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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41) 하늘의 소리를 듣는 귀(행 7:46-53)
< 형식적인 신앙을 멀리하십시오 > 스데반은 하나님 모독, 모세와 모세의 율법 모독, 그리고 성전 모독죄로 공회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공회 앞에서 스데반은 변증설교를 하면서 마지막 부분에 성전과 관련된 말씀을 전합니다. 스데반은 눈에 보이는 성전이 때로는 필요하긴 하지만 하나님이 꼭 성전에만 계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성전이라는 건물에 목숨을 거는 것은 오히려 신앙의 타락을 나타내는 표시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48-50절). 물론 스데반이 성전 건축 자체를 죄악시한 것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 영적인 성전이 더 중요함을 역설한 것입니다. 살다 보면 진실한 사람보다 장삿속에 밝은 사람이 오히려 크고 높아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이 땅에서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마 하늘나라에 가서야 그 의문이 온전히 해결될 것입니다. 또한 “왜 진실한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가?”하는 문제도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현세에서는 ‘장사하는 삶’이 ‘열매 맺는 삶’을 앞서지만 천국에서는 오직 ‘열매’만 남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분야든 외식하는 사람들이 더 잘되고 유명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성공하는 사람이 다 외식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정말로 탁월한 실력과 능력을 가지고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성공이 실력의 증표는 아닙니다. 더 나아가 진실함의 증표는 더욱 아닙니다. 진실한 사람이 실패하는 경우도 많고, 더 나아가 지금은 진실하면 오히려 더 성공하기 힘든 시대입니다. 그러나 최종 승리는 결국 진실한 사람의 것입니다. 거짓은 다리가 짧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다리가 깁니다. 거짓은 수명도 짧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수명이 깁니다. 기도할 때마다 항상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진실하게 하소서!” < 하늘의 소리를 듣는 귀 > 형식적인 신앙을 질타한 스데반은 마지막으로 당시 교권을 잡은 자들과 고소인들을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며 말씀에 귀를 막는 그들의 모습을 질책합니다(51절). 세상에서 제일 복된 일은 말씀에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말씀에 귀가 열리면 하나님의 기적적인 손길이 뒤따릅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 말씀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지 않고 그저 뉴스 보도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말씀을 통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몇 년 전 한 유치원 아이가 후진하는 아빠 봉고차량에 치어서 죽었습니다. 저는 그 보도 이후로 뒤로 후진할 때는 항상 이런 기도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 뒤로 후진할 때 너무 성급하게 후진해서 아이들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보도를 들으면 마음 아프게 생각하지만 몇 시간만 지나면 그 일을 다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만약 사랑하는 내 아들딸이 후진하는 내 차량에 치어 죽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때 아이는 소리치면서 죽어갔을 것입니다. “아빠! 아빠! 저예요! 제가 이곳 뒤쪽에 있어요.” 만약 그런 사건이 있다면 그 사건은 신문보도에서 들은 사건처럼 그냥 곧 잊혀지는 사건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뒤흔드는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됩니다. 말씀이 그렇게 그냥 제 3자로부터 들은 얘기가 아니라 내게 직접 들려진 얘기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때 말씀을 통해서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위대한 성도들은 제일 실천덕목으로 삼았던 것은 순종이었습니다. 루터는 항상 말했습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말씀에 순종하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늘의 소리를 듣는 귀가 있으면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주변에 어떤 소리가 방해해도 어머니는 아이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하늘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영혼이 든든해지고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그처럼 열린 귀를 가지고 기쁘게 말씀을 받음으로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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