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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의 인생을 살라

말라기 김성철 목사............... 조회 수 2347 추천 수 0 2009.06.18 07: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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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말3:7∼12 
설교자 : 김성철 목사 
참고 :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

설교 중 헌금문제를 다루게 되면 교인들이 마음을 닫고 설교자에 대하여 이상한 감정을 가집니다. 그것은 다른 말씀은 다 할지라도 헌금 이야기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설교 중 헌금에 관한 말씀을 하면 돈만 아는 목사로 취급되고 은혜롭지 못한 목사가 됩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돈만 아는 목사가 될 위험을 가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은혜롭지 못한 목사가 될 위험에 있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십일조의 믿음생활에 대해 말씀을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겸손한 믿음의 눈을 가지고 십일조에 대한 말씀을 연구해 보면 이 십일조의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십일조의 삶은 우리 모두가 바로 찾아야 할 너무도 중요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설교가는“십일조의 삶은 기독교 신자의 A.B.C. 즉 기초이다.” 또는“예수 믿고 구원받는 십자가의 복음이 제일 첫 복음이라면, 구원받은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복된 소식은 십일조라고 믿기 때문에 십일조는 제 2 복음이다.”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로버트 H 슐러'' 목사님은 "나는 중력의 법칙만큼이나 십일조의 법칙을 신뢰합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표현은 십일조의 삶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것인지를 깨닫도록 요청하는 말씀입니다.
십일조의 기원은 창 14:20에 아브라함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리품의 1/10을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드리는 데서부터입니다.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는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창28:20-22에 보면 야곱은 하나님께 십일조의 삶을 서원 했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 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집에 돌아가게 하시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의 사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며 살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인생으로 살 것을 고백하면서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십일조의 기원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임을 고백함과 함께 감사의 구체적 표현을 드리는데 있었습니다. 이것이 모세 이후 율법시대에서 체계화되었습니다.
율법시대의 모든 백성이 그들의 소산의 1/10을 드렸습니다. 이 드려진 십일조는 제사의 직무에만 전념했던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서 성전 일을 감당하던 레위인들의 생활비로 쓰여졌습니다. 이 십일조를“첫째 십일조”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첫째 십일조를 제외한 9/10에서 다시 십일조를 떼어 하나님께 감사 축제를 드리는 데 사용했는데, 이것을“제2의 십일조”또는“축제 십일조”라고 부릅니다. 안식년을 기준으로 제 3년과 제 6년에는 둘째 십일조를 감사의 축제로 드리는 대신, 나그네, 가난한 자, 고아, 과부와 같은 사람들을 돕기 위한 구제 사업에 사용되었습니다(민18:21-31, 레27:30-33, 신12:5-9).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 십일조에 관한 구체적인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서 재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십일조가 의식과 형식으로 변한 것을 꾸짖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서 엿볼 수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눅11:42)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십일조의 삶을 당연시 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담겨진 더 깊은 차원의 참된 십일조의 삶을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이후 이러한 근거에서 교회는 십일조의 생활을 지켜왔고, 이 십일조의 생활로 교회사역이 유지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십일조의 삶은 교인들의 믿음을 척도 하는 중심 요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라기 예언자의 말씀을 통하여 십일조의 삶의 바른 신앙을 찾아야 하고 십일조 신앙의 복된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

사실 십일조의 의미를 물질적으로만 생각하기에 그 참된 의미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일년 소산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행위 속에는 온 삶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구체적 표현입니다. 이 고백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십분의 일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십일조 안에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고백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온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으로서 드리는 십일조 헌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 것으로서 하나님이 반드시 받으셔야 할 귀한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이 담긴 십일조를 하나님께서는 받기 원하십니다. 이 십일조를 무시할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3:8)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 십일조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의 중요한 고백인고로 십일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시험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시험해 보기까지 우리가 십일조의 인생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집의 양식이 되도록

그런데 이 십일조를 드림에 있어 하나님은 말라기 예언자를 통하여 십일조의 사용범위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사용범위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기까지 십일조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되도록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십일조는 성전으로 가져와서 그것을 위해 마련된 창고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제사장들과 성전에서 봉사하는 직무를 맡은 레위인들의 양식으로 삼게 했습니다. 만약 십일조가 제대로 드려지지 않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양식을 얻지 못하게 된다면 그들은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직무에 충실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십일조 헌금은 자신들의 신앙을 양육시켜주는, 그리고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에 드려지는 원칙을 보게 됩니다. 십일조헌금은 어느 기관 보조로 기부되거나, 어느 선교단체 헌금으로 대신될 수 없는 독특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재정은 십일조의 법에 따라 집행되어야 합니다. 제1십일조는 제사장과 레위인을 위하여 쓰여지듯 목회 사역을 위하여 쓰여짐을 우선으로 하여야 합니다. 다음에 제2십일조의 의미로 감사헌금과 주일헌금, 속회헌금, 절기헌금은 구제와 교회축제를 위하여 쓰여짐이 타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으로서 주님의 몸 된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재정이 부족하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성도들이 고백하며 드리는 십일조의 삶으로 하나님의 집에 양식과 하나님 나라의 재정이 부족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과 사업에 양식이 부족하지 않도록 성도들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풍성한 믿음의 고백과 함께 드린 성도들의 십일조로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재정이 풍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풍성한 십일조의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는데, 그 십일조를 하나님의 집의 양식이나 하나님 나라의 재정으로 드리지 않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를 역행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것을‘도적질하였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드리지 않을 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 십일조의 신앙으로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 나라의 재정을 부요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하나님 집의 양식과 하나님 나라의 재정이 부족하지 않도록 여러분을 축복하시는 십일조의 축복자가 되십시오.

십일조는 십일조의 삶을 살게 하는 고백이 되어야

우리는 구체적 십일조 행위와 함께 십일조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1/10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입니다. 나의 생각, 시간, 지혜, 건강 등 모든 것들의 1/10을 하나님의 집, 곧 교회의 목회사역과 하나님 나라의 사업을 위하여 쓰는 생활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하나님 나라의 사업이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아울러 제2의 십일조와 같이, 가정이나 직장에서 또는 사회생활 속에서 십일조 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 가정, 직장, 사회 속에서 나의 모든 것의 1/10을 하나님의 뜻대로 쓴다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가 얼마나 풍성하겠습니까? 10 전체를 나를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그곳에 무슨 이해와 배려가 있겠습니까? 나만을 사랑하는 자기중심에서 아내를 위한 사랑에 1/10을 드려보세요. 부부의 관계가 달라질 것입니다. 나의 직장 동료를 위해 1/10만이라도 하나님의 의도대로 사용해 보십시오. 직장의 인간관계가 달라질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도의 십일조 적인 삶은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삶이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삶입니다.
여러분! 1/10을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 쓰시는 삶을 살아가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형식적인 십일조의 삶을 살 때, 예수님은“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눅11:42)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고백과 함께 십일조 드림이 십일조의 삶으로 우리생활 가운데 드러날 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 중심의 삶에 있습니다. 또한 이 십일조의 삶은 우리 자신을 축복된 삶으로 살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십일조란 우주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학2:8), 그 받은 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고백이며(시136:25-26), 이웃사랑을 실천케 하는 규례(요1서4:20)인 것입니다. 십일조의 드림이 십일조의 생활로 드러나는 십일조의 인생을 이루십시오.

십일조의 삶은 하나님의 축복하심의 삶을 성취하게 함

십일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겠다고 하셨습니다. 황충을 금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땅이 아름다워지고 열방이 너를 복되다고 칭송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십일조의 인생의 삶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시고, 풍성하게 하여 주시고, 유명하게 해주시는 축복된 삶입니다.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오 목사님은 "하나님은 어지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구하는 것보다 많이 주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하나를 주고 열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열을 약속하시고 하나를 요구하시는 분이시다"라고 했습니다.
석유왕 록펠러는 그의 어머니의 강력한 신앙교육을 받고 성장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록펠러에게 강한 신앙의 원칙을 가르쳤습니다. 1) 주일을 목숨걸고 지키라. 2)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라. 3) 칭찬 듣는 생활을 하라. 4) 은혜의 자리를 떠나지 말고 사모하라. 5) 철저한 십일조를 드리라. 그리하면 너는 큰 은혜의 축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록펠러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살았습니다. 8세 되는 해 자기가 얻은 20센트 중 2센트를 처음으로 십일조로 드리기 시작한 이래, 철저한 십일조의 삶을 살았습니다. 가난하여 상급학교도 진학하지 못했던 그가 세계 최대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재단이 사회에 미치는 십일조 정신의 역사는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 석유왕에게 사람들이 "선생님은 어떻게 이런 큰 부자가 될 수 있었고, 어떻게 이와 같은 가치 있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까?"고 질문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십일조를 바칩니다. 십일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가난하게 사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축복해 주십니다."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까지 말씀하신 십일조의 삶은 우리가 해야할 믿음의 삶입니다.
십일조의 삶은 "나를 시험하여 보라"고 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결심해야 할 성도의 믿음이자,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십일조의 바른 삶을 위하여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십일조의 삶은 믿음의 고백과 함께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의 고백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의 것으로 삼으십니다. 그것이 바로 축복의 역사입니다. 그것을 말라기 선지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3:10-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고 반복하며 강조하신 십일조의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축복의 인생이 되도록 하시기 위한 명령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 모두가 온전한 십일조의 인생을 만드심으로 하나님의 축복자가 되십시오. 아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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