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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흔 칼럼] 노무현 대통령 서거와 십자군 전쟁
진리를 위해 폭력을 행사한 교황 우르바누스 2세 [2009-05-27 07:23]
▲ 송태흔 목사(동인교회). |
이토록 어려운 시기, 우르바누스는 1035년 프랑스 샹파뉴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수아송과 랭스에서 공부한 뒤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던 랭스 교구에서 대부제(행정 보좌관을 임명하는 성직)가 됐다. 이후 11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수도원 개혁운동의 거점이었던 클뤼니에서 수사 및 소수도원장(1070-1074)으로 사역했다. 랭스와 클뤼니 지역에서 교회 정치와 행정 실무 경험을 쌓았고, 엄격한 경건생활을 모토로 공동체를 이뤄 봉사활동을 적극 펼쳤던 수도참사회원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개혁 의지를 키웠다.
1079년에는 로마를 방문,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 의해 추기경 및 오스티아(로마의 항구도시) 주교로 임명받았다. 1084년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사절로 독일을 방문했고, 그레고리우스 7세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분쟁으로 기로에 섰을 때 기독교 교황에 충성하는 편을 택했다. 그는 1088년 3월 12일 탁월한 리더십을 인정받아 로마 남부 테라치나에서 우르바누스 2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에 선출됐고, 1099년 로마에서 죽는다.
교황으로 선출된 뒤 교회개혁과 세계교회 통합을 위해 귀족들과 수사들, 그리고 수도참사회원들 및 주교들로부터 다양한 협력과 지원을 얻는다. 우르바누스 2세는 효과적인 교회개혁과 통합을 위해 세계 기독교회로부터 교황 직분을 합법적으로 인정받길 원했다. 그래서 온건하고 관대한 태도로 당시 교회와 국가들의 전통을 자신이 주창하는 개혁의 개념과 점진적으로 조화시키고자 최선을 다했다. 개혁 입법을 적극 유지하면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평신도 성직임명권(세속 군주가 성직의 칭호와 소유를 허락하는 권한)의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갈등은 누그러지고 쟁점이 되는 문제들은 평화롭게 논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다.
1095년 11월 27일 클레르몽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우르바누스 2세는 제1차 십자군 소집을 역설했다. 직접적 원인은 1095년 비잔틴 황제 알렉시우스 콤네누스가 우르바누스 2세 교황에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한 데서 비롯됐다. 기독교 국가의 황제인 알렉시우스는 이슬람을 신봉하고 있는 투르크족에게 빼앗긴 소아시아의 비잔틴 영토를 되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알렉시우스가 기대한 이상의 지원군 파병을 다음과 같은 설교와 함께 전 교회에 역설했다. 사실 우르바누스 2세는 기독교인들이 성지로 여기고 있었던 예루살렘을 이슬람에게서 탈환하고자 다음과 같이 웅변하면서 십자군 파병으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페르시아에서 온 무슬림 투르크인들이 기독교 형제들의 나라를 침략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과 싸워 승리한 이후, 이들이 사는 지역에 해악을 끼치며 부단히 뻗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무슬림의 습격으로 죽어갔으며, 급기야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무슬림 투르크인들은 하나님의 교회와 왕국을 약탈했습니다. 기병이든 보병이든, 부자든 빈민이든, 사회적으로 어떤 계급에 속해 있든 간에 기독교인들을 도와주러 가야 합니다. 전쟁을 위해 가는 도중 죽게 될 사람들, 무슬림들과의 전쟁에서 죽게 될 사람들은 사면이 주어질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교황의 권위로 전쟁에 참가한 이들에게 사면을 허락합니다.’
위와 같은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설득력 있는 설교에 힘입어, 자신이 과거에 범한 죄에 대한 처벌을 면제받기 위해 하급 귀족들과 농민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한 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다.
우르바누스 2세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하나로 통합돼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스페인과 시칠리아에서 이방 세력인 이슬람 교도들과 직접 전쟁을 치른 경험을 토대로 제1차 십자군 전쟁을 역설한 것도 세계 기독교회의 통합을 위한 전략이었다. 그는 전쟁을 통해 무지한 이방 세력을 몰아내고 진리를 주창하는 전세계 기독교회를 교황의 통치 아래 하나로 묶기 원했다. 제1차 십자군 전쟁은 1099년 교회의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 소정의 군사적 성공을 거뒀지만 그가 생각하는 세계교회 연합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진리 아래 교회 연합이라는 목표는 매우 선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져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리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인간들의 폭력이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든 국가든 올바른 진리를 세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진리의 깃발 아래 국론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으면 위대한 공동체의 발전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 아래 하나로 통합을 이루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거나 무력을 동원하는 것은 이미 본질적인 통합과는 관계가 없다. 폭력이나 무력은 꼭 총기 같은 무기를 사용했을 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 21세기에는 언어 폭력, 근거 없는 여론의 폭력이 더욱 무섭고 악한 무기다.
얼마 전 연약한 탤런트들이 무책임한 사람들의 언어 폭력, 즉 악성 덧글 때문에 견딜 수 없어 자살을 택했다.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기록해 연약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故 노무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도 언론의 매가 견딜 수 없어 비참한 자살을 택했다. 물론 대한민국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그가 저지른 부정과 비리를 눈감아 주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개 독립국가의 대통령까지 지낸 분의 죄상을 정확한 근거도 없이 추정하고 여론화해 자살로 몰고 간 것은 진리의 깃발을 빙자한 21세기 십자군 폭력에 해당된다.
범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할 수 없다. 진실이 규명되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범인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을 기화로 대한민국에 진리를 빙자한 십자군 전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크리스천투데이신문 2009.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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