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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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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우리는 해마다 한글날이 되면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생각하고,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과 집현전학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한글은 세계 어느 문자보다 과학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말과 글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할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늘 그렇듯이 한글날을 앞두고는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디시 한번 인식하고, 우리말 우리글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 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며칠만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고 만다.
그나마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지난 7월부터 네티즌들이 즐겨 사용하는 외국어들을 순수 우리말로 고치는 작업을 벌이고 있음은 평가받을 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신문사에서도 '우리말 바루기' 등의 고정란을 두고 우리말을 올바로 가다듬는 데 힘쓰고 있음도 고마운 일이다. 한글날 558돌을 앞두고 평소에 생각했던 점들을 적어보기로 한다.
하나. 우선 노래와 관련된 것이다. 10대나 20대 자식을 둔 부모들은 모두가 경험하는 일이겠지만 요즘의 가요 프로는 도무지 '정서'가 맞지 않아 시청하기가 괴로울 지경이다. 가사가 이상(?)하고 멜로디는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아 딴 세상의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같이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가수들이 자신의 이름(예명)을 영어로 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다. 노래 제목까지 영어로 되어 있다. 그래서 노래를 들어보지 않고서는 그것이 한국가수가 부른 한국노래인지, 외국가수가 부른 외국노래인지 알 수가 없다. H.O.T, G.O.D, 핑클스, 쿨, 왁스 등 그룹 이름은 물론 싸이, 세븐, MC몽 등 솔로 이름도 당연히(?) 영어로 되어 있다.
텔레비전은 가사를 자막으로 처리해 주어서 좀 나은 편이다. 라디오는 귀기울여 듣지 않고서는 어느 나라 노래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가사의 상당부분이 영어로 되어있는데다 멜로디는 아예 팝송 그대로니 기성세대로서는 무슨 재주로 구별해 낼 수 있겠는가. 그러니 '국적 없는 노래'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명이나 곡목을 영어로 쓰고, 가사에 영어를 섞어 넣는 일과 멜로디도 '비한국적' 내지 '국제적'인 팝송처럼 만드는 것은 이 시대 가요계의 풍속도인 것은 틀림없다. 그래야 10대 팬들이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영어 몇 마디 들어가지 않고서는 '시대감각에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가요계의 현주소다.
그리고 예명이 영어가 아닐 경우에는 순수 우리말이나 한자어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비, 린, 동방신기 등이 그렇다. 영어는 아니지만 기성세대의 감각에는 어색하기만 하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물론 R&B를 포함하여 대부분 멜로디가 팝송, 즉 미국노래를 모방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들이 국제화시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일찍이 국제화한 홍콩 배우나 가수들의 이름이 대부분 한자를 쓰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가요계의 이런 풍조들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빠른 시일 안에 이런 현상이 사라졌으면 하는 것이 늙은 네티즌의 바람이다.
둘. 또 한가지는 최근에 와서 쉬운 우리말을 놓아두고 굳이 한자말을 쓰는 풍조가 팽배해졌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저렴하다'는 말일 것이다. 20년 전쯤만 해도 서울사람들은 '값이 싸다'라는 말을 주로 썼다. 경상도 사람들은 '값이 헐타(헐하다)'라고 했다. 필자가 1960년대 중반 고향 부산에서 서울로 유학 갔을 때 맨 먼저 귀에 들어온 말이 바로 이 말이다. 물건을 사고 팔 때 꼭 필요한 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경상도 사람도 대부분 '저렴하다'로 쓰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언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신문이나 방송기사를 보면 거의 모두가 '저렴하다'로 쓰고 있다. 기자들은 '값이 싸다'고 하는 것보다 '저렴하다'고 말해야 독자나 시청자들이 더욱 값이 싼 것으로 느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특히 값이 싼 것을 주무기로 하고 있는 TV홈쇼핑에서는 '값이 싸다'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역시 '저렴하다'고 표현해야 소비자들이 '헐하다'고 생각한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임이 틀림없다.
'우천시에는 무기연기한다'거나, '무단 주차시에는 벌금을 물린다'고 할 때 쓰는 시(時라)도 너무 생각 없이 쓰는 단어 중의 하나이다. 이럴 경우 '비올 때는'이나 '무단주차 때는'이라고 하면 될 것을 무엇 때문에 한자어를 쓰는지 모르겠다. 한자어는 글자의 수를 줄일 때 유용하지만, 위에서 예를 든 경우는 한글의 글자수가 오히려 적다.
셋. 비표준어에 관한 얘기다. 노인들이 자주 쓰는 단어에는 '손주'를 빼놓을 수가 없다. 손주란 손자나 손녀를 가리킨다. 국어사전에는 손주를 '손자(孫子)의 잘못'으로, 손자는 '아들 또는 딸의 아들'로 풀이해놓고 있다. 사전대로라면 손녀(孫女)는 절대로 '손주'라고 부를 수가 없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손주라는 말은 차라리 손자·손녀보다 훨씬 많이 쓰인다. 필자의 나이도 50대 후반이 되다보니 친구들 중에 '손주'를 본 사람이 많다. 그런데 손자인지 손녀인지 모를 때 '손주'라는 말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 '손주는 잘 크느냐'고 물으면, 열에 열 명은 관심을 가져준 데에 무척 고마워한다. 왜 이 말이 표준어가 되지 못했는지 궁금하다.
하나 더 예를 들면, 이제는 부산 사람뿐만 아니라 전국 애주가들의 기호식품으로 손꼽히는 곰장어(또는 꼼장어)에 대한 호칭이다. 이 물고기의 표준어는 '먹장어'다. 어떤 사전은 '갯장어'라고 잘못 소개하고 있다. 먹장어, 즉 곰장어는 길이가 보통 1m 이하이고, 갯장어는 1.5∼2m나 되는 '바다장어'를 말한다.
여하튼 곰장어가 많이 잡히고, 그래서 많이 먹는 해안지방에서는 아무도 '먹장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먹장어라고 말하면 무슨 생선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일본말도 아닌 곰장어를 먹장어라고 우기는(?) 국어학자들의 심보를 이해하기 힘든다.
넷. 명사와 명사 사이에 사이시옷이 들어가는 경우다. 좀더 나은 내일을 말할 때 우리는 '장밋빛 미래'라고 말한다. 필자는 2∼3년까는 '장미빛'으로 썼다. 그런데 컴퓨터로 글을 쓸 때 화면에서 이 단어 밑에 계속 붉은 줄이 그어져 이상하게 여겼다. 나중에서야 사이시옷이 들어가야 맞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글 맞춤법에 사이시옷을 써야 할 경우를 몇 가지로 정해놓고 있다. '장밋빛'은 '순 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장밋빛'보다는 '장미빛'이 보기에 훨씬 자연스럽다. '날갯짓'은 또 어떤가. '날개짓'으로 하면 될 텐데도 '그놈의 규칙'때문에 글자모양 자체가 우스꽝스러워졌다.
다섯. 네티즌들이 쓰는 사이버은어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파괴하는 원흉(?)이라며 '괴상한 용어'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앞을 다투어 새로운 은어를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 가운데는 네티즌이 인터넷에서 쓰는 문자는 '글이라기보다는 말과 같은 것이므로 걱정할 바가 못된다'고 옹호하기도 한다.
필자도 이 문제에 관한 한 뚜렷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인터넷상의 문자는 글이 아니라 말'이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이버은어나 '외계어'를 자주 쓰다보면 낱말의 정확한 철자를 모르게 될 우려가 많다. 그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에도 자신들이 쓰는 은어를 쓰는 결례를 예사로 범하게 된다. 네티즌들이 말(인터넷에서 쓰는 문자)과 글(일상생활에서 쓰는 표준어)을 구별할 줄만 안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는데 그렇지 못하니 걱정이다.
네티즌은 그들 나름의 문화 때문에 이상한 문자를 만들어내고, 국어학자들은 그들대로 고집 때문에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을 비표준어로 몰아버리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경우라도 자신들의 문화나 생각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보편타당성을 지닐 때 정당성과 객관성을 지니게 되고 지지를 받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이 1991년부터니까 올해로 14년째다. 이유는 '10월에 휴일이 너무 많아서'였다. 그땐 정말 웃겼다. 아니 지금도 웃기고 있다. 올 한글날에 초·중·고등학교에서 기념식이라도 제대로 할는지 걱정이다. 한글날은 반드시 국경일이 되어야 한다. 다른 어느 국경일 못지 않게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중앙디지털국회 2004.1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우리는 해마다 한글날이 되면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생각하고,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과 집현전학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한글은 세계 어느 문자보다 과학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말과 글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할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늘 그렇듯이 한글날을 앞두고는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디시 한번 인식하고, 우리말 우리글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 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며칠만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고 만다.
그나마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지난 7월부터 네티즌들이 즐겨 사용하는 외국어들을 순수 우리말로 고치는 작업을 벌이고 있음은 평가받을 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신문사에서도 '우리말 바루기' 등의 고정란을 두고 우리말을 올바로 가다듬는 데 힘쓰고 있음도 고마운 일이다. 한글날 558돌을 앞두고 평소에 생각했던 점들을 적어보기로 한다.
하나. 우선 노래와 관련된 것이다. 10대나 20대 자식을 둔 부모들은 모두가 경험하는 일이겠지만 요즘의 가요 프로는 도무지 '정서'가 맞지 않아 시청하기가 괴로울 지경이다. 가사가 이상(?)하고 멜로디는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아 딴 세상의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같이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가수들이 자신의 이름(예명)을 영어로 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다. 노래 제목까지 영어로 되어 있다. 그래서 노래를 들어보지 않고서는 그것이 한국가수가 부른 한국노래인지, 외국가수가 부른 외국노래인지 알 수가 없다. H.O.T, G.O.D, 핑클스, 쿨, 왁스 등 그룹 이름은 물론 싸이, 세븐, MC몽 등 솔로 이름도 당연히(?) 영어로 되어 있다.
텔레비전은 가사를 자막으로 처리해 주어서 좀 나은 편이다. 라디오는 귀기울여 듣지 않고서는 어느 나라 노래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가사의 상당부분이 영어로 되어있는데다 멜로디는 아예 팝송 그대로니 기성세대로서는 무슨 재주로 구별해 낼 수 있겠는가. 그러니 '국적 없는 노래'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명이나 곡목을 영어로 쓰고, 가사에 영어를 섞어 넣는 일과 멜로디도 '비한국적' 내지 '국제적'인 팝송처럼 만드는 것은 이 시대 가요계의 풍속도인 것은 틀림없다. 그래야 10대 팬들이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영어 몇 마디 들어가지 않고서는 '시대감각에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가요계의 현주소다.
그리고 예명이 영어가 아닐 경우에는 순수 우리말이나 한자어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비, 린, 동방신기 등이 그렇다. 영어는 아니지만 기성세대의 감각에는 어색하기만 하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물론 R&B를 포함하여 대부분 멜로디가 팝송, 즉 미국노래를 모방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들이 국제화시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일찍이 국제화한 홍콩 배우나 가수들의 이름이 대부분 한자를 쓰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가요계의 이런 풍조들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빠른 시일 안에 이런 현상이 사라졌으면 하는 것이 늙은 네티즌의 바람이다.
둘. 또 한가지는 최근에 와서 쉬운 우리말을 놓아두고 굳이 한자말을 쓰는 풍조가 팽배해졌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저렴하다'는 말일 것이다. 20년 전쯤만 해도 서울사람들은 '값이 싸다'라는 말을 주로 썼다. 경상도 사람들은 '값이 헐타(헐하다)'라고 했다. 필자가 1960년대 중반 고향 부산에서 서울로 유학 갔을 때 맨 먼저 귀에 들어온 말이 바로 이 말이다. 물건을 사고 팔 때 꼭 필요한 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경상도 사람도 대부분 '저렴하다'로 쓰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언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신문이나 방송기사를 보면 거의 모두가 '저렴하다'로 쓰고 있다. 기자들은 '값이 싸다'고 하는 것보다 '저렴하다'고 말해야 독자나 시청자들이 더욱 값이 싼 것으로 느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특히 값이 싼 것을 주무기로 하고 있는 TV홈쇼핑에서는 '값이 싸다'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역시 '저렴하다'고 표현해야 소비자들이 '헐하다'고 생각한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임이 틀림없다.
'우천시에는 무기연기한다'거나, '무단 주차시에는 벌금을 물린다'고 할 때 쓰는 시(時라)도 너무 생각 없이 쓰는 단어 중의 하나이다. 이럴 경우 '비올 때는'이나 '무단주차 때는'이라고 하면 될 것을 무엇 때문에 한자어를 쓰는지 모르겠다. 한자어는 글자의 수를 줄일 때 유용하지만, 위에서 예를 든 경우는 한글의 글자수가 오히려 적다.
셋. 비표준어에 관한 얘기다. 노인들이 자주 쓰는 단어에는 '손주'를 빼놓을 수가 없다. 손주란 손자나 손녀를 가리킨다. 국어사전에는 손주를 '손자(孫子)의 잘못'으로, 손자는 '아들 또는 딸의 아들'로 풀이해놓고 있다. 사전대로라면 손녀(孫女)는 절대로 '손주'라고 부를 수가 없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손주라는 말은 차라리 손자·손녀보다 훨씬 많이 쓰인다. 필자의 나이도 50대 후반이 되다보니 친구들 중에 '손주'를 본 사람이 많다. 그런데 손자인지 손녀인지 모를 때 '손주'라는 말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 '손주는 잘 크느냐'고 물으면, 열에 열 명은 관심을 가져준 데에 무척 고마워한다. 왜 이 말이 표준어가 되지 못했는지 궁금하다.
하나 더 예를 들면, 이제는 부산 사람뿐만 아니라 전국 애주가들의 기호식품으로 손꼽히는 곰장어(또는 꼼장어)에 대한 호칭이다. 이 물고기의 표준어는 '먹장어'다. 어떤 사전은 '갯장어'라고 잘못 소개하고 있다. 먹장어, 즉 곰장어는 길이가 보통 1m 이하이고, 갯장어는 1.5∼2m나 되는 '바다장어'를 말한다.
여하튼 곰장어가 많이 잡히고, 그래서 많이 먹는 해안지방에서는 아무도 '먹장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먹장어라고 말하면 무슨 생선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일본말도 아닌 곰장어를 먹장어라고 우기는(?) 국어학자들의 심보를 이해하기 힘든다.
넷. 명사와 명사 사이에 사이시옷이 들어가는 경우다. 좀더 나은 내일을 말할 때 우리는 '장밋빛 미래'라고 말한다. 필자는 2∼3년까는 '장미빛'으로 썼다. 그런데 컴퓨터로 글을 쓸 때 화면에서 이 단어 밑에 계속 붉은 줄이 그어져 이상하게 여겼다. 나중에서야 사이시옷이 들어가야 맞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글 맞춤법에 사이시옷을 써야 할 경우를 몇 가지로 정해놓고 있다. '장밋빛'은 '순 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장밋빛'보다는 '장미빛'이 보기에 훨씬 자연스럽다. '날갯짓'은 또 어떤가. '날개짓'으로 하면 될 텐데도 '그놈의 규칙'때문에 글자모양 자체가 우스꽝스러워졌다.
다섯. 네티즌들이 쓰는 사이버은어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파괴하는 원흉(?)이라며 '괴상한 용어'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앞을 다투어 새로운 은어를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 가운데는 네티즌이 인터넷에서 쓰는 문자는 '글이라기보다는 말과 같은 것이므로 걱정할 바가 못된다'고 옹호하기도 한다.
필자도 이 문제에 관한 한 뚜렷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인터넷상의 문자는 글이 아니라 말'이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이버은어나 '외계어'를 자주 쓰다보면 낱말의 정확한 철자를 모르게 될 우려가 많다. 그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에도 자신들이 쓰는 은어를 쓰는 결례를 예사로 범하게 된다. 네티즌들이 말(인터넷에서 쓰는 문자)과 글(일상생활에서 쓰는 표준어)을 구별할 줄만 안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는데 그렇지 못하니 걱정이다.
네티즌은 그들 나름의 문화 때문에 이상한 문자를 만들어내고, 국어학자들은 그들대로 고집 때문에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을 비표준어로 몰아버리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경우라도 자신들의 문화나 생각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보편타당성을 지닐 때 정당성과 객관성을 지니게 되고 지지를 받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이 1991년부터니까 올해로 14년째다. 이유는 '10월에 휴일이 너무 많아서'였다. 그땐 정말 웃겼다. 아니 지금도 웃기고 있다. 올 한글날에 초·중·고등학교에서 기념식이라도 제대로 할는지 걱정이다. 한글날은 반드시 국경일이 되어야 한다. 다른 어느 국경일 못지 않게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중앙디지털국회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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