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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읽는어른

동행

이현주동화 이현주............... 조회 수 1352 추천 수 0 2009.06.27 12:31:25
.........

두 사람이 길에서 만났습니다.

저쪽이 이쪽에게 물었어요.

“어디 가오?”

“부산 갑니다.”

“난 부산에서 오는 길이오.”

“잘 가시오.”

“잘 가시오.”

두 사람은 뒤돌아보지 않고 헤어졌어요.

어느 쪽도 어느 쪽의 동행이 아니었거든요.

아니, 동행일 수 없었거든요.

 

두 사람이 길에서 만났습니다.

저쪽이 이쪽에게 물었어요.

“어디 가오?”

“부산 갑니다.”

“난 목포 가는 길이오.”

“함께 갑시다.”

“그럽시다.”

둘은 동행이 되어 나란히 길을 걸었어요.

하지만 천안에 이르러 둘은 헤어졌지요.

거기까지는 함께 갈 수 있었지만, 천안 삼거리에 이르자 저쪽은 저쪽으로 가야 했고 이쪽은 이쪽으로 가야 했거든요.

둘은 손을 흔들며 헤어졌어요.

 

두 사람이 길에서 만났습니다.

저쪽이 이쪽에게 물었어요.

“어디 가오?”

“부산 갑니다.”

“난 대구 가는 길이오.”

“함께 갑시다.”

“그럽시다.”

둘은 동행이 되어 나란히 길을 걸었어요.

하지만 대구에 이르러 둘은 헤어졌지요.

거기까지는 함께 갈 수 있었지만, 대구에 이르자 저쪽은 더 갈 곳이 없고 이쪽은 아직 갈 데가 남았거든요.

“잘 있어요.”

“잘 가시오.”

둘은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어요.

 

두 사람이 길에서 만났습니다.

저쪽이 이쪽에게 물었어요.

“어디 가오?”

“부산 갑니다.”

“나도 부산 가는 길이오.”

“함께 갑시다.”

“그럽시다.”

둘은 동행이 되어 나란히 걸었어요.

드디어 부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둘은 헤어져야 했지요.

부산이란 곳이 또한 넓은지라, 이쪽은 해운대로 가고 저쪽은 을숙도로 가야 했거든요.

“잘 가시오.”

“당신도 잘 가시오.”

둘은 포옹을 하고 헤어졌어요.

 

두 사람이 길에서 만났습니다.

저쪽이 이쪽에게 물었어요.

“어디 가오?”

“해운대 갑니다.”

“음, 괜찮다면 함께 갑시다.”

“어디 가는 길인데요?”

“난 정처가 없소.”

“갈 곳이 없단 말인가요?”

“어디든지 갈 수 있단 말이지요.”

“방향도 없이?”

“방향도 없이!”

“당신은 인생에 목적이 없나요?”

“길 가면서 사람 사귀는 게 내 인생의 목적이오.”

둘은 동행이 되어 함께 해운대에 이르렀어요.

그리고 거기서 헤어졌지요.

이쪽은 갈 곳이 없고 저쪽은 머물 곳이 없었거든요.

이쪽이 저쪽에게 말했어요.

“고마워요, 여기까지 함께 와줘서.”

“나도 고맙소. 덕분에 즐거운 길이었소.”

둘은 입을 맞추고 헤어졌지요.

 

이제 길에는 한 사람 남았습니다.

아무하고도 동행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동행할 수 없는 사람.

여우도 굴이 있고 참새도 둥지가 있으련만, 저문 날에 머리 둘 곳 없는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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