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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5) 삶의 위기의 실체) (행 2:42-43)
< 축제의 삶 > 성도의 삶은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축제 속에 무슨 원한과 미움이 있고, 슬픔과 우울함이 있겠습니까? 교회생활은 기본적으로 축제가 되고, 교인은 축제의 주인공이 되고, 목회자는 축제의 연회장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내 곁에 있게 하신 믿음의 형제를 나의 신랑이나 신부처럼 소중하게 여겨야 삶은 진정 축제가 됩니다. 목회자가 가장 목회를 아름답게 잘 할 때도 교인을 신부처럼 생각할 때입니다. 일전에 돌아가신 이중표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회자는 교인을 양보다는 신부로 생각해야 합니다. 교인을 양으로 생각하면 삯꾼 목자가 되기 쉽습니다. 저도 한때 교인을 양으로 생각했습니다. 우유가 적게 나오면 양을 자주 때렸습니다. 털이 적게 나와서 깎을 것이 없는 양을 보면 불평했습니다. 그러면 상황이 더 나빠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교인을 신부로 보기 시작하면서 교회에 은혜와 감사가 넘쳤습니다. 또한 교인을 양으로 여길 때는 염소도 나왔지만 교인을 신부로 여기자 교회의 문제가 현저히 줄었습니다.”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서로 신부처럼 여길 때 삶은 축제가 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모일 때마다 하나님도 함께 계심을 느꼈기에 ‘거룩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거룩한 두려움은 욕심과 이기심을 사라지게 하고, 세상적인 근심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또한 거룩한 두려움은 ‘겸손한 순종’을 선도합니다. 언제 삶에 가장 기사와 표적이 많이 일어납니까? 대개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겸손히 순종할 때 가장 많이 생깁니다. < 삶의 위기의 실체 > 초대교회 교인들이 자아가 강했다면 주님의 제자들에게 순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사도라고 하지만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수제자라는 베드로가 갈릴리 출신의 무식한 어부였습니다. 또한 당시 성도들 중에는 오순절 날에 뜨거운 성령 체험을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겸손히 배우려고 했습니다. 가끔 성령 충만하다는 사람 중에 가르침 받는 것을 경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신 성령으로 충만한데 무슨 다른 가르침이 필요한가 하는 태도를 가지고 가르치려고만 하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 자체가 성령 충만하지 않은 태도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영적 체험을 했을지라도 성경 말씀을 통해 그 체험을 정화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다고 해서 배우지 않으려고 하면 축복과 영광과 기적은 없습니다. 사람은 실력으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세로 사람이 됩니다. 신학교에서 한 성령 충만한 학생이 항상 시험 점수가 엉망입니다. 교수님이 “공부 좀 하라!”고 하자 그 학생은 “복음 전파하고 철야 기도하느라고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도 하고 공부도 하는 학생을 쓰십니다. 어떤 학생이 시험문제를 받아보고 아는 것이 없으니까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노라!(고전 2:2)” 교수님은 그 맹랑한 태도가 괘씸해서 학생의 글귀 옆에 “잘 알았노라!”는 글귀를 적고 빵점을 주었습니다. 성령 충만의 가장 큰 특징은 ‘가르침을 잘 받으려는 자세’입니다. 삶에서 ‘가르치려는 자세’는 가지고 있지만 ‘가르침을 받으려는 자세’가 없다면 그의 삶에 ‘성령 충만’이 위기를 맞은 상황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교회에 가르치려는 사람들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한국교회 위기의 실체입니다. 그런 안타까운 상황을 인식하며 참된 제자로서 매일 이런 고백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오늘도 순종의 영을 부어주소서!”ⓒ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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