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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사랑의 헌신

마가복음 김용덕............... 조회 수 1970 추천 수 0 2009.04.24 23:4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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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4:34-36 
설교자 : 김용덕 형제 
참고 : 새길교회 2008.02.03 주일설교 

막 14:34-36, 마 27:46

지난 12월에 나온 『새길 이야기』에 이정모 선생께서 소개해 주셨습니다만, 테레사 수녀가 (神父와 修士는 Father와 Brother로 구분하면서도 Mother와 Sister는 같이 修女로 부르는 것이 저에게는 어색합니다. 그렇다고 Mother를 神母라고 부르면, 무당이나 점치는 사람 같기도 해서, 일단 수녀로 하겠습니다만 Mother Teresa와 Sister Teresa가 주는 어감은 확실히 다릅니다.) 신앙의 대화를 나눈 편지들이 지난 9월 미국에서 『테레사 수녀 - 나의 빛이여 오소서: 캘커타 聖人의 私信』, Kolodiejchuk, B. edited with commentary, Mother Teresa : Come Be My Light, the Private Writings of the "Saint of Calcutta" (Doubleday, 2007)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편지들은 테레사 수녀가 死後에 파기할 것을 부탁하였지만, 가톨릭교회에서는 오히려 높은 차원의 신앙을 보여준다고 보아 그대로 간행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깊은 신앙을 바탕으로 평생을 캘커타의 극빈자들과 함께 보내다 영광스럽게 죽은, 노벨평화상 수상자, 테레사 수녀가 항상 자신의 신앙이 ‘메마르고, 어둡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있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 하나님의 존재까지도 의심할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나의 웃음은 모든 것을 가리는 가면이나 외투’라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나의 마음 그 자체가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듯 말할 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신이 존재한다는 것에 공허감을 느꼈을지는 몰라도, 테레사 수녀는 자신의 소명이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는 것에서는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회의하지 않는 믿음은 타락하게 마련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확신이 없는 것에 대한 괴로움 속에서 전혀 흔들림 없이, 평생을 죽어가는 극빈자들을 돌보며 살다간 희생 ? 봉사의 삶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여기에서 저는 항상 궁금했던, 숨을 거두기 직전의 예수의 마지막 말이 떠오릅니다. 마태복음 ? 마가복음에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로 기술되었습니다만, 누가복음에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다 이루었다”로 나옵니다. 예수의 마지막 말이 서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야 수십 년이 지난 후의 기록자 또는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제게는 그렇게 결정적인 순간의 말이 다르게 기록되었다는 것에 아직도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로 이어지는 것으로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나의 하나님’과 ‘아버지’의 차이는 큰 신학적 논쟁거리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요한복음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한 것은 좀 비약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가 항상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어떻게 예수께서 가장 장엄해야 할 그 순간에 가장 약한 모습을 보였나 하는 것입니다. 극심한 육체적인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 인간의 모습을 한 예수의 가장 자연스러운 마지막 모습이고, 그 후 부활 승천하게 되는 神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은 물론 장엄합니다.

여기에서 인간 예수가 겪은 고통과 괴로움이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느낄 정도였다면, 테레사 수녀가 인도의 극빈자들이 어렵게 태어나 고통 속에서 이유 없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 때,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나아가 하나님은 존재하는 것인지 조차 의문을 품었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가 자기의 고난이 십자가 위에서 고통 속에 죽어간 예수의 고난의 한 부분이라고 받아들이게 될 때 테레사 수녀의 소명감은, 승화되어, 오히려 하나님께서 내려준 은혜로 받아들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통에 대한 대처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고통에 맞서 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고통의 포로가 되는 수가 많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기려 하지 않고 서서히 고통과 일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병을 이기려 하지 말고 나의 한 부분으로 삼고 지내라는 충고와도 상통하는 것이겠지요. 테레사 수녀는 다른 나라의 죽어가는 극빈자들 속에 들어가 그들과 일체가 됨으로써 고통 그 자체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내가 아마도 [사후에] 聖者가 된다고 해도 나는 그대로 하늘나라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 지상의 어둠 속에서 그들에게 빛을 비춰주기 위해서”라고 한 말은 테레사 수녀의 참다운 자기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면서도 남을 위하여 헌신하고 주님께 봉사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최고 형태를 나타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자신을 모두 버림으로써, 지상에서 주님을 보지는 못했지만 세상은 테레사 수녀에게서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젊은 시절 감동을 받았던 김은국의 『순교자』(Richard Kim, The Martyred)라는 소설이 생각나 그 내용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한국전쟁 중 1950년 10월, 평양으로 진격해 들어간 이 대위에게 정보책임자인 민 대령은 6.25 전쟁 발발 직전 평양에서 처형당한 12명의 목사들에 대한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라고 명합니다. 체포된 14명의 목사 중 살아난 2명은 고문으로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킨 한 목사와 처형을 면한 이유가 석연치 않은 신 목사뿐입니다. 신 목사는 죽은 12명의 목사를 배반하였기 때문에 살아났다는 소문이 돌자,  동료 목사들에게 “여러분 내가 죄를 지었소. 우리 순교자들을 배반한 사람은 바로 나였소.”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신 목사는 이 지상에서는 죄를 지었어도 천국에서는 구원받을 수 있다고 신도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라고 설교합니다.

그러나 이 목사집단처형의 책임자였던 인민군 장 소좌가 체포되면서, 죽은 12명의 목사들은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서로들 배신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까지 비난하면서 개처럼 죽어갔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 때 신 목사는 끝끝내 신앙을 지키며 정 소좌 얼굴에 침까지 뱉었기 때문에, 그 용기를 사서 처형을 면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들 목사 중 지도자격인 박 목사는 처형 직전 기도할 시간을 주었을 때 동료 목사들이 마지막 기도를 부탁하자 “나는 기도할 수 없소. 의롭지 않은 하나님에게는 기도하고 싶지 않으니까.”라고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때, 젊어서부터 박 목사를 따르던 한 목사가 정신착란에 빠졌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개처럼 죽어 간’ 12명의 목사들이 모두 비난 받아야 될 대상은 아닐 것입니다. 일본의 가톨릭 소설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침묵』에는, 背敎의 증거로서 십자가를 밟게 했을 때 신앙을 버리고라도 살기 위하여 또는 고문을 견디지 못하여 십자가를 밟아야 하는 기독교도들의 처절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왜 침묵하고 계시냐고 부르짖지만 끝내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들이 밟는 십자가의 고통을 지신 분이기 때문에 배교를 해야만 하는 그 아픈 심령을 위로하고 그 짐을 같이 지고 계신 분이라는 얘기이지요.

우리의 신 목사는 개인적으로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가족을 잃은 슬픈 기억을 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늦게 결혼하여 얻은 아들을 잃자 신 목사의 부인은 아들 죽은 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며 금식기도에만 매달립니다. 이를 보다 못한 신 목사는 아내에게 천당에서 아들을 만난다는 것은 헛된 꿈일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그러자 아내는 절망에 빠져 죽고, 신 목사는 다시는 이 ‘무서운 얘기’를 입 밖에 내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던 것입니다.

신 목사는 “될 수만 있으면 많은 사람이 절망의 노예가 되지 않고, 많은 사람이 뭔가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 세상의 고통을 이겨내고, 많은 사람이 평화와 믿음과 축복의 환상 속에서 눈을 감게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이 대위에게 밝히며, 오히려 이 대위로부터 기도 받기를 요청합니다. 1.4 후퇴로 모두들 평양을 떠날 때 신 목사는 떠나기를 거부합니다. 그 후 신 목사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인민군에게 처형당했다고도 하고 어딘가에 숨어서 신도를 이끌고 있다고도 하고 나중에 월남하여 어딘가에서 목회하고 있다고도 하는 등 마치 부활한 예수처럼 이곳저곳에서 신 목사에 관한 풍문이 들려 올 뿐입니다. 소설가 김은국이 목사님의 성을 ‘신’으로 정한 것은 (물론 영어소설이지만, 한국인으로서 작가가 붙인 성), ‘神’과의 상징적 연상을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고 저 나름대로 억측을 해 보기도 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소설 속의 신 목사를 테레사 수녀와 동일시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존재를 갈구하고 있는 데에도 찾아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과 그 보상으로서의 행동에 유사한 점이 느껴지고 있다는 것만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하나님의 존재를 항상 느끼며 축복 속에 봉사의 삶을 살지 못하고 ‘메마르고, 어둡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죽어가는 극빈자들을 돌보며 흔들림 없이 살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살아있는 동안 주님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곧 하나님의 不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테레사 수녀에게는 그 不在가 위대한 일을 이루시려 한 하나님의 선물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언제나 승리하는, 확신에 찬 聖者보다는 항상 불안함 속에서 자기 존재를 낮추어 보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테레사 수녀는 “나에게 있어, 침묵과 공허함은 너무 소중하여, [내가 찾는 것에 대하여] 보여지기 보다는 보려고 하고, 들려지기 보다는 들으려 하게 됩니다…….하나님이 [도구로서] 자유롭게 부릴 수 있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 주기 바랍니다.”고 신뢰하는 신부님께 부탁하기도 하였습니다.

불공평하고 불의한 것이 횡행하고, 정의가 펼쳐지지 못하는 이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고 느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 까지 의문을 갖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는 거기에 내가 있다.”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우리는 신앙의 빛줄기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우주만물의 주재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범위를 무한대로 넓힐 것을 피조물인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실지 모릅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섭리 속에 존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여 외로움과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고통을 이기며 사랑과 헌신을 하게 하는 그 動力(driving force, motive)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기도
인간의 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을 찾도록, 서로 사랑하도록, 우주만물의 창조질서를 지키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세상사의 喜怒哀樂에 흔들리지 않는 절대사랑을 준행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일깨워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의 판단으로 재단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기 빕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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