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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4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박연호 (칼럼니스트)
우리는 많은 모임 속에서 산다. 각급 학교 동창회, 향우회, 직장 동기회, 동호인회 등 가지가지다. 속세를 떠나 은둔하거나, 외톨이로 살기를 작정한 사람이 아닌 이상 보통 몇 가지 모임에 속해 있다. 외국에 나가서도 이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 교회 향우회 등 각종 모임이 고국 못지 않게 활발하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아 한국인은 툭하면 갈라져 헐뜯기만 한다는 등 비난을 꽤 받는다. 하지만 모임 자체나 그 많고 적음은 시비꺼리가 못된다고 본다. 모든 구성원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 모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면 '한국인들은 작은 친선모임에서 민주시민의 자질을 닦기 때문에 뛰어난 저력을 발휘한다'는 평가와 칭찬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비난 받는 일이 더 많아 안타깝다. 작은 모임의 확대판인 한국사회 전체의 혼란과 무관하지 않는 듯해 더욱 그렇다.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회장, 총무, 회원으로 구성된다. 회장이 모임의 큰 방향을 잡으면 총무는 모든 힘을 구체화하고, 회원들은 정해진 역할을 해나가면 된다. 그러나 너나없이 경험해서 알겠지만 이처럼 순조롭게 진행되는 모임이 그리 많지 않다. 각 모임 나름의 문제가 있겠지만 그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대체로 비슷하다.
첫째 우리는 토론, 논의에 익숙하지 않다. 사적인 친선 모임에 논의니 토론이니 하는 거창한 말이 가당치 않다고 할지 모르지만 각자 의견을 나누며 이모저모를 검토하는 것도 훌륭한 논의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야유회 건을 놓고 장소, 교통편, 회비 등을 결정하는 과정도 당당한 토론이다.
그런데 이럴 때 꼭 흐름을 더디게 하는 사람이 있다. 논의의 핵심을 모르고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가 하면, 야유회 장소를 말하고 있을 때 엉뚱한 사람 얘기를 꺼내든지 해서 진행을 방해한다. 간결하고 조리있게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는 사람도 드물다. 중언부언해서 초점을 흐리고 샛길로 빠져 요령부득인 경우가 많다. 여러 안을 놓고 타협과 절충하는 과정의 치열한 논의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입을 다물고 있다가 결론이 난 다음에 주장 아닌 고집으로 분위기를 망쳐놓기 일쑤다.
둘째 그런 사람일수록 규정에 따라 결정된 최종안에 잘 승복하지 않는다. 트레질에 이골이 나있다.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며, 어려움이 닥치면 함께 풀어나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자기 말을 따르지 않아 이렇다는 등 비난을 일삼는다. 시행하다 문제가 생기면 다음 기회에 개선하면 될 것을 계속 엇나가며, 심한 경우에는 음해도 마다하지 않는다.
셋째 회장, 총무가 무능해서 혼란을 빚는 한심한 일도 적지 않다.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공사가 분명해야 한데 이를 구분못하는 숙맥들이 더러 있다. 그러다 보면 사공은 많아지고 배는 갈 방향을 놓친다. 집행부에 속해 있으면서도 결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남의 말하듯 하는 무책임한 이들도 있다. 그리고는 편가르는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으며, 임기 끝난 뒤에 오히려 모임의 발목을 잡는 못난 짓을 한다.
넷째 공지사항을 건성으로 넘기는 이가 적지 않다. 초.중.고교 시절에는 부모, 담임 선생님이 모든 것을 챙기고 돌보아 주지만 사회생활이나 대학생활부터는 그렇지 않다. 게시판이 부모와 담임선생을 대신한다. 그래서 청소년 시절 부모와 선생님 말을 잘 듣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듯이 사회생활은 게시판을 보고 처리하는 능력에 따라 성패가 갈라진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점에 약한 사람들이 많다. 공지사항을 게시하거나 우편으로 보내도 보지 않거나 봐도 건성이고, 모임에서 담당자가 목이 쉬도록 설명을 해도 딴전이 예사다. 그런 뒤에 공지사항에 근거해 어떤 결정을 내리려 하면 자기는 몰랐던 일이라며 항의하거나 어거지를 쓴다.
다섯째 태도 표명이 분명하지 않고 회원으로서 무책임, 무신경한 이들이 드물지 않다. 구체적 사항이 마련되었는데도 자꾸 토를 달고, 개인사정을 내세우거나 핑계를 대며 진행에 무리를 가한다. 아예 빠지면 될 텐데 그런 이들일수록 빠지지도 않는다. 이래저래 다른 회원에게 피해를 주고, 여러 사람을 지치게 해놓은 것도 모자라 진행과정의 세세한 규칙들을 무력화하는 등 속썩이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이들 때문에 조직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늘어 능률이 저하된다. 조직이나 모임이 대내외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회원의 힘이 결집되면 더 큰 역량이 나와야 할텐데 그 반대가 되는 것이다. 한국인은 개인능력 80(만점 100)이상인 이들이 모여서 60이하의 결정을 내리고, 일본인은 60이하가 모여서 80이상의 성과를 거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래서 사적인 모임에서는 가능하면 회장, 총무를 당번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아가면서 회장, 총무, 회원의 역할을 해보면 모임을 위해서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상대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것이다. 그러면 자발적으로 협조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회원이 늘어날 것이며 모임은 원활하게 돌아가리라고 본다.
조그만 친선모임 간부에 무슨 특별한 자질과 자격이 필요하겠는가. 일상생활에 지장없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시민 훈련이란 거창하거나 별스러운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작은 모임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이 훌륭한 학습이다. 그러면 한국인들은 그런 모임을 통해 남다른 저력을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고, 지금의 사회적 에너지 낭비와 혼란기를 벗어나 국민역량 최대화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 '지방행정'9월호(2004 09)
박연호 (칼럼니스트)
우리는 많은 모임 속에서 산다. 각급 학교 동창회, 향우회, 직장 동기회, 동호인회 등 가지가지다. 속세를 떠나 은둔하거나, 외톨이로 살기를 작정한 사람이 아닌 이상 보통 몇 가지 모임에 속해 있다. 외국에 나가서도 이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 교회 향우회 등 각종 모임이 고국 못지 않게 활발하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아 한국인은 툭하면 갈라져 헐뜯기만 한다는 등 비난을 꽤 받는다. 하지만 모임 자체나 그 많고 적음은 시비꺼리가 못된다고 본다. 모든 구성원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 모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면 '한국인들은 작은 친선모임에서 민주시민의 자질을 닦기 때문에 뛰어난 저력을 발휘한다'는 평가와 칭찬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비난 받는 일이 더 많아 안타깝다. 작은 모임의 확대판인 한국사회 전체의 혼란과 무관하지 않는 듯해 더욱 그렇다.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회장, 총무, 회원으로 구성된다. 회장이 모임의 큰 방향을 잡으면 총무는 모든 힘을 구체화하고, 회원들은 정해진 역할을 해나가면 된다. 그러나 너나없이 경험해서 알겠지만 이처럼 순조롭게 진행되는 모임이 그리 많지 않다. 각 모임 나름의 문제가 있겠지만 그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대체로 비슷하다.
첫째 우리는 토론, 논의에 익숙하지 않다. 사적인 친선 모임에 논의니 토론이니 하는 거창한 말이 가당치 않다고 할지 모르지만 각자 의견을 나누며 이모저모를 검토하는 것도 훌륭한 논의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야유회 건을 놓고 장소, 교통편, 회비 등을 결정하는 과정도 당당한 토론이다.
그런데 이럴 때 꼭 흐름을 더디게 하는 사람이 있다. 논의의 핵심을 모르고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가 하면, 야유회 장소를 말하고 있을 때 엉뚱한 사람 얘기를 꺼내든지 해서 진행을 방해한다. 간결하고 조리있게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는 사람도 드물다. 중언부언해서 초점을 흐리고 샛길로 빠져 요령부득인 경우가 많다. 여러 안을 놓고 타협과 절충하는 과정의 치열한 논의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입을 다물고 있다가 결론이 난 다음에 주장 아닌 고집으로 분위기를 망쳐놓기 일쑤다.
둘째 그런 사람일수록 규정에 따라 결정된 최종안에 잘 승복하지 않는다. 트레질에 이골이 나있다.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며, 어려움이 닥치면 함께 풀어나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자기 말을 따르지 않아 이렇다는 등 비난을 일삼는다. 시행하다 문제가 생기면 다음 기회에 개선하면 될 것을 계속 엇나가며, 심한 경우에는 음해도 마다하지 않는다.
셋째 회장, 총무가 무능해서 혼란을 빚는 한심한 일도 적지 않다.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공사가 분명해야 한데 이를 구분못하는 숙맥들이 더러 있다. 그러다 보면 사공은 많아지고 배는 갈 방향을 놓친다. 집행부에 속해 있으면서도 결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남의 말하듯 하는 무책임한 이들도 있다. 그리고는 편가르는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으며, 임기 끝난 뒤에 오히려 모임의 발목을 잡는 못난 짓을 한다.
넷째 공지사항을 건성으로 넘기는 이가 적지 않다. 초.중.고교 시절에는 부모, 담임 선생님이 모든 것을 챙기고 돌보아 주지만 사회생활이나 대학생활부터는 그렇지 않다. 게시판이 부모와 담임선생을 대신한다. 그래서 청소년 시절 부모와 선생님 말을 잘 듣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듯이 사회생활은 게시판을 보고 처리하는 능력에 따라 성패가 갈라진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점에 약한 사람들이 많다. 공지사항을 게시하거나 우편으로 보내도 보지 않거나 봐도 건성이고, 모임에서 담당자가 목이 쉬도록 설명을 해도 딴전이 예사다. 그런 뒤에 공지사항에 근거해 어떤 결정을 내리려 하면 자기는 몰랐던 일이라며 항의하거나 어거지를 쓴다.
다섯째 태도 표명이 분명하지 않고 회원으로서 무책임, 무신경한 이들이 드물지 않다. 구체적 사항이 마련되었는데도 자꾸 토를 달고, 개인사정을 내세우거나 핑계를 대며 진행에 무리를 가한다. 아예 빠지면 될 텐데 그런 이들일수록 빠지지도 않는다. 이래저래 다른 회원에게 피해를 주고, 여러 사람을 지치게 해놓은 것도 모자라 진행과정의 세세한 규칙들을 무력화하는 등 속썩이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이들 때문에 조직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늘어 능률이 저하된다. 조직이나 모임이 대내외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회원의 힘이 결집되면 더 큰 역량이 나와야 할텐데 그 반대가 되는 것이다. 한국인은 개인능력 80(만점 100)이상인 이들이 모여서 60이하의 결정을 내리고, 일본인은 60이하가 모여서 80이상의 성과를 거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래서 사적인 모임에서는 가능하면 회장, 총무를 당번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아가면서 회장, 총무, 회원의 역할을 해보면 모임을 위해서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상대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것이다. 그러면 자발적으로 협조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회원이 늘어날 것이며 모임은 원활하게 돌아가리라고 본다.
조그만 친선모임 간부에 무슨 특별한 자질과 자격이 필요하겠는가. 일상생활에 지장없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시민 훈련이란 거창하거나 별스러운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작은 모임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이 훌륭한 학습이다. 그러면 한국인들은 그런 모임을 통해 남다른 저력을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고, 지금의 사회적 에너지 낭비와 혼란기를 벗어나 국민역량 최대화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 '지방행정'9월호(2004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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