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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No.1111]괴이한 북한의 유골 조작

무엇이든 홍순훈............... 조회 수 1369 추천 수 0 2005.01.08 11: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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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2004년 12월 20일

홍순훈 (칼럼니스트, 아하출판사 대표)

최근 NHK의 위성방송인 BS가, 일본 수상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분개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줬다. 북한이 1977년에 납치한 사람의 유골이라고 일본에 보낸 것이 '가짜'라는 것이다. 불에 탄 뼛조각들이었지만 DNA감정을 해 보니, 납치됐던 사람의 것이 아님은 물론 2 사람의 뼈를 합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응하여, 일본은 식량 및 의약품의 대북 지원을 보류했고 추가 경제 제재도 검토한다는 것이다. 일본에 관계된 일이라면 즉각 강경 반응을 보였던 북한이, 이번에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무지해서 그랬는지 일본을 깔보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북한의 괴이한 행태를 여기 짚어 써 본다.

이번 사건이 북한 내에서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내가 1994년(당시 30세) 자살해 일단 병원 뒷산에 묻었다가 2년 후 화장했다'는 말뿐이다. 납치된 여성의 북한인 남편이 유골을 전달하며 했다는 이 말이, 현재로선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사실 이 말을 잘 음미하면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는데, 전체적인 의미는 변명이다. 즉 화장을 하면 재와 뼛조각들이 남고, 그것들은 형질이 변해서 과학적인 실험에 쓸모가 없다. 그런 뼛조각들을 일본에 전달할 수밖에 없게 된 까닭은, 자기 즉 '남편 탓'이란 뜻이다.

그런데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땐 유감스럽게도, 일본의 한 대학 법의학연구실이 쓸모 없는 뼛조각을 가지고도, 이 글 첫머리에 썼듯, DNA감정에 성공한 것이다. 이 성공으로 북한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입증됐다. 그러나 이 입증 이전에, '병원 뒷산에 묻다-> 2년 후 발굴-> 화장했다', 그런 후 일본에 '유골 전달했다'가 서로 이어질 수 없는 거짓말이다.

왜냐 하면, 남편이 아내의 시체를 땅에서 파 내 화장한 해가 1996년이다. 이 화장은 묘지와 시체(살과 뼈)를 없애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다면 잘 묻혀 있는 시체를 파 내 구태어 불에 태울 이유가 없다. 사망 후 바로 시체를 화장하는 것과는 경우가 다르다. 그런데 금년이 2004년이니, 화장한 지 8년이 지났다. 8년 전에 화장하여 없애 버린 시체를 남편이나 북한 당국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 일본에 전달했는가?

오직 하나의 가능성은, 1996년에 화장하고 남은 유골을 납골묘에 보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북한 사정에 맞지 않는다. 연료가 다량으로 소요되는 화장을 북한에서는 하지 않는다. 따라서 화장에나 필요한 납골묘도 없다. 도시든 시골이든 거주지 근처에 공동묘지를 설치하여 봉분 없이 시체를 다닥다닥 묻기만 한다. 이 북한의 장묘 제도는 러시아와 마찬가지며, 북한을 자주 왕래했던 고려인들이 10년도 넘는 기간 필자에게 가끔 들려 준 얘기다.

이런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북한인 남편이 '화장했다'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화장을 했다 해도 시체를 없애기 위해 특수 조건에서 소각한 것이다. 일본에서 납치해온 요시찰 인물을, 북한 당국의 지시 없이 남편 단독으로 매장->발굴->화장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유골에 대해 거짓 설명한 북한인 남편이 과연 '진짜' 남편이었는지 의심이 가는 것이다.

여기서 딜레마에 빠진다. 북한이 납치했던 여성의 유골이라며 일본에 보낸 행위는, 그 여성이 북한 영역 안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또 납치를 사과하는 의미도 있다. 그렇다면 모든 사항을 사실대로 밝혀도 크게 더 불리해 질 것도 없다. 그런데 왜 유골을 조작까지 하여 일본에 보냈는가다.

조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현재 여성이 생존해 있는 경우와, 사망한 경우 두 가지로 가상하여 추측해 본다. 여성이 생존해 있다면, 당연히 유골이 없다. 이 경우는, 그 여성이 당국의 감시를 벗어나 북한 어딘가에 원래 신분이 아닌 다른 신분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러시아의 북극권 오지 마을에 많이 있다. 남쪽에서 살인 등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북쪽으로 도망친다. 그 곳에서는 일손이 모자라 그들을 숨겨 주고 활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북한 당국이 20 몇 년 전에 여성을 납치했던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1-2년 전에 일본과 관계 개선을 하기 위해 그 여성을 찾아 보니 행방불명이 됐다. 그래서 손쉽게 위기를 모면하겠다고 머리를 쓴 것이 유골 조작이다. 이 추측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27년 동안 그 여성의 북한에서의 행적 특히 어느 도시(지역)에 살았었는지가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여성이 사망한 경우는, 익사 등으로 시체를 찾지 못했을 때 그리고 북한 당국이 사망한 여성의 시체를 철저히 없앴을 때다. 이런 경우에만 유골 조작이 필요하다. 그밖의 사망 때는 당연히 유골이 있으며, 그 유골을 수습해 일본에 보내면 됐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북한 당국이 또 다른 납치 피해자의 유골도 다른 사람의 뼈로 바꿔 일본에 보냈다는 것이다. 납치 피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10여명 정도다. 이들 중 두 사람이나 행방불명됐거나 진짜 유골을 찾지 못해서 가짜 유골을 일본에 보냈다고 판단하기는 곤란하다. 납치 피해자 몇 사람 적어도 두 사람은 오래 전에 북한 당국에 의해 같은 방법으로 시체가 철저히 소멸되어 유골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떤 경우든 납치 피해자 여성이 살아 있기만을 빌 뿐이다. 수만명인지 얼마인지도 모를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의 지도자들이 생각할 땐 답답할지 모른다. 한 세대 전에 납치했던 단 몇 사람을 가지고 일본이 계속 시비를 걸고 국교 회복이란 큰 일마저 지연시키는 것이다. 유골까지 만들어 보냈으면 적당히 마무리짓지 못하고 말이다. 아직껏 한반도는 인권이고 나발이고 없던 조선 말기의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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