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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9) 은과 금보다 귀한 믿음 (행 3:5-10)
< 은과 금보다 귀한 믿음 >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행복할 줄 압니다. 그래서 부를 얻으려고 피나는 투쟁을 하고 큰 희생을 치릅니다. 부를 추구하다가 때로는 부부관계에 금이 생기고, 인격이 파탄되고, 양심이 망가지고, 자식농사를 망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부자에게도 눈물과 불행의 가능성은 상존합니다. 일전에 한국최고의 모 회장의 딸이 자살했을 때 재정적인 문제로 크게 시달리던 한 성도가 말했습니다. “제가 그 회장보다 행복하다는 것이 실감납니다.” 중요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예수님만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한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일체의 비결이 되시며, 하늘의 부요를 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가졌기에 어떤 형편에 처해도 좋다고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이 누구보다 부자요, 복된 존재입니다. 이제 남을 부러워하며 처량하고 불쌍하게 살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누군가 여러 가지 문제로 시달리는 나를 불쌍하게 보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생각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나 저는 괜찮아요. 지금도 행복합니다.” 그처럼 남이 나를 부러워할지언정 나는 남을 부러워할 것이 없다는 거룩한 자존심을 가지고 사십시오. 성령 충만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우리를 보라!”고 했을 때 앉은뱅이가 그들을 바라보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6절).”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이 은과 금보다 귀하다는 굳은 확신을 가졌습니다. 은과 금은 가능한 것만 가능하게 만들지만 예수님의 이름은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은과 금으로 ‘편안’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안’은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평안을 주고, 그 이름이 기적과 기도응답의 원천입니다. < 응답 이후도 중요합니다 > 베드로는 말로 선포한 후에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가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가 어떻게 합니까? 성전으로 들어가 뛰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했습니다. 기적은 기적으로 끝나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끝나야 진정한 기적입니다. 아무리 큰 기적을 체험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헌신으로 발전시키지 않으면 그것은 참된 기적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은 4백 미터 계주처럼 되어야 합니다. 처음 100미터 주자는 ‘고통’입니다. 그렇게 고통이 생기면 바로 ‘기도’라는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가장 적절한 때에 ‘응답’이라는 주자에게 바통이 넘어갑니다. 그러나 그 주자에서 계주를 멈추지 말고 응답 후에는 ‘헌신’이라는 주자로 바통을 넘겨야 합니다. 응답받고 거기에서 계주를 도중에 끝내버리지 마십시오. 4백 미터 계주를 잘 완주하는 지혜와 끈기가 있어야 진정한 축복을 맛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이라는 주자를 기도라는 주자에게 넘기지 않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응답이라는 주자를 헌신이라는 주자에게 넘기지 않아서 응답받고도 실패하는 인생이 됩니다. 응답 후에 헌신이 없는 것은 4백 미터 계주를 하면서 300미터에서 포기하는 것과 같고, 3백 미터 지점에서의 포기는 1백 미터 지점에서의 포기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기도응답과 축복을 ‘헌신’이란 마지막 주자로 잘 도달하게 하십시오. 그런 각오를 가질 때 놀라운 기적과 기도 응답과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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