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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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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일 그대가 내게 그들이 언제 그 일에 착수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들은 과거에 범한 죄로 더럽혀진 양심을 교회의 일반 법규에 따라 깨끗하게 씻어내기 전까지는 안 됩니다."
관상에서는 영혼이 제아무리 성스러운 일에 열성인 사람일지라도 고백 이후까지 반드시 남게 되는 죄의 뿌리와 근원을 제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관상가가 되는 수련에 착수한 사람은 누구나 가장 먼저 자신의 양심을 깨끗하게 씻어내야 하며, 그리하여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것들을 바로잡은 연후에야 비로소 대담하면서도 겸손한 자세로 관상에 투신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그 동안 관상에서 멀어져 있던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설령 그 동안 한 번도 죄를 범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평생토록 매달려 수고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수련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이 사멸할 육신에 갇혀 살아가는 동안에는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이 무지의 구름을 체험하기 마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원죄의 결과로 늘 하나님의 피조물이나 그들의 행실이 마음속에 밀려들어와 자신과 하나님의 틈새를 벌려놓고 있음을 깨닫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동료 인간들의 군주요 주인이지만 일부러 자기 수하 사람들의 종이 되고, 그러면서 자기 조물주 하나님의 명에는 등을 돌렸던) 사람이 후에 그 명을 받들 때마다 당연히 자기 밑에 있어야 하는 바로 그 인간들이 오만하게 자기 위로 올라서서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사태를 반드시 보고 느끼도록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와 정의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27. 사랑의 탐색을 위한 조건 (「무지의 구름」 28장 참조)
나는 자신의 신앙 실천에 진정한 열성과 충정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상적 합일에 관심을 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톨릭 사제요 수사인 나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거의 가톨릭 신자들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기를 열망하고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사랑의 탐색에 부르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나는 종교가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고, 또는 종교가 없더라도 상관하지 않고 어느 누구와도 사랑의 탐색를 함께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무신론자라고 할지라도 성실하게 진리를 찾는 사람이면 하나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무신론에 관한 문헌)
사랑의 탐색을 시작하기 위해, 하나님과 사랑으로 합일하는 관상기도를 시작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자신의 신앙을 성실하고 열성적으로 신봉하되 계명에 충실하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순종하며 정기적으로 성사를 받는 것으로 그 신앙을 증명해 보이는 일입니다. 우리가 완벽하고 무죄하고 허물이 없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우리가 넘어졌다고 깨달을 때마다 몇 번이고 기꺼이 다시 시작하는 자세입니다. 인위적인 그리스도인과 반대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더라도 기꺼이 다시 일어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지닌 능력을 발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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