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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말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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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장우 목사 |
참고 : | 늘푸른교회 2007. 11. 14 |
1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3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6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7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8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9 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니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하면서 대든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변으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합니다. 지난주 본 말씀에서는 네가 나를 멸시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어떻게 하나님을 멸시하였는가 하면서 대듭니다. 하나님의 답변은 너희가 흠 있는 재물을 드리면서도 그것조차 번폐스러워하고 코웃음 쳤다는 것이 하나님을 멸시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멸시하였다는 책망이 계속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제사가 드려지는 가장 큰 잘못은 제사장들에게 있습니다. 제사장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제사를 드림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죄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기억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사실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제대로 자기의 직분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보면, 그래 지도자가 문제야!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의 책임은 회피하려고 하는 죄된 속성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떻게 하든지 자기를 정당화시키면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챙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멸시하는 문제가 일어난 것은 제사장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도 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다 한 통속이 되어 있기에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자체가 제사장 나라입니다(출19:6).
오늘 ‘오마이 뉴스’의 어느 기사를 보았더니 아무리 많은 부정한 일들이 드러나더라도 그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나라가 꾸중물 통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곳에서 더러운 물이 콸콸 흘러나오니 그런 정도는 용납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조적인 기사였습니다. 왜 이런 인용을 하는가 하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이 모양입니다. 누가 누구를 탓할 입장이 못 되는 것입니다. 눈 먼 것으로 희생을 드리고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오면서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하는 것이 제사장이나 백성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책망은 제사장들에게 합니다. 그들 속에 백성들이 다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망하면 백성도 다 망하는 것입니다. 1절-3절까지 무서운 심판의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고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저주가 조건적으로 내려질 것이라는 말씀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다음 말씀에서는 이미 저주하였다고 합니다. 이미 저주하신 이유는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저주한 상태가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저주의 선포는 어떻게 처리하실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시면 절기 희생의 똥을 너희의 얼굴에 발라서 함께 제하여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제물을 바치기 위하여 짐승을 잡으면 짐승들이 죽지 않으려고 용을 쓰면 똥이 나옵니다. 그런 똥들과 짐승을 잡을 때에 버리는 것들과 함께 제사장마저 치워버리겠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버려져도 사실은 마땅한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행위대로 주님께서 갚으신다면 우리도 제물의 똥과 함께 버려져야 할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요한서신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들은 목사나 전임 사역자나 하는 것이고 우리 같은 평신도들을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 2:9절에서 성도를 무엇이라고 합니까?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은 제사장이 아니라서 제사장의 책망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나는 직분자가 아니니 상관이 없다고 하면서 빠져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다 왕 같은 제사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구약처럼 버림을 당해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밭에도 거름에도 쓸모가 없어서 길에 버려져 밟힐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이런 책망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이 명령을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을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 너희가 알 것이라고 합니다. 레위와 세운 언약을 레위지파는 어겼지만 그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취소할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언약을 항상 있게 하시기 위하여 이런 명령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행위에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이루시는 그 신실하심에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입니까?
5-6절입니다. 생명과 평강의 언약입니다. 성경 원문에는 정관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생명과 그 평강’입니다. 유일한 생명과 평강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알 수도, 줄 수도 없는 생명과 평강을 레위와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언약을 주신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며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레위언약이 세워진 과정을 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에 어린 양의 피로 장자가 다 살아남았습니다. 그 장자는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구별하였습니다. 그러나 각 지파에서 장자를 계수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지파를 정하였습니다. 그 지파가 레위지파입니다(민3:12-13). 처음 난 것은 다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게 한 것입니다. 이들의 희생과 봉사로 다른 이들이 복을 받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조치였습니다.
그러면 레위지파가 이렇게 제사장 직분을 맡을 어떤 조건이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레위지파는 야곱으로부터 시므온과 함께 흩어질 것이라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출애굽 후 시내산 아래서 금송아지 사건 때에 모세가 여호와의 편에 설 자는 오라고 하였을 때에 레위지파가 여호와의 편에 서서 우상 숭배자를 도륙하였습니다.
이것을 헌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유언대로 흩어지지만 동시에 제사장의 직분을 받았기에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입니다(출32:29). 이제 이 레위지파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축복을 비는 자가 되었습니다.
민수기 25:10-13절을 봅니다.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13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비느하스의 질투가 바로 제사장의 질투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우상숭배를 하는 데 대하여 여호와의 질투로 질투한 비느하스 즉 레위지파에게 평화의 언약과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지금 말라기 시대는 이런 제사장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일에 제사장이 앞장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생 제물의 똥을 발라서 제거하여 버리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영원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언약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사와 율법과 제사장이란 무엇을 유지하기 위한 직분입니까? 언약을 유지하기 위한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5-6절이 제사장의 직분인 것입니다.
7절을 봅니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 지식이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율법에 담아두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수시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율법의 중심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제사장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여호와의 사자라고 합니다. 선지자만이 아니라 제사장도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8절입니다. 너희는 정도에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른 길에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율법을 듣고 그 율법이 말하는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율법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거침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도를 어기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면 나도 너희를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였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지파와 맺은 언약이 생명과 평강의 언약입니다. 그러나 레위지파가 그 언약을 이루어 내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파기하실 수 없기에 이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레위지파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이 제사장의 역할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히브리서 7장에서 아주 상세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을 축복한 멜기세덱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릴 때에 레위지파에 소속이 되지 아니한 이때에 레위지파는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습니다.
이 멜기세덱을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라고 합니다. 의의 왕, 평강의 왕입니다. 레위지파와 맺은 언약이 무슨 언약이라고 하였습니까?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생명과 평강이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유일한 생명과 유일한 평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생명과 평강입니다. 세상의 죽음조차 빼앗아 갈 수 없는 생명과 평강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레위의 언약입니다. 그러나 레위지파는 연약하여 담당하지 못한 것을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능력으로 충분하고 완전하게 담당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7:24-26절입니다.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이어지는 말씀에 보시면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습니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지만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 얻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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