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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5:1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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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http://john316.or.kr |
사도행전(33) 하나님이 반응하시는 믿음 (행 5:12-16)
< 뛰어남보다 순결함이 중요합니다 >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갑자기 죽은 사건은 ‘뛰어남’보다 ‘순결함’이 훨씬 중요함을 잘 알려줍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교인이 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이 없이는 교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요즘은 교인됨을 ‘목숨을 거는 일’보다는 ‘이익이 되는 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계산적인 교인들이 늘면서 한국 교회가 점차 힘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이 된다는 것은 엄숙한 일입니다. 새 신자 초청 잔치와 같은 이벤트성 행사는 장기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훨씬 많습니다. 주님은 무리가 아닌 제자를 원하십니다.
사도들을 통해 많은 표적이 나타나고 주님의 제자들이 사심 없이 솔로몬 행각이란 공개적인 장소에 과감히 자신을 노출시키자 믿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12-14절). 심지어 어떤 사람은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 그 그림자라도 덮일 것을 바랐습니다(15절). 그런 태도 자체는 미신적인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미신적인 태도를 아주 싫어하십니다. 주님은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했습니다(마 12:39; 16:4). 그래도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16절).
왜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을까요? 방법 자체에는 미신적인 태도가 있었지만 마음 자체에는 계산이 없는 순수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초대교회 때는 ‘눈에 보이는 기적’이 특별히 필요한 때였습니다. 진리를 따르는 강력한 표적이 있어야 역사상 최초의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기적을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리로 생각하면서 계산된 마음을 가지고 기적을 추구하면 그런 기적도 일어나지도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바라보는 우상숭배적인 태도를 결코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반응하시는 믿음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거룩하고 순수한 삶’은 외면하고 ‘표적과 치유 자체’만 원합니다. 그처럼 계산적이고,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된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치유’는 없고 오히려 ‘사단의 치유’가 나타납니다. 마지막 때는 사단이 ‘표적’을 통해 신앙의 본질과 우선순위를 흐트러트리려는 공격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1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 바울은 마지막 때에 관해 말하면서 ‘사단이 주는 기적’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주님의 이름’을 도구로만 사용하면서 잘못된 표적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습이고, 그런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고 엄중하게 말합니다. 이제 사단이 주는 기적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표적을 부러워하고 표적 중심적인 신앙으로 휩쓸리는 것은 주님을 배반하고 사단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진실한 믿음에는 표적이 따르지만 표적이 신앙의 주가 되면 안 됩니다. 사실 주님을 믿는 진실한 믿음은 표적에 집착하지 않게 만듭니다. 표적의 화려함에 영혼을 팔지 말고 오직 주님만 순수하게 추구하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의 일은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가장 최선의 모습으로 그 순수한 믿음에 반응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산된 믿음에는 반응하지 않고 오직 순수한 믿음에만 반응하십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 뛰어남보다 순결함이 중요합니다 >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갑자기 죽은 사건은 ‘뛰어남’보다 ‘순결함’이 훨씬 중요함을 잘 알려줍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교인이 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이 없이는 교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요즘은 교인됨을 ‘목숨을 거는 일’보다는 ‘이익이 되는 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계산적인 교인들이 늘면서 한국 교회가 점차 힘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이 된다는 것은 엄숙한 일입니다. 새 신자 초청 잔치와 같은 이벤트성 행사는 장기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훨씬 많습니다. 주님은 무리가 아닌 제자를 원하십니다.
사도들을 통해 많은 표적이 나타나고 주님의 제자들이 사심 없이 솔로몬 행각이란 공개적인 장소에 과감히 자신을 노출시키자 믿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12-14절). 심지어 어떤 사람은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 그 그림자라도 덮일 것을 바랐습니다(15절). 그런 태도 자체는 미신적인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미신적인 태도를 아주 싫어하십니다. 주님은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했습니다(마 12:39; 16:4). 그래도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16절).
왜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을까요? 방법 자체에는 미신적인 태도가 있었지만 마음 자체에는 계산이 없는 순수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초대교회 때는 ‘눈에 보이는 기적’이 특별히 필요한 때였습니다. 진리를 따르는 강력한 표적이 있어야 역사상 최초의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기적을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리로 생각하면서 계산된 마음을 가지고 기적을 추구하면 그런 기적도 일어나지도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바라보는 우상숭배적인 태도를 결코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이 반응하시는 믿음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거룩하고 순수한 삶’은 외면하고 ‘표적과 치유 자체’만 원합니다. 그처럼 계산적이고,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된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치유’는 없고 오히려 ‘사단의 치유’가 나타납니다. 마지막 때는 사단이 ‘표적’을 통해 신앙의 본질과 우선순위를 흐트러트리려는 공격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1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 바울은 마지막 때에 관해 말하면서 ‘사단이 주는 기적’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주님의 이름’을 도구로만 사용하면서 잘못된 표적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습이고, 그런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고 엄중하게 말합니다. 이제 사단이 주는 기적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표적을 부러워하고 표적 중심적인 신앙으로 휩쓸리는 것은 주님을 배반하고 사단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진실한 믿음에는 표적이 따르지만 표적이 신앙의 주가 되면 안 됩니다. 사실 주님을 믿는 진실한 믿음은 표적에 집착하지 않게 만듭니다. 표적의 화려함에 영혼을 팔지 말고 오직 주님만 순수하게 추구하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의 일은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가장 최선의 모습으로 그 순수한 믿음에 반응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산된 믿음에는 반응하지 않고 오직 순수한 믿음에만 반응하십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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