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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41) 축복으로 나가는 출발점 (단 11:1-2)
< 예언에 관한 성경적 교훈 > 성경에는 별명이 붙은 장들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장’, 13장은 ‘사랑장’, 14장은 ‘방언장’, 15장은 ‘부활장’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이라고 합니다. 다니엘 11장에는 여러 나라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나열되어 있어서 ‘예언장’이란 별명을 붙입니다. 윌밍턴에 의하면 이 장에 나오는 38가지의 예언이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고 합니다. 도날드 켐벨은 1-35절에 세부적으로 도합 135개의 예언의 등장하는데 그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성도에게 예언은 어떤 의미와 목적이 있을까요?1. 예언의 의미 성경에 나오는 여러 주제 중에서 ‘예언’이라는 주제만큼 겸손이 요청되는 주제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을 해석할 때는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겸손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속 계획과 관련된 여러 다양한 말씀을 주셨지만 성도들에게 구속 계획의 전개나 과정을 분명하게 해석할 수 있는 어떤 도식을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토렌스라는 학자는 성경을 고등수학처럼 취급하는 것을 극히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성경 말씀들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이미 이뤄진 사실을 근거로 해서 미래에도 그와 똑같은 일이 전개될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섭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자유가 무한하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적인 표현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고등 수학적인 예측을 넘어서서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역사함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냅니다. 2. 예언의 목적 하나님이 예언을 주신 목적은 성도를 두려움을 주거나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언은 삶에서 행동하는 신앙의 대용물로 사용하는 진정제가 아닙니다. 예언은 현재의 실천 및 영적인 삶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예언 자체에 지나치게 몸과 마음이 사로잡혀 있어 현재와 역사와 사회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고, 더 나아가 계획이 쓸모없고, 저축이나 보험도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미래에 일어나게 하실 일을 그냥 바라보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런 선한 의지도 없는 채 주님의 재림만을 사모하는 운명론적인 태도를 결코 장려하지 않습니다. 운명론은 가장 비성경적인 태도입니다. 미래에 대한 예언과 약속은 현재의 행동에 대한 요청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현재의 충실한 삶과 반드시 연결되어야 하고, 현재의 충실한 삶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삶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니까 이제 그 음성에서 들려진 대로 이뤄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자!”라고 하는 운명론적인 태도를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음성을 듣고 확실한 예언을 받은 것이 전혀 행동하는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이 주신 예언과 예정은 ‘인간의 의지를 말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선한 의지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예언의 목적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일치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character)은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행동(action)은 변할 수 있습니다. 즉 예언을 받는 사람에게 적절한 변화가 보이면 하나님은 행하시기로 이미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지 않고 다른 행동으로 역사하십니다(렘 18:7-10). 내가 돌이키면 하나님도 돌이키시고, 내가 돌아가면 하나님도 돌아가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돌아섬’을 무엇보다 크게 기뻐하십니다. 지금 돌아서면 ‘지금’이 새로운 축복으로 나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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