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낯설어지는 것.
훌쩍 떠나고파지는 것.
바람 품은 나무처럼 홀로 뒤척이는 것.
숨어 있다 불쑥 가슴을 훑고 가는 것.
잊었던 시계 소리같이, 고요할수록 또렷해지는 것.
텅 빈 집, 텅 빈 창가, 텅 빈 찻잔에 고이는 것.
시든 꽃병 차마 치우지 못하는 것.
빗줄기 타고 내리는 가을,
그리움이란...... .
사람이 그리운 날 중에서
보도 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반칠환 /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중에서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 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가치있는 것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소리 더 잘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이로써 내 일생은 좋았다'고 말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천양희
금빛 햇빛이 가득 쪼이는 건조하고
맑디 맑은 한국의 가을 속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나에게 미칠 듯한 환희의 느낌을 준다.
산다는 일,
호흡하고 말하고 미소할 수 있다는 일, 귀중한 일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지금 나는 아주 작은 것으로 만족한다.
한 권의 책이 맘에 들 때
또 내 맘에 드는 음악이 들려올 때,
또 마당에 핀 늦장미의
복잡하고도 엷은 색깔과 향기에 매혹될 때,
또 비가 조금씩 오는 거리를 혼자서 걸었을 때,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맛있는 음식, 진한 커피, 향기로운 포도주.
생각해 보면 나를 기쁘게 해주는 것들이 너무 많다.
햇빛이 금빛으로 사치스럽게
그러나 숭고하게 쏟아지는 길을 걷는다는 일,
살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전혜린에세이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긴방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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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계절 - 서영은
첫 번째 글은 예쁜표정 님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두,세 번째 글은 소유 님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네 번째 글은 예쁜표정 님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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