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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영성

베드로전 임영수 목사............... 조회 수 1951 추천 수 0 2009.05.21 10: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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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벧전3:15∼16 
설교자 : 임영수 목사 
참고 : 주님의교회 1998. 7. 5 주일낮 예배 

기독교 영성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면 기독교 신앙은 시대의 변천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받아 오곤 합니다. 그러한 도전은 기독교 신앙을 무력화시키거나 약화시키기 보다 오히려 신앙의 내용을 보다 온전하게 깊게 넓게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곤 하였습니다.


비유로 말씀드리면 어떤 사람이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아주 값비싼 보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과 함께 그에게 그 보화의 가치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 보화는 그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그 보화 없이는 살 수 없게 될 정도로 그것은 값비싼 것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도전은 진리의 의미를 더욱 극대화 시켜 가고 있고 그 가치를 더욱 더 높여 가고 있습니다. 도전은 기독교 신앙의 감추어진 면을 새롭게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를 가리켜 포스트 모던니즘(post modernism), 해체주의시대라고 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모든 전통적 가치가 다 해체되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와 더불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삶의 목적과 가치를 재통합해 가려는 진지한 노력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기독교 신앙 역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요즈음 서구 교회에서 그들 스스로 제기하는 주요한 신학적 물음들 가운데 하나가 오늘의 다원주의 시대에서 기독교 신앙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입니다. 그러한 물음은 저 역시 지난날 한때 목회의 현장에서 진지하게 질문해 오던 문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서구교회가 그러한 물음을 오늘에 와서 제기하게 되는 것은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시대에만 해도 서구인들은 기독교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종교라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동서의 교류가 깊어지고 과학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확신하고 있던 기독교 신앙에 틈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한계를 인식하면서 동양의 신비스러운 종교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전에는 그들에게 문제시되지 않았던 종교적 물음이 새롭게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기독교만이 진정 구원의 종교인가? 타종교에는 구원이 없는가? 인간 문제의 해답이 진정 기독교에만 있는가? 그러한 물음들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맹목적인 강요보다 타종교와의 비교에서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의미를 새롭게 찾아보려는 움직임으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 맹목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절대성을 변증하면서 타종교의 무익성을 역설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상대적 신앙을 강조하지도 않겠습니다. 저는 오늘과 같은 다원주의 시대에서 기독교 영성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타종교의 구원이 있다 없다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오늘의 시대에 기독교 신앙을 값비싼 보화로 소중하게 간직해 갈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 가는 길은 편협 되고 배타적인 교리보다 기독교 영성이 어떤 것인가를 재정립하는데 있습니다. 영성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종교에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 특성은 다릅니다.

먼저, 기독교 영성은 인간이 산 소망으로 깨어나는 것입니다.


"인생에 관한 다음과 같은 우화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호수와 산, 전원과 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지방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버스창에는 커튼이 내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차창 밖으로 무엇이 지나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오직 그들의 관심은 누가 버스 상석에 앉을 것인가, 누구에게 갈채를 보낼 것인가, 누구를 중요한 인물로 여길 것인가에 대해 말다툼하느라고 여행의 모든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태도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럴 것입니다."


이 우화는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잘못하면 그러한 상태에서 살다가 생을 끝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암시해 주는 우화입니다. 자기 자신은 매우 중요한 일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진정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눈을 뜨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다른 한 차원의 삶에 대해 평생 눈을 뜨지 못한 채 생을 마칠 수 있습니다.


다시 잠시 우화의 내용으로 돌아가면, 기독교 복음은 버스 안에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가리워진 커튼 하나 하나를 젖혀 주면서 그들에게 차창 밖의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버스 창의 커튼이 걷히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 앞에 전개되는 새로운 현실 앞에 경이로움과 감탄을 연발하면서 한편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산 소망으로 깨어나면서 세상과 생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독교 영성은 자기 부인이며 동시에 자기 초월입니다. 모든 종교에 자기 부인과 자기 초월이라는 두 요소가 다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자기 부인과 자기 초월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관련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새로운 삶으로 현재의 자신을 부인하고, 새 가치, 새 의미, 새 목표와 일치시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양 종교에서 자기 부인은 자연과 관련됩니다. 현실을 떠나서 자연과 자신을 일치시켜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 24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세 번째, 기독교 영성은 적극적인 현실 긍정입니다. 일반적으로 종교 생활을 한다고 할 때 자신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현실을 긍정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현실을 악한 것으로 부인하고 내세를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 영성은 현실을 악한 것으로, 자신의 번영과 안전을 위한 수단으로 받아 드리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

에서 현실 긍정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이 세상에 오셨고, 종국에 가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산 마더 테레사 여사가 세상을 떠난 후 어느 외국 주간지에 실린 글을 읽었습니다. 그 글의 내용 가운데 지금도 인상에 남는 내용은, 마더 테레사를 비롯해서 그와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에게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을 돕는 일은 단순히 봉사의 차원이 아니라, 버림받은 그들의 눈동자 속에서 그들과 함께 고통 당하며 눈물 흘리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현실을 긍정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소망과 평강의 일에 참여해 간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이 빨리 불의 심판으로 다 소멸되어 없어지고 자기들만 하늘나라로 올리워지기를 기다리는 이기주의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의 사역에 믿음, 소망, 사랑으로 참여해 가는 평화의 사역자들(peace-maker)입니다.


네 번째, 기독교 영성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지속적으로 갱신, 새롭게 형성 되어 가는 삶입니다. 시편 23편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3절)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새로운 힘을 부여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서 무기력, 회의, 도전, 좌절, 무의미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에 참여해 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성령의 능력 안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기독교 영성은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어떤 에너지를 개발해서 극대화시켜 수퍼맨이 되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삶으로 형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으로 살아가는 독특한 삶의 방식입니다. 사도 바울의 모든 서신에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말씀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말씀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넓고 깊게 벌어진 간격(gulf)를 연결해 주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평강은 좀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워지는 새로운 관계를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것보다 우선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새롭게 해 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새롭게 해 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 자라가야 하고 그 분에게 복종해 가는 삶이 새로운 차원에서 이루워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영성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온전한 연합입니다. 이것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부활의 때에 이루어지는 우리의 희망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 신앙이 단순히 내세나 현세에서의 성공에 그 의미를 국한시킬 때 우리는 하나님의 값비싼 은혜를 매우 값싼 은혜로 만들어 버리는 과오를 저지르게 됩니다. 값싼 은혜는 깊이 소중하게 간직할 만한 보화가 되지 못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생, 역사, 우주, 현세는 물론 영원한 생에까지 깊은 의미를 부여해 주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이 값비싼 것이 돼지에게 던져진 진주가 되어 의미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교회는 계속 깨어서 신앙의 값진 의미를 밝혀 내고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서의 싸움은 하나님의 값비싼 은혜를 값싼 것으로 바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소망의 내용을 묻는 사람들에게 믿는 자로서 소망의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해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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