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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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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웹을 풍요롭게 하는 아날로그적 감성
이강룡 / 웹칼럼니스트 http://readme.or.kr
친구들끼리 해산물 음식점에서 얘기하다가, "엉망으로 식탁을 어지럽히지 않고 바닷가재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됐는데, 어떤 사람이 정말 그러고 있었다. 나는 그를 두 시간 동안이나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는 식탁을 전혀 어지럽히지 않고서도 바닷가재를 완전히 먹어치웠다. 그는 충분한 시간을 사용했고,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기술이 아니라 시간과 인내심이었다. ( 스튜어트 브랜드, <느림의 지혜> 중 )
<딴지일보>의 기사가 종이신문에 실렸던 이후, 온라인 기사가 종종 종이 매체와 방송 매체에 다시 실리는 사례들이 있다. <한국방송>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미디어몹> 콘텐츠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 내용이 활자화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일보>는 여론면의 ‘@블로그’ 라는 꼭지에서 네티즌이 블로그에 남긴 글을 소개하고 있으며, 컴퓨터/인터넷 정보 잡지에는 네티즌의 목소리를 담는 별도의 인터넷 지면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면 제약으로 인해 글은 편집 과정을 거쳐 원문의 작은 일부분만 실릴 뿐이다.
온라인의 오프라인 지향
종이 매체에 자신의 블로그나 글이 소개되면, 그것을 주제로 또 한 편의 글이 블로그에 올라간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인쇄 매체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을지 모르나, 인쇄 매체에 자신의 글이 활자화되는 것에 대한 매력은 여전한 듯 하다. 블로그 사이트인 이글루스의 PDF 서비스는 글 쓰는 네티즌의 이런 심리를 파고든다. 지난 5월 말부터 유료로 제공되고 있는데 사용자의 자료를 온오프라인에서 읽기 쉽게 전자책 형태로 만들어주는 서비스로 네티즌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다음 달엔 네티즌이 자신의 블로그에 실었던 글을 모은 오프라인 잡지도 나온다. 6월 19일 시험판을 냈고, 7월 중 정식 서비스를 개시하여, 서울 대학가와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무가지로 배포될 예정이다. 석간으로 배포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인터넷의 새로운 아날로그 문화 팝콘이 생각하는 블로그입니다’ 라는 설명이 적힌 잡지 <블로진> 시험판에는, 캠페인, 재미있는 글 모음, 해외 소식, 마니아의 세계, 블로거 인터뷰, 추천 블로그, 네티즌 에피소드 등의 꼭지가 있다.
많은 블로그 운영자들이 블로그 매거진의 등장을 반기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애정 어린 조언도 빠지지 않았다. ‘열일곱살’이라는 네티즌은, 블로진이 광고 수익에 의존하거나 특정 사이트와 공동 프로모션을 실시할 경우 특정 업체에 적을 둔 블로거들이 지나치게 부각될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끄루또이’라는 네티즌은, 잡지가 퇴근시간에 배포되면 업무에 지친 젊은 직장인들에겐 외면당할 것이라는 점과, 8월말까지 대학가 방학과 겹쳐 초반 돌풍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컴퓨터 잡지의 ‘책 속의 책’ 같은 형태와 비슷해지면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는 것 등을 지적하고 있다. 기존의 인터넷 잡지와 어떤 차별성으로 경쟁할지 지켜보자.
디지털적인 것과 아날로그적인 것
호찬넷(hochan.net)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정서적 결합을 원하는 곳’ 이라는 설명이 걸려 있다. 디지털 매체를 통해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네티즌의 글을 읽는 것은 늘 즐겁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이란 무엇일까. 디지털이 빠르고, 정확하고, 편리하며, 지시적이라면, 아날로그는 그에 비해 느리고, 부정확하고, 불편하며, 암시적이다. 디지털이 패스트푸드와 같다면 아날로그는 유기농 야채로 만든 가정식 백반이다. 디지털이 정답을 찾는다면 아날로그에서는 해답을 찾는다.
컴퓨터 바이러스 때문에 하드디스크의 자료가 날아가거나, 휴대전화를 분실하여 지인들의 연락처도 함께 잃어버렸던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디지털 매체가 완벽한 자료 저장 매체가 아님을 알 것이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리가 외우고 있는 타인의 전화번호는 10개 미만이라는 조사가 있었는데, 사람들 사이의 연락 시간이 과거에 비해 획기적으로 단축되긴 했어도, 사람들 간의 거리는 오히려 조금 더 멀어진 것은 아닐까.
대형서점 한 귀퉁이에서 눈치 봐가며 필요한 부분을 메모지에 빼곡히 옮겨 적던, 그리고 점원과 짧은 승강이를 하던 풍경도 디카족의 등장으로 많이 바뀌었다. 어떤 웹진에 실렸던 카피, ‘넌 디카로 사진만 찍니?’ 처럼. 최근에는 칠판에 필기한 내용이 학생 노트북에 그대로 저장되는 제품도 등장했다. 정말 ‘편리’ 해 졌다.
격월간 <공동선>에 실렸던 이문재씨의 글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 에서는 모든 것이 패스트푸드처럼 뚝딱뚝딱 찍혀져 나오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요즘 세태에 대해 얘기하며, 세상살이에는 ‘발효의 시간’, 즉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터넷, 디지털 선진국이라는 한국에는 퀵 서비스라는 신종 오프라인 사업도 빠르게 성장했다.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탁자의 한 쪽 귀퉁이는 ‘빠르면 무조건 좋다’ 라는 잘못된 인식이 떠받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느림의 지혜>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빠른 것이 사람의 관심을 끈다면, 느린 것은 사람들에게 힘을 이끌어낸다. 빠르고, 편리하고, 정확한 디지털이 주목받기 쉽긴 해도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느리고, 불편하고, 부정확한 아날로그적 상황이다.
인터넷이 디지털 문명의 산물이긴 해도 월드와이드웹의 절반은 아날로그적이다. 웹을 유지하는 것은 시스템이지만, 웹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이며, 웹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네티즌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와인버거의 말처럼 인터넷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며, 이 불완전함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잉태된다. 월드와이드웹은 이런 속성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공간이다. 게슈탈트 이론의 유명한 선언문,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처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은 단순한 총합 이상일 것이다.
- <국정브리핑>
웹을 풍요롭게 하는 아날로그적 감성
이강룡 / 웹칼럼니스트 http://readme.or.kr
친구들끼리 해산물 음식점에서 얘기하다가, "엉망으로 식탁을 어지럽히지 않고 바닷가재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됐는데, 어떤 사람이 정말 그러고 있었다. 나는 그를 두 시간 동안이나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는 식탁을 전혀 어지럽히지 않고서도 바닷가재를 완전히 먹어치웠다. 그는 충분한 시간을 사용했고,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기술이 아니라 시간과 인내심이었다. ( 스튜어트 브랜드, <느림의 지혜> 중 )
<딴지일보>의 기사가 종이신문에 실렸던 이후, 온라인 기사가 종종 종이 매체와 방송 매체에 다시 실리는 사례들이 있다. <한국방송>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미디어몹> 콘텐츠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 내용이 활자화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일보>는 여론면의 ‘@블로그’ 라는 꼭지에서 네티즌이 블로그에 남긴 글을 소개하고 있으며, 컴퓨터/인터넷 정보 잡지에는 네티즌의 목소리를 담는 별도의 인터넷 지면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면 제약으로 인해 글은 편집 과정을 거쳐 원문의 작은 일부분만 실릴 뿐이다.
온라인의 오프라인 지향
종이 매체에 자신의 블로그나 글이 소개되면, 그것을 주제로 또 한 편의 글이 블로그에 올라간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인쇄 매체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을지 모르나, 인쇄 매체에 자신의 글이 활자화되는 것에 대한 매력은 여전한 듯 하다. 블로그 사이트인 이글루스의 PDF 서비스는 글 쓰는 네티즌의 이런 심리를 파고든다. 지난 5월 말부터 유료로 제공되고 있는데 사용자의 자료를 온오프라인에서 읽기 쉽게 전자책 형태로 만들어주는 서비스로 네티즌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다음 달엔 네티즌이 자신의 블로그에 실었던 글을 모은 오프라인 잡지도 나온다. 6월 19일 시험판을 냈고, 7월 중 정식 서비스를 개시하여, 서울 대학가와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무가지로 배포될 예정이다. 석간으로 배포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인터넷의 새로운 아날로그 문화 팝콘이 생각하는 블로그입니다’ 라는 설명이 적힌 잡지 <블로진> 시험판에는, 캠페인, 재미있는 글 모음, 해외 소식, 마니아의 세계, 블로거 인터뷰, 추천 블로그, 네티즌 에피소드 등의 꼭지가 있다.
많은 블로그 운영자들이 블로그 매거진의 등장을 반기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애정 어린 조언도 빠지지 않았다. ‘열일곱살’이라는 네티즌은, 블로진이 광고 수익에 의존하거나 특정 사이트와 공동 프로모션을 실시할 경우 특정 업체에 적을 둔 블로거들이 지나치게 부각될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끄루또이’라는 네티즌은, 잡지가 퇴근시간에 배포되면 업무에 지친 젊은 직장인들에겐 외면당할 것이라는 점과, 8월말까지 대학가 방학과 겹쳐 초반 돌풍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컴퓨터 잡지의 ‘책 속의 책’ 같은 형태와 비슷해지면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는 것 등을 지적하고 있다. 기존의 인터넷 잡지와 어떤 차별성으로 경쟁할지 지켜보자.
디지털적인 것과 아날로그적인 것
호찬넷(hochan.net)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정서적 결합을 원하는 곳’ 이라는 설명이 걸려 있다. 디지털 매체를 통해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네티즌의 글을 읽는 것은 늘 즐겁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이란 무엇일까. 디지털이 빠르고, 정확하고, 편리하며, 지시적이라면, 아날로그는 그에 비해 느리고, 부정확하고, 불편하며, 암시적이다. 디지털이 패스트푸드와 같다면 아날로그는 유기농 야채로 만든 가정식 백반이다. 디지털이 정답을 찾는다면 아날로그에서는 해답을 찾는다.
컴퓨터 바이러스 때문에 하드디스크의 자료가 날아가거나, 휴대전화를 분실하여 지인들의 연락처도 함께 잃어버렸던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디지털 매체가 완벽한 자료 저장 매체가 아님을 알 것이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리가 외우고 있는 타인의 전화번호는 10개 미만이라는 조사가 있었는데, 사람들 사이의 연락 시간이 과거에 비해 획기적으로 단축되긴 했어도, 사람들 간의 거리는 오히려 조금 더 멀어진 것은 아닐까.
대형서점 한 귀퉁이에서 눈치 봐가며 필요한 부분을 메모지에 빼곡히 옮겨 적던, 그리고 점원과 짧은 승강이를 하던 풍경도 디카족의 등장으로 많이 바뀌었다. 어떤 웹진에 실렸던 카피, ‘넌 디카로 사진만 찍니?’ 처럼. 최근에는 칠판에 필기한 내용이 학생 노트북에 그대로 저장되는 제품도 등장했다. 정말 ‘편리’ 해 졌다.
격월간 <공동선>에 실렸던 이문재씨의 글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 에서는 모든 것이 패스트푸드처럼 뚝딱뚝딱 찍혀져 나오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요즘 세태에 대해 얘기하며, 세상살이에는 ‘발효의 시간’, 즉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터넷, 디지털 선진국이라는 한국에는 퀵 서비스라는 신종 오프라인 사업도 빠르게 성장했다.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탁자의 한 쪽 귀퉁이는 ‘빠르면 무조건 좋다’ 라는 잘못된 인식이 떠받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느림의 지혜>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빠른 것이 사람의 관심을 끈다면, 느린 것은 사람들에게 힘을 이끌어낸다. 빠르고, 편리하고, 정확한 디지털이 주목받기 쉽긴 해도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느리고, 불편하고, 부정확한 아날로그적 상황이다.
인터넷이 디지털 문명의 산물이긴 해도 월드와이드웹의 절반은 아날로그적이다. 웹을 유지하는 것은 시스템이지만, 웹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이며, 웹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네티즌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와인버거의 말처럼 인터넷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며, 이 불완전함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잉태된다. 월드와이드웹은 이런 속성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공간이다. 게슈탈트 이론의 유명한 선언문,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처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은 단순한 총합 이상일 것이다.
- <국정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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