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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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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유언비어 퍼나르기와 인터넷의 자율성
이 재 일
『산업사회의 정권들, 너 살덩이와 쇳덩이의 넌덜머리나는 괴물아. 나는 새로운 마음의 고향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왔노라. 미래의 이름으로 너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 우리를 두고 떠나라. 너희는 환영받지 못한다. 우리의 영토를 통치할 권한이 네게는 없다.
우리는 스스로 사회계약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너희가 아니라 우리의 조건에 따라 집행할 것이다. 우리의 세계는 어디에나 있고 동시에 아무데도 없다. 그곳에는 육체가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출신성분, 경제력, 군사력, 인종에 따른 특권이나 편견이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우리는 비록 육체에 대한 당신들의 지배를 승인할 지라도,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당신들의 지배로부터 해방됐음을 선포한다. 결국에는 그 누구도 우리의 생각을 구속할 수 없도록 우리는 우리의 사유와 사상을 지구 전체에 퍼뜨릴 것이다.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 마음의 문명을 건설할 것이다.』
이상은 전자프론티어재단 창립자 가운데 한사람인 존 페리 발로가 1996년에 발표한 '사이공간의 독립선언문'을 요약한 것이다. 이 선언문의 기본정신은 사이버공간에서 철저히 자율성을 지켜나가는데 두고 있다. 비록 상징적인 의미를 띠고 있지만 네티즌들에게는 금과옥조 같은 문건이다.
발로는 이 선언서에서 사이버공간에서의 자율성은 출신성분, 경제력, 군사력, 인종에 따른 특권이나 편견이 없이 공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자율성은 의부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네티즌의 자발적인 의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사회학자들은 △개방성 △참여성 △공유성 △저항성 △익명성 △자율성 등으로 특징짓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익명성과 자율성이다. 사이버공간에서는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음에 따라 사회적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여러 개로, 그리고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 이는 어떤 사안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다 보니 폭력성을 띠기 쉬워지고 신뢰감을 얻기 어려워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율성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세계의 법과 질서가 가상공간에서는 구속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얼마든지 '마음대로' 표현할 수가 있다. 이는 사이버공간이 자율의 공간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율성은 네티즌 스스로가 지켜나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쉽지가 않다.
인터넷상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마구잡이식 퍼오기'이다. 사실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수준의 내용이나 의도적인 음해성 글을 제멋대로 올리고, 이를 무책임하게 퍼가서 다른 사이트에 올리는 일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무책임한 '유언비어 퍼나르기'가 자행되는 것은 바로 '익명성' 때문이다.
통일문제연구소의 백기완 소장이 사이버 유언비어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내용은 "박정희는 백기완 같은 3만명을 못살게 했지만 보통 서민 3천만명을 등 따시고 배부르게 했는데, 김영삼과 김대중은 국민을 거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백소장은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이 유언비어가 되어서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지고 있는데 대해 무척 황당해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나를 배신자로 몰아 음해하려고 유포된 것으로 사이버테러이자 학살"이라고 일축했다지만, 마음이 무척 아플 것으로 여겨진다.
"인터넷에선 당신이 개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On the Internet nobody knows you're a dog)"는 유명한 경구가 있다. 이 독특한 문장은 미국의 만화가 피터 스타이너라는 사람이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 1993년 6월5일호에 게재한 만화에서 맨 처음 사용했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은 개가 다른 개에게 바로 이 말을 하는 모습을 그렸다.
스타이너가 이런 만화를 그렸던 것은 인터넷의 특성인 익명성과 모호성이 갖는 부정적인 현상을 꼬집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인터넷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으니 게시판에 올라있는 내용이 설사 의문스럽더라도 재미가 있거나 호기심을 끄는 것이라면 함부로 딴 곳에 옮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인터넷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우리사회의 인터넷문화가 저질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에서는 통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극력 반대하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가 증가할수록 부작용 또한 늘어나는 만큼 국가의 간섭은 강도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존 페리 발로가 선언한 것처럼 네티즌들이 '사이버공간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인터넷문화가 갖고 있는 특성 중의 하나인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자율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2004.09.09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유언비어 퍼나르기와 인터넷의 자율성
이 재 일
『산업사회의 정권들, 너 살덩이와 쇳덩이의 넌덜머리나는 괴물아. 나는 새로운 마음의 고향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왔노라. 미래의 이름으로 너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 우리를 두고 떠나라. 너희는 환영받지 못한다. 우리의 영토를 통치할 권한이 네게는 없다.
우리는 스스로 사회계약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너희가 아니라 우리의 조건에 따라 집행할 것이다. 우리의 세계는 어디에나 있고 동시에 아무데도 없다. 그곳에는 육체가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출신성분, 경제력, 군사력, 인종에 따른 특권이나 편견이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우리는 비록 육체에 대한 당신들의 지배를 승인할 지라도,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당신들의 지배로부터 해방됐음을 선포한다. 결국에는 그 누구도 우리의 생각을 구속할 수 없도록 우리는 우리의 사유와 사상을 지구 전체에 퍼뜨릴 것이다.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 마음의 문명을 건설할 것이다.』
이상은 전자프론티어재단 창립자 가운데 한사람인 존 페리 발로가 1996년에 발표한 '사이공간의 독립선언문'을 요약한 것이다. 이 선언문의 기본정신은 사이버공간에서 철저히 자율성을 지켜나가는데 두고 있다. 비록 상징적인 의미를 띠고 있지만 네티즌들에게는 금과옥조 같은 문건이다.
발로는 이 선언서에서 사이버공간에서의 자율성은 출신성분, 경제력, 군사력, 인종에 따른 특권이나 편견이 없이 공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자율성은 의부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네티즌의 자발적인 의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사회학자들은 △개방성 △참여성 △공유성 △저항성 △익명성 △자율성 등으로 특징짓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익명성과 자율성이다. 사이버공간에서는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음에 따라 사회적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여러 개로, 그리고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 이는 어떤 사안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다 보니 폭력성을 띠기 쉬워지고 신뢰감을 얻기 어려워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율성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세계의 법과 질서가 가상공간에서는 구속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얼마든지 '마음대로' 표현할 수가 있다. 이는 사이버공간이 자율의 공간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율성은 네티즌 스스로가 지켜나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쉽지가 않다.
인터넷상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마구잡이식 퍼오기'이다. 사실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수준의 내용이나 의도적인 음해성 글을 제멋대로 올리고, 이를 무책임하게 퍼가서 다른 사이트에 올리는 일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무책임한 '유언비어 퍼나르기'가 자행되는 것은 바로 '익명성' 때문이다.
통일문제연구소의 백기완 소장이 사이버 유언비어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내용은 "박정희는 백기완 같은 3만명을 못살게 했지만 보통 서민 3천만명을 등 따시고 배부르게 했는데, 김영삼과 김대중은 국민을 거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백소장은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이 유언비어가 되어서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지고 있는데 대해 무척 황당해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나를 배신자로 몰아 음해하려고 유포된 것으로 사이버테러이자 학살"이라고 일축했다지만, 마음이 무척 아플 것으로 여겨진다.
"인터넷에선 당신이 개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On the Internet nobody knows you're a dog)"는 유명한 경구가 있다. 이 독특한 문장은 미국의 만화가 피터 스타이너라는 사람이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 1993년 6월5일호에 게재한 만화에서 맨 처음 사용했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은 개가 다른 개에게 바로 이 말을 하는 모습을 그렸다.
스타이너가 이런 만화를 그렸던 것은 인터넷의 특성인 익명성과 모호성이 갖는 부정적인 현상을 꼬집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인터넷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으니 게시판에 올라있는 내용이 설사 의문스럽더라도 재미가 있거나 호기심을 끄는 것이라면 함부로 딴 곳에 옮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인터넷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우리사회의 인터넷문화가 저질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에서는 통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극력 반대하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가 증가할수록 부작용 또한 늘어나는 만큼 국가의 간섭은 강도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존 페리 발로가 선언한 것처럼 네티즌들이 '사이버공간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인터넷문화가 갖고 있는 특성 중의 하나인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자율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200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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