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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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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2004년 12월 15일
이규섭 (칼럼니스트,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1년을 되돌아보면 허공을 깨물듯 허허롭다. 하릴없이 바쁘기만 하고 늘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은 데 세월은 어김없이 나이의 굴레를 덧씌우며 바람처럼 스쳐간다. 번잡한 세상살이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살아온 날들은 회한이 되어 쌓인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사다난(多事多難)' 이란 수식어가 실감날 만큼 사건사고로 얼룩졌다. 꿈 많던 청년 김선일씨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라크 테러집단에 의해 참혹한 죽음을 당한 사건은 온 국민을 참담하게 만들었다.
세상을 향한 적개심으로 무고한 인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의 광기는 떠올리기조차 섬뜩하다. 'OO7작전'을 방불케 한 '휴대폰 컨닝'은 입시위주교육의 병폐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병리현상의 단면이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불황의 늪에 빠진 경기는 '먹는장사'마저 허우적거리게 했고, 기상천외한 '솥단지' 시위로 이어졌다. 청년실업이 늘어나자 대학생들은 자기 이름을 적은 숟가락을 벽에 걸어 일자리 없어 밥 못 먹을 불안한 미래에 항의하는 숟가락 퍼포먼스를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현대판 고려장(高麗葬)'이다. 부모를 병원이나 복지시설, 외딴 집에 버리는 패륜은 인륜의 포기다. 부모를 버리고도 자기 자식은 잘되기를 바랄 수 있는가. 버림을 당하고도 부모들은 혹여 자식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염려되어 이름과 주소를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노인들은 버림만 당하는 게 아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오늘의 현주소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90대 노인을 비롯, 올 들어서만 노인자살이 하루평균 10명 꼴이라니 벼랑 끝에 선 듯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렵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하고 있지만 노인들이 설 땅은 갈수록 좁아져 세상울타리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부모봉양을 미덕으로 삼았던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안타깝다.
예전에는 형제들이 비좁은 방에 딩굴며 살아온 탓에 우애가 깊었다. 아버지는 두려운 존재였고 말씀에는 권위가 섰다. 가난했지만 가족사이엔 끈끈한 정이 묻어났고 부모공경은 미덕이자 의무였다.
그러나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가족은 오직 부부와 자식뿐일 정도로 가족이기주의가 팽배해 졌다. 자식교육을 위해 기러기아빠는 될 수 있어도 홀로된 부모나 병 든 부모를 모시는 것은 꺼린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애라도 볼 수 있고, 손자들 용돈이라도 줄 능력이 있으면 겨우 푸대접을 면하는 처지가 됐다.
이혼으로 인한 가족해체와 불황의 그늘도 부모 모시기를 어렵게 만든다. 이혼으로 아이들은 고아 아닌 고아가 되니 부모들은 자식 덕은커녕 손자를 돌봐야하는 입장이 된다. 실직과 파산, 가정파탄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장이 늘면서 부모를 돌볼 겨를이 없는 현실도 딱하다.
우리시대의 노인들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온갖 고통과 역경을 극복한 세대다. 끼니거르기를 밥먹듯 하면서도 부모공양을 미덕의 으뜸으로 삼았고, 질곡의 가난 속에서도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등골이 휘도록 일하며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부모에게 효(孝)를 행한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들로부터 효를 받지 못하는 최초의 세대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이다. 직장인들은 업무결산에 바쁘고, 주부들은 적자가계부를 정리하며 한숨지을 것이다. 잇따른 송년모임도 심신을 지치게 한다. 이런 때일수록 머리를 빗질하듯 차분하게 한해를 돌이켜보며 자신을 반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 살아가기가 팍팍 할수록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부모님께 희생만 강요하며 이기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올해가 저물기 전에 부모님께 감사와 사랑의 선물을 보내자. 부모의 주름진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질 것이다. 맞벌이로 부모를 모실 수 없는 입장이라면 찾아뵙고 문안인사를 드리고 방에 찬바람은 들지 않는지, 보일러는 고장나지 않았는지 챙겨보자.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부모님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사랑합니다." 전화로라도 위로해드리자.
세상에 어버이 없는 자식은 없다. 아무리 패륜이 판치는 세상이라지만 우리를 있게 해준 부모와의 연을 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부모가 베푼 은혜를 갚는 것은 자식된 도리다. 결국은 우리 모두가 부모가 되고 누구나 늙어 간다.
-한국남동발전(주) 사보 2004년 12월호
2004년 12월 15일
이규섭 (칼럼니스트,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1년을 되돌아보면 허공을 깨물듯 허허롭다. 하릴없이 바쁘기만 하고 늘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은 데 세월은 어김없이 나이의 굴레를 덧씌우며 바람처럼 스쳐간다. 번잡한 세상살이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살아온 날들은 회한이 되어 쌓인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사다난(多事多難)' 이란 수식어가 실감날 만큼 사건사고로 얼룩졌다. 꿈 많던 청년 김선일씨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라크 테러집단에 의해 참혹한 죽음을 당한 사건은 온 국민을 참담하게 만들었다.
세상을 향한 적개심으로 무고한 인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의 광기는 떠올리기조차 섬뜩하다. 'OO7작전'을 방불케 한 '휴대폰 컨닝'은 입시위주교육의 병폐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병리현상의 단면이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불황의 늪에 빠진 경기는 '먹는장사'마저 허우적거리게 했고, 기상천외한 '솥단지' 시위로 이어졌다. 청년실업이 늘어나자 대학생들은 자기 이름을 적은 숟가락을 벽에 걸어 일자리 없어 밥 못 먹을 불안한 미래에 항의하는 숟가락 퍼포먼스를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현대판 고려장(高麗葬)'이다. 부모를 병원이나 복지시설, 외딴 집에 버리는 패륜은 인륜의 포기다. 부모를 버리고도 자기 자식은 잘되기를 바랄 수 있는가. 버림을 당하고도 부모들은 혹여 자식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염려되어 이름과 주소를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노인들은 버림만 당하는 게 아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오늘의 현주소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90대 노인을 비롯, 올 들어서만 노인자살이 하루평균 10명 꼴이라니 벼랑 끝에 선 듯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렵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하고 있지만 노인들이 설 땅은 갈수록 좁아져 세상울타리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부모봉양을 미덕으로 삼았던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안타깝다.
예전에는 형제들이 비좁은 방에 딩굴며 살아온 탓에 우애가 깊었다. 아버지는 두려운 존재였고 말씀에는 권위가 섰다. 가난했지만 가족사이엔 끈끈한 정이 묻어났고 부모공경은 미덕이자 의무였다.
그러나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가족은 오직 부부와 자식뿐일 정도로 가족이기주의가 팽배해 졌다. 자식교육을 위해 기러기아빠는 될 수 있어도 홀로된 부모나 병 든 부모를 모시는 것은 꺼린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애라도 볼 수 있고, 손자들 용돈이라도 줄 능력이 있으면 겨우 푸대접을 면하는 처지가 됐다.
이혼으로 인한 가족해체와 불황의 그늘도 부모 모시기를 어렵게 만든다. 이혼으로 아이들은 고아 아닌 고아가 되니 부모들은 자식 덕은커녕 손자를 돌봐야하는 입장이 된다. 실직과 파산, 가정파탄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장이 늘면서 부모를 돌볼 겨를이 없는 현실도 딱하다.
우리시대의 노인들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온갖 고통과 역경을 극복한 세대다. 끼니거르기를 밥먹듯 하면서도 부모공양을 미덕의 으뜸으로 삼았고, 질곡의 가난 속에서도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등골이 휘도록 일하며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부모에게 효(孝)를 행한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들로부터 효를 받지 못하는 최초의 세대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이다. 직장인들은 업무결산에 바쁘고, 주부들은 적자가계부를 정리하며 한숨지을 것이다. 잇따른 송년모임도 심신을 지치게 한다. 이런 때일수록 머리를 빗질하듯 차분하게 한해를 돌이켜보며 자신을 반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 살아가기가 팍팍 할수록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부모님께 희생만 강요하며 이기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올해가 저물기 전에 부모님께 감사와 사랑의 선물을 보내자. 부모의 주름진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질 것이다. 맞벌이로 부모를 모실 수 없는 입장이라면 찾아뵙고 문안인사를 드리고 방에 찬바람은 들지 않는지, 보일러는 고장나지 않았는지 챙겨보자.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부모님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사랑합니다." 전화로라도 위로해드리자.
세상에 어버이 없는 자식은 없다. 아무리 패륜이 판치는 세상이라지만 우리를 있게 해준 부모와의 연을 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부모가 베푼 은혜를 갚는 것은 자식된 도리다. 결국은 우리 모두가 부모가 되고 누구나 늙어 간다.
-한국남동발전(주) 사보 200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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