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눅8:22~25 |
---|---|
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6년 6월 11일 주일3부 설교 |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말씀 위에 선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제자들을 데리시고 갈릴리 호수 이편에 서서 저 건너편을 바라보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신속히 배를 준비해서 예수님과 함께 배위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순풍의 돛을 달고 미끄러지듯이 갈릴리호수 한가운데로 향해서 배는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본론]
1. 주님과 거리를 둔 제자들
항상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제자들이 둘러싸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날은 제자들의 가슴속에 세상 사랑이 들어오자 예수님과 거리를 두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따로 두시고 제자들끼리 모여서 그들은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상이 들어오자 예수님과 거리를 두게 된 것입니다. 주님 중심의 삶에서 인간중심의 삶으로 주님을 여태까지 섬기는 삶에서 그때부터는 예수님을 이용해서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리겠다는 생각이 꽉 들어찼습니다. 천국 관심사에서 세상 관심사로 옮겨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삶에 중대한 문제의 발단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 살면서 갑자기 세상 사랑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주님과 거리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들어오면 성경읽기 싫어지고 기도하기 싫어지고 교회 오는 것이 점점 줄어지기 시작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교통하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랑이 들어오면 주님 중심에서 세상 중심으로 하늘나라에 관심에서 세상관심으로 바뀌어 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 골 3: 2은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는데 위의 것은 생각하지 않게 되고 점점 땅의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들어오면 골 3: 5처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했는데 세상이 들어오면 음란을 가져오고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세상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탐욕을 함께 가지고 들어와서 하늘나라 관심에서 우리를 멀리 떠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유상종으로 제자들 가슴속에 세상이 들어오자 세상을 품을 제자들 자기들끼리 모였습니다. 예수님과는 거리를 두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오순도순 세상 이야기에 꽃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종류끼리 모입니다. 짐승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까치는 까치끼리, 까마귀는 까마귀끼리, 참새는 참새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도둑놈은 도둑놈끼리 모입니다. 깡패는 깡패끼리 모이고 착하고 선한 사람은 착하고 선한 사람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들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 우리가 늘 세상을 생각하면 세상영이 우리에게 와서 같이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친구 여기 있다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음란한 생각하면 음란한 영이 오고 영적으로 미워하면 미워하는 영이오고 영적으로 방탕하면 방탕한 영이 들어와서 유유상종으로 같이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세상 마귀가 나를 자꾸 따라 오느냐. 그렇게 묻지 말고 세상 마귀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요소가 내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회개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파리가 자꾸 날아온다고 말하지 말고 파리가 날아오도록 쓰레기를 쌓아 놓은 것을 알고 쓰레기더미를 치우면 파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내가 늘 죄지을 생각을 하면은 죄있는 환경을 찾아가겠고 죄와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늘 병든다. 나는 약하다. 나는 죽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병의 환경을 만들어 내어서 병과 동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병이 떠날 날이 없어요. 내 마음속에 병든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병이 나의 친구라고 찾아와서 떠날 날이 없습니다. 나의 마음속에 나는 못산다. 안 된다. 할 수 없다고 말하면 못살고 안 되고 할 수 없는 세상환경이 우리 친구 여기 있다고 와서 같이 거하고 떠나지를 않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각, 우리 마음의 자세가 우리 환경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무엇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가가 바로 내 환경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유유상종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끼리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교단에 지도자로써 한 10년 동안 있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 총회로 모이면 성공한 목사도 있고 실패한 목사도 있는데 언제나 실패한 목사들과 성공한 목사들을 같은 방에 넣어서 좀 성공한 목사들의 성공담도 듣고 힘도 얻으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한 이틀 지나고 보니까 전부 방을 바꿔가지고서 끼리끼리 모여요.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끼리 모이고 패배한 사람은 패배한 사람끼리 모였습니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끼리 모이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부정적인 말하는 사람은 자기들끼리 모여 있습니다. 유유상종으로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사는데 여러분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에 친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환경과 친구가 되고 그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환경과 친구가 되고 긍정적인 환경과 같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떠하면 그 사람의 운명도 환경도 그러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운명과 환경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 따라 운명과 환경도 친구가 되어서 유유상종으로 따라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상이 그 마음속에 들어오매 세상과 친구가 되어서 예수님과 거리를 두게 되고 그리고 세상을 친구로 한 끼리끼리 모여서 서로 대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요일 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과 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멀리 하시니까 예수님이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시고 파도를 바라보시고 바다를 바라보시다가 그만 주무시고 만 것입니다. 홀로 계신 예수님은 주무십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항상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과 대화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과 더불어 살면 주무시지 않지만 예수님과 거리를 두면 예수님은 홀로 계시지 않고 주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여러분 변두리 인생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여러분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ㅏ 예수님이 주무시지 않지 예수님을 여러분 변두리에 두시고 멀리 두시고 홀로 두시면 예수님은 반드시 주무시고 마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 중심에 계시지 않으신 예수님은 주무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깨뜨리고 우리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예수님을 섬기는 삶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막 8:34에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깨뜨리고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 중심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우리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일엽편주의 인생 배를 타고 이 망망한 대해인 세상을 살아가는데 절대로 우리 혼자 배를 타고 가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배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를 배를 타고 건너가는 것처럼 인생의 배에 예수님이 함께 타고 계시지만은 여러분이 거리를 두시면 여러분의 인생배속에서 예수님은 주무시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절대로 여러분을 떠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멀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거리를 두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영접하면 세상이 들어오자 예수님도 거리를 두게 되고 예수님을 멀리하게 되고 예수님을 변두리에 두게 되고 예수님을 여러분 생애 속에 주무시게 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 6:33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인생에 먼저 할 것과 나중할 것이 있는데 우리가 세상을 먼저하고 예수님을 나중하면은 예수님은 주무시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먼저 섬기고 예수님을 먼저 구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삶을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섬기고 주님 중심으로 살면 이 세상에 살 수 없다. 처자식구들은 무엇을 먹여 살며 세상 사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마귀가 그렇게 부정적인 말을 속삭입니다. 거짓말입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예수님은 할 수 있는 일이 모두다 예수님 손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못 할일이 없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고 살까, 어떻게 살까를 다 해결해 주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을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할 수 없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삶과 풍랑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멀리하자 풍랑이 다가온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노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영화를 보거나 TV를 보면 아프리카 초원에서 많은 짐승들이 떼를 지어서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자나 하이애나나 표범이나 이런 것들이 짐승을 잡아먹을 때 언제나 어미와 새끼를 분리시켜 놓습니다. 어미 곁에 있는 새끼는 공격을 하다가 어미의 습격을 당해서 부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몰아쳐서 새끼를 어미에서 떼어 놓으면 그때는 그 새끼를 공격해서 잡아먹는 것입니다. 마귀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우리를 예수님께 떼어 놓아야 공격할 수 있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우리를 절대로 공격할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 예수님과 곁에 있는데 어떻게 감히 우리를 공격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마귀는 항상 우리 속에 유혹을 보내어서 세상이 들어오게 하므로 세상이 우리와 예수님과의 거리를 두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와 거리를 두고 있으면 마귀는 그때 우리를 공격해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벧전 5: 7~ 8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여기에 마귀는 사자에 비유한 것입니다. 여러분 초원에서 사자가 짐승을 공격할 때 인정사정없이 발로 때려눕히고 목을 깨물어서 숨통을 물어 죽이고 그 다음에는 심장을 파내 먹지 않습니까? 사자는 인정사정 두지 않습니다. 물고 찢습니다. 마귀도 우리에게 인정사정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우리 사이에 거리를 내어서 우리가 무능력하다고 생각할 때 우리에게 덤벼들어서 우리의 영적인 숨통을 물어 죽이고 우리를 찢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겸손하고 깨어서 주님 곁을 떠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왜 풍파가 다가오는 것입니까? 개인적인 풍랑, 가정적인 풍랑, 사업적인 생활에 풍랑이 다가오는 것은 주님과 거리를 두고 있을 때 마귀가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풍랑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가는데 어떻게 감히 풍랑이 다가옵니까?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과 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주무시게 하고 난 다음에 마귀는 그 틈을 타고 풍랑을 보내어서 일시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수장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거리를 둘 때 마귀는 공격을 합니다. 주님과 함께 계시면 어림없지요. 어떻게 예수님 함께 있는데 마귀가 우리를 공격합니까?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91편을 읽어보면 주님과 같이 계시면 어떠한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 91: 1~16 다 같이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여호와여 주는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엄청난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여러분 시간 있을 때마다 시편 91편을 읽으시고 할 수만 있으면 외워 놓으십시오. 매일같이 시편 91편을 여러분 읽고 외우면 여러분 마음속에 얼마나 편안하고 든든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야훼 샬롬 여러분의 평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같이 계시면 시편 91편의 말씀대로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내 장막에 이르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그 천사들을 명하사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마귀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를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거리를 두지 아니하면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와서 그 계괴로서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마음속에 넣어주면 세상이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그리스도와 거리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거리를 두었는지 안 두었는지 어떻게 압니까? 예수님과 거리를 두게 되면 관심사가 예수 중심에서 세상 중심으로 하늘나라 관심에서 세상 관심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곳에서 나를 섬기는 것으로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당장 성경이 읽기 싫어요. 기도가 하기 싫어요. 교회 나오는 것이 싫고 구역예배는 아예 가고도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재미가 있어요. TV 앞에 앉아 있는 것이 기도하는 것보다 더 좋고 소설 읽는 것이 성경 읽는 것보다 더 좋고 세상 친구 만나는 것이 기도회 가는 것보다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방향이 달라져요. 그리고 난 다음에 풍랑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옳다. 이때다. 이제는 내 계획대로 되었다. 주님과 거리를 두었다. 어미하고 거리를 두었으니 이때 공격하자. 이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자. 순식간에 환경을 통해서 풍랑을 통해서 처들어 오게 되는 것입니다.
3. 환난 당했을 때 주님을 깨우라
제자들은 풍랑을 만났습니다. 갑자기 먹장구름이 하늘에 끼고 바람이 불고 소낙비가 쏟아지고 파도가 일어 배에 물이 가득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다 바다에 전문가들입니다. 어부들이기 때문에 배를 조정할 줄 알고 파도를 다스릴 줄 알지만 엄청나게 큰 파도가 다가오매 그들의 경험상 그들의 기술로서는 배를 안정하게 만들 수 없었습니다. 물이 가득하여 배가 가라앉게 되니 그들은 좌절과 절망에 처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무리 노력을 했으나 허망했습니다.
시42: 5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자 그런 시련을 겪게 된 것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을 때 해야 할 일은 내 중심의 잘못된 삶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고난과 환난이 다가왔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길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두 손 들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자기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문제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또 변명하지 마십시오. 변명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회개하고 자복하고 깨어져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울면서 주님께 나오면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롬 2: 5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우리가 회개하지 아니하고 고집을 부리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일 1: 9처럼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두 손 들고 나오는 사람 주님께서 절대로 얼굴 돌리지 않고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만일 이웃에 네게 죄를 짓고 잘못했다고 회개하고 돌아오거든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루에 일곱 번만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 큰 마음먹고 일곱 번이라 했는데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이웃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해주라 했는데 사람이 사람의 죄도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라고 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우리를 모른 척 하겠습니까? 주님은 절대로 우리를 모른 체하지 않고 우리를 밀쳐내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사람 멸망 받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지옥 가는 사람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지옥가는 것입니다. 회개만 하면 모든 사람이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깨어져 자기를 섬기는 삶을 돌이키고 주님을 섬기는 삶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삶이 주님을 섬기는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귀를 따라가든지 주님을 섬기든지 둘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유롭게 살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음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을 섬기고 살라고 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왔을 때는 마귀를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살든지 마귀의 종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좋은 주인을 따라서 살면 우리의 삶은 행복해지고 나쁜 주인을 따라 살면 우리는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요, 마귀는 나쁜 마귀인 것입니다. 좋은 하나님이 우리를 나쁘게 해주실 수가 없고 나쁜 마귀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를 따라가서 만신창이가 되었으면 회개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오고 하나님 섬기는 삶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고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55: 6~ 7에 “너희는 야훼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야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불쌍히 여기십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서 세상에 살다가 낭패를 당하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빈 손들고 아버지께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형은 안 받아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화하고 먹고 탕진가산한 이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형은 안 받아주겠다 했는데 아버지는 받아 주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나고 잃었다가 얻었다고 즐거워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쁘게 받아줄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을 비평하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심판할지라도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 버리지 않고 품에 품어서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여러분을 버리지 아니하고 여러분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계 2: 5의 말씀대로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 11월 4일 순복음 가족신문에서 우리교회 젊은 부부선교회에 출석하는 전종학, 박성미 부부의 간증을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들 부부는 청년선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었는데 당시 자매님은 미용사로 일을 했는데 전종학 성도는 아내가 고된 일을 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려서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주식에 손 을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200만원을 가지고 시작을 해서 수익이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한번은 5천만 원까지 이익을 올린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손해가 생겼고 손해는 점점 커져서 이를 메우기 위해 사람들에게 돈을 꾸어야만 했습니다. 빚은 계속 늘어나 결국은 손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성도는 아내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두 부부는 세상을 따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 품에 두 손들고 돌아왔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고 작정금식기도를 하고 아파트를 팔아 빚을 갚고 수중에 돈 한푼 없었지만 믿음으로 아파트 매매 수익금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쉬지 않고 더 열심히 일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님을 찾아가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했습니다. 1년쯤 지났을 때 전종학 성도님은 우연히 형님을 만났는데, 형님은 “고생했다”면서 남은 빚을 모두 갚아주었습니다. 또한 성도님은 교회에서 가깝고 월급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어서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는 간증을 적었습니다. 문제 앞에서 인간적인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부르짖자 예수님이 친히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환난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찌하든지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주님께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물에 젖었습니다. 머리는 산발이 되고 옷은 물에 젖어 몸이 찰싹 붙었습니다. 물보라가 얼굴에 부딪혀 왔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주무시는 예수님께 찾아가서 예수님을 흔들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세상은 도와줄 수 없습니다. 세상은 그들에게 절망을 가져왔습니다. 세상 생각다 물리치고 인본주의 생각 다 물리치고 주님을 찾았습니다. 주님 중심으로 서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살려 주소서.” 혼신의 힘을 다해 주님을 깨워 일으키니까 주님이 일어나셔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매 즉시로 바다가 잠잠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주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렘33: 3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게 속삭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묵상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게 부르짖으라. 목이 터져라고 부르짖어 외치면 주님께서 들으시고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시44:26에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렇게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유다왕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와서 네가 죽을 터이니 살림을 정리하라고 하고 떠났습니다.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여 돌아누워서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며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저를 살려 주소서.’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가서 네 종 히스기야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의 부르짖음을 듣고 너의 눈물을 보았다. 내가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하고 그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 주겠다고 말하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히스기야가 주님이 죽을 것이니 생활을 정리하라는 말을 듣고 통곡하고 부르짖고 울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주님께서 내가 너의 부르짖음을 듣고 내 눈물을 보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눈에서 흐르는 눈물조차 주님은 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 부르짖음과 울음을 통해서 주님은 15년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앗수르 왕에게서 구원해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혼신의 힘을 다해 주님께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냥 와서 주님께 속삭인 것이 아닙니다. 주님 주위에 서서 가만히 있은 것 아닙니다. 그들은 주님을 붙잡고 흔들고 고함치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우리도 여러분 환난을 당해서 풍랑 일어날 때 주님께 나와서 통곡하고 통회하고 자복하며 울부짖어 기도하고 외쳐서 기도하면 주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많은 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병든 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주께 부르짖는 병자는 쉽게 고침을 받고 혼신을 다해 부르짖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절함이 없는 사람은 좀처럼 병이 낫지 않습니다. 병자위해 기도할 때 오히려 기도하면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짖는데 당사자는 빙글빙글 눈을 떠서 돌아보고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짖지 않습니다. 그런 분은 좀처럼 고침을 받지 않습니다.
1970년 4월, 미국의 아폴로 13호가 달나라를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런데 지구로부터 2만 마일 떨어진 곳에서 아폴로 13호는 산소통이 깨지는 사고로 더 이상 비행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본부인 휴스턴을 향해 긴급하게 연락을 했고, 지휘 본부에서는 “북극성을 바라보면서 방향을 잡아 돌아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전 미국 국민들은 고장 난 캡슐을 몰고 오는 우주 비행사들을 위해 오전 9시를 기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전 국민이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도 우주선 안에서 힘껏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고장 난 아폴로 13호는 태평양에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미 해군 군함에 의해 구조되었는데 이들이 우주선에서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한 행동은 감사 기도였습니다. 그들은 해군 군목의 손을 잡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당시 이들의 모습은 타임지 표지에 실려 전 세계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인간 과학의 최고 산물이라는 우주선이 고장났을 때, 인간이 매달릴 곳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과학만능도 기도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을 때는 무엇보다 먼저 혼신의 힘을 다해 주님을 찾고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 못할 리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부르짖어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생활에서 잠에서 깨어 일어나시면 한마디로 풍랑을 잠잠케 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4.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난 후 어리둥절 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네 믿음을 어디다 두었느냐’고 말했습니다. 믿음이 없다고 꾸짖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어디에 두었느냐?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탔을 때 주님께서 우리가 저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했습니다. 주께서 건너가자고 그랬으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배가 뒤엎어져도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세상과 같이 하다가 하나님 말씀을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과 뭐가 다릅니까? 우리는 떡으로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살 동안에는 430년 동안 떡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들어왔을 때는 떡으로 살수 없었습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렸습니다. 광막한 사막에 양식도 없고 물도 없고 병원도 없고 의복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 말씀만 바라보았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전할 때 그 말씀을 믿으매 말씀을 통해서 만나도 오고 메추라기도 오고 물도 생겨나고 병도 낫고 의복도 낡아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떡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 속에 삽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다 3차원의 세계 속에 시간과 공간과 물질에 의지해서 살지만 우리는 3차원의 세계를 초월한 성령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찾아와서 오늘 말씀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성경은 세상 말이 아닙니다. 세상의 철학자나 과학자나 종교인의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보좌에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너는 이 말씀을 통하여 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을 우리가 읽고 듣고 깨달아 알고 말씀에 서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면 어떠한 광야 같은 삶에서도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기적을 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에게 물은 질문이 그것입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물이 배에 가득한 것은 3차원의 세계 속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3차원의 세계를 다스리고 돌볼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말씀을 주시는데 너희가 그 말씀을 믿지 않고 무엇을 했느냐? 믿음을 어디다 두었느냐? 그렇게 물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바다와 파도를 잠잠케 하신 것입니다.
시107:28~29에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 도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말씀을 읽고 나올 때 어떠한 파도도 잠잠케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사람과 다른 특권이 바로 말씀을 가지고 있고 말씀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감성, 감각, 환경을 믿지 않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야. 내가 느끼는 대로 내가 감각하는 대로 내가 환경을 보는 대로 따라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그것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느껴도 그것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서서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주님과 거리를 두게 되면 주님이 멀리 떠나 있으면 할 수 없이 자기 감성이나 감각이나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제자들이 주님과 거리를 두고 있을 때는 바람을 보았습니다. 파도를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이 하면 그들은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예수님은 파도보다 강하시고 바람보다 강하시고 바다보다 모든 것보다 강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기에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우리를 값 주고 사셨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제가 시골에 살 때 어릴 때 우리 닭장에 불이 나서 많은 닭이 타죽었습니다. 닭장에 가보니까 우리 안에 암탉이 날개를 이렇게 펴고 있는데 제가 그 암탉을 보니까 완전히 통닭구이가 되었어요. 불이 탔어요. 그런데도 그 날개를 펴고서 앉아 있어요. 날개를 쭉 들어보니까 그 밑에 병아리가 다 살아있어요. 우물쭈물하게 암탉은 병아리를 안태워 죽이려고 자기가 불에 타면서 날개로 병아리를 보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건지기 위해서 당신이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죽으시면서 까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려놓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떠나서 인간의 감정이나 환경을 바라보고 따라가면 잠 1: 27처럼 됩니다.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같이 하면 말씀 위에 서게 되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영이라 분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육신을 쓰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성경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말씀을 품으면 하나님을 품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요 1: 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눅 1:37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롬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 속에 모든 부요가 다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영적으로 사는 세계도 있고 범사에 축복받는 세계도 있고 치료받는 세계도 있습니다.
시편 103편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 속에 이런 부요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런 풍부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발견하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요, 말씀을 믿는 것은 하나님은 믿는 것이요, 말씀을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스탠다드 오일 회사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오일을 공급하는 회사로 그 기름을 이집트에서 퍼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미국의 석유회사입니다. 어떻게 미국인이 이집트에서 기름을 퍼내는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바로 그 이유가 이렇습니다. 스탠다드 오일 회사의 중역 가운데에는 믿음이 깊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어느 날 출애굽기 2장을 읽고 있는데 모세가 갈대 상자에 담아 이집트의 나일 강 하수에 버리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출 2: 3에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역청’은 영어로 피치(Pitch)인데, 피치는 바로 석유라는 말인 것입니다. 갈대상자를 만들어서 그 모세의 어머니가 피치 즉, 석유를 가지고서 그것을 발라서 아기를 담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 하나님 말씀은 참말인데 모세의 어머니가 석유에서 나오는 피치로 갈대상자를 발랐다고 했으니 그곳에 석유가 있을 것이다.’ 이래서 그 말씀을 따라서 석유 전문가인 찰스 휫샤트라고 하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이집트 현지를 답사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갈대상자에 담아 떠내려 보냈다고 하는 바로 그곳에서 커다란 유전을 발견하게 되어 큰 부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면 말씀위에 서게 됩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 말씀으로 우리의 환경을 통해 이처럼 놀라운 물질적인 축복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문제의 해답이 되는 것입니다. 풍랑을 잠잠하게 하려고 동서남북을 뛰지 마십시오. 말씀을 찾아 가십시오.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말씀을 찾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이요, 말씀을 품에 앉고 부르짖는 것이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키는 역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으로 감성과 감각과 환경을 이겨 내십시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말씀만 가지고 있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시23: 4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고 했는데 이 말씀에 보십시오. 내가 아무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하고 풍랑을 당하고 캄캄한 밤을 통할지라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같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어둡고 캄캄한 골짜기에 갈지라도 모든 세상 사람이 나를 다 버렸을지라도 주님은 나와 같이 계십니다. 말씀이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주님은 지팡이를 가지고 길을 만들어 주시고 막대기를 가지고 나를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이 같이 계신 것을 알고 주님을 믿음으로 알아보고 그 말씀을 안고서 내가 기도하는 이상은 나는 절대로 버림받지 않은 것은 주님의 지팡이는 길을 만들어 내시고 막대기는 나를 보호해 주셔서 골짜기에서 나오게 만들어 주시고 밤에서 나오게 만들어 주시고 풍랑에서 나오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위에 선다는 것은 우리에게 한없는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시46: 1의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말했고 3절에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107:30에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풍랑을 만났을 때 세상을 버리고 자기를 섬기는 삶을 버리고 주님 중심으로 돌아오고 깨어져서 주님 섬기는 생활로 돌아오고 부르짖어 외치면 오늘날도 주님은 잠에서 일어나서 우리를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에서 건져 주시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어찌 주님께서 행하시매 바람과 바다도 잠잠하게 되었느뇨. 예수님은 우리 영혼만 구원하는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 영혼이 잘되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범사도 잘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에 풍랑도 잠잠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풍랑, 가정적인 풍랑, 자녀로 말미암아 다가온 풍랑, 사업과 생활에 풍랑도 주님이 잠잠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질병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날도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것입니다. 주님 말씀 속에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말씀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찾으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얻으면 하나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의지하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 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패배할수 없습니다. 버림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짓 밟힐수 없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안보이지요. 예수님도 눈에 안보이고 성령도 눈에 안보이지만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말씀 안에 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말씀을 찾으면 그 가운데서 주님이 다 우리를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인생항로를 살아갈 때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은 결코 주님과 거리를 두지 말아야 됩니다. 마귀가 언제나 세상 유혹을 가지고 와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과 거리를 두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이 들어오면 주님과 거리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주님 중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고 주님의 말씀을 흔들리지 말고 붙잡고 살아가면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게 될 것이요 풍랑은 잠잠해 질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같이 하시므로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날도 여러분과 나를 향해서 말합니다. 우리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자. 주님은 우리와 함께 인생 배를 타고 가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절대로 우리만 인생 배를 타고 떠나보내지 않습니다. 함께 배를 타고가나 우리가 주님과 거리를 두고 우리가 주님을 멀리하므로 말미암아 배가 풍랑을 만나는 것이지 주님이 우리를 멀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주님과 여러분 사이에 거리를 두지 말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우리 인생 배를 같이 타고 인생을 항해해 가는데 마귀가 와서 세상 사랑을 마음속에 품어 주어서 세상이 들어오게 해서 주님과 거리를 두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담과 하와는 세상을 받아 들였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세상과 친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을 다 쫓아내고 주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여, 오늘 오셔서 모든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에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평안과 축복과 기적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말씀 위에 선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제자들을 데리시고 갈릴리 호수 이편에 서서 저 건너편을 바라보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신속히 배를 준비해서 예수님과 함께 배위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순풍의 돛을 달고 미끄러지듯이 갈릴리호수 한가운데로 향해서 배는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본론]
1. 주님과 거리를 둔 제자들
항상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제자들이 둘러싸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날은 제자들의 가슴속에 세상 사랑이 들어오자 예수님과 거리를 두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따로 두시고 제자들끼리 모여서 그들은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상이 들어오자 예수님과 거리를 두게 된 것입니다. 주님 중심의 삶에서 인간중심의 삶으로 주님을 여태까지 섬기는 삶에서 그때부터는 예수님을 이용해서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리겠다는 생각이 꽉 들어찼습니다. 천국 관심사에서 세상 관심사로 옮겨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삶에 중대한 문제의 발단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 살면서 갑자기 세상 사랑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주님과 거리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들어오면 성경읽기 싫어지고 기도하기 싫어지고 교회 오는 것이 점점 줄어지기 시작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교통하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랑이 들어오면 주님 중심에서 세상 중심으로 하늘나라에 관심에서 세상관심으로 바뀌어 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 골 3: 2은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는데 위의 것은 생각하지 않게 되고 점점 땅의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들어오면 골 3: 5처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했는데 세상이 들어오면 음란을 가져오고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세상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탐욕을 함께 가지고 들어와서 하늘나라 관심에서 우리를 멀리 떠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유상종으로 제자들 가슴속에 세상이 들어오자 세상을 품을 제자들 자기들끼리 모였습니다. 예수님과는 거리를 두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오순도순 세상 이야기에 꽃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종류끼리 모입니다. 짐승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까치는 까치끼리, 까마귀는 까마귀끼리, 참새는 참새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도둑놈은 도둑놈끼리 모입니다. 깡패는 깡패끼리 모이고 착하고 선한 사람은 착하고 선한 사람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들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 우리가 늘 세상을 생각하면 세상영이 우리에게 와서 같이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친구 여기 있다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음란한 생각하면 음란한 영이 오고 영적으로 미워하면 미워하는 영이오고 영적으로 방탕하면 방탕한 영이 들어와서 유유상종으로 같이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세상 마귀가 나를 자꾸 따라 오느냐. 그렇게 묻지 말고 세상 마귀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요소가 내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회개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파리가 자꾸 날아온다고 말하지 말고 파리가 날아오도록 쓰레기를 쌓아 놓은 것을 알고 쓰레기더미를 치우면 파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내가 늘 죄지을 생각을 하면은 죄있는 환경을 찾아가겠고 죄와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늘 병든다. 나는 약하다. 나는 죽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병의 환경을 만들어 내어서 병과 동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병이 떠날 날이 없어요. 내 마음속에 병든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병이 나의 친구라고 찾아와서 떠날 날이 없습니다. 나의 마음속에 나는 못산다. 안 된다. 할 수 없다고 말하면 못살고 안 되고 할 수 없는 세상환경이 우리 친구 여기 있다고 와서 같이 거하고 떠나지를 않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각, 우리 마음의 자세가 우리 환경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무엇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가가 바로 내 환경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유유상종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끼리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교단에 지도자로써 한 10년 동안 있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 총회로 모이면 성공한 목사도 있고 실패한 목사도 있는데 언제나 실패한 목사들과 성공한 목사들을 같은 방에 넣어서 좀 성공한 목사들의 성공담도 듣고 힘도 얻으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한 이틀 지나고 보니까 전부 방을 바꿔가지고서 끼리끼리 모여요.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끼리 모이고 패배한 사람은 패배한 사람끼리 모였습니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끼리 모이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부정적인 말하는 사람은 자기들끼리 모여 있습니다. 유유상종으로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사는데 여러분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에 친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환경과 친구가 되고 그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환경과 친구가 되고 긍정적인 환경과 같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떠하면 그 사람의 운명도 환경도 그러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운명과 환경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 따라 운명과 환경도 친구가 되어서 유유상종으로 따라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상이 그 마음속에 들어오매 세상과 친구가 되어서 예수님과 거리를 두게 되고 그리고 세상을 친구로 한 끼리끼리 모여서 서로 대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요일 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과 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멀리 하시니까 예수님이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시고 파도를 바라보시고 바다를 바라보시다가 그만 주무시고 만 것입니다. 홀로 계신 예수님은 주무십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항상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과 대화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과 더불어 살면 주무시지 않지만 예수님과 거리를 두면 예수님은 홀로 계시지 않고 주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여러분 변두리 인생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여러분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ㅏ 예수님이 주무시지 않지 예수님을 여러분 변두리에 두시고 멀리 두시고 홀로 두시면 예수님은 반드시 주무시고 마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 중심에 계시지 않으신 예수님은 주무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깨뜨리고 우리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예수님을 섬기는 삶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막 8:34에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깨뜨리고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 중심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우리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일엽편주의 인생 배를 타고 이 망망한 대해인 세상을 살아가는데 절대로 우리 혼자 배를 타고 가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배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를 배를 타고 건너가는 것처럼 인생의 배에 예수님이 함께 타고 계시지만은 여러분이 거리를 두시면 여러분의 인생배속에서 예수님은 주무시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절대로 여러분을 떠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멀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거리를 두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영접하면 세상이 들어오자 예수님도 거리를 두게 되고 예수님을 멀리하게 되고 예수님을 변두리에 두게 되고 예수님을 여러분 생애 속에 주무시게 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 6:33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인생에 먼저 할 것과 나중할 것이 있는데 우리가 세상을 먼저하고 예수님을 나중하면은 예수님은 주무시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먼저 섬기고 예수님을 먼저 구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삶을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섬기고 주님 중심으로 살면 이 세상에 살 수 없다. 처자식구들은 무엇을 먹여 살며 세상 사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마귀가 그렇게 부정적인 말을 속삭입니다. 거짓말입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예수님은 할 수 있는 일이 모두다 예수님 손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못 할일이 없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고 살까, 어떻게 살까를 다 해결해 주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을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할 수 없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삶과 풍랑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멀리하자 풍랑이 다가온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노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영화를 보거나 TV를 보면 아프리카 초원에서 많은 짐승들이 떼를 지어서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자나 하이애나나 표범이나 이런 것들이 짐승을 잡아먹을 때 언제나 어미와 새끼를 분리시켜 놓습니다. 어미 곁에 있는 새끼는 공격을 하다가 어미의 습격을 당해서 부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몰아쳐서 새끼를 어미에서 떼어 놓으면 그때는 그 새끼를 공격해서 잡아먹는 것입니다. 마귀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우리를 예수님께 떼어 놓아야 공격할 수 있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우리를 절대로 공격할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 예수님과 곁에 있는데 어떻게 감히 우리를 공격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마귀는 항상 우리 속에 유혹을 보내어서 세상이 들어오게 하므로 세상이 우리와 예수님과의 거리를 두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와 거리를 두고 있으면 마귀는 그때 우리를 공격해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벧전 5: 7~ 8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여기에 마귀는 사자에 비유한 것입니다. 여러분 초원에서 사자가 짐승을 공격할 때 인정사정없이 발로 때려눕히고 목을 깨물어서 숨통을 물어 죽이고 그 다음에는 심장을 파내 먹지 않습니까? 사자는 인정사정 두지 않습니다. 물고 찢습니다. 마귀도 우리에게 인정사정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우리 사이에 거리를 내어서 우리가 무능력하다고 생각할 때 우리에게 덤벼들어서 우리의 영적인 숨통을 물어 죽이고 우리를 찢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겸손하고 깨어서 주님 곁을 떠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왜 풍파가 다가오는 것입니까? 개인적인 풍랑, 가정적인 풍랑, 사업적인 생활에 풍랑이 다가오는 것은 주님과 거리를 두고 있을 때 마귀가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풍랑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가는데 어떻게 감히 풍랑이 다가옵니까?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과 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주무시게 하고 난 다음에 마귀는 그 틈을 타고 풍랑을 보내어서 일시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수장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거리를 둘 때 마귀는 공격을 합니다. 주님과 함께 계시면 어림없지요. 어떻게 예수님 함께 있는데 마귀가 우리를 공격합니까?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91편을 읽어보면 주님과 같이 계시면 어떠한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 91: 1~16 다 같이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여호와여 주는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엄청난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여러분 시간 있을 때마다 시편 91편을 읽으시고 할 수만 있으면 외워 놓으십시오. 매일같이 시편 91편을 여러분 읽고 외우면 여러분 마음속에 얼마나 편안하고 든든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야훼 샬롬 여러분의 평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같이 계시면 시편 91편의 말씀대로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내 장막에 이르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그 천사들을 명하사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마귀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를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거리를 두지 아니하면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와서 그 계괴로서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마음속에 넣어주면 세상이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그리스도와 거리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거리를 두었는지 안 두었는지 어떻게 압니까? 예수님과 거리를 두게 되면 관심사가 예수 중심에서 세상 중심으로 하늘나라 관심에서 세상 관심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곳에서 나를 섬기는 것으로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당장 성경이 읽기 싫어요. 기도가 하기 싫어요. 교회 나오는 것이 싫고 구역예배는 아예 가고도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재미가 있어요. TV 앞에 앉아 있는 것이 기도하는 것보다 더 좋고 소설 읽는 것이 성경 읽는 것보다 더 좋고 세상 친구 만나는 것이 기도회 가는 것보다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방향이 달라져요. 그리고 난 다음에 풍랑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옳다. 이때다. 이제는 내 계획대로 되었다. 주님과 거리를 두었다. 어미하고 거리를 두었으니 이때 공격하자. 이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자. 순식간에 환경을 통해서 풍랑을 통해서 처들어 오게 되는 것입니다.
3. 환난 당했을 때 주님을 깨우라
제자들은 풍랑을 만났습니다. 갑자기 먹장구름이 하늘에 끼고 바람이 불고 소낙비가 쏟아지고 파도가 일어 배에 물이 가득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다 바다에 전문가들입니다. 어부들이기 때문에 배를 조정할 줄 알고 파도를 다스릴 줄 알지만 엄청나게 큰 파도가 다가오매 그들의 경험상 그들의 기술로서는 배를 안정하게 만들 수 없었습니다. 물이 가득하여 배가 가라앉게 되니 그들은 좌절과 절망에 처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무리 노력을 했으나 허망했습니다.
시42: 5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자 그런 시련을 겪게 된 것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을 때 해야 할 일은 내 중심의 잘못된 삶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고난과 환난이 다가왔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길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두 손 들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자기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문제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또 변명하지 마십시오. 변명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회개하고 자복하고 깨어져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울면서 주님께 나오면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롬 2: 5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우리가 회개하지 아니하고 고집을 부리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일 1: 9처럼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두 손 들고 나오는 사람 주님께서 절대로 얼굴 돌리지 않고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만일 이웃에 네게 죄를 짓고 잘못했다고 회개하고 돌아오거든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루에 일곱 번만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 큰 마음먹고 일곱 번이라 했는데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이웃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해주라 했는데 사람이 사람의 죄도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라고 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우리를 모른 척 하겠습니까? 주님은 절대로 우리를 모른 체하지 않고 우리를 밀쳐내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사람 멸망 받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지옥 가는 사람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지옥가는 것입니다. 회개만 하면 모든 사람이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깨어져 자기를 섬기는 삶을 돌이키고 주님을 섬기는 삶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삶이 주님을 섬기는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귀를 따라가든지 주님을 섬기든지 둘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자유롭게 살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음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을 섬기고 살라고 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왔을 때는 마귀를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살든지 마귀의 종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좋은 주인을 따라서 살면 우리의 삶은 행복해지고 나쁜 주인을 따라 살면 우리는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요, 마귀는 나쁜 마귀인 것입니다. 좋은 하나님이 우리를 나쁘게 해주실 수가 없고 나쁜 마귀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를 따라가서 만신창이가 되었으면 회개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오고 하나님 섬기는 삶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고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55: 6~ 7에 “너희는 야훼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야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불쌍히 여기십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서 세상에 살다가 낭패를 당하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빈 손들고 아버지께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형은 안 받아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화하고 먹고 탕진가산한 이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형은 안 받아주겠다 했는데 아버지는 받아 주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나고 잃었다가 얻었다고 즐거워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쁘게 받아줄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을 비평하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심판할지라도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 버리지 않고 품에 품어서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여러분을 버리지 아니하고 여러분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계 2: 5의 말씀대로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 11월 4일 순복음 가족신문에서 우리교회 젊은 부부선교회에 출석하는 전종학, 박성미 부부의 간증을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들 부부는 청년선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었는데 당시 자매님은 미용사로 일을 했는데 전종학 성도는 아내가 고된 일을 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려서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주식에 손 을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200만원을 가지고 시작을 해서 수익이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한번은 5천만 원까지 이익을 올린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손해가 생겼고 손해는 점점 커져서 이를 메우기 위해 사람들에게 돈을 꾸어야만 했습니다. 빚은 계속 늘어나 결국은 손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성도는 아내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두 부부는 세상을 따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 품에 두 손들고 돌아왔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고 작정금식기도를 하고 아파트를 팔아 빚을 갚고 수중에 돈 한푼 없었지만 믿음으로 아파트 매매 수익금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쉬지 않고 더 열심히 일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님을 찾아가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했습니다. 1년쯤 지났을 때 전종학 성도님은 우연히 형님을 만났는데, 형님은 “고생했다”면서 남은 빚을 모두 갚아주었습니다. 또한 성도님은 교회에서 가깝고 월급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어서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는 간증을 적었습니다. 문제 앞에서 인간적인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부르짖자 예수님이 친히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환난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찌하든지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주님께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물에 젖었습니다. 머리는 산발이 되고 옷은 물에 젖어 몸이 찰싹 붙었습니다. 물보라가 얼굴에 부딪혀 왔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주무시는 예수님께 찾아가서 예수님을 흔들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세상은 도와줄 수 없습니다. 세상은 그들에게 절망을 가져왔습니다. 세상 생각다 물리치고 인본주의 생각 다 물리치고 주님을 찾았습니다. 주님 중심으로 서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살려 주소서.” 혼신의 힘을 다해 주님을 깨워 일으키니까 주님이 일어나셔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매 즉시로 바다가 잠잠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주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렘33: 3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게 속삭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묵상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게 부르짖으라. 목이 터져라고 부르짖어 외치면 주님께서 들으시고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시44:26에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렇게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유다왕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와서 네가 죽을 터이니 살림을 정리하라고 하고 떠났습니다.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여 돌아누워서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며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저를 살려 주소서.’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가서 네 종 히스기야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의 부르짖음을 듣고 너의 눈물을 보았다. 내가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하고 그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 주겠다고 말하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히스기야가 주님이 죽을 것이니 생활을 정리하라는 말을 듣고 통곡하고 부르짖고 울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주님께서 내가 너의 부르짖음을 듣고 내 눈물을 보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눈에서 흐르는 눈물조차 주님은 보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 부르짖음과 울음을 통해서 주님은 15년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앗수르 왕에게서 구원해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혼신의 힘을 다해 주님께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냥 와서 주님께 속삭인 것이 아닙니다. 주님 주위에 서서 가만히 있은 것 아닙니다. 그들은 주님을 붙잡고 흔들고 고함치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우리도 여러분 환난을 당해서 풍랑 일어날 때 주님께 나와서 통곡하고 통회하고 자복하며 울부짖어 기도하고 외쳐서 기도하면 주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많은 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병든 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주께 부르짖는 병자는 쉽게 고침을 받고 혼신을 다해 부르짖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절함이 없는 사람은 좀처럼 병이 낫지 않습니다. 병자위해 기도할 때 오히려 기도하면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짖는데 당사자는 빙글빙글 눈을 떠서 돌아보고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짖지 않습니다. 그런 분은 좀처럼 고침을 받지 않습니다.
1970년 4월, 미국의 아폴로 13호가 달나라를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런데 지구로부터 2만 마일 떨어진 곳에서 아폴로 13호는 산소통이 깨지는 사고로 더 이상 비행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본부인 휴스턴을 향해 긴급하게 연락을 했고, 지휘 본부에서는 “북극성을 바라보면서 방향을 잡아 돌아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전 미국 국민들은 고장 난 캡슐을 몰고 오는 우주 비행사들을 위해 오전 9시를 기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전 국민이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도 우주선 안에서 힘껏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고장 난 아폴로 13호는 태평양에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미 해군 군함에 의해 구조되었는데 이들이 우주선에서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한 행동은 감사 기도였습니다. 그들은 해군 군목의 손을 잡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당시 이들의 모습은 타임지 표지에 실려 전 세계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인간 과학의 최고 산물이라는 우주선이 고장났을 때, 인간이 매달릴 곳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과학만능도 기도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을 때는 무엇보다 먼저 혼신의 힘을 다해 주님을 찾고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 못할 리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부르짖어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생활에서 잠에서 깨어 일어나시면 한마디로 풍랑을 잠잠케 해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4.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난 후 어리둥절 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네 믿음을 어디다 두었느냐’고 말했습니다. 믿음이 없다고 꾸짖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어디에 두었느냐?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탔을 때 주님께서 우리가 저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했습니다. 주께서 건너가자고 그랬으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배가 뒤엎어져도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세상과 같이 하다가 하나님 말씀을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과 뭐가 다릅니까? 우리는 떡으로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살 동안에는 430년 동안 떡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들어왔을 때는 떡으로 살수 없었습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렸습니다. 광막한 사막에 양식도 없고 물도 없고 병원도 없고 의복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 말씀만 바라보았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전할 때 그 말씀을 믿으매 말씀을 통해서 만나도 오고 메추라기도 오고 물도 생겨나고 병도 낫고 의복도 낡아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떡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 속에 삽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다 3차원의 세계 속에 시간과 공간과 물질에 의지해서 살지만 우리는 3차원의 세계를 초월한 성령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찾아와서 오늘 말씀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성경은 세상 말이 아닙니다. 세상의 철학자나 과학자나 종교인의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보좌에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너는 이 말씀을 통하여 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을 우리가 읽고 듣고 깨달아 알고 말씀에 서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면 어떠한 광야 같은 삶에서도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기적을 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에게 물은 질문이 그것입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물이 배에 가득한 것은 3차원의 세계 속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3차원의 세계를 다스리고 돌볼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말씀을 주시는데 너희가 그 말씀을 믿지 않고 무엇을 했느냐? 믿음을 어디다 두었느냐? 그렇게 물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바다와 파도를 잠잠케 하신 것입니다.
시107:28~29에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 도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말씀을 읽고 나올 때 어떠한 파도도 잠잠케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사람과 다른 특권이 바로 말씀을 가지고 있고 말씀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감성, 감각, 환경을 믿지 않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야. 내가 느끼는 대로 내가 감각하는 대로 내가 환경을 보는 대로 따라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그것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느껴도 그것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서서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주님과 거리를 두게 되면 주님이 멀리 떠나 있으면 할 수 없이 자기 감성이나 감각이나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제자들이 주님과 거리를 두고 있을 때는 바람을 보았습니다. 파도를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이 하면 그들은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예수님은 파도보다 강하시고 바람보다 강하시고 바다보다 모든 것보다 강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기에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우리를 값 주고 사셨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제가 시골에 살 때 어릴 때 우리 닭장에 불이 나서 많은 닭이 타죽었습니다. 닭장에 가보니까 우리 안에 암탉이 날개를 이렇게 펴고 있는데 제가 그 암탉을 보니까 완전히 통닭구이가 되었어요. 불이 탔어요. 그런데도 그 날개를 펴고서 앉아 있어요. 날개를 쭉 들어보니까 그 밑에 병아리가 다 살아있어요. 우물쭈물하게 암탉은 병아리를 안태워 죽이려고 자기가 불에 타면서 날개로 병아리를 보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건지기 위해서 당신이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죽으시면서 까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려놓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떠나서 인간의 감정이나 환경을 바라보고 따라가면 잠 1: 27처럼 됩니다.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같이 하면 말씀 위에 서게 되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영이라 분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육신을 쓰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성경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말씀을 품으면 하나님을 품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요 1: 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눅 1:37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롬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 속에 모든 부요가 다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영적으로 사는 세계도 있고 범사에 축복받는 세계도 있고 치료받는 세계도 있습니다.
시편 103편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 속에 이런 부요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런 풍부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발견하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요, 말씀을 믿는 것은 하나님은 믿는 것이요, 말씀을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스탠다드 오일 회사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오일을 공급하는 회사로 그 기름을 이집트에서 퍼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미국의 석유회사입니다. 어떻게 미국인이 이집트에서 기름을 퍼내는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바로 그 이유가 이렇습니다. 스탠다드 오일 회사의 중역 가운데에는 믿음이 깊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어느 날 출애굽기 2장을 읽고 있는데 모세가 갈대 상자에 담아 이집트의 나일 강 하수에 버리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출 2: 3에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역청’은 영어로 피치(Pitch)인데, 피치는 바로 석유라는 말인 것입니다. 갈대상자를 만들어서 그 모세의 어머니가 피치 즉, 석유를 가지고서 그것을 발라서 아기를 담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 하나님 말씀은 참말인데 모세의 어머니가 석유에서 나오는 피치로 갈대상자를 발랐다고 했으니 그곳에 석유가 있을 것이다.’ 이래서 그 말씀을 따라서 석유 전문가인 찰스 휫샤트라고 하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이집트 현지를 답사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갈대상자에 담아 떠내려 보냈다고 하는 바로 그곳에서 커다란 유전을 발견하게 되어 큰 부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면 말씀위에 서게 됩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 말씀으로 우리의 환경을 통해 이처럼 놀라운 물질적인 축복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문제의 해답이 되는 것입니다. 풍랑을 잠잠하게 하려고 동서남북을 뛰지 마십시오. 말씀을 찾아 가십시오.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말씀을 찾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이요, 말씀을 품에 앉고 부르짖는 것이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키는 역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으로 감성과 감각과 환경을 이겨 내십시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말씀만 가지고 있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시23: 4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고 했는데 이 말씀에 보십시오. 내가 아무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하고 풍랑을 당하고 캄캄한 밤을 통할지라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같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어둡고 캄캄한 골짜기에 갈지라도 모든 세상 사람이 나를 다 버렸을지라도 주님은 나와 같이 계십니다. 말씀이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주님은 지팡이를 가지고 길을 만들어 주시고 막대기를 가지고 나를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이 같이 계신 것을 알고 주님을 믿음으로 알아보고 그 말씀을 안고서 내가 기도하는 이상은 나는 절대로 버림받지 않은 것은 주님의 지팡이는 길을 만들어 내시고 막대기는 나를 보호해 주셔서 골짜기에서 나오게 만들어 주시고 밤에서 나오게 만들어 주시고 풍랑에서 나오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위에 선다는 것은 우리에게 한없는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시46: 1의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말했고 3절에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107:30에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풍랑을 만났을 때 세상을 버리고 자기를 섬기는 삶을 버리고 주님 중심으로 돌아오고 깨어져서 주님 섬기는 생활로 돌아오고 부르짖어 외치면 오늘날도 주님은 잠에서 일어나서 우리를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에서 건져 주시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어찌 주님께서 행하시매 바람과 바다도 잠잠하게 되었느뇨. 예수님은 우리 영혼만 구원하는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 영혼이 잘되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범사도 잘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에 풍랑도 잠잠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풍랑, 가정적인 풍랑, 자녀로 말미암아 다가온 풍랑, 사업과 생활에 풍랑도 주님이 잠잠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질병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날도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것입니다. 주님 말씀 속에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말씀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찾으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얻으면 하나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의지하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 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패배할수 없습니다. 버림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짓 밟힐수 없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안보이지요. 예수님도 눈에 안보이고 성령도 눈에 안보이지만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말씀 안에 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말씀을 찾으면 그 가운데서 주님이 다 우리를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인생항로를 살아갈 때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은 결코 주님과 거리를 두지 말아야 됩니다. 마귀가 언제나 세상 유혹을 가지고 와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과 거리를 두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이 들어오면 주님과 거리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주님 중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고 주님의 말씀을 흔들리지 말고 붙잡고 살아가면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게 될 것이요 풍랑은 잠잠해 질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같이 하시므로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날도 여러분과 나를 향해서 말합니다. 우리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자. 주님은 우리와 함께 인생 배를 타고 가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절대로 우리만 인생 배를 타고 떠나보내지 않습니다. 함께 배를 타고가나 우리가 주님과 거리를 두고 우리가 주님을 멀리하므로 말미암아 배가 풍랑을 만나는 것이지 주님이 우리를 멀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주님과 여러분 사이에 거리를 두지 말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우리 인생 배를 같이 타고 인생을 항해해 가는데 마귀가 와서 세상 사랑을 마음속에 품어 주어서 세상이 들어오게 해서 주님과 거리를 두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담과 하와는 세상을 받아 들였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세상과 친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을 다 쫓아내고 주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여, 오늘 오셔서 모든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에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평안과 축복과 기적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