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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염려, 근심, 걱정

빌립보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4648 추천 수 0 2009.06.11 16:4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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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4:6-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5년 1월 30일 주일3부설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서론]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삶과 염려, 근심, 걱정”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집이나 빌딩에 화재가 났을 때 그 불 자체보다도 무서운 것이 연기입니다. 대개 연기 때문에 질식하여 많은 희생자가 생겨납니다. 화재가 나면 희생자가 생기는데 그중에 60%가 일산화탄소, 연기 때문에 질식하여 사망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괴로운 일 자체보다도 그 짐이나 일로 인하여 생기는 근심, 걱정, 불안, 초조 절망 등이 마음에 파탄을 가져옵니다. 생활고와 사업의 문제로 염려와 근심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적인 파탄을 당하여 자살하는 사람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러면 이와같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근심, 걱정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론]
1. 근심, 걱정은 백해무익 하다

우리가 염려, 근심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해야 됩니다. 근심을 걱정은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염려와 근심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염려, 근심을 할 가치가 있지요. 그러나 백해무익합니다. 염려, 근심은 담배와 꼭 한가지입니다. 아무 도움도 우리에게 주지 못합니다. 근심걱정 한다고 환경이 변화됩니까? 가정이 변화되고 직장이 변화되고 생활이 변화될 수 있습니까? 염려, 근심한다고 살 사람이 못살게 되는 것도 아니고 늙은 사람이 젊어지지도 않고 병든 사람이 걱정한다고 낫지 아니하고 죽는 사람이 염려 한다고 안 죽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생로병사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염려와 근심은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염려하므로 키를 한자나 키울 수가 없고 머리카락 한 가닥도 희고 검게 못합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6장 27절에 말씀하기를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태복음 5장 36절에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와 근심은 백해무익이요, 무용지물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속에 공해와 같이 매일같이 들여 마시며 그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 염려와 근심인 것입니다. 염려하든 안하든 우리 인생 생활 속에 일어날 일들은 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쓸데없는 걱정에 대해서 한 연구기관의 조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걱정하는 일중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22%,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이 4%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염려, 근심하는 96%는 실제로 안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불과 4%밖에 안 되는데 그것은 염려, 근심한다고 조금도 변화시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게 우리가 염려, 근심하는 것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도 염려, 근심을 많이 하는 편에 든 사람입니다. 밤새도록 걱정해서 잠을 못자고 염려, 근심으로 얼굴을 찌푸릴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70평생을 살아오면서 뒤를 돌아보니 실제로 염려, 근심하던 것이 일어난 것은 4%도 되지 않고 96%는 안 일어났습니다. 돌아보니까... 실제로 안 일어났다 말입니다. 그래서 경험을 통해서 이제는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염려, 근심이 다가오면 “이것은 공해와 같은 것이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 근심을 그만 두어라!” 스스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염려, 근심, 걱정은 우리에게 굉장한 해를 끼치는 공해입니다. 정신적으로 절망과 낙심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잠언서 15장 13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근심 있는 사람 얼굴 보십시오. 얼굴에 광채가 사라집니다. 눈이 축 늘어집니다. 생기가 없습니다. 누가 봐도 염려와 근심이 있는 사람은 그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만큼 우리의 육체적인 건강에 염려, 근심이 충격을 가져온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의 아더 랭크라는 실업가는 항상 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불안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염려, 근심에서 벗어나서 살수가 없을까 생각을 하다가 좋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내내 염려, 근심하지 말고 중간인 수요일 하루 한꺼번에 모아서 하루 종일 염려, 근심을 하자. 그래서 월요일부터 생겨난 염려, 근심은 전부 적어가지고서 염려, 근심함에 집어넣었습니다. 또 목, 금, 토, 일요일날까지의 근심, 걱정도 적어서 근심함에 넣고 수요일날 근심함을 열어가지고서 하나하나 읽으면서 그날 근심을 합니다. 그렇게 해보니까 실제로 염려, 근심하던 것이 며칠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대게 해결되었든지 별로 중요치 않든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에 아더 랭크는 ‘아~ 사실 염려, 근심하는 것이 실제로 세월이 지나고 보면은 그렇게 무서운 것도 아니고, 중대한 것도 아니고,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아니구나’하는 것을 알고 난 다음 염려, 근심을 그쳤다는 간증을 하는 것을 제가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약 20만명의 미국 군인이 전사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약 200만명의 사람이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전쟁에 죽은 사람은 20만명인데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은 200만명입니다. 10배나 많은 사람이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으로 죽었습니다. 이처럼 질병이나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염려입니다. 실제로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해본 결과 마음속에 근심이 있으면 당 수치가 급격히 올라간다고 말합니다. 고혈압 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들은 용서하지 못하고 관용하지 못하는 미움 때문에 고혈압이 악화된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중요인사하고 식사를 같이하는데 김장환 목사님이 함께 식사하고 있었습니다. 한분이 말하기를 “나는 어떠한 사람이 미워서 원한에 사무쳐서 눈을 감을 때까지 그 미움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김장환 목사님이 활짝 뛰면서 “당신 암에 걸려요. 염려와 근심을 마음에 품고 미워하면 암에 걸려요.” 그래서 내가 속으로 ‘저렇게 가혹한 말을 면전에 대고 할 수 있느냐?’ 그런데 가만히 두고 생각하니까 정말 올바른 말을 했어요. 왜 그렇습니까? 미움이나 염려와 근심은 결국에는 암을 발생시키거나 굉장한 병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염려는 또한 충치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노스트 웨스턴대의 레오나르도 포스트익 박사에 의하면 사람이 근심, 걱정을 하게 되면 침 분비가 억제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근심하고 염려하거나 화가 나면 입술이 바싹바싹 타잖아요. 입에 침이 마릅니다. 그래서 입속의 타액이 중성화되지 못해서 충치 등 입병이 생겨납니다. 그뿐 아닙니다. 미국 북쪽 위스컨신주의 먼로병원장인 쉰들러 박사는 류마티스의 30%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으로 생겨나고 피부병의 33%와 담낭병의 50%는 마음에 혼란과 고통으로 생겨난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대다수의 질병이 외부의 육체적 자극 때문이 아니라 무기력감, 좌절감, 불안, 염려, 공포, 패배감, 절망 등의 정서적 이유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라토 박사는 의사들의 가장 큰 잘못은 환자의 정신을 그냥 두고 육체만을 치료하려는 일이라고 말다. 정신과 육체는 하나이므로 분리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염려와 근심이 왜 그렇게 무섭습니까? 그것은 마음에 근심이 뼈로 마르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요사이 의학적으로 말한다면 우리 자율신경 속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든 자율기관 속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염려, 근심을 하면은 그 자율신경 중에 일부분이 우리의 심장을 파괴하고 위장을 파괴하고 대소장 그렇지 않으면 신장, 췌장 여러 가지 자율신경을 가지고 움직이는 기관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와 근심은 우리의 속에 있는 신경을 자극하고 활성화해서 우리 스스로의 기관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감신경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하면 우리 속에 있는 교감신경을 활성화해서 교감신경은 우리를 파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막 심장이 펄럭펄럭 뛰고 마음이 상하면 먹은 것이 소화가 안 되고 그리고 근심, 걱정을 많이 하게 되며 소변이 샛노랗게 나오고 이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교감신경을 작용해서 우리를 파괴합니다. 그러나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을 가지고 편안하면 부교감 신경을 자극해서 몸을 고치고 치료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은 벌써 수 천년전에 오늘날 과학이 발견한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다.” 마음이 즐거우면 부교감신경을 자극하므로 모든 우리의 속에 있는 기관을 살아나게 하고 건강하게 만듭니다. 마음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 마음의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미워하면 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서 뼈까지 마르게 만든다. 뼈가 마르니 간이 남겠습니까? 신장이 남겠습니까? 장, 소장, 신장이 견뎌내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집에서 생활할 때나 부부간에 서로 의견충돌이 오거나 자녀들과 속상할 때도 조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화를 내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염려하고 화를 내면 내 속에 있는 교감신경을 자극해서 심장을 파괴하고 간을 파괴하고 신장을 파괴하고 내 췌장을 파괴한다. 나만 손해난다. 나만 손해난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용서하고 자비심을 가지면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시켜서 몸이 건강해지고 치료해지고 좋아진다. 위장병도 낫고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것도 낫고 샛노란 소변을 보는 것도 낫고 허리에 통증이 있는 것도 낫습니다. 나는 연세대학교 교수님이 말씀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사람이 화를 대단히 낼 때 입에다가 비닐을 대고서 화를 낸 공기를 가둬 가지고서 그것을 냉동한 후 물로 만들어 주사기에 넣어 쥐에게 주사 해보니까 2분 내로 쥐가 죽어 버리더랍니다. 화를 내면 얼마나 무서운 독이 그 숨 속에서 나오는지 그것을 액화해서 쥐에게 주사하니 쥐조차 죽더라. 이러므로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은 우리를 영적으로 암울하게 만들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가져오고 그 스트레스가 우리 육체적으로 교감신경에 작용해서 어마어마한 파괴를 심장, 위장, 대· 소장, 간장, 신장 온갖 곳에 가지고 와서 형언할 수 없는 병을 앓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의사들은 말하기를 우리 육체 질병의 60%는 우리 정신에서 온다고 말했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집에 불이 나면 60%의 사람들이 가스로 말미암아 질식하는 것처럼 오늘날 육신의 질병의 60% 이상이 마음에서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미움 이런 것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그냥 우리 육체의 파괴를 가져온다니까 그 말이 그렇지 실제로 그럴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염려하고 불안하고 근심하고 초조하고 절망하고 미워하거든 ‘아~ 내 속에 교감신경이 활성화 되었다. 이제 그 신경이 모든 기관을 파괴한다.’ 용서, 사랑, 평안을 가지면 ‘아~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 시켜서 내 몸이 젊어지고 치료해 주고 좋아진다.’ 그렇게 스스로 알고 마음을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해가 다가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공해를 없앨 수가 있습니까? 바람이 불어오거나 비가 와서 공해를 없애주기 전에는 우리 힘으로 공해를 없앨 수 없지 않습니까? 공해 속에서 숨쉬고 살며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염려, 근심이 오는데 이것을 극복하려니 우리 힘으로 안되잖아요. 자기 힘으로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미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좀처럼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2. 염려를 극복하기 위하여
염려와 근심을 하면 이것을 내가 하지 말고 맡길 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염려 보따리를 맡겨 버려요. 완전히 맡겨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쉽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이 염려 보따리를 맡긴다고 아침에 와서 열심히 기도하고 난 다음 갈 때 도로 다 주워 가지고서 도로 짊어지고 가는 이것이 문제지만 그러나 염려, 근심을 맡길 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이 없이 염려, 근심을 맡길 곳은 없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염려, 근심을 이기지 못하고 요사이 염려, 근심으로 말미암아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 관절염 같은 중병에 걸리고 생명까지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살인까지 하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킨 이후에 늘 극도의 염려와 정신적인 고통을 당했습니다. 왜냐하면 일개 신부가 유럽을 장악하고 있는 교황청에 대결해서 종교개혁을 일으켰으니 어마어마한 압력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통을 당하는데 하루는 우연히 먹이를 먹고 나무가지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는 작은 새 한 마리를 보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저 작은 새는 내일 아침 먹을 것에 대해서도 내일 밤 잠자리에 대해서도 아무 걱정이 없구나! 새 조차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아무 염려없이 자고 있는데 왜 나는 그토록 많은 걱정을 했을까? 작은 새 한 마리를 돌보신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얼마나 아끼고 보호하시겠는가!’ 루터는 자신도 그 작은 새처럼 하나님을 믿고 모든 염려를 맡기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새도 하나님을 믿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고 저렇게 평안한데 새보다 귀한 내가 왜 염려, 근심, 불안, 초조를 할까? 그때 이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마틴 루터는 용기와 힘을 얻어 교황청을 상대로 해서 싸워서 이기고 종교개혁을 가져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염려를 맡길 하나님이 계신데 그런데 또 사람들이 질문한 것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염려, 근심을 맡을 실력이 있는가?” 실력도 없는 분에게 보따리 맡겨봤자 소용없잖아요. 정말 하나님이 내 염려, 근심을 해결할 수 있을까? 내 개인문제, 가정문제, 자녀문제, 사업문제 이런 문제를 맡긴다고 해서 하나님이 해결할 수 있을까?
이사야 40장 27절로 31절에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이 실력이 있느냐고 묻습니까? 야웨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 같다. 달음박질해도 곤비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다. 능력이 한이 없게 많으신 하나님이 염려와 근심을 능히 짊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실력이 계시면 과연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알아주실까? 나는 벌레와 같은 인생인데 천천만만의 사람가운데 하나님이 과연 나를 알아주실까? 하나님이 정말 나의 짐을 저주기를 기뻐하실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로 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부자만 오라. 교육받은 사람만 오라. 잘난 사람은 오라. 건강한 사람은 오라.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이 직접 청하고 있어요. 우리가 짐을 져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다 내게로 오라고 하는데 주님은 얼마나 자원해서 우리의 짐을 저주시기를 원치 않습니까?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고 염려와 근심을 맡아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계신 분이 계시고 자원해서 그분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오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근심, 걱정을 짊어질 필요가 있겠습니까? 찬송가 432장에 보면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우리 한번 불러볼까요.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가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염려, 근심을 맡길 하나님이 계시고 실력있는 하나님이 계시고 자원해서 염려, 근심을 가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시니 우리의 생애 속에 다가오는 염려, 근심을 처리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보세요.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육신을 쓰고 오셔서 인생가운데 같이 계시며 풍찬노숙을 하시면서 우리의 사정을 친히 다 아시고 우리의 짐을 십자가에서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죄짐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근심 걱정 모든 것을 다 맡길 수 있잖아요. 세상과 마귀의 짐을 다 짊어지시고 질병과 고통의 짐도 짊어지시고 저주와 가난의 짐도 짊어지시고 심지어 죽음과 영원한 멸망의 짐도 짊어주셨습니다. 죄짐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구가 아닙니까? 죄짐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모든 괴롬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이 이렇게 절친한 친구로써 우리와 같이 있지 않습니까?
이사야 53장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했다고 말했습니다.
시편 68편 19절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3. 너희 염려를 주님께 맡겨라
그러므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매일같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염려를 주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 되겠는데 어떻게 맡길 수 있을까요? 기도와 간구로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기도하고 간구할 줄 모르잖아요. 우리는 기도하고 간구하므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짐을 다 내려놓고 속을 다 부어 놓을 수 있잖아요.
예레미야애가 3장 33절에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예레미야 29장 11절로 13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기도와 간구로 주님께 나아가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면 안돼요. 분명하게 기도해야 돼요. 저는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다가올 때 되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종이를 내고 연필로써 적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기도하면 중언부언하게 되니까. 분명하게 편지를 적어요. “하나님 아버지께 아버님 나는 오늘 너무나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이런저런 이런저런 이런저런일로 고통스러우니 아버님 나를 도와 주옵소서.” 저는 편지로써 분명하게 적어요.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나가서 그 편지를 읽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적어놓은 그 내용을 읽는 거에요. 그러면 굉장히 효과적인 기도가 됩니다. 여러분도 한번 그렇게 해보세요. 염려, 근심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괜히 나가서 쓸데없는 수사를 많이 씁니다.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어제도 계시고 오늘도 계시고 장차 오실 하나님 지극히 크시고 광대하신 하나님 짐승도 돌보고 꽃도 돌보고 새도 돌보고... 나중에 그러다 보니까 무얼 할지 몰라 버리고 그다음 자기 일은 중언부언하고 맙니다. 그러지 말고 편지를 쓰세요. 하나님 앞에 연필과 종이를 가지고 나와서 “아버지 하나님께! 오늘 아버지 하나님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아버님께 호소합니다.” 그렇게 편지를 써서 그 편지를 놓고 읽는 거에요. 나는 수십번 수백번을 내가 적은 기도를 읽습니다. 분명한 내용으로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 내 마음의 짐을 맡길 수가 있습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횡설수설하지 않고 간단한 기도를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분명하게 들어 주십니다. 영국의 감리교 창시자였던 요한 웨슬레는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던 사람인데 그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단순하게 기도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생전에 그가 썼던 일기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중 일부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4월 24일 목요일 우리는 볼턴에서 류엘 하이까지 8마일을 말을 타고 달렸는데 거의 4시간이나 걸렸다. 내가 설교를 막 시작했을 때 햇빛이 내 옆머리에 어찌나 뜨겁게 비취던지 설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향해 구름으로 해를 가려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했다. 잠시 후에 구름이 와서 해를 가리어서 설교 끝날 때까지 그늘 속에서 설교할 수 있었다.
간단한 기도입니다. ‘하나님 구름을 보내어서 해를 가리워 주시옵소서.’ 분명하고 간단한 기도 아닙니까?
4월 25일 금요일 나는 10시경에 티드몰튼 근처에서 설교하였다. 오후 3시경에는 햅튼 스톨에 가서 산등성이에서 설교하였다. 그런데 설교를 시작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님께 ‘하나님 설교를 마칠때까지 비를 멈추어 주시옵소서.’ 기도했는데 실제로 비가 멎어서 내가 설교를 끝마칠때까지 비가 오지 않다가 설교를 끝마치고 나니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기도입니다. 저도 시베리아에서 구소련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도할 때 얼마나 뜨겁던지 햇빛이 비춰서 도저히 설교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제가 강단에 앉아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구름을 보내어서 해를 가리워 주옵소서.’ 그래서 강단에 서서 설교하려니까 손바닥만한 구름이 오더니만 해를 딱 가리어서 내내 해를 따라가요. 구름이.. 설교를 끝마칠때까지 구름이 가리워주는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이 장엄하고 거룩하고 복잡해야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하고 간단명료하게 여러분이 거듭거듭 기도하여 하나님이 응답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단순한 기도가 여러분 능력 있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 때 복잡한 기도는 신경을 많이 쓰잖아요. 단순한 기도는 반복할 수 있잖아요.
누가복음 18장에 불의한 재판관에게 나가서 부르짖는 과부의 기도는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 계속 반복했습니다. 그 반복이 효과를 발생해서 나중에 그 재판관이 응답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정렬적인 간구를 해야 합니다. 간절히 마음에서 끌어오르는 열정을 가지고 기도해야 돼요. 머리속에서 나온 차디찬 기도가 아니라 마음에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하는 간절한 기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는다는 것은 속에 안타까움이 있고 하소연이 있어서 부르짖지요. 안타까움이 없는데 왜 부르짖습니까? 그냥 조용하게 말하지요.
시편 142편 1절에도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소리를 낼쯤 되면 마음에 안타까움과 간절한 소원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은 뜨거운 열정으로 기도할 때 귀를 기울이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장 10절에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마음이 괴로운데 통곡안할 수가 있어요? 울부짖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러한 열정적인 간구가 효과를 발생합니다.
저는 이전에 뇌성마비 아들을 부르짖어 기도해 응답받았다는 한 성도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내게와서 이런 간증을 했어요. 이 성도님은 해산할 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양수가 먼저 터지는 바람에 서둘러 병원에 가서 흡입분만기로 머리를 기계로써 잡아 당겨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낳았을때는 괜찮은줄 알았는데 기계가 머리를 너무 조여서 뇌에 상처를 입어서 뇌성마비가 걸렸어요. 다른 애들은 다 잘 자라는데 얘는 뇌성마비가 걸려서 3살이 되어도 꼼짝도 못하고 드러누워있는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가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불안해 하고 있는데 전도를 받아서 우리 교회에 나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믿음과 용기가 생겼습니다. 하루 저녁에 그 어린 아기의 어머니가 기도를 하는데 얼마나 간절히 눈물을 흘리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도했던지 남편이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여보 정신차려.” 그런데 이 여인이 남편을 뿌리치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매달려서 부르짖고 기도하다가 성령이 임하여서 방언을 말하며 고함을 치는데 옆에 서있던 남편이 자기도 찌릿찌릿해지더랍니다. 그래서 막 부인을 잡고서 함께 부르짖어 기도하는데 부인의 기도가 남편에게 전달되어서 부부간에 밤새도록 온몸이 땀에 범벅이 되고 목이 쉬도록 부르짖어 어린아들을 고쳐 달라고 기도했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모두다 눈물에 젖어 땀에 젖어 기도를 끝마치고 어린 아기가 자는 방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이 3살 먹은 어린아이가 일어나서 “엄마! 아빠!” 그러면서 나오더랍니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에 불로써 응답한 하나님이 치료의 능력으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간절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기도는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끝까지 버터야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마귀하고 씨름하고 또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귀와 싸워 이기고 하나님께 우리 믿음을 전달하는 것이므로 인내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다 가스를 사용하고 기름을 때기 때문에 나무를 때지 않잖아요. 우리 어릴 때는 나무로 밥도 짓고 군불도 땠는데요. 그러므로 학교 갔다 오면 나무하러 갈 때가 많습니다. 그때는 보통나무를 베면 일본순사에게 잡혀가요. 이미 나무를 베고 난 다음에는 파서 그 뿌리 채 뽑는 것입니다. 참 그것이 힘들어요. 나무 베고 난 둥구리를 호미로 파고 괭이로 파서 그 다음 그놈을 잡아당깁니다. 처음에는 꿈쩍도 안 해요. 꿈쩍도 안 해요. 그러면 또 파고 또 잡아 당기고 또 좀 쉬었다가 또 잡아 당기고 조금 흔들거리다가 조금 많이 흔들거리다가 나중에는 젖 먹던 힘을 다해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잡아당기면 쩍쩍쩍~ 퍽 하면서 뿌리가 뽑히는 거에요. 저는 요사이 마귀하고 싸울 때는 언제나 어릴 때 나무 등거리 뽑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네가 지금은 조금도 안 흔들리지만 얼마있지 않으면 쩍쩍 소리가 난다. 얼마 있으면 너 확 뽑힌다. 그러므로 내가 뒤로 물러가지 않는다. 네가 뽑히지 내가 물러갈소냐” 그때의 경험이 마귀하고 싸우는데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인내의 기도를 해야 됩니다. 끝까지 버티면 이깁니다.
히브리서 10장 36절로 38절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7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밤이나 낮이나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염려, 근심을 주님께 맡기고 인내로써 부르짖어 기도하면 염려와 근심도 뿌리가 뽑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기도를 해야 됩니다. 반드시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됩니다. 내가 기도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런 생각을 하면 안돼요. 성경에는 하나님을 믿으라. 이 산들이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라 해도 된다 했습니다. 태산. 태산이 어떻게 바다로 옮겨 갑니까? 그러나 우리 인생에 개인문제, 가정문제, 생활문제, 자녀문제, 사업문제가 태산같은 문제가 다가 올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해결될 것이냐. 내 힘으로는 안 돼지요. 성경은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태산을 옮기라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예수믿는 사람은 인생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을 믿고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이냐, 믿음이란 하나님이 기적을 행해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는 믿음이 안 생기는데요.” 안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하나님이 분량대로 믿음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태어날 때부터 이목구비 사지백체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기분 좋다고 팔이 올라가고 기분 나쁘다고 팔이 안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팔을 올리고 내리는 것은 내 자율적인 선택입니다. 춥다고 팔이 안 올라가고 덥다고 팔이 올라가는 것 아닙니다. 내 선택입니다. 믿음도 내 선택입니다. 기분 좋다고 믿어지고 기분 나쁘다고 믿음이 안 믿어지고 몸에 불이 확확 온다고 믿어지고 몸이 싸늘하다고 안 믿어지고 그것 아닙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흙같이 어두워도 내가 믿겠다고 작정을 하면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마어마한 태산 같은 어려운 문제가 닥쳐왔을 지라도 태산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여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하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주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주의 말씀이 어디 있나요? 이 성경에 있습니다. 하늘이 바로 성경 속에 있습니다. 이 성경말씀에 있는 말씀에 내가 믿기로 작정을 하고 마음을 결심을 하고 나가면 결국 태산이 물러가지 내가 물러가지 않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적을 기대하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마기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했습니다.

[결론]
염려란 작은 불씨와 같아서 빨리 꺼지지 아니하면 온 집을 불태웁니다. 적은 불씨 그것이 뭐냐, 담뱃불, 성냥가지 하나 붙는 불. 이게 대단하냐? 그러나 내버려 두면 그게 온 집을 다 태우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마음에 조금 생기는 것 이게 무엇이 대수냐, 그러나 그것을 내버려두면 온몸을 망가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염려는 개인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고 생활에서 기쁨과 활력을 빼앗아 가며 삶의 분위기를 망쳐 놓고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빌립보서 4장 4절로 7절에 보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명령입니다.
기쁨이 생길 때 기뻐하라는 말 안했어요. 내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명령입니다. 왜요, 기뻐하면 여러분 마음속에 우리의 자율신경을 자극해 가지고서 마음이 치료함을 받고 육체가 평안함을 얻고 고침을 받습니다. 사랑이나 평안이나 믿음이나 소망같은 것은 우리의 자율신경을 자극해서 우리 몸속에 건강과 평안을 가져오지요. 그러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이러한 것은 또다시 자율신경을 자극해서 파괴를 가져오지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주님께서 명령을 해서 기뻐하라 했습니다. 기쁨은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거니와 우리 마음에 평안을 가져오고 육체에 건강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음에 즐거움은 양약입니다. 우리 몸속에 약공장을 가동시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무엇이든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께 나와서 내 염려를 맡길 하나님이 계시고 능력 있는 하나님이 계시고 맡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분명하게 간단 명료하게 그리고 뜨거운 열심과 열정으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겨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러면 평화가 임하여서 하나님이 우리 짐을 다 맡으시고 평안을 주심으로 생각도 평안하고 마음도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미움 같은 것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영적인 파괴요, 심령의 파괴요 그리고 우리의 육체가 망가집니다. 밤새도록 근심, 걱정한 사람은 아침에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흥분하고 분노하면 심장이 덜렁덜렁 뛰잖아요. 심장에 파괴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음에 고통을 가하면 오줌이 노랗습니다. 신장에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우리 삶에 공해인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제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대로 내버려 놓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온 집을 태우는 불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기도와 믿음으로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이것을 제하여 버리고 마음속에 평강과 희락으로 충만하게 채우고 살 때 영도 마음도 몸도 생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염려와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의 공해 속에서 태어나고 그 속에서 살면서 마음도 찌들어지고 몸도 병들고 생활도 불행으로 꽉 들어차서 살아왔습니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미움 같은 것을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이 짐을 맡아주시기를 원하시고 맡으실 능력이 있고 십자가에서 맡아 주셨으므로 우리 예수님께 나와서 모든 것을 아뢰게 도와주시옵소서. 의지하게 도와주시고 우리 속을 다 털어버리게 도와주시옵소서. 짐을 맡기고 일을 맡기고 마음에 평안함을 갖고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영육간에 평안하고 건강하고 행복과 삶의 영광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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