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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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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 뽀개기 2008/12/18
'88만원 세대'는 이명박 대통령 탄생의 주역이다. 1년 전 17대 대선에서 이 세대는 이명박 후보에게 몰표를 주었다.
그 선택 이후 1년이 지났다.
'88만원 세대'는 조용하다. 아래 세대가 '촛불소녀'로 불리며 영웅이 되는 동안 이들은 '20대는 우경화 되었다'는 비판을 듣는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무기력하게 만들었을까?사회학 강사인 박치현씨가 답을 내놓았다.
(글 - 박치현, 홍익대 강사)
88만원 세대가 착각하는 것, '계층 상승 신화'
MB정권 1년 들어 국민들의 MB에 대한 지지도는 30% 이하에서 맴돌고 있다. 아고라의 수많은 글이나 싸이월드 뉴스댓글들을 보면 네티즌들이 MB에 대해 갖고 있는 혐오도는 심각할 지경이다. 기자가 MB관련 뉴스에 사진을 포함시키지 않으면 기자에게 감사할 정도이다. 얼굴만 봐도 싫은 것이다. 이는 불과 1~2년전 강남 거주민이나 나이드신 분들이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해서 갖던 감정을 이미 넘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현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많은 국민이 MB를 찍었는가? 실제로 뽑은 이들의 비율이 20%에 불과했다고 자위해도 소용없다. 민주당이 무능하다고, 진보가 무능하다고 말해도 허탈하기는 마찬가지다. 위 질문을 구체화해보자. 더욱 와닿는 질문은, "왜 20대들이 MB를 가장 많이 지지했는가?"이다.(<시사인> 20호) 나이든 사람들이야 그렇다치고 왜 20대 마저? 나이든 분들이야 인구학의 철칙에 따라 점점 더 인구피라미드상 비율이 줄어들터인데, 앞날이 창창한 20대들이 왜 MB를 가장 많이 지지했단 말인가. 20대의 보수화와 진보에 대한 거부감? 운동권이란 낡은 형식의 사망? 여러가지 주장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모두 지엽적인 설명들이다.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여전히 한국인들이 계층상승의 가능성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는 아메리칸 드림과 닮은 꼴이다. 미국인의 대표적인 믿음이 바로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명제 아닌가? 이러한 호레이쇼 앨저 류의 '자수성가' 이데올로기는 계급구조가 점점 공고해지는 한국사회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다. 자수성가의 이데올로기는 다음과 같은 속성을 갖고 있다.
1)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환원한다.
2) 따라서 사회문제나 구조적 모순을 보지 못하도록 한다.
3) 따라서 다른 사람의 성공과 실패도 그들의 잘못으로 돌린다.
4) 따라서 나 자신 혹은 내 가족, 내 동료들만 경쟁에서 살아남는 식으로 모든 사회적 관계가 구성된다.
5) 결국 사회는 변하지 않고 보수화되며, 경쟁이 격화된다. 부패나 인맥의 부당한 이용 등도 정당화된다.
한국사회는, 일부 반론이 있기는 하지만, 해방과 6.25 전쟁이후 기존의 계층구조가 와해되고 일부 극상류층 이외에는 대부분이 비교적 다 가난한 의도치 않게 평등화된 기간이 있었다. 그래서 해방 이후 자라난 세대들은 옆집 코흘리개 친구가 장관이 되고 사장이 되는 경험(정주영, 이명박, 신격호 등등)을 거쳤다. 여기서 계층상승을 결정하는 건 대체로 '교육'이었다. 좋은 대학을 가면 그 이후의 계층상승은 너무나 쉽고 자연스러운 것이고, 정당한 것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도출되는 생각은, "쟤는 되는데 난 왜 못되나. 내가 공부를 안해서(못해서) 그렇구나" 였다.
이러한 생각은 당연히 사회가 평등하다는 전제를 깔 수 밖에 없다. 평등이 전제되어야 개인의 노력부족이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변수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계급구조가 공고하지 않다면 어느 정도 타당하다.(물론 자본주의 사회는 근본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는 계층상승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상의 틈새가 존재하고, 그 틈새의 크기는 각 나라마다 상대적으로 차이가 있다.)
경쟁에서 승리해서 계층 상승을 이룬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한국이 후기 자본주의로 발전하고,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가 공고화되면서, 부는 강남을 중심으로 양극화되었다. 갈수록 한국사회 계급구조가 공고해지고 양극화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여러 통계들을 볼 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계급구조가 공고화되면서, 이와 더불어 주택가격이 미친듯이 상승하면서(강남의 아파트에 진입하려면 3천만원 평균적인 봉급쟁이가 70년이나 월급 절반을 저축해야 한다!), 더이상 월급을 모아가지고는 오히려 삶의 질이 후퇴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편승한 것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베스트셀러를 필두로한 '재테크 열풍'이다. 전국민이 '10억만들기 프로젝트' '종자돈 마련 프로젝트'에 달려들었으며, 특히 부동산 재테크는 지나친 바 있어 한국인 자산구성의 80%가 부동산 자산(유동성이 심각하게 부족한 자산이 부동산이다.)으로 편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재테크라는 것 역시 '개인 단위'의 계층상승 노력이다. 계급구조가 공고화되었고 저금리 시대라는 환경 하에서 사람들이 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건 필연적이다. 게다가 주택비, 사교육비의 심각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것이다. 나부터 살아야 하는데, 어쩌겠는가? 그래서 민주화 세대였던 386세대도 여기에 동승하였다. 이는 정치사적으로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비극으로 마감했다. 비극의 뒤에는 대운하 이명박이 기다리고 있었다.
토건형 개발의 최대 수혜자인 현재 50대~60대들이 박정희를 그리워하고 이명박을 지지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20대들은 자수성가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우석훈 교수는 <88만원 세대>에서 20대가 처한 사회구조적 현실을 잘 지적해주었다. 하지만 20대들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으로 양육받은 세대이다. 외동아들/딸로 자라난 가족환경도 그렇고, 경쟁적인 교육시스템을 거쳐나왔으며, 대학을 다닐 때도 운동권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가능성은 남겨두고 싶다. 적어도 20대들은 과거의 집단주의(지연, 학연, 혈연 등) 문화에 덜 오염되었다. 전라도 경상도 가르는 것은 그들에게 촌스러운 짓이다. 학연도 대학공동체 문화 와해로 다소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혈연이야 부유층 자제가 아닌 다음에야 가족에 대한 애착이 그리 강하기 어렵다.
이명박이 <신화는 없다>에서 설파한 밑바닥에서 대통령으로의 상승, 이는 기성세대 모두에게 열린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20대들이 그런 삶을 꿈꾸고 실현하기에는 현재의 사회구조내에서는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 90년대 학번까지는 과외 아르바이트 자리가 많았다(지금과 달리 학원 시장은 초기단계였다. 다시 말해 이후에는 학원산업이 팽창하면서 대학생 과외 자리를 가져갔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금액도 지금과 동일했다.(30만원 내외) 즉 지금보다 약 3배 정도의 더 받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반면에 등록금은 현재의 1/3 수준이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대학생이 학자금 대출 등으로 빚쟁이가 굳이 되지 않고도, 공부도 웬만큼 하면서 졸업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충분한 돈이 없으면 대학시절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도 공부를 안해서 네가 그렇게 산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간신히 공부를 잘 해서 졸업을 해도 빚을 떠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구조다.
이러한 답답한 구조 속에서 '경제대통령'이라는 달콤한 수사에 혹해 20대들은 경제가 좋아져서 일자리 상황이 좋아질까 해서 이명박을 찍었을 것이다. 오히려 민주화라는 대의는 답답한 20대들에게는 낭만적 호사로 들렸을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무능함은 이러한 생각을 더욱 강화했을 것이다.
이제 MB정권의 1년이 지났다. 개인 단위로 다시금 열심히 노력해서 더욱 높아지는 경쟁을 통과하며 몸과 마음을 망가뜨려가며 성공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할까..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장기하의 '싸구려커피' 가사)란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 모색하는 것보다는 아마 힘을 합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아직도 지하철 화장실 소변기와 좌변기 앞에는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라고 써있다. 어디에 노력을 투여할 것인가? 다른 방향의 노력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다같이 잘 사는 방법, 정말 없을까? *
'88만원 세대'는 이명박 대통령 탄생의 주역이다. 1년 전 17대 대선에서 이 세대는 이명박 후보에게 몰표를 주었다.
그 선택 이후 1년이 지났다.
'88만원 세대'는 조용하다. 아래 세대가 '촛불소녀'로 불리며 영웅이 되는 동안 이들은 '20대는 우경화 되었다'는 비판을 듣는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무기력하게 만들었을까?사회학 강사인 박치현씨가 답을 내놓았다.
(글 - 박치현, 홍익대 강사)
88만원 세대가 착각하는 것, '계층 상승 신화'
MB정권 1년 들어 국민들의 MB에 대한 지지도는 30% 이하에서 맴돌고 있다. 아고라의 수많은 글이나 싸이월드 뉴스댓글들을 보면 네티즌들이 MB에 대해 갖고 있는 혐오도는 심각할 지경이다. 기자가 MB관련 뉴스에 사진을 포함시키지 않으면 기자에게 감사할 정도이다. 얼굴만 봐도 싫은 것이다. 이는 불과 1~2년전 강남 거주민이나 나이드신 분들이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해서 갖던 감정을 이미 넘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현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많은 국민이 MB를 찍었는가? 실제로 뽑은 이들의 비율이 20%에 불과했다고 자위해도 소용없다. 민주당이 무능하다고, 진보가 무능하다고 말해도 허탈하기는 마찬가지다. 위 질문을 구체화해보자. 더욱 와닿는 질문은, "왜 20대들이 MB를 가장 많이 지지했는가?"이다.(<시사인> 20호) 나이든 사람들이야 그렇다치고 왜 20대 마저? 나이든 분들이야 인구학의 철칙에 따라 점점 더 인구피라미드상 비율이 줄어들터인데, 앞날이 창창한 20대들이 왜 MB를 가장 많이 지지했단 말인가. 20대의 보수화와 진보에 대한 거부감? 운동권이란 낡은 형식의 사망? 여러가지 주장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모두 지엽적인 설명들이다.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여전히 한국인들이 계층상승의 가능성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는 아메리칸 드림과 닮은 꼴이다. 미국인의 대표적인 믿음이 바로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명제 아닌가? 이러한 호레이쇼 앨저 류의 '자수성가' 이데올로기는 계급구조가 점점 공고해지는 한국사회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다. 자수성가의 이데올로기는 다음과 같은 속성을 갖고 있다.
1)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환원한다.
2) 따라서 사회문제나 구조적 모순을 보지 못하도록 한다.
3) 따라서 다른 사람의 성공과 실패도 그들의 잘못으로 돌린다.
4) 따라서 나 자신 혹은 내 가족, 내 동료들만 경쟁에서 살아남는 식으로 모든 사회적 관계가 구성된다.
5) 결국 사회는 변하지 않고 보수화되며, 경쟁이 격화된다. 부패나 인맥의 부당한 이용 등도 정당화된다.
한국사회는, 일부 반론이 있기는 하지만, 해방과 6.25 전쟁이후 기존의 계층구조가 와해되고 일부 극상류층 이외에는 대부분이 비교적 다 가난한 의도치 않게 평등화된 기간이 있었다. 그래서 해방 이후 자라난 세대들은 옆집 코흘리개 친구가 장관이 되고 사장이 되는 경험(정주영, 이명박, 신격호 등등)을 거쳤다. 여기서 계층상승을 결정하는 건 대체로 '교육'이었다. 좋은 대학을 가면 그 이후의 계층상승은 너무나 쉽고 자연스러운 것이고, 정당한 것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도출되는 생각은, "쟤는 되는데 난 왜 못되나. 내가 공부를 안해서(못해서) 그렇구나" 였다.
이러한 생각은 당연히 사회가 평등하다는 전제를 깔 수 밖에 없다. 평등이 전제되어야 개인의 노력부족이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변수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계급구조가 공고하지 않다면 어느 정도 타당하다.(물론 자본주의 사회는 근본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는 계층상승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상의 틈새가 존재하고, 그 틈새의 크기는 각 나라마다 상대적으로 차이가 있다.)
경쟁에서 승리해서 계층 상승을 이룬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한국이 후기 자본주의로 발전하고,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가 공고화되면서, 부는 강남을 중심으로 양극화되었다. 갈수록 한국사회 계급구조가 공고해지고 양극화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여러 통계들을 볼 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계급구조가 공고화되면서, 이와 더불어 주택가격이 미친듯이 상승하면서(강남의 아파트에 진입하려면 3천만원 평균적인 봉급쟁이가 70년이나 월급 절반을 저축해야 한다!), 더이상 월급을 모아가지고는 오히려 삶의 질이 후퇴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편승한 것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베스트셀러를 필두로한 '재테크 열풍'이다. 전국민이 '10억만들기 프로젝트' '종자돈 마련 프로젝트'에 달려들었으며, 특히 부동산 재테크는 지나친 바 있어 한국인 자산구성의 80%가 부동산 자산(유동성이 심각하게 부족한 자산이 부동산이다.)으로 편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재테크라는 것 역시 '개인 단위'의 계층상승 노력이다. 계급구조가 공고화되었고 저금리 시대라는 환경 하에서 사람들이 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건 필연적이다. 게다가 주택비, 사교육비의 심각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것이다. 나부터 살아야 하는데, 어쩌겠는가? 그래서 민주화 세대였던 386세대도 여기에 동승하였다. 이는 정치사적으로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비극으로 마감했다. 비극의 뒤에는 대운하 이명박이 기다리고 있었다.
토건형 개발의 최대 수혜자인 현재 50대~60대들이 박정희를 그리워하고 이명박을 지지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20대들은 자수성가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우석훈 교수는 <88만원 세대>에서 20대가 처한 사회구조적 현실을 잘 지적해주었다. 하지만 20대들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으로 양육받은 세대이다. 외동아들/딸로 자라난 가족환경도 그렇고, 경쟁적인 교육시스템을 거쳐나왔으며, 대학을 다닐 때도 운동권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가능성은 남겨두고 싶다. 적어도 20대들은 과거의 집단주의(지연, 학연, 혈연 등) 문화에 덜 오염되었다. 전라도 경상도 가르는 것은 그들에게 촌스러운 짓이다. 학연도 대학공동체 문화 와해로 다소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혈연이야 부유층 자제가 아닌 다음에야 가족에 대한 애착이 그리 강하기 어렵다.
이명박이 <신화는 없다>에서 설파한 밑바닥에서 대통령으로의 상승, 이는 기성세대 모두에게 열린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20대들이 그런 삶을 꿈꾸고 실현하기에는 현재의 사회구조내에서는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 90년대 학번까지는 과외 아르바이트 자리가 많았다(지금과 달리 학원 시장은 초기단계였다. 다시 말해 이후에는 학원산업이 팽창하면서 대학생 과외 자리를 가져갔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금액도 지금과 동일했다.(30만원 내외) 즉 지금보다 약 3배 정도의 더 받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반면에 등록금은 현재의 1/3 수준이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대학생이 학자금 대출 등으로 빚쟁이가 굳이 되지 않고도, 공부도 웬만큼 하면서 졸업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충분한 돈이 없으면 대학시절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도 공부를 안해서 네가 그렇게 산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간신히 공부를 잘 해서 졸업을 해도 빚을 떠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구조다.
이러한 답답한 구조 속에서 '경제대통령'이라는 달콤한 수사에 혹해 20대들은 경제가 좋아져서 일자리 상황이 좋아질까 해서 이명박을 찍었을 것이다. 오히려 민주화라는 대의는 답답한 20대들에게는 낭만적 호사로 들렸을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무능함은 이러한 생각을 더욱 강화했을 것이다.
이제 MB정권의 1년이 지났다. 개인 단위로 다시금 열심히 노력해서 더욱 높아지는 경쟁을 통과하며 몸과 마음을 망가뜨려가며 성공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할까..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장기하의 '싸구려커피' 가사)란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 모색하는 것보다는 아마 힘을 합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아직도 지하철 화장실 소변기와 좌변기 앞에는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라고 써있다. 어디에 노력을 투여할 것인가? 다른 방향의 노력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다같이 잘 사는 방법, 정말 없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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