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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빼앗기지 않는 길

빌립보서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033 추천 수 0 2009.10.08 14: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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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1:12-18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http://john316.or.kr 

행복을 빼앗기지 않는 길 (빌립보서 1:12-18)

<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십시오 >

 어느 날, 한 아빠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의 방 옆을 지나가다가 방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고, 아들의 침대가 잘 정돈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방으로 들어가자 침대 위에 봉투 하나가 있었는데, 편지 봉투에 “아빠에게!”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읽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편지였습니다.

< 사랑하는 아빠! 저는 지금 아주 안타깝고 슬픈 심정으로 이 편지를 써요. 요새 저에게 새로 여자친구가 생겼는데 그 여자친구와 함께 지금 멀리 떠나려고 해요. 왜냐하면 아빠 엄마가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스테이시를 향한 저의 열정을 억누를 수 없어요. 그녀는 피어싱을 하고, 문신을 하고, 몸에 꽉 끼는 복장을 하고 다니고,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지만 좋은 여자에요.

 아빠! 그런데 제가 그녀와 도망치는 것은 단지 열정 때문만은 아니에요. 지금 그녀는 임신을 했어요. 그녀는 우리가 아주 행복할 거라고 말했어요. 그녀는 숲 속에 작은 이동식 주택을 가지고 있고, 이번 겨울을 지낼 수 있는 땔감도 듬뿍 마련해 두었어요. 앞으로 아이들도 많이 낳아서 잘 키우자고 서로 약속했어요.

 스테이시는 마약이 진짜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저의 눈을 열어주었어요. 우리는 마약을 재배하며 그것을 찾는 다른 사람에게 팔며 살 거예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스테이시를 위해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할 거예요. 지금 그녀는 많이 아프지만 앞으로는 더 건강해질 것을 거예요.

 아빠!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저는 지금 15살이에요. 그리고 저 자신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를 알고 있어요. 언젠가 저의 아이들을 데리고 아빠를 방문할게요. 그때까지 잘 계셔요. 사랑해요. 아빠의 아들, 존.  

(추신) 아빠, 위에서 말한 내용 중에 어떤 것도 사실이 아니에요. 저는 지금 친구 타미의 집에 있을 거예요. 제가 위 편지를 쓴 것은 아빠가 저의 성적표만 보고 야단칠 것 같아서 그랬어요. 인생에서 성적이 나쁜 것보다 더욱 나쁜 것이 있는 것을 지혜로운 아빠는 잘 아시지요? 저의 성적표가 지금 책상 가운데 서랍 안에 있어요. 아빠! 지금 제 편지 보고 화나지 않으셨으면 저에게 전화주세요. 그러면 바로 집으로 갈게요. >

 얼마나 지혜로운 자녀입니까? 만약 그 아이가 나쁜 성적표를 바로 아빠에게 주었다면 아빠가 크게 화를 냈겠지만 그 아빠는 아들의 편지를 받고 정말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한번의 성적표가 결정하는 것이 새삼 깨달았고 자기 아들에게 성적만큼 중요한 믿음의 여유와 유머감각이 있는 것을 알고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해서 곧 그 아들은 집으로 돌아왔고, 아들은 아빠의 용서를 바탕으로 더욱 분발해서 그 다음 시험에는 그때까지 시험 중에서 최고의 성적을 냈습니다.

 살면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만 보지 마십시오. 나쁜 성적표가 인생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현재의 상황이 무작정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를 볼 때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고 보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이 문제는 나를 더 성숙시키고, 더 기도하게 하고, 더 축복 받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문제 앞에서 기도와 헌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긍정적인 가치관을 얻는 길 >

 사람이 행복하게 살려면 믿음 안에서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부정적인 가치관을 가지면 상황을 항상 어둡게 보고 스스로 불행으로 들어갑니다. 반면에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지면 어떤 일을 당해도 긍정적으로 보면서 행복을 찾습니다. 어떻게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질 수 있습니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훈련이 필요합니다.

 첫째, 자신을 소개할 때 항상 좋게 소개하십시오. 괴로운 일을 당하면 혼자 감당하고 남에게 지우지 않겠다고 각오하십시오. 혼자 조금 참으면 되는데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고 하면 온 집안 식구가 힘들어지고, 본인도 아픔이 줄어들기보다는 아픔이 더해집니다. 그러므로 항상 밝은 얼굴을 하십시오. 그것은 위선이 아닙니다. 그처럼 문제가 많아도 항상 화평하고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하면 점차 성격도 긍정적으로 변합니다.

 둘째, 기쁘고 유쾌하게 사는 자신을 상상하며 사십시오. 그러면 진짜로 기쁘고 유쾌한 삶이 펼쳐집니다. 어떤 의사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위장과 관련된 질병 및 신경성 질병은 크게 몇 번만 웃으면 대개 낫는다고 합니다. 그처럼 현재의 모습에 낙심하지 말고 자기가 앞으로 되고 싶은 사람을 늘 생각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기쁘게 살면 건강도 얻게 되고 생각과 가치관이 아주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셋째, 무엇인가 필요하면 솔직하게 그 필요를 알리십시오. 어떤 분은 결혼기념일이나 자기 생일에 “남편이 알아주나 두고 보자!” 하고 기다렸다가 그냥 넘어가면 그때부터 삐쳐서 일주일 동안 말을 안 합니다. 그처럼 자기 기준으로 ‘사랑의 증거’를 만들어 놓고 그 증거가 없다고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라고 삐쳐버리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경우에 자기의 필요를 분노와 상처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때로는 인간관계를 아주 깊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무엇인가 해주기를 바라면 그냥 아침에 이렇게 말하십시오. “여보! 오늘 우리 결혼기념일인데 조금 일찍 들어오세요.” 그러면 직장과 일에 몰두하던 남편도 언뜻 정신을 차리게 되고, 자신도 남편에게 관심을 표하는 모습이 되면서 그때 정신적인 교감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관계에서는 두고 보면 반드시 선한 역사가 나타나지만 사람 관계에서는 두고 보기만 하면 안 됩니다. 그처럼 자신의 필요를 솔직하게 알리면 마음의 상처와 분노가 사라지고 대신에 긍정적인 가치관이 형성됩니다.

 넷째, 자신이 당한 일과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십시오. 때로 사업이 망해도 사업이 망한 것이지 자신이 망한 것은 아닙니다. 자녀가 대학 시험을 치면 떨어질 수도 있고 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떨어지면 인생이 망하고, 가문이 망가진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의 실패가 인생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이 대학 못 가면 저 대학을 가면 되고, 금년에 못 가면 내년에 가면 됩니다.

 살면서 때로는 실패도 필요합니다. 그때 믿음으로 그 실패를 잘 극복하면 더욱 성도답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간절한 기도에 “노!”라고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노!”라고 하실 때는 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이번에 그것을 가지면 전체적으로는 더 손해라는 뜻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노!”라고 하실 때도 믿음과 감사를 잃지 않으면 하나님은 “예스! 예스!”라고 하시며 그 다음에 더욱 큰 축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집사가 담임목사에게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 이번에 우리 딸이 사법시험을 봤는데 떨어지게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이 너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집사님! 왜 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까?” 집사님이 대답했습니다. “고것이 공부를 잘해서 너무 기고만장해요. 그러면 콧대가 높아 시집을 못갈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고시에서 떨어져 인생이 무엇인지도 알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그런 이유라면 한번쯤은 떨어지는 것도 괜찮습니다. 한번 떨어지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길게 보면 몇 번 떨어져 보고 붙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므로 한두 번의 실패로 너무 낙심하지 말고, 그것으로 자신의 인생이 다 평가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당한 일’에 ‘자신의 존재와 목숨’을 다 걸면 인생이 불안해지고 초라해집니다. 그러나 ‘내가 당한 일’을 통해 자신을 더 격려하고 그때 하나님을 더욱 붙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실패를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 고난 중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말합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 전도하면서 본문 13절을 보면 오히려 로마 황제의 시위대를 중심으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결국 황제 주변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전도되었고, 심지어는 황제의 가족들 중에 몇 사람도 복음을 믿게 되었습니다(빌 4:22).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까? 그러므로 살다가 어려운 일을 당해도 그 일과 문제에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바울처럼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다고 고백하며 어려움을 통해 멋진 삶을 연출해내십시오.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고 ‘나쁜 태도’입니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어떻게 인생의 위기를 잘 관리해서 인생의 기회로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최악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1장 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흑암이 가장 깊을 때 천지를 창조하셨고, 또한 주님은 십자가의 위기를 구원의 기회로 만드셨습니다. 그처럼 최악의 위기를 기회를 만드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역사를 원하십니다. 사람의 모든 생사화복은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문제와 실패도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 일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얻는 가장 큰 축복이 무엇입니까? 어려움 속에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다고 믿음으로 생기는 평안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우상 숭배하다가 예수님을 믿게 된 분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맘이 편하다!”는 말입니다. 우상 숭배하면 귀신이 노해서 어떤 점을 칠지 모르니까 항상 불안합니다. 또한 우상 숭배하는 것처럼 믿어도 어떤 예언이 나올까 불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잘 믿으면 마음도 평안하게 되고, 몸도 점점 건강해지고, 잠도 잘 오게 됩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어떤 문제로 너무 지나치게 고민하다가 불면증에 걸렸습니다. 그러자 그에게는 지옥 같은 삶이 펼쳐졌습니다. 얼마나 괴로운지 미칠 것만 같고 자살 충동도 들었습니다. 그 불면증에 비하면 원래 문제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가족의 권고로 성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신기하게도 ‘과거의 고통스런 일’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생각나는 생각의 변환이 이뤄지면서 불면증이 사라졌습니다.

 ‘과거의 고통’보다 ‘앞으로의 일’이 더 생각나는 생각의 변환을 이루십시오. 위대한 사람들은 ‘현재의 문제’보다 ‘앞으로의 일’을 더 생각하는 생각의 변화를 이룬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는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혔지만 ‘자신이 당한 일’보다 ‘복음의 진보’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13절). 그처럼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이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내 믿음을 보일까?”를 생각하면서 그때를 오히려 진보의 기회로 만드는 태도가 바로 행복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지금 혹시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을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기회로 만들고, 더 간절한 기도를 배우는 기회로 활용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일을 당했느냐?”가 아니라 “내가 그 일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믿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고, 가는 길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환경도 믿음으로 이기고 복음의 진보를 이뤄내십시오.

< 하나님의 비전에 헌신하십시오 >

 대개 사람들은 외적으로 성공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외적인 성공은 수명이 짧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거지처럼 살았지만 수백 년이 지나도록 위대한 성자로 기억됩니다. 반면에 프랜시스 당시의 교황이 누구이고 가장 큰 성당의 신부가 누구인지는 거의 모릅니다. 그러므로 지금 외적으로 조금 초라한 모습이라도 결코 실망하지 마십시오. 내 연약함과 고난도 축복으로 가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특별히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그때 더욱 큰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과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사도 바울이 감옥 안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활발하게 전도한다는 소식을 듣고 밖의 성도들은 더욱 용기를 얻고 더욱 주님의 역사를 신뢰하고 자신들도 더욱 전도에 힘썼다는 말입니다.

 전도하면 내 영혼도 살고, 내 교우도 살고, 내 장래도 살고, 내 교회도 살고, 전도 받는 사람도 삽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전도만큼 복된 일은 없습니다. 어떤 분은 은혜가 넘치게 되면 전도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혜가 없어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전도하면 그토록 찾던 은혜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분이 무디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성경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무디가 말했습니다. “그때는 밖에 나가서 전도하세요. 그러면 깨달아집니다.” 진리의 돌은 허리를 굽혀야 주울 수 있습니다. 즉 참된 진리는 행동할 때 깨달아집니다. 그러므로 전도에 나서십시오. 구원받은 영혼에게 영혼구원만큼 기쁨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 신비한 기쁨이 있기에 자존심을 죽이고, 상처를 삭이고, 고난과 희생이 예상되어도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전도에 나서는 것입니다.

 이번에 미국 기독교선교연맹(C&MA) 한인 총회 감독이신 문형준 감독님이 옵니다. 그분이 내년 총회까지 감독을 하다가 그만둡니다. 2014년까지 감독직이 보장되었는데 일찍 사임하는 것입니다. 남들이 선호하는 그 자리를 그만두는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감독을 하다 보니까 한 명씩 전도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재미를 직접 체험하지 못해서 영혼에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감독을 그만두고 오라는 곳이 없어도 한국으로 돌아와서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영혼’에게 ‘영혼 구원하는 것’이 없으면 아무리 잘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돈은 있어도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면 정말 허무한 것입니다. 천국의 상급은 무엇으로 결정됩니까? “나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영혼이 구원받느냐?”로 결정됩니다. 저도 매일 온라인 새벽기도를 보내면 가끔 영혼이 구원받고 영혼이 변화되었다는 감동적인 메일을 받습니다. 바로 그것이 바로 온라인 새벽기도를 지탱하는 힘입니다.

 예수님은 영혼을 구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 예수님의 영혼 구원의 꿈에 자신을 일치시키고 최선을 다해 전도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어려움이 있습니다. 때로는 참아야 할 일도 많고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때 본문 18절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그래도 기뻐하겠다.”고 다짐하십시오. 그처럼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비전에 헌신할 때 하나님은 그의 가정과 사업의 지경을 넓혀주실 것입니다.

< 행복을 빼앗기지 않는 삶 >

 금년 5월에 열렸던 미국 켄터키 루이빌 총회에 참석했을 때, 저는 총회 회의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총회일정에 2012년 ‘한국 총회’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목사님들과 상의 없이 미국 한인총회 실행위원들이 감동되는 대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회의록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곧 이어 그 결정이 하나님의 뜻과 소명처럼 느껴지며, 그 결정대로 해보리라는 강한 열망이 생겼습니다. 성경에서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했는데 많은 목사님들을 대접할 생각을 하니까 저절로 배가 불렀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실행위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총무 목사님이 난색을 표했습니다. 준비하는 예산만 최소한 5천만 원 정도 드는데 그 예산을 누가 감당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예산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냥 추진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실행위원회를 통과시켰고 8월 24일에 열린 전체 총회에서 그 안건을 붙였습니다. 그 안건을 상정했을 때 그 전까지 즐겁게 식사하고 화기애애하게 진행되던 총회가 분위기가 무거워지면서 갑자기 회의장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조금 후에 한 목사님이 재정문제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습니다.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총무 목사님은 머뭇거렸습니다. 그때 사회를 맡던 제가 재정은 하나님께 맡기자고 했습니다. 또한 그렇게만 말하면 무책임한 대답처럼 느낄 것 같아서 재정에 문제가 생기면 저라도 최종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마침 제가 2년간 현재 그 모임의 회장으로 있기에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니까 재정적인 압박감에 무거운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그 안건이 아무런 반대 없이 통과되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한 친구 목사님이 찾아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댔습니다. “목사님! 또 무슨 최종책임을 집니까? 선교한다고 전세에서 월세로 이사하고, 아직도 월세 살면서 무슨 대접입니까? 목사님 나이가 몇입니까? 나이 들어서 이사 다니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아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사모님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목사님은 한편으로는 목사지만 한편으로는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목사님은 대접이 좋은지 모르지만 사모님은 결코 좋아하지 않고 그것은 가장으로서 아주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생각해서 하는 말인 줄을 알았지만 너무 심한 말까지 섞어서 하니까 겉으로는 웃으며 받아넘겼어도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총회가 끝나고 아내가 먼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다음 날 새벽기도 준비를 하려고 교회에 남았는데 친구 목사님의 말이 자꾸 맴돌았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정말 잘못하는 것일까? 아내도 목사님과 선교사님들 대접하는 것을 아주 기뻐했는데 내가 오해한 걸까?”

 밤 11시 30분이 넘어서 집에 들어왔습니다. 아내의 의중을 떠보려고 질문했습니다. “여보! 오늘 총회 어땠어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정말 좋았어요. 특히 2012년에 우리가 총회를 개최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아무리 봐도 가식이 아니고 정말 기뻐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아내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무거운 마음이 덜어지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저는 요새 매일 총회 기도제목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총회를 잘 개최하도록 재정도 주시고, 120명의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교회도 부흥되게 하시고, 회원 목사님들의 역량과 애정을 키워주세요. 이제 저희 모임이 더 발전해서 2022년에는 1200명이 참석하는 미국 기독교선교연맹 전체 총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게 해주시고, 2032년에는 12000명이 참석하는 세계 기독교선교연맹 전체 총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대접받는 사람보다 대접하는 사람을 더 축복해주십니다. 그 축복을 알면서 어떻게 총회에 참석하는 목사님들 대접하기를 주저하겠습니까? 이제 2012년에 3박 4일의 총회가 끝나면 5박 6일 동안 대형버스 5대를 빌려서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 120명, 선교사님 10명, 그리고 한국에서 참여하는 60명의 회원 목사님들을 모시고 전국 일주 여행을 해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날은 목포, 둘째 날은 지리산, 셋째 날은 부산, 넷째 날은 경주, 다섯째 날은 설악산에서 하룻밤씩 지내려고 대략 계획 중입니다.

 그렇게 대접할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기쁨과 흥분이 넘칩니다. 앞으로 오실 목사님들 중에 3분의 2는 미국에서 어렵게 목회하는 분들입니다. 재정적인 문제로 20년 이상 한국에 와보지 못한 목사님들도 여러 명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총회를 통해 한국을 와보고, 관광을 통해 새로운 기쁨도 맛보고, 우리는 대접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어서 얼마나 기대됩니까? 그렇게 기쁘게 대접하려고 하면 하나님은 교회의 역량도 키워주시고, 성도들도 그런 일을 감당하도록 힘과 능력과 축복을 주시고, 더불어 세상을 보는 안목과 시야도 넓혀주실 것입니다.

 살다 보면 때로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만납니다. 그때 그 어려움을 축복의 기회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믿음으로 형성된 전체적인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그런 시야를 얻습니까? 평소에 받기보다 드리는 삶을 끊임없이 훈련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긍정적적인 가치관이 체질화되면서 고난 중에도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게 되고, 그런 모습을 기쁘게 보시고 하나님은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멋진 역사를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요즘 치열한 경쟁시대입니다. 그래서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잘 다니던 직장으로부터 퇴직당하는 아픔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어디 두고 보자!”고 하며 그 직장에 대해 한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디 두고 보자!”고 하면 그 두고 보는 사람보다 그렇게 한을 품은 자신에게 더욱 고통스런 삶이 펼쳐집니다. 내게 상처를 준 곳을 두고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상처를 준 곳을 두고 보지 말고 그 일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십시오.

 현재의 모습이 아무리 서글퍼도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고 기뻐하며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십시오. 그래서 은퇴를 맞아도 기뻐하면서 은퇴하고, 어딘가 물러나야 하는 상황에서는 기뻐하면서 물러나고, 때로 왕따를 당해도 결코 기쁨을 잃지 마십시오. 심지어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기뻐하며 떠나십시오. 그렇게 살면 본인도 행복하고, 그런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도 축복하사고, 앞으로 있을 천국의 상급과 영광은 더욱 크게 될 것입니다.

 성 프랜시스는 임종할 때 너무 기뻐서 크게 찬송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한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지금 창밖에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 시간이 조금 더 엄숙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때 프랜시스가 말합니다. “주책을 떨어 미안하네. 주님 만날 생각을 하니까 너무 기뻐서 그랬네.” 그처럼 최악의 상황에서도 넘치는 기쁨과 감사를 가지고 산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주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하며 기뻐함으로 현재를 행복하게 살면서 동시에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분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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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3 사도행전 거룩한 착각도 현실이 됩니다 행12:20-25  이한규 목사  2009-10-08 1773
2032 사도행전 지금도 수호천사는 존재합니다 행12:10-19  이한규 목사  2009-10-08 1944
2031 사도행전 편한 잠을 주시는 하나님 행12:1-9  이한규 목사  2009-10-08 1959
2030 요한복음 또 다른 부활 [6] 요11:14~16  오강남 형제  2009-10-08 1752
2029 요한복음 희생의 값어치 요12:24  고명진 자매  2009-10-08 1837
2028 시편 생명의 떡 시16:11  정지석 형제  2009-10-08 1903
2027 빌립보서 기쁨에서 평화까지 빌4:4-7  정용섭 목사  2009-10-07 1662
2026 누가복음 예수의 길, 요한의 길 눅1:76-79  정용섭 목사  2009-10-07 1896
2025 예레미야 새로운 세상 렘33:14-18  정용섭 목사  2009-10-07 1843
2024 요한복음 앎의 영적인 차원 요6:41-51  정용섭 목사  2009-10-07 1831
2023 여호수아 만나 이후 수5:10-12  정용섭 목사  2009-10-06 1893
2022 요한복음 자유로워지는 길 요8:31-38  정용섭 목사  2009-10-06 1842
2021 시편 공간, 울림, 하나님 시19:1-6  정용섭 목사  2009-10-06 2050
2020 예레미야 기다림의 이중성 렘29:4-14  정용섭 목사  2009-10-06 2344
2019 히브리서 받은 복과 누리는 복 히4:1~11  조용기 목사  2009-10-05 2006
2018 창세기 영원한 행복의 길 창1: 31  조용기 목사  2009-10-05 1601
2017 누가복음 말씀 위에 선 믿음 눅8:22~25  조용기 목사  2009-10-05 2078
2016 사도행전 성령강림의 축복 행2:1~4  조용기 목사  2009-10-05 1955
2015 히브리서 벼랑 끝에 서게 될 때 히10:37~39  조용기 목사  2009-10-05 2197
2014 디모데후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딤후4:6~8  조용기 목사  2009-10-05 2806
2013 요한삼서 왜 삼중축복인가? 요삼1: 2  조용기 목사  2009-10-0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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