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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편지 919 한센 마을의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 김신기(81) 박사는 전북 익산시에 있는 한센인의 정착마을인 익산농장에 위치한 삼산의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28년 된 단출한 2층 벽돌건물에 병원이 있고 건물 밖에서는 돼지 농장에서 구수한 거름 냄새가, 병원 안에서는 소독용 알코올 냄새가 풍깁니다.
할아버지 의사 김 박사는 산부인과 의사인 손신실(75)씨와 함께 익산 도심에서 병원을 운영하다가 23년 전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김 박사는 젊어서부터 '죽을 때까지 돈만 벌다 가지는 말자'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는 결혼할 때 마누라랑 '환갑 넘으면 어디선가 봉사를 하며 살자'고 약속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 박사는 1953년 여수의 한센인 시설 '애향은'에서 1년간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추억 때문에 인생 2막을 한센인과 함께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한센인들하고 얘기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어. 한센인 들은 세상 때가 묻지 않아 참 순하고 또 슬픈 사람들이거든." 김 박사의 말입니다.
어느 날 김 박사가 부인 손 씨에게 "아이들도 다 컸으니 지금 병원을 정리하고 한센인 마을에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부인 손 씨는 선뜻 '그러자'는 소리가 안 나왔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남편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부부는 익산 시내의 2층 양옥집을 팔고 익산농장 근처에 아파트를 얻어 병원을 운영하는 한편 크고 작은 봉사를 했습니다. 봉사단체에서 돈을 끌어와 한센인 들을 위한 공동목욕탕을 지었고 한국전력공사에서 준 포상금으로 마을회관에 심야 전기보일러를 달아줬고 마을 잔치가 있으면 돼지를 잡았습니다.
부인 손 씨는 처음에 마을회관에서 만나는 한센인의 얼굴을 보는 것도 힘들었지만 몇 년이 지나면서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는 것도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김 박사는 지난해 협심증으로 세 차례 수술을 받고 7개월간 병원 문을 닫았다가 지난 2월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김 박사가 쓰러졌을 때 마을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터졌다'며 걱정했습니다. 치료를 받던 한센인 이 말했습니다. "환자들 먹고 힘내라고 돼지 잡아 주고, 치료도 친절하게 해주는 분인데. 선상님 안 계시면 우리는 어디로 가라고. 선상님, 건강하시요 잉." [조선일보 2009.08.14 (금) 참조]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 김 박사의 인생 2막은 남을 위한 삶이라 생각합니다. 그 인생의 길이가 얼마나 길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 2막은 1막보다 더 찬란하게 빛날 것이라 믿어집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 기도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 9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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