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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사야 나무............... 조회 수 2069 추천 수 0 2009.04.17 15: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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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44:9 
설교자 : 추응식 형제 
참고 : 새길교회 2007.12.16 주일설교 

이사야 44:9, 요한복음 8:32

저는 광고디자인을 가르치고 광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광고 만들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말해야 할 것, 혹은 전달해야 할 것(What to say)을 명확히 하는 일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표현방법(How to say)을 생각하게 됩니다. 광고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전달해야 할 것을 결정할 때는 반드시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왜? 피곤하니까’, ‘2% 부족하니까’, ‘지하 150m 암반수니까’라는 말들은 근거를 제시하는 카피입니다. 또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에서 ‘역시’라는 말은 마켓쉐어가 1위이기 때문에 할 수 있고, 과거 ‘It's Sony’라는 광고는 소니의 시장점유와 신뢰도가 단연 1위라는 근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지지도나 신뢰도가 형편없는 제가 대통령에 출마해서 ‘대통령은 바로 추응식’ 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습겠죠? 이게 우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반 진리.

오늘 읽은 이사야는 공동번역이 더 재밌습니다.
우상을 빚어 만드는 자들은 하나같이 바람잡이, 아무 덕을 끼칠 수 없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바보들이다. 그렇게 눈이 멀어 멋도 모르고 우상을 섬기다가 결국 창피나 당하리라.

예수교에는 보면 전달하는 일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도 뭘 알리려고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도 하나님나라를 전달하려고 연일 노력하셨습니다. 전번 샘물교회도 뭘 전달하러 멀리 위험한 곳에 갔고, 지금 저도 뭘 전달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들 중에는 너무 많이 전달하셔서 몸이 쉬신 분도 더러 계시고. 제 여동생도 전에 안 그랬는데 예배당 일 십 수 년 하다 보니 곱든 목소리가 쉰 목소리로 굳어버렸습니다. 자기 목소리 죽여서 세상 많은 것을 살렸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교나 불교에 익숙해서 그런지 너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반사람들은 예수교 사람들은 말 많아서 싫다고 합니다. 오히려 제가 들은 하나님 말씀은 일할 때 조용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지침대로만 하면, 이런 말 듣지 않고 오히려 광고 카피처럼 ‘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말을 들을 것 같습니다. 진리는 결코 시끄럽지 않습니다.

문제는 전달해야 할 것(What to say)과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How to say it) 사이의 간극입니다. 다시 말해 메시지와 표현 사이의 괴리입니다. 이 괴리를 없애는 첫 번째는 우선 전달하고자 하는 실체가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명확한 근거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예수교에서의 근거는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준 것이 성서, 자연, 양심이라고 설교말씀에서 들은 적 있습니다. 예수교가 죽음의 종교가 아니라 삶의 종교라면 우선 삶 속에서 그 근거가 입증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능한 한 명료하게 입증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우상으로 가득차 있고, 우리는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따르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입맛, 눈맛, 귀맛은 모두 시장의 의도대로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힘써 다가가 들으려 하기보다는 매끈하게 들려지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예배당에서조차도 알게 모르게 수려한 말솜씨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말씀의 은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장의 우상이죠. 이것은 마치 에어콘에 익숙한 사람이 은행처럼 시원한 교회에 앉아서 환경을 걱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 우리 예배당에 김창락 선생님이 말씀증거자로 계신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하시면서 침도 튀기시고 또 그냥 원고를 읽으시면서도 이건 아니고 하시면서 혼자 읽듯 고치시기도 했습니다. 우상의 달콤한 말들에 익숙한 예배당 사람들에게는 다소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분명 예배당에서는 말하는 솜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듣는 솜씨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광고일을 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생활 현상을 그냥 진리와 우상으로 나누어 주로 생각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우상이라고 생각하고 우상을 만들거나 따를 때, 죄를 범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라는 말씀 속의 자유는 생활 속의 표피적 자유, 광고에서 말하는 자유, 즉 감옥에서 나왔다거나 키 크기를 바랐는데 키가 커졌다거나 큰 집에 살고 싶었는데 돈이 많아졌다거나, 오랜 병에서 나았다거나 감옥에서 나왔다거나 단순히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죄에서 해방되는 것, 진리를 따르고 진리로 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다음 절 33절에서도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왜 우리가 자유롭게 될 거라고 말씀하시느냐’고 묻자 34절 예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죄를 범하면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상은 우리의 자유를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것은 탐욕과 어리석음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탐진치(貪瞋痴). 그것은 죄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서에서는 우상을 멀리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만든 이 우상을 걷어내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 예배당에서 우상을 걷어낸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일단은 조용할 것 같습니다. 과장된 말들을 마구 해왔으니까요. 그리고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듯 엄청 작아질 것 같습니다. 아니면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교회가 없어졌다고 좀 당황하다가 곧 엄청나게 큰 교회를 곧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나무도 개도 함께 있는, 온 동네가 교회되어 있는 것을. 그러나 그것을 다시는 교회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나라라고도 부르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그저 섭리대로 살아가는 것뿐 그 이외의 어떤 수사(修辭)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마치 이름 없음이 하나님의 이름이고, 모양 없음이 하나님의 모습인 것처럼 말입니다.

제 자신은 예배당 세례조차도 수사가 될까봐 30년 가까이 망설이고 있습니다.
전에 그림을 좀 그린 적이 있는데 15년 전쯤 전시회 팜프렛 서문에 쓴 글의 일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법을 믿는 사람이다. 이것은 세상 속에서 또 하나의 분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경험한 풍성하고도 엄격한 세계에 대한 고백이다. ……
하나님의 법은 하늘의 법일 뿐만 아니라 땅의 법이다. 그것은 추상적이거나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의 법이다. 그것은 너와 나, 나와 개, 개와 똥, 똥과 꽃, 꽃과 바람의 올바른 관계를 규정한다. 그 법 속에서 우리는 자유한다. ……
하나님의 법은 절대적이다. 그것은 타협이나 적당량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결백, 절대 순결의 엄정을 요구한다. 불행히도 오늘날 우리는 교회 밖 교회에서 그것을 배운다. ……

예수교의 전달도 기본적으로 설득커뮤니케이션입니다. 권면하시니까요. 그리고 설득의 필수 조건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옭고, 좋다. 진리다’라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예수님은 근거로서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산 속에서 흰 수염 날리며 은둔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좋은 말 많이 하시고, 밥도 드시고 술도 드시고, 화도 내시고, 죽는 것 약간 두려워하다가 죽으셨습니다. 대체로 우리 사는 것과 많이 다르지만 성전 앞에서 화내시는 것과 돌아가시기 전에 이 잔 안 마시면 안 되겠느냐고 잠깐 갈등하시는 것은 약간 비슷한 것 같기도 같습니다.

저는 성서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예수 삶에 대한 기록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어떨 때 말 너무 많이 해서 목도 좀 쉬셨는지, 아니면 함석헌 선생님처럼 미성이신지 음식 드실 때, 몇 번쯤 씹어서 넘기셨는지, 우스갯소리와 장난도 좀 치셨는지, 그리고 어떨 때는 제자에게 ‘야 좀 심심하지 않냐?’ 혹 이런 말씀도 하셨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런 기록이 좀 많았으면 우리가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보그, 크로산 등 예수 행적에 대한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그것도 추정, 유추가 많아서 저같이 깊이 사유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관념적으로 전해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의 단편적인 삶을 통해서 전체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살아가고 직장, 동네에서 하나님 세상을 느끼고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직장인 신구대학에 갈 때, 이 직장을 교회 삼기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전 직원과 학생을 교인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여기서 교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2년제 대학생이 매우 모자라는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방 국립대학 대신에 2년제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이 불쌍한 학생들을 구제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식구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곧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저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저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배워서 담배도 끊었고, 그들을 통해서 착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도 배웠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착한 것을 알지 못하고, 어른들이 만든 수능성적 우상 때문에 그들의 뛰어난 재능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을 통해서 소망을 배웠고, 우상이 걷혀진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성서 35절 말씀처럼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물러 있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우리들 사는 이야기를 새길교회라는 곳에서 설교할 거라고 말하니까 교회 오겠다고 하는 걸, 제가 부끄러워 교회를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제가 교회 다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살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예수교 사상이고, 그것에 따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그래야만 저도 자유롭고, 우상을 걷어낸 예수교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전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서 36절에서는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리는 비가 있으므로 흐르는 물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은총의 말씀입니다. 우리 새길이야기 표지는 이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제 말이 또 하나의 우상을 만들지는 않았는지 부담스럽습니다.
끝으로 전에 ‘새길이야기’에 썼던 글의 일부를 읽는 것으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맹목적 하나님 찬양은 하나님 원리 밖에 있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하늘 나는 새만 보고 자유의 스승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것은 우상. 나는 곧 싸우는 새를 보지 않았는가.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 하나님, 하느님, 야훼, 여호와, 무엇이면 어떠랴. 현상과 실존에 매여 있는 나는 가끔‘있’이라 부르고 싶을 때가 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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