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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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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2005년 1월 9일
이강룡 /
웹칼럼니스트
인간과 동물이 다른 것은 ‘문명’ 때문이며, 문명은 지식의 축적과 전달로 인해 만들어진다. 책과 그림 사진 영상 등 여러 형식의 자료들에는 앞선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지식이 담겨 있다. ‘백과사전’은 그 안에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이 아니라, 지식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관문이며 연결 고리다.
‘과학동아’ 2004년 8월호에는 인류의 지식 창출 과정을 4단계로 정리한 일본의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의 말이 실려 있다. 첫째 단계는 개인의 암묵적 지식에서 타인의 암묵적 지식으로 바뀌는 단계로 경험이 공유되는 과정이다. 두 번째는 암묵적 지식이 객관적이고 명료한 지식으로 바뀌는 단계이다. 세 번째는 개인과 집단이 공유한 명시적 지식을 통합하는 단계로 개별 지식의 융합으로 새로운 지식 출현하는 지점이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에서는 명시적 지식이 다시 암묵적 지식으로 바뀌는데 새로운 지식이 개인의 지식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더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개인의 개별 지식이 다른 사람의 지식과 융합해 새로운 지식이 되면 이것이 개인에게 유용한 지식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 순환 과정의 도구와 인프라가 되는 것이 책 도서관 영상물 인터넷 등이다. 인터넷이 지식 축적의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는 까닭은 전적으로 보관과 전달의 편리함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지식은 어떻게 축적되는가? 인터넷 사용자들이 한 번 이상은 이용해봤을 지식 검색과 오픈 사전 서비스를 살펴보자. 지식검색이란 인터넷 사용자들끼리 주고받은 질문, 답변 내용을 검색하거나 직접 작성할 수 있는 서비스이고, 오픈사전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어떤 사물이나 현상들에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이를 등록해 다른 네티즌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이다. 정해진 저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오프라인의 지식 축적 과정과 크게 다른 점이다.
지식검색은 인터넷의 효용성을 잘 보여준다.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질문을 올리면 얼굴도 모르는 다른 네티즌이 답변을 해주니 얼마나 신기하고 고마운가. 이렇게 편리하게 지식이 교환되고 축적되지만 맹점은 있다. 바로 신뢰성의 문제이다. 많은 답변 중에서 질문자 혹은 다수가 추천한 정보가 답이 되고 이 답이 마치 좋은 정보인 것처럼 유포되는 점은 지식검색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이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질문은 이틀만 지나도 철지난 게시물이 되어 쉽게 사장돼 버리는 것도 지식검색의 맹점이다.
피에르 레비가 ‘사이버문화’(김도윤 외 역, 문예출판사, 2000.)에서 “사이버 공간의 팽창은 자동적으로 집단적 지성 (Collective Intelligence) 의 증진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그것은 단지 집단적 지성 구축의 호조건만을 구성할 뿐이다” 라고 했는데, 원문의 의미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의 말로 지식 검색의 맹점도 설명할 수 있다.
지식검색이 지식 교환의 편리한 수단으로, 그리고 지식 축적의 주요한 원천정보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바로 네티즌 본인의 ‘경험담(경험적 지식)’이 근간을 이뤄야 한다. ‘좋은 녹차를 사려면 어떻게 하죠?’하고 물었을 때 ‘여기는 보성인데요…’ 라는 답변이 올라온다면 이 것은 분명 좋은 정보, 훌륭한 지식이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지식검색은 백과사전은 아니지만 백과사전보다 훨씬 유용할 때가 많다. ‘백과사전’이라고 하면 우선 브리태니커 같이 두껍고 무거운 종이 백과사전을 연상한다. 백과사전은 보통 각 분야의 학자들이 공동집필 하는데, 만일 학자가 아닌 인터넷 사용자들 모두가 필진으로 참여해 그들의 지식을 한 데로 모아 이를 백과사전처럼 모아둘 순 없을까? 이런 생각이 현실화된 것이 바로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다. 위키피디아는 지식검색과는 또 다른 방식의 지식 축적 개념을 갖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라면 누구나 위키피디아 사이트(http://www.wikipedia.org) 에 접속해 새로운 정보를 수록하거나 기존 정보를 수정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는 1995년 워드 커닝햄 이라는 프로그래머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는데, 하와이어로 ‘빨리빨리’라는 뜻의 ‘위키위키(wikiwiki, ‘위키’로 줄여서 부름)와 백과사전의 영문 표기에서 앞부분을 뗀 ‘pedia’를 합성한 것이다. 어떤 정보가 수록되는 경우 신속하게 수정, 교정되고 전체 정보량도 빠르게 증가하는 백과사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허위 정보 혹은 주제와 상관없는 내용을 걸러내기 위해 운영자들이 최종 편집을 한다. 자료를 올리는 건 인터넷 사용자들의 자유이지만 만일 허위 정보를 올리거나 전체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편집행위를 하는 이들은 운영진의 판단에 따라 탈퇴 조치를 당할 수도 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는 최근 수록 자료물 개수가 1백만 건을 돌파했고 엄청난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지식검색이나 위키피디아 같은 공동 공간에서만 지식 축적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지식 축적의 새로운 방법을 관찰할 수 있다. 요즘 폭넓게 사용자 층을 늘려가고 있는 블로그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블로그 운영자들은 평범한 개인이지만 그 중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도 많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일에 관해 어떤 의미에서 모두 전문가 아닌가.
블로그에 어떤 사안이나 주제에 관해 글을 올릴 경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자료라면 주목을 받게 된다. 이 글을 읽은 이들은 댓글이나 트랙백(블로그에서 어떤 글을 읽고 자신의 블로그에 연관되는 주제의 비슷한 글을 작성한 경우 원문과 서로 연결하는 링크)을 통해 원문이 잘못 전달하고 있는 내용을 바로잡거나, 부족한 내용을 보완하거나, 다른 관점의 의견을 덧붙인다. 글을 올린 것은 개인이지만 글을 읽는 다수가 참여해 개인의 지식은 확장되고 견고해진다.
사람들이 모두 다르듯, 블로그도 모두 다르고, 블로그에 올라가는 글도 모두 다르다. 이 각양각색의 정보들이 모두 지식이 되는 건 아니지만 앞서 말한 ‘교정’과 ‘보완’을 거듭하는 정보들은 각자의 블로그에 축적되어 훌륭한 지식이 된다. 피에르 레비는 또한 “사이버 문화는 ‘획일적 전체성이 없는 보편’ 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보편에 형식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비유하자면 ‘획일적 전체성’은 종이 백과사전이고, ‘그게 없는 보편’은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것이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잉태되어 있다고 했던 데이비드 와인버거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에서의 지식 축적 방법은 좀 더 다양해질 것이며, 설령 초기 단계엔 그것이 불완전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얼마나 큰 가능성을 가졌을지 쉽게 예측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더 편리하고 획기적인 도구가 출현한다고 해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은, 바로 우리의 소박한 경험적 지식이 지식 축적의 원천이 된다는 점이다.
월간 <신용경제> 2004년 11월호.
2005년 1월 9일
이강룡 /
웹칼럼니스트
인간과 동물이 다른 것은 ‘문명’ 때문이며, 문명은 지식의 축적과 전달로 인해 만들어진다. 책과 그림 사진 영상 등 여러 형식의 자료들에는 앞선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지식이 담겨 있다. ‘백과사전’은 그 안에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이 아니라, 지식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관문이며 연결 고리다.
‘과학동아’ 2004년 8월호에는 인류의 지식 창출 과정을 4단계로 정리한 일본의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의 말이 실려 있다. 첫째 단계는 개인의 암묵적 지식에서 타인의 암묵적 지식으로 바뀌는 단계로 경험이 공유되는 과정이다. 두 번째는 암묵적 지식이 객관적이고 명료한 지식으로 바뀌는 단계이다. 세 번째는 개인과 집단이 공유한 명시적 지식을 통합하는 단계로 개별 지식의 융합으로 새로운 지식 출현하는 지점이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에서는 명시적 지식이 다시 암묵적 지식으로 바뀌는데 새로운 지식이 개인의 지식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더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개인의 개별 지식이 다른 사람의 지식과 융합해 새로운 지식이 되면 이것이 개인에게 유용한 지식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 순환 과정의 도구와 인프라가 되는 것이 책 도서관 영상물 인터넷 등이다. 인터넷이 지식 축적의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는 까닭은 전적으로 보관과 전달의 편리함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지식은 어떻게 축적되는가? 인터넷 사용자들이 한 번 이상은 이용해봤을 지식 검색과 오픈 사전 서비스를 살펴보자. 지식검색이란 인터넷 사용자들끼리 주고받은 질문, 답변 내용을 검색하거나 직접 작성할 수 있는 서비스이고, 오픈사전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어떤 사물이나 현상들에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이를 등록해 다른 네티즌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이다. 정해진 저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오프라인의 지식 축적 과정과 크게 다른 점이다.
지식검색은 인터넷의 효용성을 잘 보여준다. 궁금한 점이 있을 때, 질문을 올리면 얼굴도 모르는 다른 네티즌이 답변을 해주니 얼마나 신기하고 고마운가. 이렇게 편리하게 지식이 교환되고 축적되지만 맹점은 있다. 바로 신뢰성의 문제이다. 많은 답변 중에서 질문자 혹은 다수가 추천한 정보가 답이 되고 이 답이 마치 좋은 정보인 것처럼 유포되는 점은 지식검색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이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질문은 이틀만 지나도 철지난 게시물이 되어 쉽게 사장돼 버리는 것도 지식검색의 맹점이다.
피에르 레비가 ‘사이버문화’(김도윤 외 역, 문예출판사, 2000.)에서 “사이버 공간의 팽창은 자동적으로 집단적 지성 (Collective Intelligence) 의 증진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그것은 단지 집단적 지성 구축의 호조건만을 구성할 뿐이다” 라고 했는데, 원문의 의미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의 말로 지식 검색의 맹점도 설명할 수 있다.
지식검색이 지식 교환의 편리한 수단으로, 그리고 지식 축적의 주요한 원천정보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바로 네티즌 본인의 ‘경험담(경험적 지식)’이 근간을 이뤄야 한다. ‘좋은 녹차를 사려면 어떻게 하죠?’하고 물었을 때 ‘여기는 보성인데요…’ 라는 답변이 올라온다면 이 것은 분명 좋은 정보, 훌륭한 지식이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지식검색은 백과사전은 아니지만 백과사전보다 훨씬 유용할 때가 많다. ‘백과사전’이라고 하면 우선 브리태니커 같이 두껍고 무거운 종이 백과사전을 연상한다. 백과사전은 보통 각 분야의 학자들이 공동집필 하는데, 만일 학자가 아닌 인터넷 사용자들 모두가 필진으로 참여해 그들의 지식을 한 데로 모아 이를 백과사전처럼 모아둘 순 없을까? 이런 생각이 현실화된 것이 바로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다. 위키피디아는 지식검색과는 또 다른 방식의 지식 축적 개념을 갖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라면 누구나 위키피디아 사이트(http://www.wikipedia.org) 에 접속해 새로운 정보를 수록하거나 기존 정보를 수정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는 1995년 워드 커닝햄 이라는 프로그래머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는데, 하와이어로 ‘빨리빨리’라는 뜻의 ‘위키위키(wikiwiki, ‘위키’로 줄여서 부름)와 백과사전의 영문 표기에서 앞부분을 뗀 ‘pedia’를 합성한 것이다. 어떤 정보가 수록되는 경우 신속하게 수정, 교정되고 전체 정보량도 빠르게 증가하는 백과사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허위 정보 혹은 주제와 상관없는 내용을 걸러내기 위해 운영자들이 최종 편집을 한다. 자료를 올리는 건 인터넷 사용자들의 자유이지만 만일 허위 정보를 올리거나 전체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편집행위를 하는 이들은 운영진의 판단에 따라 탈퇴 조치를 당할 수도 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는 최근 수록 자료물 개수가 1백만 건을 돌파했고 엄청난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지식검색이나 위키피디아 같은 공동 공간에서만 지식 축적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지식 축적의 새로운 방법을 관찰할 수 있다. 요즘 폭넓게 사용자 층을 늘려가고 있는 블로그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블로그 운영자들은 평범한 개인이지만 그 중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도 많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일에 관해 어떤 의미에서 모두 전문가 아닌가.
블로그에 어떤 사안이나 주제에 관해 글을 올릴 경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자료라면 주목을 받게 된다. 이 글을 읽은 이들은 댓글이나 트랙백(블로그에서 어떤 글을 읽고 자신의 블로그에 연관되는 주제의 비슷한 글을 작성한 경우 원문과 서로 연결하는 링크)을 통해 원문이 잘못 전달하고 있는 내용을 바로잡거나, 부족한 내용을 보완하거나, 다른 관점의 의견을 덧붙인다. 글을 올린 것은 개인이지만 글을 읽는 다수가 참여해 개인의 지식은 확장되고 견고해진다.
사람들이 모두 다르듯, 블로그도 모두 다르고, 블로그에 올라가는 글도 모두 다르다. 이 각양각색의 정보들이 모두 지식이 되는 건 아니지만 앞서 말한 ‘교정’과 ‘보완’을 거듭하는 정보들은 각자의 블로그에 축적되어 훌륭한 지식이 된다. 피에르 레비는 또한 “사이버 문화는 ‘획일적 전체성이 없는 보편’ 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보편에 형식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비유하자면 ‘획일적 전체성’은 종이 백과사전이고, ‘그게 없는 보편’은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것이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잉태되어 있다고 했던 데이비드 와인버거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에서의 지식 축적 방법은 좀 더 다양해질 것이며, 설령 초기 단계엔 그것이 불완전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얼마나 큰 가능성을 가졌을지 쉽게 예측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더 편리하고 획기적인 도구가 출현한다고 해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은, 바로 우리의 소박한 경험적 지식이 지식 축적의 원천이 된다는 점이다.
월간 <신용경제> 200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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