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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이상익............... 조회 수 1773 추천 수 0 2009.05.12 20: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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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겔37:15~22 
설교자 : 이상익 형제 
참고 : 시인/성균관대학교사회복지대학원겸임교수/새길교회 주일설교/ 2008.08.03 

에스겔 37 : 15 ~ 22, 마태복음 5 : 23 ~ 24

1.
1945.8.15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민족자주에 의한 해방이 아니었습니다. 2차대전 후 세계질서 재편과정에서 ‘패전국식민지’는‘ 승전국의 전리품’으로 처리되면서 남쪽엔 미군이 북쪽엔 소련군이 들어오게 되었고 따라서 그 후 해방의 벅찬 꿈은 미.소 열강의 신탁통치미명하에 분단으로 깨어지고 결국 동서냉전체제의 희생양 되어버렸습니다.
분단은 6.25의 동족살상의 장으로 되었고 남북체제는 군사문화와 안보 이데올로기 강화로 인권, 자유가 유보, 유린된 채 극단적 적개심만 남북 형제간에 조장되어 이어져 오게 되었습니다.
미.소 주권 하에 대외적으론 종속, 대내적으론 군사독재체제가 형성되고 이것은 구조 악으로 화해 분단의 골은 더욱 심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공산국가의 몰락과 함께 탈냉전시대가 도래, 이 땅에도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과 민주화운동, 시민사회의 등장 등으로 분단이 우리민족의 모순의 총체임을 알게 되면서 통일은 필히 실현해야 될 민족사적 과제로 확인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젠 전쟁(물리적 힘) + 외세의존 + 군사독재통치에 의한 남북의 대립이 아니라 상호인정과 평화공존의 길로 가야 됨을 인식하고 우리 기독교에서도 희년선포와 평화선포를 하였던 것입니다.

2.
평화는 전쟁의 반대개념이긴 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없다는 것이 평화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전쟁 없는 것이 <소극적 평화>라면, 평화의 실질적 삶의 내용, 즉 충분조건이 갖춰졌을 때의 평화를 <적극적 평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은 어떻습니까? 말씀드린 평화의 뜻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현실입니다.
즉,<소극적 평화>도 <적극적 평화>도 기대할 수 없는 상태, 잠재적 불안 요소가 항상 상존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금강산 관광객 총기사망사건이 그 일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와 같은 잠재적 불안을 없애기 위해 평화의 기운이 남과 북에 깃들기를 하나님께 기원하는 것이고 신앙고백 차원에서 평화지킴이로서의 삶을 생활 속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병행한다고 봅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평화를 성취하시기 위해 몸을 입으셨는데 이런 점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쩌면 <통일의 당위성>보다<평화의 실현>을 위한<실천적 삶>이 먼저여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평화는 실천 속에서 성육신하는 것이지 부르짖는 외침 속에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천>은 폭넓은 삶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3.
전쟁 없는 <소극적 평화상태>도 우리의 실질적 삶의 내용이 평화스러운가의 <적극적 평화상태>도 모두 다 고민되는 상황입니다.
남한의 군사비는 226억불인데 이것은 1년 총예산의 9%에 해당되며 세계6-8위이고 북한은 55억불로서 총 예산의30%인데 세계22위입니다. 오늘날 북쪽이 저렇게 못 사는 이유 중의 하나가 막대한 군사비 때문입니다. 아마 세계에서 군사비 책정이 1위일 겁니다. 만약 북한당국이 군사비의 10%만 줄여도 북한주민 2천만 명에게 매달 생계비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 남쪽도 20%만 줄여도 380만 중고교생들에게 무료교육을 시킬 수 있으며, 30%만 줄인다면 대학생 100만 명을 전액 무료로 교육을 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1만5천 중소기업에 매년 5억씩을 도와줄 수 있게 됩니다.
무역총액은 남 7천3백억 불, 북 29억불로서 248배 차이가 나며, 수출총액은 남 3천7백억불, 북 9억불로서 411배의 차이가 납니다.
전력발전 용량은 남 6천8백만kw, 북 700만kw인데 남 1일 평균 4천8백만kw이고 지금껏 5천2백만kw 최고소비량입니다. 만약 남이 북에 200만kw만 도와주게 되면 북한주민 400만 명이 집에 불을 켤 수가 있게 됩니다. 남쪽은 평균2천만kw 남고 북은 절대부족으로 최소 2천만 되어야 공장가동이 됩니다. 발전량은 남 4천억kwh이고 북은 불과 237억kwh에 불과합니다.
원유수입량은 남 8억7천4백만 배럴, 북 383만 배럴로서 230배의 차이가 납니다.
남한은 원유수입 세계4위이고 소비량 세계6위의 대단한 나라입니다.
2006년, 남한 2일사용량과 북한 1년 동안 수입량과 동일합니다.
자동차 생산량은 남 410만 대, 북 4천6백 대로서 약 1000배 차이입니다.
남한은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에 이어 세계 5번째 핵 강국인데 20개 핵발전소를 소유하고 있으며 마음먹으면 6개월 내 핵 제조가 가능합니다. 강대국의 반대와 비핵화선언으로 핵 처리시설을 가동 않고 있을 뿐입니다.

4.
여러분,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남쪽이 북쪽보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대략 100배의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잘 살고 있지요. 전쟁 일어날 가능은 남북대비로 봐서도 극히 쉬운 일이 아니고, 미-중간의 이해득실 상호견제 측면에서 봐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전쟁 없는 소극적 평화상태 이것마저도 언제 어떻게 깨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또한 한반도의 정세입니다.
여기 어르신들도 계시지만 6.25의 경험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피해가 막대하여 그 이야기를 밤샘해도 모자라니 접어두더라도 몇 가지만 봅시다.
1999년<연평해전>때 남쪽은 사망자 없이 부상 9명이었고, 북쪽은 사망자 30여명과 부상자 90여명이었습니다.
2002년<서해교전>때는 남쪽 6명 사망, 북쪽 20여명 혹은 그 이상 사망하였고 2008년<금강산관광객>1명이 북한 초병의 총격에 의해 사망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가랑비를 자꾸 맞으면 언제 우리 한반도에 소나기가 덮치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여러분, 1994년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날 뻔하였습니다. 그랬으면 저도 우리 교우분들도 아마 이 땅의 사람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미국 클린턴 정부의 북한 영변 핵 기지 정밀폭파 계획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모르고 편히 주무셨지만 몸서리치는 시간이었지요. SERCHCAL STRIKE, 외과의사 가 곪은 부위를 타켓으로 살을 도려내듯 영변의 핵 기지를 도려내겠다는 전쟁계획이었습니다.
미군 소계령 계획이 짜여졌는데 자기나라 미군을 보호하려고 미리 빼놓는거죠. 클린턴이 럭크 대장을 호출하였을 때 “각하, 남쪽만 100만 명이 바로 사망하고 군비 100조 소요와 경제비용1000조가 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그때는 공화당이 아닌 비교적 인권을 중시하고 다소 진보적인 민주당의 클린턴 정부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의 국익과 관련해서는 공화당이던 민주당이던 큰 차이가 없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무서운 나라입니다. 전 세계 군사비의 48-50%인 약5200억불을 쓰고 있고 나머지 전 세계국가가 그 반을 쓰고 있습니다. 군비100조는 미국1년 군사비의 5분의1에 해당될 뿐입니다만 우리나라 5년 군사비총액에 해당되며 경제 비용 1000조는 우리나라 총예산 4년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이 숨 막히는 순간에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킴으로서 한반도의 전쟁계획은 유야무야되고 말았습니다만 여러분 얼마나 숨막히는 순간이 아니고 무엇이었겠습니까?
여러분 전쟁나면 “너만 죽고 나는 산다”는 것. 한반도에서 이게 가능할까요? 극우주의자,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오늘도 미국이 저들을 초토화 시켜 줬으면 하는 엄청난 죄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이라면 진실로 이들이 이 땅의 형제들이라고 할 수 있을 까요. 예수를 따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북한이 망하는 길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민란이고 둘째는 전쟁입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남한도 같이 망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시뮬레이션 결과 만약 만 명의 북쪽 주민이 동시에 내려오면 서울 전체가 마비되고 십만 명이 오면 남한 전체가 마비되어 결국 모두 죽는다는 것입니다. 치안은요, 위생은요, 숙박, 식사는요, 강도 강간 살인은요, 교통은요, 고속도로에 그대로 서서 꼼짝도 못하고 죽습니다.

5.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지만 당장 통일은 어렵고, 가능치도 않고 이 시점에서는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차이가 심한데 무리수를 두면 다 죽게 될 겁니다. 10년, 20년 뒤에 통일이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공식 비공식으로 북한에 16번 다녀왔습니다. 그 전에는 통일 지상주의자 였습니다. 아이 두 명의 이름도 순 우리말로서 그 의미가 “민족자주통일”입니다. 민주화운동도 군사독재종식을 위한 싸움도 민족통일을 위한 과정이고 궁극적인 것은 통일에 있었습니다. 북한을 다녀 온 후 저는 입장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만약 지금 통일되면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남북의 경제규모가 너무 크다는 것이고 둘째, 이념적 괴리현상 또한 너무 큽니다. 그러므로 많은 분야에서 상호교류를 통해 서로 더 알고 이질감을 메꿔 나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됩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토의통일, 정치체제의 통일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의 통일의 의지 즉 평화를 어떻게 실천해 낼 것 인가입니다. 여기에 우리 기독인들은 어떻게 성육신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남과 북이 화해와 평화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의 질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대화와 평화로 되어져야함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고 제3국 특히 미국에 “당신들은 철저히 국익차원에서 접근 하지만, 우리는 국익+민족 문제 아니냐.”라고 힘을 모아 설득해야합니다.
여러모로 북쪽 돕는 일을 쉼 없이 해야 합니다.
물론 암초들이 많습니다. 남북 양쪽의 극우강경주의자가 있습니다. 여러분, 극우와 극우가 만나면 전쟁 외는 달리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그리고 “왜 퍼 주느냐”고 기계적 상호주의를 외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서울역의 수많은 노숙자들, 지하도의 구걸인들. 이들도 못 돕는데 무슨 놈의 북한 돕기냐?”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미국도 일본도 영국도 노숙자들 걸인들 다 있습니다. 러시아에 갔더니 손자부터 할아버지 거지까지 떼로 몰려다니는 가족거지들도 있었습니다. 아마 북한에 퍼 준다고 말하는 분들은 평생에 이웃에 단돈 만원의 사랑의 손길도 펼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북보다 적어도 백배는 잘 살고 있습니다.
부자 형님이 밥도 못 먹는 가난한 동생에게 쌀 주고 ‘갚으라’고 한다면 이게 말이나 되는 것일까요? 상호주의란 힘이 비슷할 때, 그러한 여건이 될 때 적용 하는 것 아닙니까?
적극적인 평화는 삶과 생활 속에서 실현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이 땅에서의 의미는 “너희들은 생활 속에서 평화실천의 삶을 살아라.” 바로 이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땅에서의 예수 따름이들의 의무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에스겔의 비젼은 “남과 북이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막대기였으나 이제는 하나가 되라는 것 입니다.
한 왕의 백성이 되어 평화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서로를 이해하며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안에서 굳게 손을 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나에게 예배를 드리려면 먼저 형제와 화해한 후 내게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945년 8.15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북이 갈라지면서 반쪽해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남북이 하나 될 때, 이 땅은 완전한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서가 우리에게 주는 참된 해방, 참된 평화의 의미일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 따름이인 우리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통일을 향한 화해와 평화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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