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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No.1060 ]추억의 먹거리

무엇이든 이규섭............... 조회 수 1609 추천 수 0 2004.10.09 15: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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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하늘과 땅이 맞닿은 김제평야, 요즘은 유기농법으로 메뚜기가 많이 늘었다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이규섭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볼거리가 아무리 좋아도 먹거리를 채워야 아는 것만큼 제대로 볼 수 있다. 먹거리에 관련된 속담이 우리나라에 유난히 많은 것은 의식주 중에서도 먹는 비중이 클 뿐 아니라 예전엔 끼니때우기 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으름뱅이를 빗대어 '밥그릇 앞에서 굶어죽을 놈'이란 속담이 있는가하면 '밥은 봄같이 먹고, 국은 여름같이 먹고, 장은 가을같이 먹고, 술은 겨울같이 먹어라.'는 속담도 있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자란 필자는 용돈이 궁했거니와 자연이 제공하는 먹거리가 풍성해 사 먹는 군것질은 엄두조차 못 냈다. 그 시절 산과 들은 무진장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보물단지였다.

#봄

굶기를 밥먹듯이 했던 보릿고개 시절 봄 식탁은 '푸른 초원'일색이다. 깊은 산에서만 자라는 곰취를 상추처럼 밥에 싸먹으면 독특한 향기가 온 몸에 박하향기처럼 싸하게 퍼진다. 된장을 약간 풀어 끓인 쑥국의 향기, 달콤새콤하게 묻힌 돌나물 무침의 아삭아삭한 맛, 서릿발 땅을 비집고 나온 마늘 싹에 고추장과 빙초산을 넣어 버무린 마늘쫑무침, 된장찌개에 넣어 먹던 향긋한 달래는 밥을 축내는 '밥도둑'이었다.

비 오는 날, 간식이나 새참으로 붙여먹던 미나리전이나 부추전은 봄기운을 돌게 했고, 어쩌다 두릅전을 먹는 날은 산 기운이 혀끝을 감동시켰다. 단오 무렵 쌀 보다 나물이 더 많았던 수리취 떡이나 쑥떡의 쌉쌀한 맛, 겨우내 썩은 감자를 골라 우려내 빚은 감자떡의 쫄깃쫄깃한 맛도 잊을 수 없다.

보리가 누릇누릇 익어갈 무렵 '밀서리'는 허기를 채워주던 간식이었다. 주인 몰래 밀밭에 들어가 이삭을 잘라 모닥불에 구운 뒤 손바닥에 얹어놓고 비비면 밀 알이 속살을 드러낸다. 껍질을 후후 불어내고 알맞게 익은 밀 알갱이를 먹으면 구수하고 달착지근하다. 생 밀을 껌 대신 씹기도 했다.

송홧가루 날리는 봄 소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칡뿌리를 캐 먹던 기억도 새롭다. 봄 과일 가운데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빨간 앵두. 한 마을에 살았던 고모네 집 돌담 앞에는 봄이면 빨간 앵두가 앵두 같은 입술로 익었다. 아침 수저를 놓기가 바쁘게 고모 집으로 달려가면 이른 아침 소쿠리에 따 감춰뒀던 앵두를 안겨주었다. 고모의 정성과 달착지근한 앵두 맛을 잊을 수 없어 지난해 봄 단독주택 작은 화단에 앵두나무 두 포기를 심었다. 내년 봄엔 고모가 주던 어린 시절의 앵두 맛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여름

여름방학이면 산내들이 놀이터고 먹거리 장터였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따먹는 산딸기의 맛은 싱싱하고 달콤하여 여름먹거리로 으뜸이다. 한 개씩 따서 먹으면 감질나 한 움큼 따 모아 한 입에 털어 넣기도 했다. 산딸기 철이면 오디도 까맣게 익었다. 그 시절엔 양잠을 하는 집들이 많아 산자락이나 밭가엔 뽕나무가 줄지어 있었다. 파랗던 오디가 차츰 붉어져 다 익으면 까맣게 변한다. 뽕나무에 매달려 오디를 따먹고 나면 입술은 온통 잉크색으로 물든다. 누에를 따 실을 뽑을 때 먹던 번데기 맛도 아련하다.

찔레꽃이 지고 나면 찔레나무에 초록 빛 새순이 살찌게 올랐다. 순을 꺾어 껍질을 벗겨 먹으면 연하고 달콤하게 씹히는 맛이 좋았다. '개금'이라고 불렀던 개암은 가을 열매지만 늦여름부터 알이 찼다. 파란 잎에 싸여 있어 이로 깨물어 보거나 작은 돌로 깨어봐야 익었는지 알 수 있다. 하얗게 여문 개암을 아삭아삭 씹어 먹으면 고소하다. '까칠복숭아' '개복숭아'라고도 했던 산복숭아는 늦여름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달렸다. 과수원 복숭아 보다 알은 작아도 '달고나' 처럼 달착지근했다.

마을 앞을 가로질러 흐르던 내는 차고 깨끗하여 물고기들의 천국이었다. 모래무지, 피라미, 메기, 빠가사리가 흔해 반두나 어레미, 찌그러진 소쿠리를 들고 나가 풀 섶이나 바위 속을 훑으면 매운탕 거리가 충분했다.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차디찬 물에만 사는 가재도 많았다. 살금살금 돌을 들치고 잡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삭정이 불에 구우면 등과 다리가 빨갛게 익어 보기 좋은 만큼 맛도 그만이다. 맑고 깨끗했던 고향의 시냇물도 고속도로 교각이 들어서고 오폐수로 오염되어 물고기들이 많이 사라져 아쉽다.

그 시절 여름밥상의 밑반찬이라야 대부분 푸성귀. 찬 보리밥을 상추에 싸먹거나, 오이냉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면 갈증까지 가셨다. 어른들은 보리밥을 옹달샘에서 퍼온 찬물에 말아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드셨다. 저녁이면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둘러앉아 칼국수나 수제비를 많이 먹었다. 쌀도 귀했지만 국수나 수제비는 풋고추 숭숭 썰어 넣은 조선간장이면 밑반찬이 필요 없었다.

태백산맥의 끝자락인 소백산 부근은 칼국수 반죽 때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쫄깃하고 구수하다. '콩은 들에서 나는 쇠고기'라 하여 단백질의 공급원이었다. 요즘도 안동지방 칼국수에는 반드시 콩가루가 들어간다.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과, 여름밤을 수놓는 반딧불이를 바라보며 미지의 세상을 그려보던 그 때 그 시절은 가난했지만 순수했던 것 같다.

#가을

야생 먹거리는 여름 보다 가을이 훨씬 풍성했다. 머루, 다래, 으름은 산중의 별미다. 분이 뽀얗게 묻은 머루, 꼭지가 빠질 정도로 잘 익은 다래의 맛은 달콤새콤하다. 으름은 익으면 겉 거죽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까만 씨들을 잔뜩 품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맛은 새콤한 편이다. 머루, 다래로 허기를 채우고 나면 해묵은 머루 넝쿨에 매달려 타잔 흉내를 내던 기억도 새롭다. 벼가 누렇게 익어 가는 들녘에 나가 메뚜기와 방아깨비를 잡아 불에 구워 먹었다. 메뚜기 볶음은 밑반찬 구실도 톡톡히 했다.

만국기가 펄럭이던 가을 운동회나, 손꼽아 기다리던 가을소풍날이면, 먹거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다. 평소엔 엄두조차 못 냈던 김밥에 삶은 계란을 실컷 먹을 수 있고, 아이스께끼와 솜사탕, 눈깔사탕과 꽈베기, 쫀디기 등 평소 먹고싶었던 주전부리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윤기 도는 햅쌀밥에 참기름을 살짝 넣어 비벼먹으면 고소하고, 식은 밥은 콩가루에 묻혀 먹어도 구수하여 반찬이 없어도 한 그릇 뚝딱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추수를 끝낸 텅 빈 들판 봇도랑에서 잡은 미꾸라지는 배가 누렇고 살이 쪄 토실토실하다. 미꾸라지 추어탕은 시골의 보양식으로 그만이었다.

결혼이나 환갑은 온 마을이 떠들썩한 잔칫날이다. 돼지고기와 떡과 전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으니 절로 신바람이 났다. 멸치 우려 낸 국물에 국수를 넣고 김과 계란 시금치 등 고명을 얹어 말아먹던 잔치국수 맛은 잊혀지지 않는다. 가끔씩 고속도로 휴게소식당이나 시장에서 잔치국수를 사먹어도 그 때 그 맛을 느낄 수 없다.

#겨울

장독대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이는 겨울밤, 살얼음이 살짝 낀 동치미와 함께 물고구마를 곁들여 먹으면 혀에 착착 감기는 달콤한 맛이 눈깔사탕 부럽지 않았다. 땅을 파고 묻은 무와 배추꼬리도 겨울철 훌륭한 간식이다. 고무줄 새총으로 참새를 잡거나, 한밤중 플래시를 들고 초가추녀 끝 구멍에 손을 넣어 곤히 잠자고 있는 참새를 잡아 구워 먹기도 했다.

겨울철 별미는 역시 메밀묵. 봄에는 청포묵이 제 맛이고, 여름에는 강냉이로 만든 올챙이묵이 제격이다. 메밀묵에 배추김치 송송 썰어 참기름 깨소금에 버무린 뒤 김을 살짝 구워 부셔 올려서 먹었던 담백한 맛은 긴 겨울밤의 야참으로 요즘말로 "짱"이다. 도회지로 나와 살면서 한겨울밤 "메밀묵 사려∼" "찹쌀떡∼"하고 외치고 다니던 메밀묵 장사의 목소리만 들어도 입에 군침이 돌며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몇 년 전 강원도 정선장에 들렀다가 올챙이국수와 '콧등치기'를 먹어보았으나 옛날의 그 맛은 아니다. '올챙이 국수'는 찰옥수수를 묽게 갈아서 나무 되 밑바닥에 구멍을 뚫고 받아내 국수발이 올챙이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콧등치기'는 메밀을 반죽하여 만든 일종의 메밀국수다. 육수에 된장을 살짝 풀고 깨소금 양념을 넣어 먹는다. 급히 빨아들이다 보면 쫄깃쫄깃하고 단단한 국수발이 살아 콧등을 친다 하여 붙여진 음식이다.

#먹거리문화

먹거리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쌀 소비가 줄고 육류소비가 늘어난 것이 대표적이 사례다. 요즘도 1세대 길거리음식인 떡볶이, 오뎅, 꼬치, 붕어빵, 국화빵 등이 건재하여 향수를 자극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길거리 음식들은 전통의 입맛과는 거리가 멀다. 생 과일 사탕이나 색깔이 다양한 생 과일즙, 다코야끼, 케밥이나 빨간 오뎅 등 맛과 분위기, 개성이 톡톡 튀는 쿨 한 먹거리를 즐겨 찾는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만 빚 좋은 개살구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웰빙 바람과 함께 유기농 농산물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지만, 40, 50대 이상 세대들은 자연 속에서 먹거리를 구했고, 잡곡밥에 된장과 김치로 자연식을 즐겼으니 웰빙 푸드를 실천해 온 선구주자 격이다.

- 2004년 한국관광용품센터 사보 <용품정보>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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