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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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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선교는
해외에선 납치 테러의 폭력에 사로잡히고
국내에선 악풀 여론의 냉소에 부딛힌 형국입니다.
한국교회, 특히 교회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은
이 현실이 오늘 하루 갑작스런 일이 아니요,
남들이 악마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쌓아온 눈먼 선교정책의 결과임을 통절히 깨달아야 합니다.
테러리스트들에 의하여
자국의 국민이 잔혹한 죽임을 당했음에도
이 땅의 공식 언론 밖에서는 끝임없이
"기독교의 일이니 기독교인들이 해결하라!"
"왜 국민의 세금으로 그들을 구해내려하는가?" 하는
기독교를 발길질하는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이국 땅에서 납치당한 대한민국의 국민의 가족들은
자기 국민들 앞에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부터 하였습니다.
어떤 방송국의 진행자는 죽임을 당하고 있는 이들을 향하여
"제발 살아 돌아오되, 돌아올 때는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라"는
말같지 않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폭력에 의하여 자국민이 납치되고 죽어가고 있는데
어느 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목사인 저는 솔직히 두번 죽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왜 나타난 것이겠습니까?
제 개인의 경험부터 한 말씀 드립니다.
90년대 말 성령 충만하다는 어떤 집사가 제주도의 천불상(불상 1000개를 뜻함)을 모신
불당에 쳐들어가 해머로 돌로된 불상 머리를 수백 개 깨부수다 치쳐서 쓰러지는 바람에
붙잡힌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불교계의 일부에서는 영락교회 순복음교회에
불을 질러야 한다는 극한적인 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 진영에서는
제 정신이 아닌 집사 한 사람의 일이니
교단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도도하게 응수하였습니다.
상황은 확대되어 불교계에서는 참수당한 해골같은 불상의 머리를
쌓아 놓고 찍은 사진을 일반 언론에 보냈습니다.
이때 종교 분쟁을 우려한 신문사들이 자제하여
폭발 직전에 갔던 사태가 가라앉는 분기점을 맞았습니다.
당시 저는 기독교사상 주간이었기에 그 사진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광경이 너무나 참혹하여 백담사 주지 스님에게 당신들의 입장을
우리들에게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써줄 것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백담사 주지 마근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목사님, 제가 제 생각을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면
그 <사나운 기독교인들>이 또 쳐들어오면 어떻하라고요!
백담사가 남아나겠습니까?
저희는 팔만대장경을 기독교인들이 불지를까봐
해인사에서는 매일 밤 보초를 섭니다!" 하며 웃었습니다.
교회 밖에서 바라본 기독교는 <사나운 종교>
<몰상식한 종교> <전투적인 종교>가 되어버렸구나 하는 충격으로
장래를 걱정하였습니다.
아픙로 과연 전도가 잘 될 수 있을까 염려하였습니다.
결국 2005년 정부가 실시한 주택인구총조사의 결과 10년 사이
천주교는 219만 5천 명이 늘었고, 불교는 45만 명이 늘었고
기독교는 14만 4천 명이 줄어들었습니다.
사랑의 종교, 십자가 희생의 종교,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종교가
어찌 이 땅에서는 <성서 밖의 종교>
<예수 없는 기독교>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아프간의 사태에 대한 악풀을 보면서
"만일 천주교나 불교나 구세군이
납치되어 이러한 지경이 되었다면
어떤 리풀이 달렸을까" 자문해 보면서
적어도 기독교를 향한 리풀과는
같지는 않았으리라 여깁니다.
이러한 결과를 낳은 모체는 복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첨가된 대교회주의 성장주의라고 여깁니다.
대교회주의와 성장주의의 기원은 백인우월주의와
기독교 우월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제국주의적 선교 방식의
현대판일뿐입니다.
그리고 물질주의의 뼛국물을 진하게 섞어 만든!
대교회주의와 성장주의는
겸손이 아니라 우월감
섬김이 아니라 지배의식
연민(사랑)이 아니라 전도 실적
복음이 아니라 목회자의 헝그리 정신으로
작동하고 있는 거대한 선박이지
구원의 방주는 아닙니다!
심지어 대교회주의 성장주의자들은
"전도특공대"라는 말까지 사용합니다.
이러한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종교가 이 하늘 아래
한국 기독교 외에 어디에 있는지 묻습니다.
실예로, 8월에 열리는 영남선교대회를 기획하고 있는
모 교단에서는 교단 공문에서까지 전도특공대를
미리 KTX를 태워 내려 보내겠다고 합니다.
불교가 그러합니까, 천주교회가 그러합니까,
심지어 총칼을 든 모슬렘 교단이 그러합니까?
전도특공대라는 말을
예수님의 가르침 중 어느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간디가 쫓겨가는 영국을 향해 던진 말이
다시 생각납니다.
"너희들이 만든 예수는 가지고 가고
성경의 예수는 놓고 가라!"
해외에선 납치 테러의 폭력에 사로잡히고
국내에선 악풀 여론의 냉소에 부딛힌 형국입니다.
한국교회, 특히 교회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은
이 현실이 오늘 하루 갑작스런 일이 아니요,
남들이 악마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쌓아온 눈먼 선교정책의 결과임을 통절히 깨달아야 합니다.
테러리스트들에 의하여
자국의 국민이 잔혹한 죽임을 당했음에도
이 땅의 공식 언론 밖에서는 끝임없이
"기독교의 일이니 기독교인들이 해결하라!"
"왜 국민의 세금으로 그들을 구해내려하는가?" 하는
기독교를 발길질하는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이국 땅에서 납치당한 대한민국의 국민의 가족들은
자기 국민들 앞에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부터 하였습니다.
어떤 방송국의 진행자는 죽임을 당하고 있는 이들을 향하여
"제발 살아 돌아오되, 돌아올 때는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라"는
말같지 않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폭력에 의하여 자국민이 납치되고 죽어가고 있는데
어느 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목사인 저는 솔직히 두번 죽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왜 나타난 것이겠습니까?
제 개인의 경험부터 한 말씀 드립니다.
90년대 말 성령 충만하다는 어떤 집사가 제주도의 천불상(불상 1000개를 뜻함)을 모신
불당에 쳐들어가 해머로 돌로된 불상 머리를 수백 개 깨부수다 치쳐서 쓰러지는 바람에
붙잡힌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불교계의 일부에서는 영락교회 순복음교회에
불을 질러야 한다는 극한적인 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 진영에서는
제 정신이 아닌 집사 한 사람의 일이니
교단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도도하게 응수하였습니다.
상황은 확대되어 불교계에서는 참수당한 해골같은 불상의 머리를
쌓아 놓고 찍은 사진을 일반 언론에 보냈습니다.
이때 종교 분쟁을 우려한 신문사들이 자제하여
폭발 직전에 갔던 사태가 가라앉는 분기점을 맞았습니다.
당시 저는 기독교사상 주간이었기에 그 사진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광경이 너무나 참혹하여 백담사 주지 스님에게 당신들의 입장을
우리들에게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써줄 것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백담사 주지 마근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목사님, 제가 제 생각을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면
그 <사나운 기독교인들>이 또 쳐들어오면 어떻하라고요!
백담사가 남아나겠습니까?
저희는 팔만대장경을 기독교인들이 불지를까봐
해인사에서는 매일 밤 보초를 섭니다!" 하며 웃었습니다.
교회 밖에서 바라본 기독교는 <사나운 종교>
<몰상식한 종교> <전투적인 종교>가 되어버렸구나 하는 충격으로
장래를 걱정하였습니다.
아픙로 과연 전도가 잘 될 수 있을까 염려하였습니다.
결국 2005년 정부가 실시한 주택인구총조사의 결과 10년 사이
천주교는 219만 5천 명이 늘었고, 불교는 45만 명이 늘었고
기독교는 14만 4천 명이 줄어들었습니다.
사랑의 종교, 십자가 희생의 종교,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종교가
어찌 이 땅에서는 <성서 밖의 종교>
<예수 없는 기독교>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아프간의 사태에 대한 악풀을 보면서
"만일 천주교나 불교나 구세군이
납치되어 이러한 지경이 되었다면
어떤 리풀이 달렸을까" 자문해 보면서
적어도 기독교를 향한 리풀과는
같지는 않았으리라 여깁니다.
이러한 결과를 낳은 모체는 복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첨가된 대교회주의 성장주의라고 여깁니다.
대교회주의와 성장주의의 기원은 백인우월주의와
기독교 우월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제국주의적 선교 방식의
현대판일뿐입니다.
그리고 물질주의의 뼛국물을 진하게 섞어 만든!
대교회주의와 성장주의는
겸손이 아니라 우월감
섬김이 아니라 지배의식
연민(사랑)이 아니라 전도 실적
복음이 아니라 목회자의 헝그리 정신으로
작동하고 있는 거대한 선박이지
구원의 방주는 아닙니다!
심지어 대교회주의 성장주의자들은
"전도특공대"라는 말까지 사용합니다.
이러한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종교가 이 하늘 아래
한국 기독교 외에 어디에 있는지 묻습니다.
실예로, 8월에 열리는 영남선교대회를 기획하고 있는
모 교단에서는 교단 공문에서까지 전도특공대를
미리 KTX를 태워 내려 보내겠다고 합니다.
불교가 그러합니까, 천주교회가 그러합니까,
심지어 총칼을 든 모슬렘 교단이 그러합니까?
전도특공대라는 말을
예수님의 가르침 중 어느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간디가 쫓겨가는 영국을 향해 던진 말이
다시 생각납니다.
"너희들이 만든 예수는 가지고 가고
성경의 예수는 놓고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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