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착한 기업, 나쁜 기업
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어린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심성을 지닌 것 같지는 않다. 살아가면서 부대끼고 욕심을 부리다보니 착한 심성이 균형감각을 잃고 나쁜 길로 빠지는 게 아닌가 싶다. 최근 불거진 '불량 만두'파동을 보면서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과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을 새삼스레 떠올려 본다.
어느 기업이든 나쁜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벌겠다고 창업하지는 안았을 것이다. 사회환경이 양심경영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불량제품을 만들거나, 권력에 줄을 대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비자금을 조성하여 차떼기로 바치게 되는 것 같다.
아무리 기업의 속성이 적게 투자하여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이지만 먹는 것을 가지고 농간을 부리면 지탄받아 마땅하다. "안심하고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다. 수십년전부터 수은콩나물과 석회두부와 톱밥 고춧가루가 밥상에 올랐다. 커피가 귀하던 시절엔 다방에서 꽁초커피를 마셔야 했다.
수입농수산물이 늘어나면서 납이 들어간 수입 꽃게, 볼트를 넣은 수입 참조기, 쇳가루를 넣은 고춧가루, 공업용 소금으로 만든 젓갈, 농약 덩어리 과일을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됐으니 유기농 농산물 값이 치솟고 웰빙 푸드 바람이 이는 것도 당연하다.
불량식품 파동이 일 때마다 사후약방문처럼 먹거리로 못된 짓 하면 퇴출시키고, 식품위생법을 개정해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한다고 만두찜통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다가도 슬그머니 식어버린다. 불량식품 리콜제를 실시하자 느니, 먹을거리 범죄자의 신상공개를 추진한다느니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나쁜 기업이나 악덕상인이 착한 심성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미국의 거대한 종교투자단체인 ICCR의 부이사장은 "앞으로 착한 기업에만 투자하고 나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윤을 많이 내는 기업에 투자하고 부실한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투자논리와 사뭇 다르기 때문에 신선하다.
ICCR 부이사장이 강조한 착한 기업과 나쁜 기업의 선별기준은 '기업의 책임실현'이다. 사회에 책임을 지는 착한 기업은 이윤도 많이 내지만, 인류와 환경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나쁜 기업은 몰래 오염을 내뿜는 회사처럼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익은 철저하게 챙기면서 생활비에 못 미치는 임금을 준다면 근로자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범죄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업이 사회에 대한 책임은커녕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폐기된 무로 만두소를 만들거나, 하천으로 몰래 폐수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불량식품과 환경오염은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반사회적 범죄행위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윤리와 기업인의 도덕성에서 나온다. 기업도 하나의 인격체와 같다. 누구나 어렸을 적엔 부모와 선생님으로부터 착하게 살아라, 나쁜 짓을 하지 말아라, 남에게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해는 끼치지 말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이다. 거창한 논리 보다 그 교훈을 기업경영에 도입하면 그것이 기업윤리고 도덕성이다.
경제가 선진화, 고도화될수록 기업윤리와 도덕성은 기업가치의 평가기준이 된다. 투자자나 소비자로부터 도덕적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착한 기업이다. 도덕으로 무장된 착한 기업은 당연히 경쟁력이 높을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행복감을 준다.
나쁜 기업은 부정부패의 고리에 얽매여 사회로부터 지탄받거나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해 결국은 도태되고 마는 것이 시장논리다. 대기업 CEO와 만두업체 사장의 투신 자살은 도덕성이 생명보다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착한 기업 행세를 하는 유사기업도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고객만족 시대라고 하니 일회성 이벤트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경우도 있다. 환경이 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니 이미지 향상 차원의 마케팅이나 적당히 그린경영 흉내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도덕적 신뢰를 받지 못하는 기업의 얄팍한 상혼은 들통나기 마련이다. 웰빙 바람을 타고 상품마다 웰빙을 붙인다고 소비자가 속을 리 만무하다.
얼마 전 어떤 TV프로에서 산골마을 80대 노인의 건강한 삶을 소개하며 "소망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니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죽은 뒤 부지런하고 착하게 살다가 갔다는 소리를 들어야지, 그 사람 잘 죽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쓰겠느냐"고 되묻는다. 그런 자세로 양심경영을 하면 기업의 수명도 길어지고 착한 기업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CEO Report' 6월 20일
착한 기업, 나쁜 기업
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어린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심성을 지닌 것 같지는 않다. 살아가면서 부대끼고 욕심을 부리다보니 착한 심성이 균형감각을 잃고 나쁜 길로 빠지는 게 아닌가 싶다. 최근 불거진 '불량 만두'파동을 보면서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과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을 새삼스레 떠올려 본다.
어느 기업이든 나쁜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벌겠다고 창업하지는 안았을 것이다. 사회환경이 양심경영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불량제품을 만들거나, 권력에 줄을 대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비자금을 조성하여 차떼기로 바치게 되는 것 같다.
아무리 기업의 속성이 적게 투자하여 이윤을 많이 남기는 것이지만 먹는 것을 가지고 농간을 부리면 지탄받아 마땅하다. "안심하고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다. 수십년전부터 수은콩나물과 석회두부와 톱밥 고춧가루가 밥상에 올랐다. 커피가 귀하던 시절엔 다방에서 꽁초커피를 마셔야 했다.
수입농수산물이 늘어나면서 납이 들어간 수입 꽃게, 볼트를 넣은 수입 참조기, 쇳가루를 넣은 고춧가루, 공업용 소금으로 만든 젓갈, 농약 덩어리 과일을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됐으니 유기농 농산물 값이 치솟고 웰빙 푸드 바람이 이는 것도 당연하다.
불량식품 파동이 일 때마다 사후약방문처럼 먹거리로 못된 짓 하면 퇴출시키고, 식품위생법을 개정해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한다고 만두찜통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다가도 슬그머니 식어버린다. 불량식품 리콜제를 실시하자 느니, 먹을거리 범죄자의 신상공개를 추진한다느니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나쁜 기업이나 악덕상인이 착한 심성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미국의 거대한 종교투자단체인 ICCR의 부이사장은 "앞으로 착한 기업에만 투자하고 나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윤을 많이 내는 기업에 투자하고 부실한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투자논리와 사뭇 다르기 때문에 신선하다.
ICCR 부이사장이 강조한 착한 기업과 나쁜 기업의 선별기준은 '기업의 책임실현'이다. 사회에 책임을 지는 착한 기업은 이윤도 많이 내지만, 인류와 환경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나쁜 기업은 몰래 오염을 내뿜는 회사처럼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익은 철저하게 챙기면서 생활비에 못 미치는 임금을 준다면 근로자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범죄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업이 사회에 대한 책임은커녕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폐기된 무로 만두소를 만들거나, 하천으로 몰래 폐수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불량식품과 환경오염은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반사회적 범죄행위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윤리와 기업인의 도덕성에서 나온다. 기업도 하나의 인격체와 같다. 누구나 어렸을 적엔 부모와 선생님으로부터 착하게 살아라, 나쁜 짓을 하지 말아라, 남에게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해는 끼치지 말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이다. 거창한 논리 보다 그 교훈을 기업경영에 도입하면 그것이 기업윤리고 도덕성이다.
경제가 선진화, 고도화될수록 기업윤리와 도덕성은 기업가치의 평가기준이 된다. 투자자나 소비자로부터 도덕적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착한 기업이다. 도덕으로 무장된 착한 기업은 당연히 경쟁력이 높을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행복감을 준다.
나쁜 기업은 부정부패의 고리에 얽매여 사회로부터 지탄받거나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해 결국은 도태되고 마는 것이 시장논리다. 대기업 CEO와 만두업체 사장의 투신 자살은 도덕성이 생명보다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착한 기업 행세를 하는 유사기업도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고객만족 시대라고 하니 일회성 이벤트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경우도 있다. 환경이 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니 이미지 향상 차원의 마케팅이나 적당히 그린경영 흉내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도덕적 신뢰를 받지 못하는 기업의 얄팍한 상혼은 들통나기 마련이다. 웰빙 바람을 타고 상품마다 웰빙을 붙인다고 소비자가 속을 리 만무하다.
얼마 전 어떤 TV프로에서 산골마을 80대 노인의 건강한 삶을 소개하며 "소망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니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죽은 뒤 부지런하고 착하게 살다가 갔다는 소리를 들어야지, 그 사람 잘 죽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쓰겠느냐"고 되묻는다. 그런 자세로 양심경영을 하면 기업의 수명도 길어지고 착한 기업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CEO Report' 6월 20일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