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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쫓아내며

누가복음 나무............... 조회 수 2346 추천 수 0 2009.06.16 20: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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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8:22~35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5년 5월 22일 주일2부설교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가로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ㅁ더니 마침 거기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하신대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그 된 것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 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귀신을 쫓아내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 사역의 3분의 2는 병고치는데 보내셨고 그중에서도 태반이 귀신을 쫓아내는데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대단한 사명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12제자 70인의 제자들 그리도 모든 신자들에게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우리는 이 귀신과의 싸움을 중시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본론]
1. 광풍과 귀신

첫째로, 광풍과 귀신은 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와 더불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비규환의 절망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잠에서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었으며 즉시 잠잠해 졌습니다. 여러분 여기 보세요. 나무를 보고 꾸짖는다고 나무가 들을 턱이 없습니다. 나무는 귀도 없고 생각도 없지요. 바위를 보고 꾸짖는다고 해서 응답하지 않습니다. 바위는 귀도 없고 말도 못합니다. 태산을 보고 꾸짖어 보았자 태산이 꾸짖음을 듣지 않습니다. 꾸짖는다는 것은 인격적인 존재가 되어야 꾸짖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인격적인 존재가 되어야 꾸짖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람이나 바다가 귀도 없고 생각도 없는데 꾸짖는다고 해서 효과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과 바다 배후에서 이를 조종하고 있는 원수마귀가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 배후에 인격적인 존재를 향해서 꾸짖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냥 말씀하셨다면 말씀을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궁창이 생겨나라. 물이 한곳으로 모여라. 말씀이 꾸짖는다는 것은 잘못한 일을 하고 있는 배후에 세력이 있기 때문에 주님이 꾸짖는 것입니다. 갈릴리의 바다에 풍랑이 일게 한 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물에 빠뜨려 몰살시키려는 배후에 마귀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주님이 그 인격적인 마귀를 향해서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즉시로 바람과 바다가 잠잠해진 것입니다. 인생광풍과 배후에 세력도 한가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여러 가지 인생광풍이 불어오지 않습니까?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개인적인 광풍은 그 배후에 광풍을 일으키는 마귀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다니엘서 10장 12절로 14절에 보면 다니엘이 이스라엘이 바벨로니아의 포로로 잡혀가서 바사왕때까지 70년 동안 종살이 했습니다. 그럴때 다니엘이 하나님께 나와서 간절히 기도하니 기도한지 21일만에 응답이 왔는데 천사가 말하기를 “네가 기도하는 첫날에 기도가 상달 되었으나 바사를 다스리는 마귀의 군대가 나를 막음으로 내가 20일 동안 대치하고 있다가 하늘나라 군대장관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바사나라를 다스리는 마귀의 군대를 물리치고 너에게 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한 나라와 한 민족도 배후에서 마귀가 다스리고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너무나 밝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역사를 통해서 바벨로니아 바사, 메데, 헬라, 로마같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나라들의 배후에는 반드시 마귀와 그 군대가 점령을 하고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도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한나라의 문제뿐 아니라 우리 개인들이 생활 속에서도 다가오는 삶의 광풍은 우리 배후에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그렇게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정치적인 광풍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광풍이 불어와서 온 세계를 흔들어 놓고 수많은 생명을 빼앗아 간 과거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독일 히틀러나 일본의 군국주의나 공산주의의 역사를 우리가 살펴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33년 1월 히틀러는 독일 바히마르공화국의 수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정권을 잡자마자 제국의 의회를 해산하고 신문발행과 집회를 금지하는 긴급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새로 구성된 의회는 히틀러에게 무한한 권력을 부여했습니다. 곧이어 히틀러는 검열, 사회운동금지, 정치적인 박해와 살해를 일상화 시켰고 특히 유대인을 가혹하게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1935년 이후 아예 시민권을 박탈당했고 외출시에 꼭 노란별을 달고 다녀야 했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유대인 거주지역을 정해 그곳에서만 살도록 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강제 수용소로 끌고 가서 처형했습니다. 전후 유대인 학살 통계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폴란드, 소련, 헝가리, 독일, 루마니아 등 총 21개국에서 596만명, 약 6백만명이 학살된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히틀러의 정치광풍도 1945년에 그 끝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독일을 공격했던 연합군에 몰려 1945년 4월 30일 결국 한 도시의 벙커에서 히틀러가 권총자살하므로 이 정치적인 광풍이 그치고 만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정치광풍은 저절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는 반드시 마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권세를 묶어 버리고 쫓아내기 전에는 정치적인 광풍이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므로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틀 후인 12월 9일 루즈벨트 대통령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대국민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국민여러분!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직접주시는 메시지로 들어 주십시오. 주 예수의 탄생때부터 악의 세력은 착한 사람들을 계속하여 괴롭혀 왔습니다. 그러나 이 악의 세력과 용감하게 대결하는 사람들은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는 것을 체험하고 알고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일본의 군국주의 배후에 있는 악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이후로 악의 영에 대해서는 주를 믿는 의로운 사람들의 기도와 집단적인 대항을 통해서 이겼다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광풍 배후에는 반드시 마귀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광풍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소련 공산주의의 대표자로 알려진 스탈린은 자신의 정권야욕을 위해 1934년부터 시작해 4년 동안 2천 1백만에서 2천 2백만명의 사람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여 죽였습니다. 겉으로는 만민의 행복과 평등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개인의 욕심을 위해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계획이 아닙니다. 마귀는 유물론사상을 통해 공산주의를 일으킨 다음 이를 토대로 정치적인 광풍을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4년이라는 짧은 기간내에 한 나라에서 무려 2천만명을 학살한 것입니다. 이데올로기 전쟁이라고 불리는 한국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상자만해도 한국인이 약 2백만명, 미군전사자 3만 4천명, UN군 전사자 1만 2천명, 중국인 수십만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공산주의라는 정치광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 바로 한국동란인 것입니다. 여러분 공산주의라는 정치광풍의 배후에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촉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이 원자탄을 만들고 온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것도 공산주의 광풍입니다. 그 배후에 원수 마귀가 있습니다. 이는 단지 6자회담으로 이루어지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 광풍을 일으키는 원수 마귀를 꾸짖을 수 있는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치광풍을 잠잠케 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팔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성도들밖에 없고 성도들의 기도가 예수님의 팔을 움직이고 예수님은 광풍을 잠잠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전쟁위협도 우리 대한민국의 성도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나고 광풍은 잠잠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5절에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22절에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이 알파와 오메가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고 장차 올 전능한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의 기도는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한 두 사람 모여서 땅에서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들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광풍을 피하고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광풍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임금이나 높은데 있는 사람이나 정치를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마귀의 손에 잡히면 어마어마한 정치적, 사회적인 광풍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가 이 광풍이 몰아치는 것을 막을 수가 있기 때문에 높은 사람들, 임금들, 대통령, 수상, 지도자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므로 그들이 마귀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거라사인과 군대 귀신
둘째로, 오늘 거라사인과 군대 마귀에 잡힌 사실을 우리가 한번 알아보십시다.
거라사인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가정의 남편이요, 자녀들의 아버지요, 동리사람이요, 사회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활 속에 어떠한 동기가 있었는지 굉장한 충격과 타격을 입은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이 병들고 억압당하고 고통당하다가 실성하고 마귀에게 잡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인데 이 평범한 사람의 마음속에 마귀가 들어와서 마음에 광풍을 일으킨 것입니다. 마귀가 들어오면 가만있지 못합니다. 마귀는 광풍을 일으키는 당사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옷을 벗어 제켜 버렸습니다. 옷을 벗었다는 것은 예의를 저버렸다는 표상인 것입니다. 광풍이 들어오면 평범하고 좋은 사람도 예의범절을 다 던져 버리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집에 거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거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질서와 도덕을 지키는 사람을 말하는데 집을 떠난 것은 반사회적인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회를 저항하고 전통을 저항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공동묘지에 살았다는 것은 육체적인 정신적인 파탄에 직면한 것입니다. 공동묘지라는 것은 죽은 시체들이 있는 곳입니다. 사망을 가져옵니다. 마귀의 광풍은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옵니다. 평화를 빼앗아가고 기쁨을 빼앗아 가고 소망을 빼앗아 가고 건강을 빼앗아가고 평범한 삶을 빼앗아 가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파탄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을 잡아서 쇠고랑이 묶어 놓았으나 마귀의 힘이 임하면 쇠고랑을 끊어 버리고 질풍노도와 같이 그를 이끌어 묘지로 가서 고함고함치고 돌로써 자기 몸을 치고 피투성이가 되고 사람들을 위협하고 협박하여 겁을 내어서 그 사람이 있는 근처에 갈수도 없는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가 191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3년 동안 통계를 분석해 놓은 세계보건보고서 2002년에 따르면 연간 사망자 5천 6백만명 중에 490만명이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죽고 180만명이 술먹어서 죽고 290만명이 문란한 성생활로 말미암아 성병으로 사망한다고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사망자의 71% 이상이 담배를 피었고 술마시고 성적인 병으로 말미암아 죽는다고 했으니 이 세상에 마귀가 죄악의 광풍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음란과 방탕과 술취함의 광풍이 이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이러한 광풍은 법이나 제도로써 잠재우지 못합니다. 예수님만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줄 수 있고 광풍을 잠잠하게 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광풍, 가정의 광풍, 사회의 광풍, 국가적 세계적인 광풍을 예수님이 잠잠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마음에 풍랑 일어난 거라사인을 향해서 주님이 귀신아 나오라고 하니 그 군대 마귀가 나와서 돼지떼로 들어가매 돼지떼도 광풍에 휩쓸려 미쳐 날뛰어서 모두다 갈릴리 호수로 내리달아 멸망하고 만 것입니다. 광풍은 죽이는 광풍인 것입니다. 마귀는 광풍을 몰아치고 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명령하시매 귀신이 쫓겨 나가고 이 사람은 이제 예의 범절을 지키는 옷을 입고 마음이 단정해지고 안정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회복된 개인, 회복된 가정, 평안해진 이웃으로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이 미친 거라사인을 고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우리 주 예수께서 그를 만나서 그의 광풍을 내어 쫓아 버리고 마음속에 평안과 안정과 기쁨과 정상적인 삶을 허락해 준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 35절에 보면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이란 광풍은 종종 마귀가 몰고 올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시험과 연단을 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시험과 연단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지 않습니다. 힘들게 하지만 주님께서 복을 주시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 한 부형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저는 중년을 지나 이제 노년기를 앞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대대로 우상을 숭배하는 집안에서 태어났고 집안 전통에 따라 저도 우상을 숭배하며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전도로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집에 화재가 나서 아내와 저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신앙으로 시련을 극복하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퇴원할 때 아내가 치료받다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하고 부도를 내었고 급기야 이일로 감옥에 구속이 되었습니다. 저는 수감 생활 중에도 끊임없이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형기를 마친 후에 갖은 애를 쓰고 살아가는데 이번에는 또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을 했습니다. 겨우 치료를 받고 퇴원하니 이게 또 웬말입니까? 그렇게 말을 잘 듣던 아이가 가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목사님, 예수님을 믿기가 왜 이렇게도 힘이 듭니까? 예수님을 안 믿자니 지옥 갈 것이 두렵고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러분 이 부형님이 당하는 고통이 하나님이 주었다고 생각합니까? 불이 나서 아내를 잃어버리고 사업을 해서 도산을 하고 감옥에 들어가고 감옥에서 나오니까 또다시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고 입원을 하게 되고 입원하고 나오니까 자식들 잘 순종하던 자식이 가출해서 나가 버리고 엉망진창입니다. 누가 이렇게 했을까요? 하나님이 이렇게 했을까요? 성경에는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인자가 오는 것은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부형님은 광풍을 만났습니다. 이 부형님이 예수를 믿고 기도는 했지만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몰랐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었다면 이 부형님의 개인과 가정과 생활을 엉망으로 만든 광풍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제가 이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고 예수 믿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광풍이 불어 닥칠때는 귀신을 쫓아내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귀신이 쫓겨 나가면 풍랑이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귀신을 그대로 두고 아무리 우리가 신앙생활 하려고 해도 절대로 평안이 다가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속에 광풍이 다가오면 광풍의 원인자인 귀신을 알아내고 쫓아내야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그냥 쫓아내지는 않습니다. 성경에는 너희가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쫓아내야지 다른 사람이 와서 쫓아내주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의 세대는 마음의 광풍에 시달리는 세대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대의 젊은이뿐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음란의 광풍에 시달리고 방탕의 광풍에 시달리고 술취함의 광풍에 시달리고 도박과 마약과 살인의 광풍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세대입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광풍이 불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4장 19절에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마귀의 광풍입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느 곳에 안 부러운 데가 있습니까? 모든 곳의 광풍에 사람들은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거지 전도단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상한 복장을 하고 이마에 가슴에 ‘나는 예수를 위해 미쳤다’ 이렇게 글을 크게 써붙이고 다닙니다. 사람들은 이들이 지나가면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쳐다보다가 그들의 등에 써 있는 글을 읽게 됩니다. 등에는 ‘너는!’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그 뜻은 “나는 예수를 위해 미쳤는데 너는 무엇에 미쳤는가!” 그렇게 묻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음에 충격을 받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 대부분이 음란에 미치고 방탕에 미치고 술에 미치고 도박에 미치고 마약에 미친 채로 살아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에 미치든지 세상에 미치든지 둘 중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중간상태는 없습니다. 광풍은 예수님 품안에서만이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밖에는 아담과 하와 이후로 이 땅에 다가온 마귀의 광풍이 쉬지 않고 불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광풍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3. 귀신을 쫓아내라
셋째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9절로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1973년 영국 북부의 한 지방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지방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무신론자들이 연합하여 공회당을 빌린 후 좌익계 인사와 명사들을 초청해서 연일 교회와 복음전도자들을 비난하는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점차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지방의 가톨릭 신부들과 성공회 신부들 그리고 개신교회 목사들이 함께 모여 대책을 의논했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오고갔지만 별다른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목사님이 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성경을 읽던 중 마태복음 12장 28절과 29절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는 말씀을 읽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하나님의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 공산주의나 무신론자들은 마귀의 조종을 받는 자들이기 때문에 먼저 마귀를 묶어서 쫓아내어야 이 사람들을 잠잠하게 할 수가 있다.” 목사님은 주일예배를 마친 후 영적으로 능력있는 성도 100명을 모아 그 성경 구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과 무신론자들의 소란을 막으려면 그들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마귀를 묶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도들은 그 자리에서 합심하여 하나님께 마귀의 세력을 멸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목사님이 먼저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지방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무신론자들을 날뛰게 하는 원수마귀는 묶음을 받을찌어다!” 그렇게 말하면 성도들이 따라서 복창하고 아멘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부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공산주의자들과 무신론자들 사이에 의견 대립으로 내분이 일어나 그들의 강연회가 중도에서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신문은 이 사실을 대서특필했고 얼마 있지 않아 그 강연회를 주관하던 간부들이 다른 사건으로 인해 체포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기도했더니 예수님께서 광풍을 잠잠케 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정치광풍을 잠잠케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은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팔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서 마귀를 묶어 버리면 마귀가 조종하는 사람들은 힘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원수 마귀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묶음을 받을찌어다. 북한 공산주의 마귀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묶음을 받을찌어다. 물러 갈찌어다. 할렐루야~”
먼저 집에 들어가서 강한 자를 묶어야 그 집에 있는 세간을 늑탈할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한 자가 점령하고 있을 때 그냥 들어가서 세간을 빼앗을 수 있나요? 강한 자를 묶어야지요. 이 강한 자는 바로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마귀라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은 이 사실을 알고 깨닫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을 하지 말고 사람을 대항하여 싸우지 말고 그 배후에서 사람을 조종하는 원수마귀를 예수 이름으로 묶어 버리면 그 사람이 아무 힘도 없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귀신을 뱀과 전갈이라 했습니다. 뱀보다 더 징그러운 것이 있습니까? 저는 다른 동물들은 용납할 수 있어도 뱀은 징그러워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 얼마나 뱀을 많이 잡았던지 말도 못해요. 우리 시골은 과수원 밭에나 풀밭에 뱀이 너무 많았습니다. 대꼬챙이를 만들어가지고 다니면서 뱀을 잡았습니다. 제 기억에 늘 잊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 누님과 함께 학교 갔다 오는데 독사 한 마리가 밭에서 고개를 들고 우리를 향해 혀를 날름 거립니다. 그래서 우리 누님이 하는 말이 “저것 봐라. 우리보고 욕한다. 혀를 날름날름 하면서 욕한다.” 그래서 나는 어리고 누님은 좀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누님이 돌을 던지니까 독사가 우리를 보고 옵니다. 근데 누님이 탁 돌아서 돌을 던졌는데 어찌 그렇게 정확하게 머리통에 맞았던지 독사가 픽 쓰러져 죽어 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늘 우리 누님만 보면 지금도 독사에게 돌 던지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독사, 이것은 어마어마한 무서운 존재고 물리면 사람이 죽지 않습니까? 여러분 뱀은 원수마귀를 표상하는 말입니다. 뱀과 전갈은 사회악, 재앙들, 술취함, 포악, 위선, 죄악, 폭력, 살상등 온갖 해독을 가져오는 대명사가 바로 뱀이요, 그리고 전갈인 것입니다. 귀신은 바로 뱀과 전갈로 표시했습니다. 이런 뱀과 전갈이 우리 가정에 들어오거나 우리의 생활에 들어오면 우리가 평안할 수가 없지요. 뱀의 독이 올라서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이 원수마귀의 세력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었다 했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능력이라는 것은 두나미스. 다이나마이트라는 것입니다. 폭발적인 힘을 말하는 것이고 권세라는 것은 엑수시아. 권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통순경을 보십시오. 사거리에서 교통순경이 서있습니다. 몸도 호리호리하고 키도 작고 힘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큰 트럭이 건축자재를 잔뜩 싣고 어마어마하게 달려옵니다. 트럭은 능력이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관은 그 트럭을 손으로 대항할 수는 없습니다만 국가가 준 권세가 있습니다.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고 손가락을 하나 움직이면 그 강한 힘을 가진 트럭도 멈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요? 국가가 준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트럭은 능력이 있고 경찰관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는 능력이 있고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그러한 육체적인 힘이 없습니다만 주님은 우리에게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쫓을 권세를 주었습니다. 네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의 백성이 된 사람은 하늘이 준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능력을 가지고 오더라도 하늘이 준 권세를 우리가 알고 당당하게 사용하면 마귀는 우리 앞에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6장 7절에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라고 말한 것입니다.
12절 13절에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7절에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원수 마귀에 대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잊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 안에서 마귀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권세를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용 안하면 마귀가 마음대로 날뜁니다. 경찰관이 권세를 사용하지 아니하면 교통이 복잡해지고 사고가 많이 납니다. 경찰관이 권세를 사용하면 교통에 질서가 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권세를 사용하면 마귀는 쫓겨 나갑니다. 많은 마귀의 해독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으니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말씀을 우리가 읽고 외우고 말씀을 가지고 대적하면 마귀는 말씀 앞에 낭패를 당하고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했으며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낙스는 임종직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종종 마귀로부터 습격을 받았습니다. 마귀는 나의 죄를 들먹이며 나를 유혹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귀는 교활한 방법으로 나를 공격합니다. 내가 충실하게 목회를 했기 때문에 하늘나라와 영원한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 이 말씀을 생각나서 묵상하다 보니까 마귀는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말씀의 권세를 사용할 때 마귀는 어느새 두려워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늘 마귀는 쫓겨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로 29절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귀신을 쫓아내게 됩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도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언제나 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며 성령과 함께 살면 성령 앞에서 마귀는 풍전등화와 같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깨끗한 삶을 살므로 마귀의 우글거리는 곳에 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고 하는 것처럼 내가 진흙탕에 들어가면 진흙이 내 몸에 묻어오는 것이요, 숯이 있는 곳에 가면 숯이 묻게 되는 것이요 내가 음란하고 방탕하고 도박하고 거짓말하고 죄짓는 곳에 들어가 있으면 그곳에 마귀가 묻어오는 것입니다. 그런 곳을 피해야 돼요. 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죄악이 들 끊는 곳이 있습니다. 미국에 가면 할렘가는 가지 말아야 돼요. 그곳에서는 굉장히 죄악이 많이 성행합니다. 그런 곳에 가서 도적을 당하고 난 다음 원망을 할 수는 없지요. 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깨끗한 삶을 살면 마귀의 공격에서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3절로 14절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마귀의 공격을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1절로 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로써 대적해야 됩니다. 마귀가 오면 아우성치고 도망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대적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옥타비누스 목사님이 반둥지역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그 지역의 가장 유명한 남자 무당을 만나자 무당이 그 목사님 보는 앞에서 마당에 놀고 있는 개를 한참 노려보니까 개가 갑자기 푹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닭 한 마리가 걸어다니는 것을 보고 한참 노려보니까 그 닭도 맥없이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러자 무당이 목사님을 노려보면서 “너도 이렇게 죽고 싶지 않으면 이 지역에서 전도하지 말고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나와 능력대결을 하자.” 목사님은 일단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나자고 해놓고 돌아와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무당을 만나러 갔는데 목사님이 무당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니 뱀눈 같습니다. 그 눈을 쳐다보고 “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마귀야 떠나가라!” 몇 번 명령을 하니 무당이 그 자리에서 픽하고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몸을 틀고 일어나 보는데 그 눈이 완전히 비둘기 같이 변화되고 만 것입니다.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과연 예수신이 무섭다”고 그는 무당을 포기하고 회개하고 예수 믿었다는 기록을 읽어 보았습니다.
또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알렉산더 다위 목사님은 부흥회를 인도하러 다니곤 했는데 종종 풍랑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예수 이름이 바다의 풍랑을 꾸짖듯이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풍랑아 잠잠하라. 풍랑아 떠나가라”고 할 때 바다의 풍랑이 잠잠해 졌다는 기록을 남겨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며 나아가면 배후에서 역사하는 마귀가 두려워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광풍을 잠잠케 할 수 있는 이는 예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적인 권력이나 수단이 광풍을 잠잠케 할 수 없습니다. 기도가 광풍을 잠잠케 합니다. 오늘날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6자회담을 열고 끊임없이 정치적인 해결을 바라고 있지만 그것이 광풍을 잠잠케 하지 못합니다. 북한에 핵문제의 광풍을 잠잠케 할 이는 우리 한국의 1천 2백만 성도의 기도가 그를 잠잠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여 기도하면 광풍은 잠잠하게 되는 것입니다. 강한 자가 묶여서 쫓겨나가 버리니 그 문제는 스스로 해결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약하게 보지 마십시오.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회를 하는 것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두 세 사람 이상이 모여서 기도하면 개인, 가정, 생활, 사회, 국가, 세계의 광풍이 잠잠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광풍이 다가와서 우리에게 불안, 초조, 절망, 좌절의 종을 만들려고 할 때 우리는 마귀와 대결해서 그를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광풍은 물러갑니다. 예수님 품안에는 광풍이 다가오지 못합니다. 광풍을 잠잠케 하는 자는 오직 우리 주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의지하고 믿고 순종하고 성령충만, 말씀충만, 기도충만, 능력충만하여 항상 귀신 뱀과 전갈을 내어 쫓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용사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이 세상은 광풍에 시달리고 있사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가 경제적으로 윤리적,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광풍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광풍을 잠잠하게 하시는 이는 우리 주 예수님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이를 깨닫게 하여 주시옵시고 예수믿는 우리들이 믿음과 기도를 통해서 광풍을 잠잠케 하는 능력을 활성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광풍을 잠잠케 하고 강한 자를 묶어 버리고 우리가 승리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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