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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No.1068 ]마음을 밝게 해주는 거울

무엇이든 박연호............... 조회 수 1255 추천 수 0 2004.10.09 15: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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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박연호 (칼럼니스트)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남을 꾸짖을 때는 총명하고, 총명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용서(변명)할 때는 어리석어진다. 그러므로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고, 자기 스스로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人雖至愚 責人則明 雖有聰明 恕己則昏... 以責人之心 責己 恕己之心 恕人을 우리 어법에 맞게 의역한 것임. 이하 다른 한문구절들도 이런 식으로 풀이했음)'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해도 마음과 마음 사이는 수많은 산이 가로막고 있다(對面共話 心隔千山)'

'가난하면 번화한 시장통에 살아도 찾아오는 사람 거의 없지만, 부유하면 깊은 산중에 살아도 아는 이들이 멀다 않고 찾아온다(貧居鬧市 無相識 富住深山 有遠親)'

'직접 눈으로 본 것도 참이 아닐 수 있는데, 남이 전하는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經目之事 恐未皆眞 背後之言 豈足沈信)'

주부들을 상대로 기초한문을 강독할 때 적극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명심보감(明心寶鑑)' 몇 대목이다. 이 책 내용이 이렇게 감동적일 줄은 몰랐다며 대단히 좋아한다. '사자소학(四字小學)' '계몽(啓蒙)' '추구(推句)' '동몽선습(童蒙先習)' 등을 읽을 때보다 훨씬 상기된 반응이다.

나온지 수백년 지난 책이지만 오늘도 인간의 심리, 본성, 세태 등을 정확하게 짚으며 마음을 깊이 울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 책을 왜 더 일찍 대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아쉬워 한다. 예전에는 어린이들의 필독서이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처럼 어른이 되어서 접하거나 아예 한 평생 구경도 못하는 수가 많다.

그 원인은 대강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대부분 학교시절 한자와 한문을 제대로 배우지 않아 '명심보감' '소학' 나아가 '논어' '맹자' 등 고전 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여기서 한글 전용 또는 한자 혼용을 주장하는 이들의 오해가 없기 바란다. 우리는 듣기만 해도 지겹고 짜증나는 지난 반세기의 한글-한자논쟁에 개입할 흥미가 전혀 없다. 오직 한자와 한문을 접하며 자신들의 안목과 생각이 넓고 깊어지는 자체에 만족하고 즐길 뿐이지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각급학교의 독서지도 미흡을 들 수 있다. 입시에만 매달리다 보니 책을 책답게 읽을 틈이 없었다. 고교생 논술지도를 해보면 그 참담한 실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논술 때문에 학원이니 과외니 해서 대비를 하지만 그게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문장틀은 기계적, 맹목적인 연습을 통해 얼기설기 짠다 해도 거기에 담을 내용은 그나마도 되지 않는다.

담당교사나 학원이 읽어야 할 책 내용을 요약한 참고서를 내주며 준비시키지만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책 이름과 그 내용 요약만 아무 생각없이 외우니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아니 제목부터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동몽선습'은 '어린이들이 우선 배워야 할 책'이라는 뜻이고 '격몽요결(擊蒙要訣)'은 '어린이들을 깨우치기 위한 주요 비결'이며 우리가 읽고 있는 '명심보감'은 '마음을 밝게 해주는 보배같은 거울'이라는 말이라고 제목을 풀이해 '아, 그런 말이구나' 하면서 이제라도 그걸 알게 돼서 다행이라며 흡족해 한다.

셋째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책을 별로 가까이 하지 않는다. 풍조가 그러다 보니 동서고전에 대한 오해가 심하다. 사마천의 '사기' 헤로도투스의 '역사' 유성룡의 '징비록' 등 많은 책들이 무엇을 다루며 뭘 말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청소년 문제가 만연하다는 소리가 높아지자 어느 대학 총장이 이에 대비해 '명심보감'을 교양필수과목에 넣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이 어느 때인데 '충효사상'이나 강조하는 과목을 넣으려는 시대착오적 발상을 하느냐며 일부에서 반발했다. '명심보감'을 단순히 충효나 강조하는 윤리도덕책 정도로만 보는 시선들이 더 많았다. 그 내용의 다양성과 풍부한 뜻은 제쳐두고 '명심보감'의 겉모습에 더 매달려 시비를 따진 것이다. 책을 읽어보지 않았거나 내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는 탓이었다.

주부들한테 왜 '명심보감'이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자신을 감동시키는 대목이 많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한자와 한문을 배우고 익혀 지식을 넓히는 재미도 있지만, 오늘의 삶에도 유용한 지혜를 터득하게 해주는 잇점이 그보다 훨씬 더하다는 것이다. 즉 옛날 책이지만 현대를 사는 자신들의 앞길을 인도해 준다는 것이다. 많이 배우고 어려운 말을 즐겨쓰는 고매한 학자들이 내리는 고전에 대한 정의보다 훨씬 쉽고 명쾌하다.

번역된 '명심보감'이 시중에 많은데 이처럼 어려운 한문을 해독하면서까지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으면 그 맛의 깊이가 너무 다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또 조선조 5백년을 관통한 남존여비사상과 왕조시대 유교이념 때문에 반여성적, 비민주적 내용이 적지 않은데 소화하기에 불편하지 않느냐고 하면 오늘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대답한다. 어리석은 자는 과거에 고착되고 현명한 자는 시대변화에 맞게 재해석한다는 말을 그들은 확실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명심보감'이 끝나면 무슨 재미로 한문강독반을 다니느냐는 농담들까지 한다. '명심보감'은 기초 학습용에 불과한 책으로 오페라 서곡에 비유할 수 있으며 '논어' '맹자' '통감' '사기' '고문진보' '노자' '장자' 등 수많은 고전은 그 본 무대이니 더 큰 기대를 가져도 좋다고 대답해주면 고개를 끄덕인다.

살림살이에 얽매여 늘 바쁜 주부들이지만 강독이 끝나고 나갈 때 표정은 그렇게 밝을 수 없다. 일상에 찌들은 영혼을 맑은 강물에 헹구고, 청량한 가을 볕에 내다 말리며 흐뭇해하는 는 그런 표정이다. 좋은 책이 주는 강력한 힘이 피부에 와닿는 순간이다. (200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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