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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히브리서 최용우............... 조회 수 853 추천 수 0 2009.04.13 21:56:57
.........
성경본문 : 히11:1-2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4년 1월 25일 주일2부 설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믿음이란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체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과 인간 관계에서는 믿음이란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주시려고 계획을 세워 놓으실지라도 우리가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다 허사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본론>

1. 무엇을 믿을 것인가?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믿으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 만사를 믿으라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먼저 자연 속에 계시된 하나님이 계십니다. 꼭 성경을 통해서 나타나신 특별한 계시의 하나님이 아니라도 일반적으로 우리 주위 자연을 보면 그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는 밝히 볼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9절로 20절에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핑계하는데 성경은 말씀하기를 그런 핑계를 못하도록 하나님이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온 자연에 가득히 채워 놓았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무수한 별들, 찬란한 태양, 밝은 달빛, 그리고 흐르는 강물, 출렁이는 대양, 삼라만상.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길로 지어졌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실히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도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증거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죄악으로 완악해 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눈을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떤 여행자가 사하라 사막을 건너다가 오아시스 곁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를 안내하던 마부가 잠자리에 들어가기전 모래 위에서 무릎을 꿇고 진실하게 기도하는 것을 이 여행자가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물었습니다. “지금 누구에게 기도를 했는가” 하고 마부에게 물으니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여행자는 비웃으며 “하나님을 보았는가”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 마부는 말하기를 “아니오.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줄 어떻게 아는가? 교육이 없고 이론으로 말할 수 없느냐?“ 마부는 그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 여행자는 마부를 향해서 “하나님은 안계신거야. 만물은 다 우연히 계신거야. 당신같은 무식한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고 기도를 해도 우리같이 유식하고 지혜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네. 잘 자게...” 그리고 주막에 들어가서 잠을 잤습니다. 그래서 이 마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너무나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날 밤에 일어나서 자기 낙타를 가지고 이 여행자가 자는 천막 주위를 수 십 바퀴 돌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약대를 묶어놓고 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그 여행자가 자기 천막 주위에 약대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래서 그 안내자를 불러서 “간밤에 낙타가 천막 주위를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줄을 풀어 놓았군.” 그래서 이 안내자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 낙타가 도는 것을 보았습니까?“ ”보지 못했네.“ ”보지도 못했으면서 낙타가 줄을 풀고 천막 주위를 돌아 다녔다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껄걸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낙타 발자국을 가르키면서 ”봐라. 천막 주위에 낙타 발자국이 이렇게 어지럽게 있지 않느냐? 안 보아도 낙타가 천막 주위를 돌아 다녔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지 않느냐?“ 그러자 마부는 ”보십시오.“ 하더니 손가락을 펴서 모래 위를 가르키면서 ”저 햇빛의 반짝이고 찬란한 사막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십시오. 이 오아시스에서 솟아나는 물길을 보십시오. 저 푸른 나무를 보십시오.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아름다운 꽃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발자국이 아닙니까? 당신은 낙타가 천막 주위를 돌아 다니는 것을 안 보고도 발자국이 있으므로 낙타가 주위에 돌아다녔다고 말하는데 이 우주 만물의 이 아름답고 찬란한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눈에 안 보여도 하나님의 손가락이 움직였다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이 신사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편 19편 1절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의 경이 앞에 누가 감히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자연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며 이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연만 보고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뛰어 넘어 하나님 우리에게 특별한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간으로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로 18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하나님이 눈으로는 못 보았지만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을 우리 가운데 나타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만지고, 하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계심을 부인할 수 없게 된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서 우리를 값 주고 사주신 그 대속의 은총이야말로 우리의 심정을 뒤흔들어 놓고 만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중심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못 박혀 몸 찢고 피흘려 청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5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악의 담이 쌓여 우리가 하나님께로 갈 수도 없고 하나님 우리에게도 오시지도 못하는데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담을 헐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제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이 대속의 은총은 너무나 크시고 영광스럽습니다.
스코틀랜드 북부지방에 깊은 계곡을 가로질러 높은 철교가 있었습니다. 그 철교 밑으로 푸른 강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철교 위에서 밑을 내려다 보면 정신이 아찔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이른 아침 양치는 소년이 보니까 간밤에 비가 많이 내리는데 계곡물이 넘쳐나서 다리가 떠내려가고 철교가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기차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소년은 철둑 앞에 서서 옷을 벗어서 막 휘둘렀습니다. “스톱하시오. 스톱하시오.” 그런데 기관사는 보니까 한 양치기 소년이 철로 가운데 서서 막 옷을 흔들고 있으니까 나가라고 기적을 막 울렸습니다. 그래도 안 가고 계속 흔들므로 브레이크를 밟아서 기차를 세웠는데 그 양치기 소년은 기차에 깔려서 산산조각이 찢어져서 죽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 철교 앞에 기차가 서 있는데 내려서 보니까 천길 밑 흐르는 강물로 철교의 교각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 길로 철도가 없는 곳에 기차가 달렸더라면 그것에 탄 수 백 명이 몰사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져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때 기관사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곳에 와서 보십시오.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대신 목숨을 바친 양치기 소년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다 와서 보았습니다. 이 양치기 소년은 미쳐 피할 여력이 없이 기차에 깔려서 그 몸이 산산으로 찢어져 죽었습니다. 이 소년 한사람의 피 값으로 수 백 명 무리가 살았습니다. 이 소년은 우리의 생명을 구한 영웅이라고 해서 신문에 크게 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하신 역할이 그것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옥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달려가는 그 앞길을 막은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지옥가는 길을 막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보혈로 천국가는 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만이 우리를 소망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연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예비하고 찬미할 뿐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특별히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버림을 받아야 마땅할 우리들이 죄 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 든 그대로 예수께 나와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그 보배로운 피가 우리의 죄를 씻고 지옥가는 길을 막아 주시고 천당길을 환하여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을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5절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가 있습니다. 말씀 이외에 어떠한 계시도 우리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기가 막힌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고 묵시를 받았다고 해도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면 그것은 다 거짓이요, 사탄의 궤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모든 우리의 계시나 묵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검증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보다 더 귀중한 것이 없습니다. 이 말씀 속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가 만나야 되고 말씀 속에 계신 예수님을 우리가 따라 가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뛰어넘은 하나님의 계시나 말씀을 뛰어넘은 예수 그리스도의 묵시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사탄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할 수가 있습니다. 사탄도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자기가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묵시와 계시를 줄 수가 있습니다. 이 광막한 영적인 세계 속에서 우리의 갈 길은 성경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아버지를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과 교통 속에서 우리는 방황하지 아니하고 하늘 나라 가는 길을 바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6절로 17절에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우리가 믿습니다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계시기 때문에 믿을 수 있지 말씀이 없으면 믿음이란 허공을 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믿음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2장 7절에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말씀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고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세게 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2.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라

둘째로, 믿음이란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님의 은총을 받아서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통해서 늘 깨닫고 알아야 믿음을 가질수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우리가 전혀 모르잖아요. 영적인 세계는 육신의 세계를 뛰어 넘은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나 귀로 듣는 것이나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감각적인 세계를 완전히 뛰어 넘은 세계가 영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이 우리 마음 속에 깨닫게 해주시므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바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 성령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야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듣고, 마음에 감화 감동을 받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보내주신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항상 우리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성령께 의지해야 됩니다.
로마서 8장 26절로 27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이 끊임없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우리를 안내하시고 비춰 주시고 가르쳐 주시므로 성령의 도움을 통하여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고 그 뜻을 깨달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언제나 꿈꾸고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서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그는 끊임없이 꿈꾸고 믿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가 애굽에서 나왔을 때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를 높은 언덕에 올라오게 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4절로 15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바라보게 하시고 난 다음에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바라봄과 믿음이 바로 우리를 하나님과 교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바라보지도 아니하고 믿지도 아니하면 하나님과 교통할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85세 되었을 때도 자식이 없다고 탄식할 때 하나님은 불러 내어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헤아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아브라함이 그것을 믿으니 하나님의 의로 여기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라보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이 아무리 약속을 주었을지라도 그 약속을 통하여 꿈을 꾸고 믿지 아니하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라보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6편 24절로 27절에 보면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 광야에 나왔으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바라보는 꿈을 저버리고 믿지를 않았습니다. 꿈을 버리고 믿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버렸지요. “저희가 낙토(樂土)를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저희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저가 맹세하시기를 저희로 광야에 엎더지게 하고 또 그 후손을 열방 중에 엎드러뜨리며 각지에 흩어지게 하리라 하셨도다”
꿈과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도 나타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제가 남미선교 중에서 카브렐라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콰테말라에서 가장 큰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님입니다. 그 목사님이 나에게 이런 간증을 해줬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기도 받으러 왔는데 한쪽 귀는 잘 생겼는데 한쪽에는 귀가 전혀 없고 구멍만 뻥뚫려 있더랍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우리 애기 귀가 생기도록 기도를 해주십시오.” 그래서 너무 황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카브렐라 목사님이 자기의 마음 속에 아름다운 귀가 생긴 것을 바라보고 손을 얹고 “하나님 아버지여, 나는 이 아기의 없는 귀, 여기에 아름다운 귓바퀴가 생기고 귀가 창조된 것을 바라보고 믿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간절히 해주면서 그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항상 귀를 만지면서 “아~ 그녀석 귀 잘생겼다.”“귀가 없는데요.”“없어도 있는것처럼 그렇게 바라보고 귀를 늘 쓰다듬으면서 아~ 그녀석 귀 잘생겼다 그렇게 하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다음에 얼마 지나고 난 다음 그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또 기도하려고 보니까 아무 것도 없는데 이만한 것이 혹이 생겼더랍니다, 귀에. 그래서 “목사님 기도를 받고 난 다음 내가 가서 늘 아~ 그녀석 귀가 잘생겼다. 그러면서 쓰다듬으면서 기도를 했는데 혹이 생겼습니다.”그래요. “그래?”그래서 혹에다 손을 얹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아기에게 아름다운 귀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나는 이 아기의 귀에 아름다운 귀가 생기는 것을 바라봅니다. 믿습니다.”그리고 기도를 하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또 한참 있다가 어린 아기를 데리고 왔는데 보니까 혹이 아주 굵게 되었어요. 굵게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카브렐라 목사님이 “하나님 이 혹이 붙어 있을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부채같은 귀가 생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는 귀가 있는 것을 바라보고 믿습니다.”기도하고 난 다음에 눈을 뜨니까 이 혹이 팍 펼쳐져 가지고서 아름다운 귀가 되어 버렸습니다. 카브렐라 목사님은 말하기를 “자기 평생에 그런 희안한 기적은 처음 보았다”고. 기도하는 동안에 그 혹이 펼쳐져서 부채처럼 귀로써 변화된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랬다는 것입니다. 그는 꿈과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가져올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만일 카브렐라 목사님과 그 어머니가 꿈과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이 아무리 계획했더라도 그 어린아이는 귀없이 평생을 지내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꿈을 통하여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믿음을 통해서 오늘날도 위대한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마음에 확신과 안심이 올 때까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받은 줄로 믿음이 올 때까지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조금하다가 말면 안돼요. 마음에 확신과 평안이 와서 하나님께서 응답했다는 확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바라보고 믿고 기도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한번 우리가 바라보고 믿고 기도했으면 낙심하고 뒤로 물러가면 안돼요. 기도하다 말고 포기해 버리고 손들어 버리면 아무 일도 안됩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로 39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하나님은 뒤로 물러가는 자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믿었으면 끝까지 믿어야지. 믿다 말고서 그냥 손을 털어 버리고 낙심해 버리면 가나안 복지에 들어 올려고 국경까지 왔다가 광야로 회진 되어서 멸망 당한 이스라엘 백성과 꼭 같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62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다고 말했습니다.
예레미야 8장 5절에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물러가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한번 주님을 믿고 의지했으면 끝까지 그길로 가십시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마음을 정하고 믿음으로 밀고 나가면 그러한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로부터 여러분께서 꿈을 받을대로 끝까지 꿈을 버리지 마십시오. 끝까지 믿으십시오. 그리고 인내하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은 그러한 사람을 따라 오는 것입니다.

3. 믿음의 선언

셋째로, 믿음이란 것은 여러분께서 꿈을 갖고 믿은 것을 입으로 시인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로 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입을 다물고는 우리가 믿을 수 없어요. 꿈꾸고, 기도하고, 믿은 사실을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현재 이루어지지 아니해도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지금 없어도 있는 것처럼 내가 꿈꾸고,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입으로 시인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수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지었을 때 친히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말씀함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로 3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셨고,“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은 한곳으로 모이고 육지가 드러나고 각종의 열매맺는 풀과 나무가 생겨나라”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해와 달과 별들이 생겨나라”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씀이 나가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말씀은 이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매 새들이 생기고 물고기가 생겼습니다. 말씀하시매 각종 짐승과 곤충들이 땅에 뛰고 기었습니다. 말씀은 창조적인 위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동물보다 위대하게 한 것은 인간이 말할 수 있게 한것입니다. 동물들은 말하지 않잖아요. 인간은 말하잖아요. 인간은 말을 통하여 창조의 능력에 하나님과 동참하는 것입니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위대한 능력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로 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나도 말씀 없이는 된 것이 없습니다. 말씀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지음을 받았으니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 여러분 어떤 말을 하는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말씀이 여러분의 운명을 휘저어 갑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 ‘나는 못산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좌절한다. 나는 절망이다. 내 팔자가 왜 이렇게 나쁘냐.’ 자꾸 그런말을 하면 말이 그것을 만들어냅니다. 말의 위력은 바로 창조적인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창조적이고 건설적이고 성공적이고 승리적인 말씀을 늘하면 그 말씀이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을 또한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도 보면 주님은 모든 것을 말씀으로 이루셨습니다. 여러분 광풍을 잠재우실 때 예수님께서 노를 저었습니까? 아닙니다.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장 39절에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 광풍을 고요하고 잠잠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말씀의 창조적인 위력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병을 고칠때도 마태복음 8장 16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라고 했습니다.
말씀 가지고서 귀신도 쫓아내고 말씀 가지고서 병든자를 다 고쳤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 얼마나 위대한 것입니까? 오늘날 주께서 그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고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가 기도하고 말하는 것은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우리 환경에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문둥병을 고칠 때도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고 귀신을 쫓으실 때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니 나왔습니다. 죄를 사하실 때도 마가복음 2장 5절에 보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물로 퍼부어서 죄를 씻은 것 아닙니다. 말씀 한마디로 죄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실 때도 주님께서는 야이로의 딸을 손잡고서 달리다굼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죽은 자가 일어났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어 상여에 메어 나갈 때 관 뚜껑을 열게 하시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살아서 일어났습니다.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나는 나사로의 무덤의 돌을 옮겨 놓고 나사로야 나오라. 주님이 안마를 한 것 아닙니다. 안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 한 마디 하니 죽은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나던 나사로가 살아서 나왔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한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 보다 더 큰것도 하리니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이 한 것을 우리 믿는 우리들도 할 것이라 했으니 우리도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시인한다는 것 내가 꿈꾸고 믿은 바를 말씀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위대한 창조적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도 입술로 시인해야 구원 받습니다.
로마서 10장 9절로 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내가 예수를 구주로 믿습니다”하고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이 되지 속으로 혼자서 비밀로 아무리 믿어도 입으로 시인하지 아니하면 구원에 이르지 않습니다. 말씀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창조적인 역사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2절로 33절에도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시인하는 것, 부인하는 것 입술의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들이 내려와서는 예수 믿는 사람 붙잡아 놓고 공중(公衆)에서 예수를 부인하라고 자꾸 강요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부인하면 그 말로써 하나님 앞에서 우리 존재도 부인되어 버리고 말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도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고 시인하면 하나님께서도 끝까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시인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입술의 말로 우리가 묶였으며 입술의 말로 우리가 사로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도 선교사로 잘 알려진 스탠리 존스 목사님은 긍정적인 믿음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유명한 저술가요, 선교사요, 복음전도자였습니다. 존스 목사님은 모든 일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 들여 건강하게 살았으나 89세가 가까웠을 때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도 아니고 89세나 된 노인이 중풍으로 쓰러졌으니 희망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수개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말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존스 목사님이 병원에 있으면서 간호사들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존스 목사님이 낮에도 잠자다가 깨든지 아침에 깨어있든지 스탠리 존스 목사님만 만나기만 하면은 이렇게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본인이 마비가 되어서 말을 못하니까 본인의 말을 간호사들 보고 대신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간호사들이 낮이나 밤이나 스탠리 존스 목사님만 보면은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그러면 그는 “아멘. 아멘”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웃었습니다. 그러나 존스 목사님은 입으로 말하는 말의 힘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았었습니다. 아직까지 완전히 낫지 않았는데 그는 인도의 히말리야 산지로 휴양을 갔습니다. 목사님 그곳에서 계속해서 간호사들과 함께 합쳐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그렇게 한 결과로 89세된 노인이 중풍에서 완전히 나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건강을 회복하게 된것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리라는 꿈을 갖고 믿음을 갖고 입술로 고백하면 그 고백하는 말씀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요,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이요, 무를 유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일어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입술로 시인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가 입술로 시인하는 것이 우리 믿음을 풀어 놓는 것입니다.
여러분 수로보니게 여인의 신앙을 보십시오. 예수님께 찾아와서“내 딸이 귀신 들렸사오니 고쳐달라”고 할 때 예수님이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지금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서 왔지 이방인들을 위해서 오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여인이 예수님이 가는 길을 막고 “내 딸을 고쳐 달라”고 할 때 주님이“자식에게 주는 떡을 취해서 개에게는 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때“옳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자녀들의 밥상 밑에 떨어진 부스러기는 주워 먹습니다. 부스러기라도 하나 주십시오.”예수님이 “여인아! 네가 이 말을 했으니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고 했습니다. 말 한마디에 귀신이 들락날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 잘못 하면 귀신이 들어오고 말 잘 하면 귀신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수로보니게 여인이 아직 이방인의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의 고백이 얼마나 위대했든지 “네가 이 말을 했으므로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꿈을 갖고 믿음을 갖고 입술의 고백을 할 때 언제나 마귀와 전쟁을 그치지 말아야 됩니다. 마귀는 와서 자꾸 낙심시킵니다. 마귀는 과거에 실패한 것을 기억나게 합니다. 마귀는 불가능을 자꾸 기억나게 합니다. 마귀는 와서 자꾸 안된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자꾸 훼방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적전쟁을 끊임없이 치릅니다. 우리가 꿈을 꿀 때도 마귀는 훼방하고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도 마귀는 와서“네 믿음은 형편없다. 네 믿음은 약하다. 안된다.”고 말하고 입술을 고백해도 “웃기는 말 하지 말라. 그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자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마귀와 귀신을 쫓아내야만 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잘 때까지 우리는 끊임없는 영적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쟁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마귀와의 전쟁은 입술의 말로써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로 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한 것입니다.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훼방하는 귀신, 기도를 훼방하는 귀신, 믿음을 훼방하는 귀신, 우리의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는 귀신, 분쟁을 가져오는 귀신, 절망을 가져오는 귀신, 이 마귀와 귀신을 예수 이름으로 쫓아 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쫓아내지 아니하면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쫓아내면 물러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어린 양의 피와 그 증거하는 말씀으로 이를 이겼다고 말한 것입니다. 끊임없이 우리는 영적전쟁에서 마귀와 대결하여 마귀를 쫓아내고 이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9절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호하게 마귀와 귀신을 예수 이름으로 쫓아내고 모든 훼방꾼을 물리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환경을 보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꿈꾸고 믿고 입술로 시인하고 마귀를 쫓아내어도 시간이 걸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자매님 한 분이 예수를 믿었는데 남편이 너무나 박대하고 고통을 주었습니다. 할 수 없어서 그는 금식기도원에 와서 사흘동안 금식기도를 하는데 사흘째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내려와서 그 다음 남편이 박대를 해도 그냥 얼굴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왜 나는 이미 응답을 받았다.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 했으니 그저 나는 기다린다. 그는 인내했습니다. 남편이 성경을 찢고 교회 간다고 때리고 해도 그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이미 이겨 놓았다. 당신이 그래도 이미 나는 이겨 놓았다. 시간이 문제다. 그런데 남편이 버스 운전을 하는데 대형사고가 생겼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을 뻔 당했습니다. 남편도 중상을 입어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의사들은 회생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뇌를 다쳐서 혼수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자매님은 남편을 간호하면서 얼굴이 싱글벙글 하니까 옆에 사람들이 ‘아~ 틀림없이 저 부인이 바람이 났구나. 남편이 이제 죽게되니 너무 좋아가지고서 얼굴이 싱글벙글이다.’그러나 그 자매님은 말했습니다. “나는 우리 남편이 안죽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사흘 금식할 동안에 하나님이 기도 응답을 해주셨다고 하셨고 시간이 걸린다고 하셨으니 우리 남편은 절대로 뇌진탕을 당했지만은 죽지 않습니다.”그는 그래서 입술로 시인했습니다. 전혀 가능이 없다고 하는데도 우리 남편은 죽지 않습니다. 우리 남편은 살아납니다. 건강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싱글벙글 싱글벙글 할렐루야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살아났어요. 그리고 난 다음 그 병상에서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성실하고 훌륭한 성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참는다는 것.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고 난 다음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내를 하지 못하고 빨리빨리 당장당장 하면은 일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급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오래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그리고 우리는 담대하게 야웨를 앙망하고 기다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결론>

믿음은 영적인 세계에서 우리의 눈이요 귀요 마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믿음의 손으로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말씀과 기도와 성령님의 은혜 속에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이 갖지 아니한 이 위대한 믿음을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그 대속의 은총을 믿고 말씀을 믿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꿈을 갖고 기도하고 믿고 입술로 시인하고 마귀와 싸우고 우리가 인내하면 우리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여러분의 신앙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서 다스리며
그리스도의 창조적인 역사에 참여하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라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이시간 우리를 도우사 우리의 속에 주신 믿음을 개발하여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기적을 가지고 인생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결신>
여러분 가운데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 하나 잃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목숨은 예수를 믿음으로 건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목숨을 건져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리지 않았으면 우리는 천길만길 지옥으로 곤두박질치고 떨어졌을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시므로 구원을 받습니다. 은혜로 값 없이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고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 예수 믿지 않습니다. 타락했습니다. 나도 예수 믿고 구원 받기를 원하니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하시는 분은 대강당과 텔레비실과 지교회와 지성전과 일본, 도쿄, 오사카, 나고야, 고베, 오야마, 후나바시, 마쯔도, 후키야게, 야마토, 마쓰모도, 나가노, 후지, 노마쓰에서와 국내 지방교회와 기도처에서 기독교 TV, CBS TV, 극동방송, 기독교 방송에서 전 세계 여러 곳에 인터넷을 보는 여러분 그 인터넷 앞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일어나서 여러분이 결단을 내려야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숨어서 구원은 받지 못합니다. 공개적으로 내가 일어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가 기회인 것입니다. 내일이면 늦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이 부르실 때 용감하고도 담대하게 일어나서 여러분의 영혼을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일어나신 여러분 소리내어 이 기도를 따라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저를 씻어 주시옵소서.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저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 구주로 모셔들입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결신카드를 적어서 연보함에 넣어 주시고 예배가 폐한후에 환영회에 꼭 출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유>
성도 여러분 그 자리에 일어나 주십시오. 몸이 아프신 분은 아픈데 손을 얹고 그 외에는 가슴에 손을 얹으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언약을 통해서 우리가 병에서 고침 받은 것을 바라보고 믿습니다. 주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여 주셔서 악한 병을 다 멸하여 주시고 예수 이름으로 고쳐 주시옵소서. 고쳐 주시옵소서. 고쳐 주시옵소서. 악하고 더러운 병마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 갈찌어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사랑하신 아버지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다 고침을 받고 뛰어 일어나 걷게 도와 주시옵시고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내려 놓사오니 맡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매일 우리의 짐을 지시는 야웨 우리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우리 짐을 맡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일을 행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 수 있게 복을 나리워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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