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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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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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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관상 수련은 죄를 부수고 덕을 창출한다
그러므로 넘어지지 않고 서 있으려면 그대의 확고한 의지를 절대 꺾지 마십시오. 그대와 하나님 사이에 자리하는 이 무지의 구름에다 뜨거운 사랑이라는 날카로운 화살을 날리십시오. 하나님보다 못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생각하지 말고, 그대를 이 목표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피하십시오. 그래야만 그대는 죄의 토대와 뿌리를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그대가 그야말로 자주 단식하고, 오래도록 철야기도를 바치고, 동이 트자마자 일어나고, 널빤지에서 잠자며 쇠사슬로 몸을 칭칭 감는다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대가 합법적으로(물론 합법적이지 않지만!)그대 자신의 눈알을 빼내고, 혀를 뽑고, 코와 귀를 틀어막고, 팔다리를 절단하는 등 생각해 낼 수 있는 온갖 방법으로 그대의 육신을 괴롭힌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죄의 자극과 충동은 여전히 그대에게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대가 자신의 죄나 그리스도의 고난을 슬퍼하며 제아무리 크게 통곡한다 한들, 아니면 그대가 천상의 환희들을 제아무리 많이 생각한다 한들 그것이 과연 그대에게 무슨 선익이 되겠습니까? 물론 상당한 선익이 되고, 상당한 도움이 되고, 상당한 이익이 되고, 상당한 은총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맹목적인 사랑의 발산에 비하면, 사랑이 없이는 그런 것이 할 수 있는 일은실로 너무나 보잘것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바로 마리아가 선택한 '가장 좋은 몫'입니다(마 5:48). 이것 없이 나머지는 사실상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이것은 소극적인 점에서는 죄의 토대와 뿌리를 파괴하며, 적극적인 점에서는 성덕을 거두어들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랑이 진실로 존재하는 곳에는 다른 모든 성덕도 진실로, 온전히 그리고 충만히 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확고한 의지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물론 사람은 이것 없이도 자신이 바라는 만큼 많은 성덕을 지닐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성덕들은 하나하나가 때 묻고 뒤틀리기 마련이며, 따라서 그만큼 불완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덕이란 오로지 하나님만을 위해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정돈되고 분별있는 애정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그러냐고요? 하나님 스스로가 곧 모든 성덕의 고결한 대의(大義)이신 까닭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복합적인 동기에서 특정한 성덕을 추구하고 나선다면, 비록 그의 주된 동기가 하나님이라고 할지라도 그 성덕은 불완전한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본보기로 한두 가지 성덕을 택해서 살펴보면 이 점을 알게 됩니다. 사랑과 겸손이라는 두 가지 성덕을 꼽아보는 것이 아주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이 성덕들을 화실하게 갖춘 사람은 누구나 더이상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넘어지지 않고 서 있으려면 그대의 확고한 의지를 절대 꺾지 마십시오. 그대와 하나님 사이에 자리하는 이 무지의 구름에다 뜨거운 사랑이라는 날카로운 화살을 날리십시오. 하나님보다 못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생각하지 말고, 그대를 이 목표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피하십시오. 그래야만 그대는 죄의 토대와 뿌리를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그대가 그야말로 자주 단식하고, 오래도록 철야기도를 바치고, 동이 트자마자 일어나고, 널빤지에서 잠자며 쇠사슬로 몸을 칭칭 감는다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대가 합법적으로(물론 합법적이지 않지만!)그대 자신의 눈알을 빼내고, 혀를 뽑고, 코와 귀를 틀어막고, 팔다리를 절단하는 등 생각해 낼 수 있는 온갖 방법으로 그대의 육신을 괴롭힌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죄의 자극과 충동은 여전히 그대에게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대가 자신의 죄나 그리스도의 고난을 슬퍼하며 제아무리 크게 통곡한다 한들, 아니면 그대가 천상의 환희들을 제아무리 많이 생각한다 한들 그것이 과연 그대에게 무슨 선익이 되겠습니까? 물론 상당한 선익이 되고, 상당한 도움이 되고, 상당한 이익이 되고, 상당한 은총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맹목적인 사랑의 발산에 비하면, 사랑이 없이는 그런 것이 할 수 있는 일은실로 너무나 보잘것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바로 마리아가 선택한 '가장 좋은 몫'입니다(마 5:48). 이것 없이 나머지는 사실상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이것은 소극적인 점에서는 죄의 토대와 뿌리를 파괴하며, 적극적인 점에서는 성덕을 거두어들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랑이 진실로 존재하는 곳에는 다른 모든 성덕도 진실로, 온전히 그리고 충만히 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확고한 의지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물론 사람은 이것 없이도 자신이 바라는 만큼 많은 성덕을 지닐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성덕들은 하나하나가 때 묻고 뒤틀리기 마련이며, 따라서 그만큼 불완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덕이란 오로지 하나님만을 위해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정돈되고 분별있는 애정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그러냐고요? 하나님 스스로가 곧 모든 성덕의 고결한 대의(大義)이신 까닭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복합적인 동기에서 특정한 성덕을 추구하고 나선다면, 비록 그의 주된 동기가 하나님이라고 할지라도 그 성덕은 불완전한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본보기로 한두 가지 성덕을 택해서 살펴보면 이 점을 알게 됩니다. 사랑과 겸손이라는 두 가지 성덕을 꼽아보는 것이 아주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이 성덕들을 화실하게 갖춘 사람은 누구나 더이상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입니다.
14. 관상기도의 방법론 (「무지의 구름」 12장 참조)
사랑하는 벗이여, 그대가 한번 사랑의 탐색을 시작했다면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랑은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전혀 없을 때 시작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이 사랑의 기도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다시 말해서 전부이신 하나님보다 못한 어떤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넘치도록 베풀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사랑을 탐색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통해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대가 조금이라도 나와 비슷하다면 (바울 사도가 일깨워 주듯이) 하고자 하는 선은 실천하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하고 싶지 않은 악은 실행하고 만다는 사실을 찰 알 것입니다. 때때로 보면 그대가 제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습관이 된 똑같은 죄를 되풀이해 저지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무겁든 '가볍든' 모든 죄는 사랑하지 않는 행위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노력하십시오. 죄는 사랑과 정반대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 그것이 죄가 되는 이유는 그 속에 하나님이나 이웃을, 또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행위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관상기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탐색이 사랑하지 않는 것과는 정반대로, 존재의 밑바닥에서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격려한다는 사실을 알면 커다란 위안이 됩니다. 언젠가 힌두교 현자에게서 "열매를 거두려거든 뿌리에 물을 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 존재의 심장부에서부터 사랑이 올라오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럴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사랑하는 우리 존재에서 우러나는 행위가 부단히 사랑하는 행위로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 이것만이 그토록 짜증스러우면서도 오래된 습관으로 굳어진 미움의 행위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어린 합일은 죄와 죄의 원인들을 뿌리부터 없애버립니다. 어쩌면 이것이, 습관이 된 미움의 행위들을 피하려는 수천번의 결심과 개인적 노력보다 한결 효과적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원천, 유일무이한 사랑의 원천이십니다. 우리가 사랑의 원천과 하나가 되고자 할 때 우리 자신이 그 사랑의 중재자가 되고, 그리하여 사랑이 그 거룩한 원천에서 흘러나와 우리를 거쳐 우리 개개인의 세계로 흘러들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벗이여, 이쯤에서 관상기도에 필요하다고 보는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1) 방해받을 걱정이 없는 조용한 자리에 편안히 자리잡고 앉으십시오. 발은 바닥에 완전히 닿게 하고 양손은 느슨하게 깍지 끼어 무릎에 올려놓거나 무릎 관절에 바짝 붙이십시오. 의자는 덮개가 약간 부드럽고 팔걸이가 바짝 붙어 있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눈은 반드시 감고 머리는 편안한 각도로 세우십시오. 만일 병이 났거나 몸이 불편할 때는 몸 상태에 맞추어 바닥에 않아도 되고 누워도 됩니다.
2) 잠시 긴장을 푸십시오. 심호흡을 세 차례 하면 도움이 됩니다. 배를 한껏 부풀려 허파를 가득 채우십시오. 그런 다음 5초 동안 숨을 멈추었다가 천천히 내쉬십시오. 이렇게 세번 하십시오. 이때 나는 성삼위께 짧막한 기도를 바칩니다. 첫 번째 심호흡 때는 '성부의 이름으로' , 두 번째에는 '성자의 이름으로' , 세 번째에는 '성령의 이름으로' 이렇게 말입니다.
3) 하나님을 향한 그대의 사랑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껴안은 채 이 짤막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그대의 열망을 표현하는 간단한 기도를 바치십시오. 이런 기도면 됩니다. 하늘에 계신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더욱더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저에게 아버지의 현존 안에서 이 20분을 보내려는 원의를 은총으로 내려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아버지를 향한 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아빠, 아버지를, 또는 그대가 선택한 어떤 낱말을) 낱말기도로 선택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아버지의 성령에게서 힘을 얻고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가운데 이 기도로 아버지께 저의 사랑을 바치려 합니다.
4) 다음에는 낱말기도를 조용히 되뇌이면서 그 기도에 차분히 평화롭게 애정을 가지고 마음의 귀를 기울이십시오. 소리를 내어 기도하거나 혀나 입술을 움직이지 말고 다만 이 기도로 하나님을 향한 그대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음을 깨달으십시오. 이렇게 15분이나 20분을 계속하되, 그러도록 부르심 받는다고 느낄 경우에는 더 오래 해도 됩니다.
5) 분심이 (상상이나 기억이) 생기고 거기에 말려들었음을 깨닫거든 간단히 나는 내 낱말기도로 돌아가리라' 말하고 그렇게 하십시오. 20분 동안 묵상하면서 그렇게 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해도 괜찬습니다.
6) 만일 이 기도로 사랑의 탐색를 하는 동안 졸음이 오면 그 졸음을 축복으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드린 다음, 다시 낱말기도로 돌아가십시오. 졸았다고 해서 조금도 거리낄 것 없습니다. 하나님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으십니다.
7) 이따금 낱말기도를 '초월하는'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바치던 낱말기도가 중단되고, 그대의 의지가 어둔 방에서 조용히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고요한 쉼 속에서 말씀이나 상징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은 더없이 멋진 일입니다. 혹시 그대 자신이 이런 상태를 맛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거든 간단히 나는 내 기도로 돌아가리라'고 말하고 그렇게 하십시오. 이런 체험을 하게 되면 시간은 아주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8) 시간이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거든 시계를 보십시오. 아직도 몇 분이 남아 있으면 다시 기도로 돌아가서 20분을 다 채우고, 그런 다음에 주님의 기도를 아주 천천히 바치십시오. 그러고 나서도 사랑의 기도를 더 바치고 싶고 시간도 있다면 그렇게 하고, 그렇지 않다면 기도를 끝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벗이여 이 장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대가 알았으면 합니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대체로 이 장과 직결되어 이 장을 설명하고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 대담하게 이 기도로 뛰어드십시오. 이 기도를 그대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가면서 더 깊이 이해하고 도움을 받도록 하십시오.
사랑하는 벗이여, 그대가 한번 사랑의 탐색을 시작했다면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랑은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전혀 없을 때 시작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이 사랑의 기도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다시 말해서 전부이신 하나님보다 못한 어떤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넘치도록 베풀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사랑을 탐색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통해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대가 조금이라도 나와 비슷하다면 (바울 사도가 일깨워 주듯이) 하고자 하는 선은 실천하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하고 싶지 않은 악은 실행하고 만다는 사실을 찰 알 것입니다. 때때로 보면 그대가 제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습관이 된 똑같은 죄를 되풀이해 저지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무겁든 '가볍든' 모든 죄는 사랑하지 않는 행위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노력하십시오. 죄는 사랑과 정반대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 그것이 죄가 되는 이유는 그 속에 하나님이나 이웃을, 또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행위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관상기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탐색이 사랑하지 않는 것과는 정반대로, 존재의 밑바닥에서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격려한다는 사실을 알면 커다란 위안이 됩니다. 언젠가 힌두교 현자에게서 "열매를 거두려거든 뿌리에 물을 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 존재의 심장부에서부터 사랑이 올라오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럴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사랑하는 우리 존재에서 우러나는 행위가 부단히 사랑하는 행위로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 이것만이 그토록 짜증스러우면서도 오래된 습관으로 굳어진 미움의 행위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어린 합일은 죄와 죄의 원인들을 뿌리부터 없애버립니다. 어쩌면 이것이, 습관이 된 미움의 행위들을 피하려는 수천번의 결심과 개인적 노력보다 한결 효과적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원천, 유일무이한 사랑의 원천이십니다. 우리가 사랑의 원천과 하나가 되고자 할 때 우리 자신이 그 사랑의 중재자가 되고, 그리하여 사랑이 그 거룩한 원천에서 흘러나와 우리를 거쳐 우리 개개인의 세계로 흘러들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벗이여, 이쯤에서 관상기도에 필요하다고 보는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1) 방해받을 걱정이 없는 조용한 자리에 편안히 자리잡고 앉으십시오. 발은 바닥에 완전히 닿게 하고 양손은 느슨하게 깍지 끼어 무릎에 올려놓거나 무릎 관절에 바짝 붙이십시오. 의자는 덮개가 약간 부드럽고 팔걸이가 바짝 붙어 있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눈은 반드시 감고 머리는 편안한 각도로 세우십시오. 만일 병이 났거나 몸이 불편할 때는 몸 상태에 맞추어 바닥에 않아도 되고 누워도 됩니다.
2) 잠시 긴장을 푸십시오. 심호흡을 세 차례 하면 도움이 됩니다. 배를 한껏 부풀려 허파를 가득 채우십시오. 그런 다음 5초 동안 숨을 멈추었다가 천천히 내쉬십시오. 이렇게 세번 하십시오. 이때 나는 성삼위께 짧막한 기도를 바칩니다. 첫 번째 심호흡 때는 '성부의 이름으로' , 두 번째에는 '성자의 이름으로' , 세 번째에는 '성령의 이름으로' 이렇게 말입니다.
3) 하나님을 향한 그대의 사랑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껴안은 채 이 짤막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그대의 열망을 표현하는 간단한 기도를 바치십시오. 이런 기도면 됩니다. 하늘에 계신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더욱더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저에게 아버지의 현존 안에서 이 20분을 보내려는 원의를 은총으로 내려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아버지를 향한 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아빠, 아버지를, 또는 그대가 선택한 어떤 낱말을) 낱말기도로 선택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아버지의 성령에게서 힘을 얻고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가운데 이 기도로 아버지께 저의 사랑을 바치려 합니다.
4) 다음에는 낱말기도를 조용히 되뇌이면서 그 기도에 차분히 평화롭게 애정을 가지고 마음의 귀를 기울이십시오. 소리를 내어 기도하거나 혀나 입술을 움직이지 말고 다만 이 기도로 하나님을 향한 그대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음을 깨달으십시오. 이렇게 15분이나 20분을 계속하되, 그러도록 부르심 받는다고 느낄 경우에는 더 오래 해도 됩니다.
5) 분심이 (상상이나 기억이) 생기고 거기에 말려들었음을 깨닫거든 간단히 나는 내 낱말기도로 돌아가리라' 말하고 그렇게 하십시오. 20분 동안 묵상하면서 그렇게 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해도 괜찬습니다.
6) 만일 이 기도로 사랑의 탐색를 하는 동안 졸음이 오면 그 졸음을 축복으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드린 다음, 다시 낱말기도로 돌아가십시오. 졸았다고 해서 조금도 거리낄 것 없습니다. 하나님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으십니다.
7) 이따금 낱말기도를 '초월하는'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바치던 낱말기도가 중단되고, 그대의 의지가 어둔 방에서 조용히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고요한 쉼 속에서 말씀이나 상징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은 더없이 멋진 일입니다. 혹시 그대 자신이 이런 상태를 맛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거든 간단히 나는 내 기도로 돌아가리라'고 말하고 그렇게 하십시오. 이런 체험을 하게 되면 시간은 아주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8) 시간이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거든 시계를 보십시오. 아직도 몇 분이 남아 있으면 다시 기도로 돌아가서 20분을 다 채우고, 그런 다음에 주님의 기도를 아주 천천히 바치십시오. 그러고 나서도 사랑의 기도를 더 바치고 싶고 시간도 있다면 그렇게 하고, 그렇지 않다면 기도를 끝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벗이여 이 장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대가 알았으면 합니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대체로 이 장과 직결되어 이 장을 설명하고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 대담하게 이 기도로 뛰어드십시오. 이 기도를 그대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가면서 더 깊이 이해하고 도움을 받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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