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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은 부분을 옮겨 쳤습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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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거짓평화에 속지 마세요.
평화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항복으로 말미암는 평화이고, 또 하나는 승리로 말미암는 평화입니다.
자신과 교회의 영권에 도전해 오는 마귀들과 싸우려고 결심해 보십시오. 그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삶은 더욱 긴장과 도전의 연속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을 포기해 보십시오. 삶 속에서 긴장이 사라지고 잠시 평화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거짓평화입니다.
여러분은 캄보디아의 비극을 알고 계십니까? 어느 날 반란 공산군과 민주 정부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끝이 나고 잠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민주 정부군이 반란 공산군에게 항복을 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잠깐 동안의 평화 뒤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반란 공산군들은 항복한 군인들이나, 처음부터 협조하지 않은 민간인들에 대해 전대미문의 엄청난 학살을 자행하였습니다. 산 사람들이 땅에 묻혀 죽임을 당하는 것도 사치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사람의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워 죽였습니다. 이것이 항복한 군사들의 말로입니다.
2.우리들의 대적은 마귀그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6:12)은 사단을 우두머리로 하여 모인 졸개들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세계의 실재에 대해서 잘 믿으려들지 않습니다. 교리적으로 믿기는 해도 그것을 심각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들로 오해받곤 합니다. 오늘날 우리 조국 교회의 강단에서도 "사단, 마귀, 귀신, 영적인 싸움 그리고 악령들의 지옥..."등과 같은 이야기는 왠지 확신 있게 설교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원색적인 발언은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지성에 거스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확신하건데, 우리의 영원한 대적 사단은 이 같은 우리 조국 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3.강한 군사가 되는 비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강한 군인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합니다. 훈련된 군인, 현대화된 병기, 불타는 군인정신이 그것입니다. 세상의 군대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고도의 군사 훈련을 받아야 하고, 발달된 신무기들로 무장하고 있어야 하며, 싸우고자 하는 전투 정신이 충일(充溢)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자신의 군사들을 강한 군사로 만드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엡6:10)
헬라어 원문은 이 부분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너희는)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능력 안에서(강하여지라)" 일반적으로 우리의 삶은 실로 능력있는 군사로 싸워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지치고 상처받은 패한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일쑤입니다. 따라서 강한 군사가 되는 비결을 알려주는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보석과 같은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
4.주 안에서
위대한 전도자들은 모두 성령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죽기까지 성령의 능력에 붙들려 쓰임받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삶으로 주안에 거하기를 힘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9세기 미국의 전도자 찰스 피니는 가장 오랜 기간동안 설령이 함께하시는 집회를 인도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전도집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그치고, 자기의 설교에 능력이 마르는 것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 몇 시간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삶과 설교의 동기를 점검하며,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기를 그치지 마시도록 애타는 탄원을 올렸습니다. 그러면 즉시 성령의 역사가 재개되었고, 영혼들은 구원되었습니다. 강하여지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자신들의 삶이 주 안에 있기를 구해야 합니다.
5.그의 힘의 능력 안에서 강건하여지라
사단은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을 치가 떨리도록 싫어합니다. 그의 졸개 마귀들은 우리가 주님을 위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죽기까지라도 전쟁을 벌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헌신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기를 쉬는 때가 있어도, 그들은 쉬지 않습니다. 그들은 졸지도 않고 자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맡은 구역과 담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인 여러분 곁을 결코 떠나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인 여러분이 깨어서 무장한 강한 군사가 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삶은 잠시 싸우는 것 같으나 이내 더 강한 마귀의 세력을 만나 패배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러한 사실에 각성되지 않은 채 그냥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의 비참한 신앙생활을 보십시오. 영적인 싸움이 있는지도 모르는 그들이 승리를 경험할 턱이 없습니다. 영적인 승리를 모르는 그들의 삶이 어떻게 주님을 위한 삶이 될 수 있겠으며, 삶이 하나님을 위해 드려지지 않는데 그들의 영혼 속에 어떻게 평강이 있겠습니까?
6.마귀들의 영적 전쟁
영적 전쟁은 우리에게만 심각한 전쟁이 아닙니다. 마귀에게도 심각한 전쟁입니다. 마귀들은 결코 자기 본연의 임무에서 이탈하지 않고, 성령의 권유를 받음으로 회개하여 우리편으로 귀순하는 법도 없습니다. 유혹을 받아서 본연을 망각한 채 실수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류(?)를 범하는 법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영적 싸움에서 우리를 이기고, 그리하여 영혼들을 자기의 수중에 넣고 마음대로 움직여 하나님께 경배하지 못하게 하고, 인생들로 허탄한 것들에게 복종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세월을 허비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속에 있어야 하는 참된 평화를 앗아갑니다. 열매를 맺던 신앙의 뜨락을 황폐하리만치 묵은 땅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새들이 노래하고 주님의 음성이 청아하게 들리던 영적 삶의 정원을, 죽은 것들의 시체를 찾는 검은 까마귀의 울음소리만 스산하여 황량하기 그지없는 폐허로 만들어버립니다.
7.사악한 마귀를 이기려면
마귀는 사악한 꾀에 있어서 명수입니다. 그는 죄가 없었던 우리의 순진한 처음 조상 아담과 하와도 넘어뜨렸습니다. 순결하던 믿음의 사람 다윗을 실족시켜 하나님 보시기에 '소위가 심히 악한 자'로 만들어버린 것도 마귀였습니다. 그리스도와의 교제 가운데 하늘의 능력을 맛보았던 사도 가룟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 예수를 팔게 한 것도 '그 악한 자'였습니다.
그 '마귀'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영적인 군사들의 급소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공격을 받을 때 믿음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생각으로 짜낸 지혜를 가지고 마귀를 대적해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정도 되면 우리는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군사학교에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학교에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의 사령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훈련하고 무장시키는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8.믿음의 사람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것을 사모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전쟁에 참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하나님께서 하늘의 무기고를 열고 완전한 군장을 공급해 주시기를 쉬지 않고 탄원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치 싸움의 성패가 그것에 달린 것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충성된 마음으로 올리는 간구를 기억하사 천국의 무기고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들은 강한 군사가 되었고, 싸움에서 승리함으로 전쟁의 주인이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하여 온갖 충성을 다 바쳤습니다.
9.시대를 분별하는 지혜
믿음을 따라 살고자 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의 뒤를 따라 싸우고자 하는 여러분의 결심과 노력을 이 세상이 어떻게 대우해주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뒤를 따라가고자 할 때 세상이 여러분을 도와줍니까? 영적인 군사로 주와 더불어 싸우고자 할 때 이 세대가 도와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입술로는 영적인 싸움에 출전하겠노라고 고백하고, 육체로는 이 악한 날의 세상 풍조를 따라가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실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삶으로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적 싸움은 진공 중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고, 우리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싸워야 하는 이 세대는 악한 세대입니다. 이 시대를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지혜를 가져야겠습니다.
10.서 있으라
서 있는 것은 싸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전투를 수행하는 병사가 서있지 않고 앉아 있거나 누워 있다면, 그의 모든 무장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누워있음으로써 싸울 의욕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미 이 영적인 전쟁에 합당하지 않도록 허리가 굽은 사람들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일락을 즐기는 자는 서 있기는커녕 "살아있으나 이미 죽은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딤전5:6) 영적인 싸움에 나아오는 우리를 향한 사단의 첫 시도는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서있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적 군사로 부름받은 우리에게는 신앙적으로 서 있고자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싸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11.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허리띠는 사람의 복장을 묶어 줌으로써 움직임을 기민하게 해 줍니다. 지체하지 않고 진군할 수 있는 복장에는 허리띠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왕궁에서 사치스러운 삶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이 같은 허리띠가 필요 없습니다. 온 몸을 휘어 감고 발 아래까지 덮어 늘어진 옷을 입고 게으른 삶을 즐겼기 때문입니다.
방만하고 나태한 삶을 은밀히 즐기는 그리스도인들은 도무지 이런 허리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몸을 속박하는 이러한 허리띠는 싸움에나 편리하지, 죄악의 낙을 즐기며 살아가는 방탕한 삶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에는 긴장이 없으므로 허리띠를 졸라맬 이유가 없습니다. 진군나팔소리가 울려도 참전할 의사가 없으므로, 허리를 묶고 몸을 간편하게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대장 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원을 진심으로 받아 주실까요?
12. 의의 흉배
어떤 이는 전투복을 입고 무장은 했으나 가슴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단은 흉배가 벗겨져 방비할 것이 없는 가슴을 공격했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난 크고 작은 많은 상처들이 그것입니다. 때로는 사람을 통해서, 때로는 환경을 통해서 사단은 우리의 가슴을 공격합니다. 의의 흉배가 없을 때 우리의 가슴은 드러나 적군의 표적이 됩니다.
우리의 가슴이 하나님 나라의 의에 대한 열망으로 타오르지 않고 우리의 삶이 의로움과 경건을 추구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 속에서 쉽게 상처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영적 군사로 부름받은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이점에서 실패합니다.
13.평안의 복음
헬라어 성경에 '에이레네'라고 기록되어 있는 '평안'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은 샬롬, 곧 평강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참된 평화는 샬롬입니다. 피스(peacr)가 아닙니다. peace는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인간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전쟁과 고통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은 바로 이 평화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평화를 갈망하면 할수록 이 세상은 이러한 소망과는 상관없이 더욱더 불안과 갈등을 향해 나아가곤 합니다. 평화는 샬롬이 없는 한 참 평화가 아닙니다.
샬롬! 이 샬롬은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말미암는 평화입니다.
14.복음의 신발을 신고
피 묻은 복음을 들고 흥청거리는 도시나, 가난한 이웃들이 사는 산촌이나, 어촌이나, 섬이나, 강가 마을이나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로 세워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복음이 아니면 소망이 없는 이 세상에서 이 기쁜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산을 넘고, 국경을 지나며, 망망 대해를 가로질러 건너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함으로 마음 저려 하는 선교사들을 세우시기를 기도합니다.
다만 조국 안에서 이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그치지 않고, 아직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자 없어 구원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어둠 가운데 죽어 가는 미전도 족속들의 땅으로 다가가 영적 전쟁의 도전장을 내놓는 용사들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5.믿음의 방패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때는 몰랐는데 신앙이 떨어지고 영적인 무장이 해이해질라치면 어김없이 공중을 가로질러 영적인 군사들인 우리를 향해 날아온 화살이 있으니 이는 '의심'의 화살입니다. 의심의 화살을 가슴에 맞으면 이제껏 믿어오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 여기에 이르기까지 인도해 오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 갑자기 말씀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그렇게 분명히 믿어지던 하나님의 약속이 희미하게 잊혀지기 시작합니다. 이 의심의 독화살을 막는 것은 '믿음의 방패'입니다.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공중을 가르고 날아오는 의심의 화살은 '믿음의 방패'로 막아야 합니다.
16.구원의 투구를 쓰라
우리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수많은 화전을 소멸할 뿐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며 다가오는 모든 어리석은 머리의 생각에 의해 지배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머리, 곧 우리의 사고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에, 우리는 너무나 자주 쓸데없는 생각에 의해 지배를 받기가 일쑤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가지라'는 말은 이것을 씀으로써 모든 사단의 공격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안전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 투구를 씀으로써 군인의 지체 중 가장 치명적인 부위가 될 머리부분을 보호하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그리고 구원받은 당신의 자녀에게 이미 주신 하나님의 약속들이 우리의 머리에서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성경암송은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17.말씀의 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객관적으로도 진리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어주건 말건 성경은 불변하는 진리이고, 인생들이 동의하건 말건 간에 말씀은 기록된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그것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인 전쟁에서 우리를 멸하기 위하여 도전해 오는 악한 영들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고 그리고 성령께서 그 말씀을 붙들어 사용하실 때, 그 말씀은 악한 영들을 찌르는 칼과 베이는 검이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말씀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께서는 영적 상황에 따라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기 위해 다양한 검을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때로는 칼로 자르기를 원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쪼개는 칼을 필요로 하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성령에 민감한 사람들이 되어서, 그 칼들을 사용하고자 손을 내미시는 성령께서 언제든지 사용하실 수 있도록 쓰심에 합당한 말씀의 검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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