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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비둘기

누가복음 나무............... 조회 수 1905 추천 수 0 2009.06.16 20: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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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3:21~22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5년 5월 15일 주일2부설교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서론]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피에 젖은 비둘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날의 일년은 옛날의 백년에 견줄만큼 지식이 증가하고 과학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비례해서 세계에 악과 재앙과 전쟁과 무질서와 폭력도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계정부도 국가권력도 지구상의 문제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인간은 이성과 과학을 통하여 지상낙원을 건설할 것이라는 말은 이제 순진하기 짝이 없는 동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엄청난 지구와 인간의 재앙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입니까? 하나님이 이러한 세계를 만드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든 세상은 참으로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지으시고 여섯 번이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셨기에 여섯 번 연달아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했었습니까? 좋은 세상을 지으신 좋은 하나님이 계신데 왜 이 세상은 이렇게 험악하고 나쁘고 흉한 소식이 들끓는 재앙으로 가득찬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까?

[본론]
1. 닫혀진 하늘 문

그것은 첫째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므로 하늘 문이 닫혀져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이 지으시고 동방에 에덴을 만드시고 그 낙원에 거하실 때는 하늘 문이 닫히지 않았습니다. 하늘 문이 사방팔방으로 열렸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곳은 전혀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가운데 아담과 하와는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속에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넘치도록 받으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정말 천국이요, 낙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반역했을 때 에덴의 문이 닫히고 인류에게 하늘 문이 닫혀 버리고만 것입니다. 아담의 반역과 닫혀진 에덴문은 정말 비극입니다.
창세기 3장 23절로 24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아담과 하와가 살아야 될 에덴동산이 닫힌 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접근할 수 없도록 닫아 버린 하나님은 인류위에 하늘 문을 닫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로 다가온 것은 대재앙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대재앙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과 함께 손을 잡고 행하던 아담과 하와가 영적으로 죄로 말미암아 죽음으로 하나님과의 대화가 단절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부를래야 부를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영이시라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되는데 아담과 하와는 영이 죄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대화가 단절되고 말은 것입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대화가 됩니까? 죽은 사람은 욕해도 대답하지 않고 칭찬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을 발길로 차고 두들겨 패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왜, 생명이 떠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영이 죽었으므로 하나님과 전혀 대화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할 수 없게 되어 버린 크나큰 재앙입니다. 영적으로 죽어 버리고 인간은 혼과 육체의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땅에 가시와 엉컹퀴가 났습니다. 땅이라는 것은 우리 인류의 삶을 전체다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 어느 곳에 가나 가시와 엉컹퀴가 납니다. 마음에 미움의 가시가 돋아나고 좌절과 절망의 엉겅퀴 밭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가정도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사업과 생활에도 언제나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사람은 찔리고 피투성이가 되고 고통을 당해서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사는 저주의 천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는 병들고 늙어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비극을 얻게 된 것입니다. 비참합니다. 거대한 재앙입니다. 하늘 문이 닫히고 인간이 하늘에서 쫓겨났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결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마귀의 종이 되어 인간의 삶은 마귀가 시키는대로 하는 인본주의의 굴레 속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강화하고 강화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마귀 즉 이 세상신이 사람들의 마음에 혼돈을 가져옵니다. 육신의 정욕으로 꽉 들어차고 안목의 정욕으로 꽉 들어차고 세상의 자랑으로 꽉 들어차 하늘나라에 영광이 도저히 비취지 못하게 방벽을 쌓아 놓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게 합니다. 사람은 오직 인간중심에 서서 인본주의로 살고 물질적인 노예가 되고 만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은 물질로 저하되고 육체적인 삶밖에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귀와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온 것입니다.
유물론의 창시자 칼 막스는 인간이 곧 세계요, 국가요 사회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계시니까 인간이 사회요, 인간이 바로 국가요, 사회라고 말한 것입니다. 철저한 인본주의자를 표방한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정신이나 영혼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은 물질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정신은 단지 고도로 조직된 특수한 물질 즉, 뇌수의 산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본주의는 인간을 피조 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산물로 물질로 보는 유물론적인 사고입니다.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자체가 세계요, 국가요, 사회라고 주장하고 그 주장에 서서 공산주의가 세계를 70여년 동안이나 짓밟은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로 이 대재앙 가운데 몸부림치면서 해방을 얻을래야 해방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인본주의로 물질적인 능력으로 어떻게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습니까? 죄악의 재앙, 저주의 재앙, 질병과 죽음과 멸망의 재앙에서 인간은 벗어나지 못하고 역사는 고통과 슬픔과 피비린내로 꽉 들어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생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2. 하늘 문을 여신 예수님
2천년 전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가장 위대한 일은 아담과 하와 이후로 닫혀버린 하늘 문을 주님께서 열어제꼈다는 것입니다. 하늘 문이 닫히면 하나님의 역사가 전혀 일어날 수 없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하늘 문을 열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곧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누가복음 3장 21절로 22절에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오셔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을 때 주님께서 기도를 하시며 하늘 문을 열어 제킨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닫혀버린 하늘 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열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까? 예수님은 종교나 철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을 우리 가운데 모시고 오신 분이요, 하늘 문을 열어 제키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향해서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예수님을 엄청나게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흠뻑 받고 하나님의 큰 기쁨을 받는 아들로써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자녀를 기를 때 여러분이 정말 사랑하고 여러분이 정말 기뻐하는 자녀가 있으면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극히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예수님은 기뻐하는 아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늘 문을 열고 인생문제의 해답으로 성령을 강림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 왜 비둘기 형상으로 내려왔습니까? 비둘기는 순결과 사랑의 상징인 것입니다. 성령이 바로 하늘 문을 열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이 땅에 임하시게 된 것입니다. 대재앙을 당하여 절망에 허덕이는 인생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성령비둘기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임하시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 보세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요, 예수님을 위해 하늘 문이 열려있고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이 임하시므로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그곳에 하늘이 열리고 그곳에 성령이 계시고 그곳에 영생이 있고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5절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예수님이 열어놓은 하늘 문을 통해서 성령이 오시고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그냥 부은바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원래부터 주님은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만물을 지으신 것입니다. 아들을 통해서 짓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 1절로 2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엄청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성령으로 이 땅을 지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텅 빈 공허를 생명과 아름다움이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히 채워 놓으셨습니다. 오늘날도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엄청나게 파괴되어 공허하고 허무하고 혼돈하고 흑암가운데 있습니다. 바로 이 세상을 짓기 전에 있던 형상과 똑같이 죄가 인간에게 들어와서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파괴를 인간에게 가져온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텅 빈 가슴속에 예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으로 채워 놓으신 것입니다. 어느 곳에 가나 아름다운 생명으로 채워 놓으십니다. 예수님이 만드신 세계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로 충만하지 않습니까? 혼돈을 천국질서로 공허하고 혼돈한 곳에 주님은 아름다운 질서로 채워 놓는 것처럼 우리 혼돈한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잃어버린 우리 인생을 찾아 주셔서 하나님을 향해서 앞으로 앞으로 나갈 수 있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을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흑암이 가져온 깊음의 고통위에 사랑의 치료의 역사를 주님이 베푸신 것처럼 주님은 이 흑암의 가슴속에 마귀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고통을 가져오는 곳에 주님은 마음으로 육체로 우리의 환경으로 가는 곳마다 치료를 베풀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어두움에는 빛을 무질서에는 질서를 추에는 미를 가난에는 부요를 아픔에는 치료를 죽음에는 생명을 가져오시기 위해서 하늘 문을 열어 제키고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처음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도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더라. 좋았더라. 좋았더라. 좋았더라. 좋았더라. 좋았더라고 했는데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들어 주신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보시고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참 좋다. 정말 좋다. 정말 멋있다. 정말 좋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지으신 인생도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좋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좋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빠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지만 예수님은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4편 24절에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주님이 지으신 세계는 주의 부요가 가득한데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든 우리를 주님은 보시기에 좋을 뿐 아니라 부요가 가득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와서 사랑의 능력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아름답고 좋은 세계를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하늘 문을 활짝 여시고 다시 우리에게 복구시키기 위해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일을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흑인 지도자였던 마틴 루터킹 목사님은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세계 정복을 꿈꾸었던 나폴레옹도 유배지였던 세인트 헬레나섬에서 숨을 거두기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백만대군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하다가 실패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으로 전 세계를 정복했다.” 예수님은 그 큰 사랑으로 공허와 무질서와 흑암에 있는 우리의 마음속에 사랑으로 찾아 오셔서 주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빛과 소망과 질서와 영광과 생명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영원히 하늘 문을 열어 제켜 놓으시고 하나님의 성령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영원히 우리에게 나타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 닫혀진 하늘 문을 우리에게 영원히 열어 제키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청산하므로 그 대가를 지불한 이후에야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그를 통해 영원히 하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성령을 우리에게 영원히 보내셔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흑암은 광명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죽음은 생명으로 추는 미로 가난은 부요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베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죽으신 이후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이 오순절날 우리에게 쏟아진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로 4절에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은 영원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영원히 우리에게 하늘 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나오면 하늘 문은 활짝 열려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운명하실 때 예루살렘성전에 성소와 지성소는 갈라놓은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쫙 찢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 성소는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의미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는 휘장으로 가려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1년에 한번밖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 일반사람은 감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성전의 휘장은 찢어져서 활짝 열려버렸습니다. 이제 하늘가는 밝은 길이 열려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는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아담 이후로 닫혀버린 하늘 문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위에 활짝 열리고 만 것입니다.

3. 피에 젖은 비둘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우리에게 강림하신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피에 젖은 비둘기인 것입니다.
그냥 오신 성령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에 젖은 비둘기로써 피의 능력을 가지고서 이제 우리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20절에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피로써 우리에게 연약을 맺었습니다. 성령은 언약의 성령으로 피를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성령을 피에 젖은 비둘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처음 하늘 문을 여실 때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러나 오순절날 영원히 성령을 부으실 때는 성령은 그냥 오신 성령이 아닙니다. 피에 젖은 성령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갖고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6절로 8절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주고 산 그 대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루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이루는 피의 대가는 뭡니까? 첫째로, 죄에서 자유와 의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오셔서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흘렸으므로 이제는 용서와 의를 가져와야 된다. 용서와 의를 내놓아라. 성령은 용서와 의를 주기 위해서 예수님의 피로써 역사하는 피의 젖은 비둘기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와서 사망의 세력에서 여러분을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을 멸하여 주는 것입니다.
디도서 3장 6절로 7절에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용서와 의와 영광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못해요.
14세기 영국의 뛰어난 설교자였던 죠지 휘트필드는 청년시절에 죄악가운데 깊이 빠졌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마음이 온통 시커먼 죄악으로 물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서 죄악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모든 사치를 거부하고 누더기 옷을 입고 가장 거친 음식을 먹었습니다. 일주일에 이틀은 금식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나눠주기도 하고 기도로 밤을 새기도 했지만 마음에 죄책은 여전히 남아있고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휘트필드는 요한 웨슬레를 만나 영혼속의 하나님 생명이라는 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으면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즉시 무릎을 꿇고 주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자신을 새롭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자 성령이 임하셔서 그는 순식간에 새사람으로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절망에서 소망으로 좌절에서 희망으로 죄책에서 용서와 의의 영광이 마음속에 채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후로 휘트필드는 아메리카 인디안들과 서인도제도의 유색인종들과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광부들과 런던의 부요한 귀족들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 그가 외친 말씀의 진리를 아주 간단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느니라.” 그는 가는 곳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어떻게 거듭납니까? 성령은 피에 젖은 비둘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면 성령이 와서 우리를 거듭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와서 마귀와 세상에서 자유와 거룩함의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마귀 안에 있고 마귀는 세속을 가지고 인간을 완전히 포로로 잡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과학도 지식도 수양도 도덕도 마귀가 묶어놓은 밧줄을 끌러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5절에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어느 미국 자매님의 간증을 읽고 굉장히 감동을 입었습니다. 자매님은 16살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술주정뱅이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남자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그 다음에는 못된 남자친구를 만나서 마약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알콜중독에 마약중독까지 걸린 그녀는 첫 아이를 낳았으나 술에 취해 아이에게 젖을 물려놓고 쓰러지는 바람에 아이가 숨이 막혀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자매님은 아침에 해가 돋을때부터 저녁때까지 술을 마시고 마약을 맞았습니다. 첫 남편하고 이혼한 후에는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다가 다시 옛 남편과 화해했다가 다시 싸우는 등 말할 수 없는 피폐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병원에 입원도 해보고 약도 먹어보고 온갖 민간요법을 다해보았지만 황폐하고 훼파된 그 심령과 육체를 회복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자동차 사고로 죽은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찡해지면서 나도 교회 가보면 살길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매님은 돌아오는 주일에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예배드려 박수치고 손을 들고 할렐루야를 부르는 것을 보고 “야~ 나도 저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목사님이 회개할 사람 앞으로 나오라고 하니까 뛰어 나가서 재단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내 힘으로는 알콜중독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내 힘으로는 마약중독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나는 폐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포로가 되었습니다. 주님 주의 능력으로 나를 살려 주십시오. 나는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고 결심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지더니 큰 기름부음이 임하였습니다.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알콜중독에서 그는 순식간에 해방되고 만 것입니다. 아편 중독에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자매님은 함께 사는 남편도 예수님께 인도해서 그도 알콜중독에서 해방되고 마약에서 자유케 되어 완전한 새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가 이런 기적을 베풉니까? 피에 젖은 비둘기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써 역사하기 때문에 마귀와 세상이 쫓겨 나가버리고 만 것입니다.
셋째로, 피에 젖은 비둘기 성령은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병에서 해방과 건강의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마귀에게 눌려서 병이 듭니다. 마귀는 우리 심신을 누르고 우리 생활을 억압에서 온갖 병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갖고 와서 우리를 마귀의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의로운 태양을 떠오르게 하셔서 성령의 빛을 비춰서 우리를 치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교회 강서대교구 조완근 집사님의 간증을 읽고 큰 마음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집사님은 92년 배에 통증이 심해서 조직검사를 해보았더니 대장암 3기였습니다. 그때 집사님은 36살로 겨우 2살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교회를 다니던 아내가 교구버스를 놓쳤다고 교회까지 좀 데려다 달라고 해서 자기는 예수 안 믿지만 아내를 차에 태워서 교회까지 데리고 왔는데 아내를 내려놓고 돌아가려니까 아내가 “기왕 교회까지 왔으니 나하고 안에 한번 좀 들어가자”고 그래서 아내의 권유에 못 이겨서 들어와서 앉아있는데 설교를 듣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우리 구주되심을 들을 때 성령의 감동으로 마음이 찡해지고 깨어지면서 눈물을 주루룩 흐르고 회개를 했습니다. 그 후에 건강은 계속 악화되어 기침이 심하게 나고 열이 올라 CT촬영을 해보았더니 이번에는 암이 폐와 임파선까지 전이가 되었습니다. 체중은 47kg까지 내려가고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주위에서는 굿을 하자고 유혹했으나 집사님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기도원에 올라가 일주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통해 집사님은 치료의 확신을 갖고 병 나은 것을 바라보고 입술로 시인하며 집에 와서 성경을 네 번 통독을 하고 기도처와 교회와 교회학교에 봉사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잠결에 강한 푸른빛이 발에서 머리끝까지 환하게 비취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사님은 ‘아~ 이것이 말라기 4장 2절에 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라는 그 치료의 광선이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그 이후로 신기하게 건강이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하여 몸무게도 47kg에서 67kg으로 늘었고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암이 온데간데없이 깨끗이 나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피의 대속을 실행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오시면 병에서 해방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피의 대가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은 피에 젖은 비둘기입니다.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예수님이 피흘려서 대속한 대가를 내놓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앞에 마귀는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은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저주에서 해방과 아브라함의 복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오랜 좌절과 절망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수 없다. 못산다. 패배자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예수님의 보혈로 모두 씻어 버리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밝고 맑고 환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으로 채워 놓아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한 것입니다.
피에 젖은 비둘기 성령은 오셔서 피로써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너희 모든 저주를 다 청산했다. 아담이 타락하므로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그 가시와 엉겅퀴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청산해 버렸다. 보혈의 능력으로 저주는 사라졌다. 이제는 긍정적으로 믿으라. 희망을 가져라. 굳건한 믿음 속에 서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가르침을 쫓아서 우리가 마음에 바라봄의 법칙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으면 모든 저주에서 해방되고 승리의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아브라함의 복으로 채워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다섯째로, 피에 젖은 비둘기 성령은 오셔서 우리에게 사망에서 해방되고 천국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제 더 사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죽음을 겁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까? 인간의 종말이 죽음이요, 죽음 저 건너편에 무엇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모른다는 것은 불안과 절망과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오셔서 우리에게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저 건너편 강 언덕에 아름다운 땅이 있는 것을 보여주시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늘나라가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령은 우리를 다시 살려서 영원한 영생을 얻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땅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0절로 11절에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이것이 우리가 가서 거해야 될 영원한 집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무실론자였습니다. 그는 임종시에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을 받았다. 의사선생 내 생명을 6개월 연장시켜 주면 내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고 간청했으나 의사는 그 생명을 연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비극 중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잔인한 노예상인이었던 그러나 그 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받아 변화되어 목숨을 바쳐서 복음을 증거했던 존뉴턴은 숨을 거두기 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하늘나라로 간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나라로 가면 세 번 놀랄 것이다. 처음엔 전혀 하나님나라에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와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고 두 번째는 반드시 하늘나라에 가면 만나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안보여서 놀랄 것이고 세 번째는 노예상인이었던 존 뉴턴이 하늘나라에 와있는 것을 보고 내가 깜짝 놀랄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인간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 피의 대속을 실행하는 성령님만이 우리를 사망에서 해방하여 생명으로 옮겨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목회시작 할 때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에 주님이 4천년 동안 닫혔던 하늘 문을 열어 제키고 인간 삶의 문제의 해답으로 성령을 불로 내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하여 죄를 용서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고 풍랑을 잠잠케 하고 배고픈 자를 먹이고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이 영원히 교회와 인간 사회 속에 임하여서 역사하기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몸찢고 피흘려서 하늘 문을 열어 제키고 이제 피에 젖은 보혜사 성령을 오순절날 내려 보내신 것입니다. 오늘 성령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온 피의 젖은 비둘기인 것입니다. 오순절날 강림한 성령은 피에 젖은 비둘기로써 강림하신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값주고 산 그 보배로운 은혜를 우리에게 실천하는 역사를 베푸는 것이 오늘 성령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 성령을 우리가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며 성령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결론]
예수님은 모든 사람위에 하늘 문을 열어 제켜 놓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사람마다 머리위에 하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곧 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하늘 문이 열린 사람이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하늘 문이 닫힌 사람인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모두다 하늘 문이 닫혀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위에는 하늘 문이 열리고 여러분 위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으로 부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령은 피에 젖은 성령인 것입니다. 피에 젖은 비둘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우리에게 갖고 와서 우리로 하여금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 비둘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는 용서와 의와 영광을 받았다. 너는 마귀와 세상에서 해방되고 거룩함과 성령을 받았다. 너는 고침을 받고 건강을 얻었다. 너는 저주에서 해방받고 아브라함의 복을 얻었다. 너는 사망과 음부에서 해방되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백성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역사하기 때문에 거짓이 없고 변함이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께서 들어오시면 성령이 오셔서 역사하므로 공허와 혼돈과 흑암의 세력, 마귀와 타락의 깊은 심연은 다 사라지고 천국의 영광이 마음속에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로 말미암아 운행하면 흑암은 광명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죽음은 생명으로 추는 미로 가난은 부요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베푸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지금뿐 아니라 영원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 천국의 적은 부분을 우리가 체험하고 있지만은 진짜 새로운 삶의 출발은 우리가 육신의 장막 집을 벗어 버리고 주님이 예비한 천국으로 성령의 가마타고 갈 때 시작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목사였던 본 훼퍼는 나치세력에 대항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1945년 4월 9일 주일아침 여느때처럼 감옥에서 아침기도를 하는데 밖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죄수 본 훼퍼는 나오라” 마침내 사형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같은 감방에 있던 영국장교는 일어나는 본훼퍼를 향해 “목사님! 마지막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렇게 인사했습니다. 그러자 본훼퍼는 미소를 머금고 평화로운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형제여~ 이것은 마지막이 아닙니다. 지금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러 갑니다.” 죽음은 우리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을 하러 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어서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죽음의 골목마다 부활의 광채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광채만 만발하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활짝 열린 하늘 문을 통해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들어가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한 처소에서 살게 되실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전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영원한 미래는 영원히 아름다워지고 좋아지는 것을 믿고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오순절날 우리에게 강림한 성령님은 피에 젖은 비둘기입니다.
그냥 비둘기가 아니라 피에 젖은 비둘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주고 산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와서 우리의 생애 속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역사를 베풀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성령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 새로운 창조를 이룰 때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변화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열린 하늘 문을 향해 아버지께 항상 기도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믿고 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는 고아와 같이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과부와 같이 멸시당치 않습니다. 우리는 하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아버지가 언제나 하늘에 앉아 계시고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하늘 아버지께 모든 기도를 아뢸 수 있고 하늘에서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진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고 계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여 할 수 있습니다. 믿습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긍정적인 믿음을 갖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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