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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66) 믿음생활의 구조조정 (행 12:20-25)
< 겸손한 삶 > 본문에서 헤롯의 효유(일장연설)에 백성들이 “저건 사람소리가 아니라 신의 소리다!”라고 열광적으로 환호하자 헤롯은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다가 벌레 먹어 죽습니다(22-23절).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남을 속이고, 자신도 속이는 태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갈6:3) 교만은 자기 허물은 안 보고 남의 허물은 크게 봅니다. 그런 마음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본래 겸손하기 힘듭니다. 조금만 틈이 생겨도 자꾸만 높아지려고 합니다. 공부를 조금만 잘하고, 돈이 조금만 많고, 얼굴이 조금만 잘 생겨도 금방 높아지려고 하고, 심지어는 조금만 은혜를 더 받는 것 같아도 높아지려고 합니다. 진짜 은혜를 받으면 겸손해지지만 가짜 은혜를 받으면 교만해집니다. 결국 은혜는 자신을 낮출 때 주어집니다. 먼저 자기를 죽일 때 치유의 길과 문제 해결의 길이 활짝 열립니다. 어떤 사람이 수술할 때 마취를 했는데 잘 안되었습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아! 아직 안 죽었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더 기다리거나 죽이려고 마취제를 더 써서 기필코 죽입니다. 수술 부위를 죽이지 않고 수술하면 더 끔찍한 고통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잘 죽어야 더 놀라운 치유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 원리를 알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자랑을 참고 잠잠히 지내면 그것이 날마다 죽는 삶이고, 분노가 치밀지만 그 분노를 참으면 그것도 역시 날마다 죽는 삶입니다. 가끔 ‘편안한 삶’에 대한 추구가 유혹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편안’은 영혼의 ‘평안’을 앗아감을 알고 ‘편안’을 멀리하고 ‘헌신’을 가까이 하는 삶도 날마다 죽는 삶이고, “감사합니다!”라는 빛깔 있는 말을 많이 하면서 입을 하나 주시고 귀를 두 개 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하기’보다 2배 이상 ‘듣기’를 힘쓰는 것도 날마다 죽는 삶입니다.< 예배하는 삶 > 누군가 가수 조영남이 싫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까 자기 최고인 줄 알고, 너무 잘난 척 하고, 지나치게 튀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에게도 장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에게 겸손함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안타깝게도 그 많은 장점이 묻혀지는 것입니다. 높아짐을 좋아하면 낮아지고 낮아짐을 좋아하면 높아집니다. 자기가 제일인 줄 아는 교만한 사람은 곧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지만 자기가 부족한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은 곧 하나님의 축복이 따릅니다. 특히 겸손한 삶의 최대 표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인생을 결정하고, 성패를 결정하고, 운명을 결정합니다. 무엇보다 예배에 전력하십시오. 요즘 구조조정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장사가 잘 되거나 잘 할 수 있는 기업에 집중하고, 문어발식으로 늘어놓지 말고 좀 자르고 중요한 사업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그처럼 믿음 생활도 구조조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본질적이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며 사십시오. 무엇에 집중해야 합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의 수준이 삶의 수준입니다. 예배하는 태도가 인생의 태도를 결정합니다. 또한 예배의 축복의 축복을 결정하고, 예배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에 힘쓰면 하나님은 사람의 기도를 응답해주기에 힘쓰십니다. 결국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삶에는 절망이 없습니다. 길이 다 막혀도 하늘로 향하는 길만 열려 있으면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 내 인생을 잘 펼쳐 가실 것입니다.ⓒ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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