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사랑과 가정(3) 하나님이 축복하는 사람 (창 29:25-30)
< 하나님의 뜻을 따르십시오 >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은 어떤 아름다운 사랑도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야곱은 라반의 계략으로 라반의 두 딸을 동시에 아내로 맞이합니다. 야곱의 입장에서 두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니까 좋은 것 같지만 그것 때문에 야곱의 가정에는 갈등과 문제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일부다처제는 당시 관습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사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도 정말 벅찹니다. 전력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본래 계획대로 한 남자에 한 여자가 이상적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배우자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고 그를 전심으로 사랑하고, 배우자에게 성실하십시오. 한 사람이라도 잘 사랑하려면 최선을 다해도 항상 부족합니다. 성경을 보면 배우자보다 부모를 더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부모는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존경의 대상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존경스러워도 부모님을 존경한다고 하다가 배우자의 틈을 벌어지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을 존경할 때 배우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지혜롭게 존경심을 표출하십시오. 배우자보다 자녀를 더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자식이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먼저 배우자를 사랑하십시오. 사실상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 진짜 자식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고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면 자녀는 그 모습에서 사랑과 행복을 느끼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은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자식 사랑이고 최고의 자식 교육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는 사람 > 야곱은 눈이 나쁜 레아보다 아름다운 라헬을 더 사랑했지만 하나님은 레아에게 은총의 문을 열고 그 태를 엽니다. 물론 나중에 라헬의 태도 열지만 결국 라헬은 둘째 아들인 베냐민을 낳다가 죽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보다 외적인 화려함을 추구해도 소원성취를 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로 생기는 고통과 불행까지 면제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외모보다는 중심을 보고 선택하면 최적으로는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결코 비켜가지 않습니다. 처음 분당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월세 집의 작은 거실에서 한 동안 예배를 드리다가 조금 재정이 모여 14평 공간을 얻어 교회로 썼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했는지 며칠간 페인트 냄새가 나는 먼지 구덩이에서 돗자리를 깔고 혼자 철야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공사비가 천억 원 가까이 들었다는 인근의 한 초대형 교회에 구경삼아 갔더니 남자 화장실 크기가 저희 교회보다 컸습니다. 그때 신기하게도 그처럼 작은 교회에도 찾아와 등록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으로는 너무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면서 감격하고 고맙게 생각하면서 매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들을 축복해주소서.” 목자만 고맙고 감동이 될까요? 하나님도 감격하시고, “네가 내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구나!”하고 고마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치에 맞지 않고, 계산이 없이, 아무도 가기 싫어하는 좁은 문의 길을 가는 성도들을 위해 최상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또한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라는 자녀들은 일찍 철이 들고, 사명에 눈을 뜨고, 마음이 너그러운 거룩한 큰손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보다 중심을 보십니다. 그처럼 중심을 보는 시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면 어느새 사랑과 행복은 신비한 모습으로 다가와 우리 곁에 머물 것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로그인 유지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