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몸부림쳐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정을 넘긴 길바닥에 앉아 소주를 마시며 너는 울었지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는 길밖에 없을 거라는
그따위 상투적인 희망은 가짜라고
절망의 바닥 밑엔 더 깊은 바닥으로 가는 통로밖에 없다고
너는 고개를 가로 저었지
무거워 더이상 무거워 지탱할 수 없는 한 시대의 깃발과
그 깃발 아래 던졌던 청춘 때문에
너는 독하디 독한 말들로 내 등을 찌르고 있었지
내놓으라고 길을 내놓으라고
앞으로 나아갈 출구가 보이지 않는데
지금 나는 쫓기고 있다고 악을 썼지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희망이 있는 것이라는
나의 간절한 언표들을 갈기갈기 찢어 거리에 팽개쳤지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던지는 모든 발자국이
사실은 길찾기 그것인데
네가 나에게 던지는 모든 반어들도
실은 네가 아직 희망을 다 꺾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너와 우리 모두의 길찾기인데..
돌아오는 길
네가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던
안타까운 나의 나머지 희망을 주섬주섬 챙겨 돌아오며
나도 내 그림자가 끌고 오는 풀죽은 깃발 때문에 마음 아팠다
네 말대로 한 시대가 그렇기 때문에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고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도대체 이 혼돈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너는 내 턱밑까지 다가와 나를 다그쳤지만
그래
정말 몇 면이 詩 따위로
혁명도, 사냥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한올의 실이 피륙이 되고
한톨의 메마른 씨앗이 들판을 덮던 날의 확실성마저
다 던져버릴 수 없어 나도 울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네 말대로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 네 말대로 무너진 것은 무너진 것이라고 말하기로 한다
그러나 난파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렇게 잠겨갈 수만은 없다.
나는 가겠다
단 한 발짝이라도..
반 발짝이라도..
도종환 / 길
내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정말로 가슴속에 작은 사랑이라도 품고 있으며,
그 사랑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있는지....
내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정말로 가슴속에 작은 진리라도 품고 있으며,
그 진리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지...
내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정말로 가슴속에 작은 믿음이라도 가지고 있으며,
그 믿음으로 나 자신과 내 이웃을 신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내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정말로 가슴속에 작은 인내라도 품고 있으며,
그 인내로 참고 기다리며 아름답게 침묵하고 있는지...
내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정말로 가슴속에 작은 친절이라도 품고 있으며,
그 친절의 표현으로 작은 미소라도 얼굴이 띄우고 있는지...
내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정말로 가슴속에 작은 평화라도 품고 있으며,
그 평화로 다른 이의 마음에 평안을 전하고 있는지...
내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정말로 가슴속에 작은 용기라도 품고 있으며,
그 용기로 날마다 새로워지며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고 있는지...
내 삶의 가난은 나를 새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배고픔은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해주었고
나를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던 절망들은
도리어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 때문에
떨어지는 굵은 눈망울을 주먹으로 닦으며
내일을 향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했을 때
용기가 가슴속에서 솟아 났습니다.
내 삶 속에서 사랑은 기쁨을 만들어 주었고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행복과 사람을 믿을 수 있고 기댈 수 있고
약속할 수 있고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었습니다.
내 삶을 바라보며 환호하고 기뻐할 수 있는 순간들은
고난을 이겨냈을 때 만들어졌습니다.
삶의 진정한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글 중에서 / 나를 만들어 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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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atter Of Time - Lysdal
첫 번째 글은 블루 님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두 번째 글은 kant1004 님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세 번째 글은 세미코디 님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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