒤에 아름다운 천국, 형언할 수 없이 즐거운 곳이 우리 위해서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는 삶은 잠깐입니다. 태어나서 죽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이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을 추구하다가 물거품같이 사라지고 죽음 저 건너편에서 영원한 불붙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은 안 태어난 것보다 더 못한 것입니다. 인간은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보다 못합니다. 짐승은 죽어 없어지지만 사람은 영원히 불타기 때문인 것입니다.
<결론>
주님은 천국을 예비하신지 2천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6.25사변 난 이후로 잿더미가 된 이 땅을 50년 만에 이렇게 거대한 도시로 개발, 발전시킨 우리 한국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불과 50년 만에. 그런데, 예수님은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우리를 떠난지 천국을 예비하기 위해서 2천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2천년 동안 얼마나 아름답게 지었겠습니까? 우리가 천국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성을 만드시고 맨션을 지으시고 거할 곳을 만드시고 시내를 만드시고 과일나무를 나게 하시고 아름다운 동산을 꾸미시고 산을 만드시고 들을 만드시고 강을 만드시고 바라들 만드십니다. 온갖 우리가 즐길 아름다운 것을 주님이 다 예비해 놓았습니다. 하나도 없이 주님께서 예비해 놓으시고 없는 것이 없습니다. 천국은 이 지상보다 수 천 수 만 배로 아름다운 것이고 모든 아름다운 것이 다 예비된 곳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하나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다. 사람이 자기 목숨과 무엇과 바꾸겠습니까? 이제 우리를 데리러 오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로마서 13장 11절로 14절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6절로 17절에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과 지옥, 영생과 영멸, 영광과 수치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라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이 놀랍고 아름다운 천국을 예수 믿은 사람은 이미 획득했고 끝까지 순종과 정결한 마음으로 이 구원의 믿음을 지켜야 할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때가 가까웠고 주님 오실 날이 눈앞에 다가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국도 확실하고 지옥도 확실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것도 확실하고 죽는 것도 확실합니다.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천 년 만 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온 몸으로 지옥 가는 문을 막기 위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렸습니다.
천국 가는 길을 그 피로써 카페트를 깔아 놓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미 믿은 사람은 구원을 얻었으니 열심으로 충성하고 구원을 지키게 도와 주시옵시고 믿지 않는 자는 믿고 구언을 받아 영원한 멸망을 피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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